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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4세기 카파도키아 교부들, 삼위일체의 정통교리를 만들기 위하여 만나다 - '신학논쟁'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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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저 E. 올슨 지음, 박동식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8년, M.Div. 과정을 밟는 당시에 이은재 교수님의 교회사 강의를  들으며 작성했던 글이다. 

 

 

. 들어가는 말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들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시대를 살았다. 그 논쟁은 4세기에 있었던 반()아리우스주의 논쟁이다. 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했고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끝마쳐야 했던 삼위일체 논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논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5세기 무렵에 정통교회의 교리로 확립된 삼위일체, 니케아 신경(325)을 거쳐 콘스탄티노플 신경(381)을 통해 확정된 삼위일체 교리를 공부하며,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이 역사 속에서 무엇인가?’라는 하나님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현실은, ‘역사 속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올바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하나님이해가 전제된 신학과 현실의 맥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신학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 카파도키아 3대 교부들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전 생애를 다해 지켜낸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homoousios)이 니케아 공의회(325)에서 분명한 결론을 내렸음에도 아리우스주의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성령의 신성에 대한 논쟁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가 열리기까지 약 60년 동안 교회를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았다. 바실리우스, 그의 친동생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그의 친구인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를 우리는 카파도키아 3대 교부로 부른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성령론을 체계화시킴으로 성령과 성자의 신성을 인정하고 명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 바실리오스

 

동방교회뿐 아니라 서방교회에서도 큰 존경을 받고 있는 바실리오스는 330년경 카파도키아 체사레아의 부유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수사학자였던 아버지의 이름 역시 바실리오스였고, 어머니는 에멜리아(Emelia)였다. 그는 처음에 아버지로부터 기초교육을 받다가 체사레아로 가서 공부를 마쳤다. 이 때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후 그들은 깊은 우정을 갖게 된다. 이후 콘스탄티노플로 옮겼고 351년 이후에는 아테네에서 수사학을 공부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체사레아에 정착하여 수사학 교사가 되었고 교육자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356년경에 고향으로 돌아온 바실리오스는 수사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그는 수도생활에 강한 매력을 느끼고 세례를 받았는데, 특히 세바스테의 에우스타시우스(Eustatius)의 엄격한 생활방식에 매료되었다. 이 때문에 바실리오스는 소아시아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이집트의 수도승 세계를 돌아보는 일종의 견학여행을 시작하였다. 358년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리스 강변의 한적한 곳 안네시(Annesi)에 있는 가족 소요의 땅에서, 이미 수도생활을 하고 있던 누나 마크리나의 모범을 따라, 금욕생활을 시작하고 성경과 교부들의 문헌 공부에 열중하면서 윤리 규정집(Regulae morales)을 저술하였다.

 

체사레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가 바실리오스를 주교의 보조자로 임명하였고, 에우세비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바실리우스는 그의 뒤를 이어 체사레아의 주교가 되었다. 이 때 바실리우스는 나름대로 내적 조직과 안정성을 지닌 큰 공동체들로 성장한 금욕가 무리들을 위해 ()수덕집을 새롭게 적용하고 몇몇 구절을 첨가해서 ()수덕집(Asceticon magnum)을 완성하였다. 그는 세상 권력에 용감히 맞서 저항했고, 온 힘을 다해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 싸웠다. 하지만 그는 아리우스 이단의 확산을 멈추게 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보지 못한 채 379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381년에 있었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바실리오스는 매우 특별한 수도생활을 창시하였다. 곧 지역교회 공동체에 닫힌 수도원이 아닌 그것에 열려 있는 수도생활이었던 것이다. 그의 수도자들은 지역교회의 일원이 되었고, 그곳의 핵심역할을 수행하였다.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 다른 신자들에 선행하면서도 단순히 신앙뿐 아니라 애덕 사업을 통해 그리스도에게 매우 고착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바실리아데’(Basiliade)라는 구빈 기관을 만들었다. 수도 공동체를 중심으로 양로원과 병원 종사자들의 숙소 등을 두루 갖춘 이곳은 가난한 이에 대한 봉사에 헌신하였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완전한 모습으로 제시하였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실천적이고도 수덕생활적이지만, 정통교의에 입각하여 엄격하고도 강한 교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 같은 하나님임을 거부하는 이단자들에 맞서 에우노미우스 반박(Contra Eunomium)을 저술한다. 그리고 성령의 신성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항하여 성령 역시 하나님이며 성부와 성자와 함께 같은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고 강변한 성령론(De Spiritu Sancto)을 저술하였다.

