하나님의 전이 황무하였거늘
학 1:1-6
학개서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왕국 유다는 BC 586년 시드기야 왕 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멸망당하여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 갑니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은 BC539년에 바사의 고레스에게 멸망 당합니다. 고레스는 피정복민에게 유화정책을 시행했는데 BC538년에 칙령을 내려 유다백성을 본토로 돌아가고 성전도 재건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BC536년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인솔 하에 일차 포로귀환이 이뤄졌는데 학개도 이때에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바사 왕 다리오 2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고국으로 돌아온 지 18년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근 20년이 되도록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학 1:1 /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최초로 선포한 때가 언제였습니까?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였습니다. 초하루는 새 달이 시작하는 날로서 월삭입니다. 이때 월삭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무한 성전에서 모여 있습니다. 이때 학개 선지자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사람의 이름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입니다. 스룹바벨은 유다의 총독 곧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로 하여금 유독 이 두 사람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도자가 먼저 바르게 서야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르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 1:2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 백성"이라고 지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실 때는 "내 백성"이라고 칭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책망하실 때는 "이 백성"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말하자면 지금 하나님의 마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섭섭한 감정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변명합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 건축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는 것입니다. 아직 때가 않되었다는 것은 표면적 이유이고, 성전 건축을 미루는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학 1:3-4 /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금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판벽이라는 말은 널빤지로 벽을 둘렀다는 뜻입니다. 즉 집을 건축하고 인테리어를 잘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은 지금 덩그러니 터만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 1장을 보면 하나님은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 땅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령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까? 바사 나라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까? 시집가고 장가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까? 자기들의 집을 지을 만한 충분한 땅이 부족했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목적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에스라 1장에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서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육신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기들의 집을 짓느라 바빠서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탄식하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우리나라 교회사를 읽어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님은 최치량 장로님이었습니다. 이분은 선교사님들을 도와서 평양에 있는 장대현 교회를 세우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최치량 장로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천장에서 비가 새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다음날 월요일 아침 일찍 자기 집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지붕 위에 있는 기와를 벗겨 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멀쩡한 기와를 왜 벗겨 내십니까?" 그때 최 장로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비가 새고 있어. 내 집이야 비가 좀 새도 괜찮지만 어찌 하나님의 집에 비가 새도록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는 자기 집의 기와를 벗겨와 하나님의 성전의 비 새는 곳을 막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라고 말씀했습니다.
학 1:5 /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지 아니하고 황무한 채로 내버려둔 것이 바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학 1:6 /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오늘 본문 6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황무해진 삶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농사를 지을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늘에서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아 버리면 농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둘째,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셋째,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넷째,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다섯째,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즉 들어오는 것은 적은데 나갈 것은 많다는 것입니다.
옛날 시골에서 우물물을 긷는 두레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통은 값싼 양철로 두레박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잘 길을 수 있지만 오래 쓰다보면 양철로 만든 두레박은 우물 벽 여기저기에 부딪혀서 찌그러집니다. 그리고 두레박 밑은 녹이 슬어서 구멍도 생깁니다. 이런 구멍 뚫린 두레박을 가지고 물을 길으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물이 가득 담겼지만, 올라오면서 다 새 버리고 올려보면 물이 밑바닥에 조금만 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황무한 삶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멍 뚫린 전대와 같습니다. 구멍 뚫어진 두레박과 같습니다.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들 무슨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의 심령에 허물어진 황무해진 영적인 제단을 먼저 든든히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