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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교육적 측면에서 바라본 웨슬리신학》, 감리교 신학대학원 과제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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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M.Div. 3학기 과정을 밟을 때, '교육과 신학' 강의를 들으며 작성한 글이다. 

 

웨슬리 설교문(43, 5, 16)을 중심으로 본, 교육적 측면에서의 감상문(感想文)

 

. 들어가는 글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라는 막연한 말로 끝나는 설교를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가? 그래서 얼마나 성숙해졌는가?! 우리에게는 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숙해져야 하는지를 제대로 가르쳐 줄 스승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간절히 해왔었다. 우리가 사는 엄정한 현실 가운데에서 이뤄내는,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 사용되고 증거 될 수 있는 실질적인 영적 성숙이, 21세기의 우리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터였다.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믿고 경험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목적일진대,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확신하며 교육할 수 있는가?‘

 

이 시점에, 오성주교수님의 추천으로, 웨슬리 설교문를 읽게 되었다. 우리들의 선조 웨슬리가 풀어놓은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이 되는 성경적인 기독교, 진정한 기독교, 생명력 있는 기독교에 대해서 말이다.

 

웨슬리 설교문을 읽으며, 나로 하여금 예수 안에 있는 신앙을 가지고, 예수를 직접 경험한 자로서 영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정의를 추구&전하는 자로 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갖게 했다! 웨슬리 설교문을 읽는 동안, ‘교리와 영과 훈련을 모두 견고히 붙잡으라는 존 웨슬리의 외침이 내 안에 생생하게 메아리치는 듯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교회를 개혁하고 사회를 성화하고 민족을 구원하는성령의 불이 내 안에 일어나는 것 같았다.

 

성경 전통 이성 경험을 표준삼는 감리교 신학의 사중표준(四重標準)’에 대하여, 그리고 성경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은총의 수단’(The Means of Grace)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다.

 

예수 그리그도의 구원 업적을 통해 해방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를 생각하며, 웨슬리가 말하는 '성경적 구원의 길'은총의 길을 항해해 보려 한다.

 

. 몸 되는 글

 

1. 웨슬리의 세 편의 설교문 제시

 

설교43 / 성경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넒은 의미로 구원은 선행적 은총으로부터 영화까지 이르는 과정이지만, 좁은 의미로 구원은 칭의와 성화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와 확신인 믿음이야말로 칭의와 성화의 조건이라고 밝히고 있다.

 

웨슬리는 믿음구원이라는 말이 성경 전체의 실체이며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구원이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지금 가지고 있는 축복이라고 말한다.

 

웨슬리는 모든 인간이 아담의 죄와 죄책을 지니고 태어나 죄의 속박과 영원한 저주와 멸망으로 가는 절망 가운데 있다는 성경적이고도 고전적인 원죄와 전적 타락을 주장하였다. 원죄(原罪; original sin)는 아담의 죄가 온 인류에게 미치는 결정적 영향을, 전적 타락(全的墮落; total depravity)은 인간 본성의 부패를, 그리고 인간의 타락(fall of man)은 원죄에 의해 비롯되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단절과 소외를 강조한다.

웨슬리는 아담 이후로 모든 인간은 그 마음의 생각, 즉 모든 상상까지도 오로지 악할 뿐이며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무신론자들이며 마귀의 형상을 지니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는 어떤 인간도 이와 같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은 선행은혜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타락하였고, 원죄로 죽은 인간은 구원의 은혜(saving grace)를 필요로 하는데,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 즉 칭의하는 은혜(justifying grace)와 성화하는 은혜(sanctifying grace)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고 하였다.

 

웨슬리의 주요 강조점은 하나님이 너희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너희도 일할 수 있고 또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전제에 있다.

 

웨슬리의 선행적 은혜 교리의 주요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철저한 자기인식, 인간의 죄와 무능력에 대한 각성을 일으키고, 인간 자신에 대한 절망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삶 전체를 주관하도록 내어 맡기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양심이 선한 양심이 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인간의 양심 홀로는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알지도 못하고 인간을 구원에로 이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믿음이나 회개는 공로도 아니며, 협동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다.