 

 

2.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

 

카파도키아의 나지안조스에서 주교의 아들로 태어난 그레고리우스는 체사레아, 알렉산드리아, 아테네에서 공부한 후 355-356년경 고향으로 돌아왔다. 357년 혹은 358년경 세례를 받았고, 361년 성탄에 아버지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372년 바실리우스가 사시마(Sàsima)의 주교좌를 맡을 것을 요청하였지만 주교로서의 그의 삶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고, 그는 다시 은둔 생활을 하였다. 37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잠시 나지안조스 교회의 주교로서 일하였으나 곧 셀레우치아(Seleucia)로 물러났다.

 

378년 발렌스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니케아 공의회 지지자들은 다시 응집할 희망을 갖게 되었다. 바실리오스가 지도하던 콘스탄티노플의 소규모 정통파 공동체를 규합하기 위해 그들은 그레고리오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등극한 후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다섯 편의 신학적 연설(Orationes theologicae)을 썼는데, 정통 신앙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와 삼위일체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자 하였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가 기독교에 공헌한 또 다른 예는, 아폴리나리우스라고 불리는 기독교 선생을 이단으로 폭로한 사건이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에 거부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고 신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이며 성부와 동등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완전한 인간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는 로고스, 말씀,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성(혹은 정신)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과 영혼을 가졌지만 인간의 이성에근거한 혼이나 정신은 가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는 성자가 맡지 않은 것은 구원 받지 못한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대응했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안티오키아의 멜레티우스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의장이 된 그는 성령의 신성과 동일본질성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선포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로마 역시 그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좌로 옮기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레고리우스는 황제에게 콘스탄티노플 주교직을 사임하고 2년간 나지안조스에 머물다가 39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리안주스에 있는 가족 소유지로 물러나 기도와 공부에 전념하였다.

 

 

3.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는 바실리오스의 동생으로 335년과 34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바실리오스와 누이인 마크리나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요한이라는 사람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영적 스승이었던 마크리나를 추억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에게 누이는 우리 삶의 스승이자 어머니를 뒤이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매우 솔직하게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즐겼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힘을 솟게 하는 성곽이요, 하나님 마음에 드는 무기였으며, 벽으로 둘러싸인 성채와 같았습니다.” (서한 19,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스 문학, 플라톤주의, 스토아 사상, 오리게네스와 필론의 사상 등 폭넓은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360년경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바실리오스와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가 금욕적 이상에 자신의 삶을 바치려 할 때 오히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세상으로 향했으며 수사학자가 되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365년경 테오세베이아와 결혼하였으나 부인은 곧 세상을 떠났다. 이는 후에 그가 결혼생활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72년 카파도키아 지방이 양분되자 바실리오스는 제1카파도키아에 주교좌를 늘려 형제와 친구들을 주교로 임명하였다. 이 때 그레고리오스가 니사의 주교가 되었다. 바실리오스의 증언에 따르면, 그레고리오스는 천재였지만 뛰어난 행정적 능력은 갖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형 바실리오스보다 니케아주의자들을 더 지지했기 때문에 아리우스파로부터 많은 반대를 받아 376년 그들의 고발로 378년까지 유배를 당하였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하였으며, 바실리우스와 나지안조즈의 그레고리우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가장 신뢰받는 정통신앙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는 394년 세상을 떠났다.

 

 

4. 카파도키아 세 교부들에 따른 성령의 동일본질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에 따르면(서한 58), 바실리우스는 372년에 강론할 때에는 성령의 신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주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세바스테의 에우스타시우스(Eustatius)와의 결별과 성령피조설주의자들의 활동이 커지자 그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에우스타시우스에게 보낸 신앙 고백문에서 그는 새로운 본문을 제시한다. 곧 성령은 거룩한 분이요, 성부와 성자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신적이요 복된 본성을 함께 지닌 분이라는 것이다.