 

구원은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으로만 얻는다. 이것은 웨슬리가 가르친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와 이에 기초한 만인구원(salvation for All)의 교리를 표현하고 선포하는 말이다. 이신칭의(以信稱義),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은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의지할 때만이 모든 원죄와 자범죄를 용서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음으로 죄의 결과인 죄책과 죽음과 영원한 멸망과 저주에서 자유함을 얻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외에는 어디에도 이와 같은 구원의 길이 없다는 말씀이다.

 

웨슬리는 초지일관 오직 구원하는 은혜’(saving grace)와 이 은혜를 믿는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saving faith)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설교5 / 믿음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구원의 유일한 수단은 믿음이다. 칭의의 은혜를 얻는 길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인데, 웨슬리에 의하면 믿음이란 하나님의 복음의 약속에 대한 전적인 동의, 그의 자비하신 은혜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신의 의로움과 선행이나 지혜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정, , 무력함으로 인해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깨지고 또 죄 있는 자로 선언되고 하나님께 대해서 다만 불경건함만을 가지고 와서 단지 자기 죄와 비참함만을 호소해 오는 것이다. 또한 믿음은 여기에만 제한되지 않고 회개와 사랑과 순종과 소망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칭의는 새로운 탄생(新生; new birth)을 동반한다. 신생은 거듭나고 다시 태어난다는 뜻으로 중생(重生, regeneration)이란 말로도 표현되는데, 칭의는 죄의 용서와 사면,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용납되는 은혜이고, 신생은 죄의 세력을 파괴하고 우리의 속사람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활을 본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복을 누리는 은혜의 역사를 의미한다. 신생은 성화의 시작이고 성화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건이다. 웨슬리는 설교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서 칼빈주의의 예정론을 비판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은혜를 강조했는데, 칼빈주의 예정론 교리의 위험스럽고 파괴적인 해악성을 비판하면서 예정론의 교리와 대조되는 진실된 교리를 말한다. 진실된 교리는 모든 사람 앞에 생명과 죽음이 놓여져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선택하도록 강권 받으며, 생명을 선택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약속된 모든 복을 값없이 얻는다는 성경적 복음의 교리를 의미한다.

 

칭의 교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만인구원론이요,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복음 전도이고 오직 은혜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성경적 복음주의이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교리이고, 반드시 신생을 동반하는 중생의 교리이다. 이러한 이신칭의 교리는 감리교 구원론의 핵심이며 감리교 복음전도의 원동력이다.

 

웨슬리는 모든 신자가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모든 죄에서 용서 받았으므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성령의 증거와 우리 영의 증거를 통하여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으며 알 수 있다고 설교했다. 그는 성령의 증거와 우리 영의 증거를 구분하였다. 성령의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직접 일으키시는 하나님 자신의 증거이다.

 

웨슬리는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8:15)는 말씀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의 말씀을 성령의 직접 증거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성경적 근거로 설명하면서,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영혼 위에 나타나는 내적 인상으로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것이며, 이로써 하나님의 영은 우리 영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사 나의 모든 죄를 도말하시고 그로 인해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령이 나에게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 영의 증거란 하나님께 대한 우리 선한 양심의 증거와 같은 것이며 우리의 이성으로 곰곰이 생각해서 얻은 이해와 신뢰 또는 확신에 의해서 나오는 이성적 증거이다. 즉 그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서 느끼는 것에 대한 이성적 반영이요, 우리의 마음과 생활의 체험에서 나오는 확신을 의미한다.

 

설교16 / 은총의 수단(The Means of Grace)

 

웨슬리는 모라비아교도들의 정숙주의와 외적인 의식을 경솔히 여기는 일부 메소디스트들을 염두에 둔 설교를 하였다. 고교회적 복음주의자로서 은혜의 수단은 믿음이 적은 사람이 참여할 때 믿음이 성장할 수 있고, 믿음이 없는 사람도 참여하면 믿음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믿음의 수단으로 기도, 성경 묵상, 성찬 등을 예시하고 있다.