 

375년 저술한 성령론(De Spiritu Sancto)에서 그는 한 단계 진일보한 입장을 보인다. 곧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영광과 존귀와 예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은 성부와 성자보다 낮은 위치가 아닌 그들과 동일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순서(ordo)에서는 세 번째 이지만 성부와 성자와 같은 본질을 갖고 계신 분이기에 성부와 성자와 함께 공경을 받는 분이지, 성부와 성자보다 하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토록 성령의 신성과 동일실체성을 주장한다.

 

그의 주된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성령의 위대함과 위엄에 대해 그리고 그의 역할의 힘과 광대함에 대한 성경의 증언,

2) 성부와 성자가 무엇을 하던, 특별히 성화와 신화의 일에서 성령이 연합되어 있다는 것,

3) 성부와 성자 모두에 대한 위격적 연결이다.

 

다른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바실리오스의 가르침을 반복하고 확장하는 데 그치고 있다.

 

 

5. 카파도키아 세 교부들에 따른 성령의 기원 문제

 

카파도키아 세 교부들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성령의 기원 문제이다. 성령과 하나님과의 동일본질을 주장한다면, 하나님이 두 아들을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바실리오스는, 성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나 출생(generatio)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그의 입의 호흡으로서나왔다고 말한다. 이럼으로써 성령의 존재 양식 역시 형언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된다. 또한 그는, 한 분이신 성령이 한 분이신 성자를 통하여 한 분이신 성부와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곧 신성이 성부로부터 성령에게 도달한 것은 독생 성자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는 요한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에 근거하여 성령이 성부로부터 발출한다고 가르친다. “성령은 참된 영으로서 아버지로부터 오시는데 아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오신다. 왜냐하면 성령의 오심은 출생에 의하지 않고 발출에 의한다.” 하지만 발출(processio)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로써 삼위일체 내의 구별이 정확히 표현된다. 성부의 특성은 낳음을 받지 않은 자’, 성자는 낳음을 받은 자그리고 성령은 발출이다.

 

이에 대해서 니사의 그레고리오스가 명확하게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고 성자에 속한다. 곧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고 성자로부터 받는다. 성령은 말씀과 분리될 수 없다. 여기서 성령의 이중 발출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세 위격들은 각각의 기원에서 구분된다. 곧 성부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다른 두 위격들은 기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기원을 갖고 있는 두 위격들 역시 서로 구분된다. 한 위격은 성부로부터 직접 나왔고, 다른 위격은 성부로부터 매개자를 통하여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성자만이 독생자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고, 성령과 성부의 관계는 그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나왔다는 사실로 볼 수 있다. 또한 니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원인과 결과로 보기도 하였고 그 비유로 횃불을 든다. 곧 성부의 횃불이 성자의 횃불에 전달되고 그 다음에 세 번째로 성령에게 전달된 것이라는... 니사의 그레고리오스의 가르침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를 통해 동방교회의 성령의 기원에 대해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라는 정식이 형성된다.

 

 

6. 카파도키아 세 교부들의 삼위일체론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논란이 많았던 돌파구 중 하나는, 카파도키아 교부들이 삼위일체의 일체와 삼위를 표현하기 위해 본질(ousia)위격(hypostasis)을 구별한 것이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ousia는 본질, hypostasis는 실체, 즉 한 실체의 개별적 예시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hypostasis는 영어로 person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삼위일체를 서술하는 흔한 문구는 한 본질, 세 위격’(one substance, three persons)이다. 카파도키아 세 교부들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열심히 연구했는데,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사상을 선호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를 그 모임의 의장으로 지명했다. 한 때 칠천 명의 그리스인들을 처형하기도 한 테오도시우스황제는, 그들이 자신에게 반대해 공개적으로 반역을 행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자이다. 하지만 그의 의심스러운 믿음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니케아 신조와 정통교리를 지지했고 마침내 유사본질(homoiousios) 사상을 지닌 아리우스주의자들과 반아리우스주의자들을 완패시켰다. 콘스탄틴 공의회는 성자와 성부의 관계성을 기술하는 동일본질(homoousion)을 주장하는 니케아 신조를 확증하고 성령에 관한 세 번째 조항을 신조에 추가했다. 이리하여 삼위일체 교리가 완성되고 공식화되었다.

 

바실리오스에 따르면, “성부의 것은 무엇이든지 성자 안에서 나타나 보이며, 또 성자의 것은 무엇이든지 성부에 속한다. 성자는 성부 안에 영원히 계시고 반면에 그의 안에 성부를 영원히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하여 성자의 실체라는 것은 성부가 알려지는 형상과 현시이다. 그리고 성부의 실체는 성자의 형상 안에서 인정된다.” 또한 본체와 위격의 관계는 공통되는 것과 특별한 것의 관계이다. 우리 각자는 공통된 본체를 통해 존재에 참여하고, 그것으로 인해 개인적인 특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서 본체는 공통성이고 선성 또는 신성 또는 어떤 비슷한 속성을 드러내는 반면, 위격은 부성(父性), 아들성(sonship) 그리고 성화의 능력이라는 특별한 속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다”(서간 214). 결국 바실리우스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의 구별은 그 근원과 상호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성부, 성자, 성령의 근원을 비출생, 출생, 그리고 발현 혹은 파견으로 표현하고 삼위의 특색을 부성, 아들성, 그리고 성화라고 표현한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성자의 출생과 성령의 발출을 구별하기 힘듦에 대해 지적하지만, 삼위는 각각 다른 존재가 본질을 가진 것이 아니고 오직 세 가지 다른 존재 양식을 가진 것뿐이라고 규명하였다. “시작이 없으신 분의 고유한 이름은 성부이시다. 시작 없이 나신 분의 고유한 이름은 성자이시다. 나지 않고 발출하시는 분 혹은 오시는 분의 고유한 이름은 성령이시다.” (신학적 연설 30,19). 다시 말하면, 세 위격의 동체성과 단일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개별적 특성에 의해 구별되며, 세 위격을 함께 고찰해 보면 한 분의 하나님이다. 전자는 동일본질 때문에, 후자는 단일성 때문이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역시 성부와 성자의 성령 사이의 차등이 없는 하나의 신적 실체 강조한다. 또한 세 위격은 서로 종속되지 않고 항상 삼위일체적 관계에서만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부는 성자 없이, 성자는 성령 없이 생각될 수 없다. 성자를 거치지 않고서는 성부께 갈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성령 안에 있지 않으면서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자, 성자, 성령은 항상 함께 완전한 삼위일체 안에서 고찰된다.”

 

 

7. 콘스탄티노플 회의

 

카파도키아 교부들과 논쟁 하였던 대상자들은 마케도니아 학파 곧 성령 훼방당파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성령을 신적 인격이라고 이해하기 보다는 에너지 능력, 도덕적 감화력 등 물질주의적으로 해석하였다. 이를테면 성령의 유사본질을 주장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항하여 카파도키아 학파는 그리스도뿐 아니라 성령도 하나님과 동등한 동일본질을 지닌 분임을 강조하고 성부, 성자, 성령은 그 위치에 있어서도 동등성을 유지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삼위는 하나의 본질을 지녔으나 세 존재 양태, 세 위, 세 기능으로 나누어진다는 새로운 용어 μια οθσια Τρεισ υποστασεις를 사용하여 삼위일체를 정립한 대가들이 되었다.

 

따라서 성부는 영원히 스스로 계시는 분, 성자는 영원히 태어나신 분, 성령은 영원히 나오신 분으로 이해하며 서령도 다른 두 위(성부, 성자)처럼 우리의 예배와 기도를 받으시며, 우리 신앙의 대상이 되신다고 이해하였다. 결국 제2차 에큐메니칼 회의인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마케도니아 학파는 이단으로 정죄되고 카파도키아 학파의 성령 동일본질론과 삼위일체론이 정통교리로 확정 되었다. 니케아 신조(공식적으로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공식적인 기독교 신앙 선언문이 되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세계교회협의회 WCC 총회, 2013년)

 

우리는 한 분이신 성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전능하셔서, 하늘과 땅과, 이 세상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한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모든 시간 이전에 성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요, 빛에서 나신 빛이시요,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며,

성부와 같은 분으로, 낳음과 지음 받은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지음 받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어,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참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 형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묻히셨으나, 성서의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시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하는 한 세례를 믿습니다.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오고 있는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 나가는 말

 

나의 존재를 규명해야 할 때 반드시 선행되어지는 질문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이다. 바로 이 문제를 성서는 창세기부터 일관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성서 전체에 걸쳐 신과 인간의 문제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하나님이해를 위해 온 열정을 불살랐던 갑바도키아의 세 교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카파도키아 3대교부들, 변종찬, 평화신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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