 

은총의 수단을 오용해서도 남용해서도 안 된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갈 때 수단을 목적으로 잘못 알고, 종교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보다 외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웨슬리는 은총의 수단이 즐김과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을 그대로 수용하며, 즐김과 사용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은총의 수단은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그것을 즐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물임을 명심하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사귐과 관계의 즐김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열망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성경의 결정을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수단에 의해 대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은밀한 기도로 하나님의 축복을 대망하라는 명백한 지시를 약속의 말씀과 함께 제시하였다. 웨슬리가 말하고 있는 은총의 수단은 말씀기도이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께 이르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기도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다. 기도와 말씀은 구원의 과정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이요 도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찬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 분명한 목적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주님을 기념하기 위하여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주님의 성찬을 받는 일, 은밀한 기도나 대중과 함께하는 기도, 성경을 듣고 심사숙고하는 것 모두, 하나님에 의하여 그 은혜를 사람들의 영혼에 전달하는 통상적인 통로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해 계셔서, 수단 자체에 매이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성령 이외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수단을 초월하시므로, 수단 자체로는 힘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공적(功績)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루어 가신다. 그러기에 모든 은총의 수단을 도움으로만 삼고 하나님만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수단이 말씀과 기도인 것이다!

 

2. 교육적으로 느낀 점

 

웨슬리의 설교문과 함께, 그동안 오성주교수님이 사사(師事)하신 것을 모두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현재 교회 안에 교육신학이 없음을 절대 공감하면서, ‘교인(敎人)이 아닌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되어갈 수 있는가를 제대로 교육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오늘날 교회교육의 현장에서 기독교교육이 처한 위기란, 단순히 교회학교 인원수가 줄어드는 문제나 새로운 프로그램의 부재에 있기보다 오히려 기독교교육의 본질과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오는 기독교교육의 신학적 통찰력의 부족에 있다고 하겠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바벨론 포로기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주시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으로 인도하는 신앙교육에 대해 깊은 통찰 갖기를 기도한다. 교회가 쇠퇴하고 교회학교가 사라지며 가정과 부모교육의 위기를 맞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서, 교회와 신학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교육신학이란 낯선 경험,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다. 단독자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날 때 고백(confession)하게 된다. 하나님과 독대&대면하는 낯선 경험을 하게 한 후, 그것을 고백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신학이다. 성서를 통한 거룩한 독서,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과 나의 것을 비교하며 표현하고 익히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교육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힘이 교육 속에 역사하신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의 교사가 되셔서, 생각나게 하신다. 웨슬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제로 하고 경험을 통해 진리를 파악해나가는 실용주의와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험주의적 신학을 했다. 그런 그가 주장한 것은, 인간이 제한된 한계성, 비결정(非決定)된 상황 속에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아는 길은 믿음으로밖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임재체험을 도울 수 있을까? 어떤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해야 할까?

 

신약성경과 사도적 전통의 구원론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의 단계적 순서인, 믿음(회개) - 이신칭의 신생 성화 완전성화 영화의 과정을 알려주고 평가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믿음 회개 칭의 성화 완전 영화라는 구원의 과정을 말할 때에 반드시 현세에서 완전성화의 단계까지 올라가야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칭의에서 죄와 죽음의 법으로부터 건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웨슬리는 루터에게서 칭의에 함몰되어 성화라는 중요한 주제를 간과하는 문제를 발견했고 구원에 있어서 칭의와 성화의 두 축을 복원함으로 삶의 열매를 강조한다.

 

지도 교수님께서도 강의 시간에, 성화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실천 덕목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력히 말씀하셨다. 9가지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예수그리스도의 heart(믿음, 소망, 사랑)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하셨다.

 

교육에서, 성육신(Incarnation), 계시, 임재, 말씀과 기도는 무척 중요하고, 교육과정에서는 하나님이 드러나야 함을 누누이 강조하셨다.

 

신학의 사명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성실하게 해석하고 인간실존의 모습을 성경의 빛에서 밝히 비추어주고 인간구원의 메시지를 그 시대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신학은 이 사명에 충실하며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고 들은 것을 말해야 한다. 인간의 구원은 세상 끝날까지 인간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성경의 기독교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그리고 사도들의 신앙에로 돌아갈 때에만 시대의 변화를 이기고 언제나 살아계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지도 교수님의 사역을 3기로 나누어 소개해 주신 것이 무척 깊이 가슴에 와 닿았다.

1: 리더십코치(교사의 리더십), 2: spiritual direction(영성지도), 3: 코칭

 

교수님께서 코칭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바뀐 것과 대화 질문 경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셨을 때, 신앙교육의 핵심을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고(思考)를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지식을 따르라고 하지 않으신다. ‘’(예수 자신)를 따르라고 명하신다. 이는 자신와의 관계 속에 인간을 초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회개케 하시는 리더십이 있으셨다. 이제 교육도 시대도 마음이 먼저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거기서 교육이 시작된다. 변혁적인 힘을 가진 리더는 감동을 주면서 사람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예수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삶의 요구들을 수용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예수의 영 안에서 살고, 예수의 희망을 품으며, 예수가 시작했던 일을 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신앙을 가지고, 예수를 직접 경험한 자로서 영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정의를 추구하는 교육을 해야겠다는 각오가 선다!

 

교육에는 제사장적인 기능과 예언자적 기능이 있다고 한다.

<교육신학적 인간이해>를 보면, 교육역사가 크레민은 좋은 교육의 본질적 역할이란 예언 혹은 전통과 예술적 영감의 연결성이라고 주장한 내용이 나온다. 교육은 예언자적으로사람들에게 그들의 가장 깊고 중요한 가치들을 불러내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육이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술적으로이러한 가치를 현재 경험으로 연결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하였다. 기독교교육이란 전통을 이해하며 추구하도록 하며, 신앙의 중심에서 희망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를 따르도록’(follow Jesus) 돕는 방식으로 성도들이 참여하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일이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교육이란 신앙인들이 일상적 삶 속에서 예수를 따르라는 명령인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일’(follow Jesus)은 변화의 능력이 있다. 예수를 따를 때 사람들과 공동체가 변화된다.

 

모든 사물은 하나님에 의해 단지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참된 지식의 기원은 하나님에 대해 익히 아는 데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주된 내용을 기독교적인 세계관, 인생관으로 통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과거에는 문화유산으로, 현재에는 오늘날의 필요와 요구로, 미래에는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소명으로 주신 직업에 대한 준비로 적용된다고 한다.

 

설교문과 강의안을 읽으면서 영적 대각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성은 과거가 아니라, 깨어서 오늘의 세계를 보게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위로하는 기독교는 실패했다. 그것은 작동하지 않는다. 영성을 깨닫는 것은 인간의 번영(繁榮)을 위한 가능성을 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식별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별하는 것은 자아, 이웃,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 로 인도한다. 깨어나야 한다!!!, 식별해야 한다!!! 마음에 그려야 한다!!! 그리고 행해야 한다!!! 미래를 달라지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하고 무엇을 행해야 하며, 우리 존재에 대한 이해를 변화시키는 사랑 과 충분히 소통하는 신앙에 대한 각성이다.

 

오늘 우리시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성령의 존재에 대해 아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리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성경대로 사는 삶이 중요한 세계가 되었다. 다시금 새로운 성령 운동이 있어야할 것이다.

 

3. 웨슬리의 설교문을 사당중앙교회에서 2019년에 교육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

 

* 교육대상

- 성인부

 

* 교육목표

- ‘칭의의 뜻을 알게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게 한다.

- ‘성화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 ‘은총의 수단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 1738524일 복음적 신앙 체험)을 정점으로 완전히 변화된 웨슬리의 신앙을 알게 한다.

 

* 커리큘럼(curriculum) 구성방안

- 524(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회심주간)을 전후(前後)4주 동안, 오후 예배 시간에 성인부 봄성 경학교를 개최한다. 4주 동안에는 설정한 교육목표에 맞추어 대예배시간에 담임목사의 설교주제가 칭의’, ‘성화’, ‘은총의 수단이 된다. 그리고 연이어 목사님의 설교주제를 가지고 오후 예배의 활동을 한다.

- 전교인을 8~10명의 인원으로 조별 나눔하여, 봄성경학교 기간 내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 봄성경학교 기간 동안에는, 주중에 모이는 속회공과를 웨슬리 설교문에 맞게 특별 제작한다. (담임목사 주관)

- 봄성경학교를 실행하기 전에, 속회리더와 조별리더를 데리고 일일 수련회를 밖으로 나가 실행한다. 담임목회자가 자신이 제작한 공과를 좋은 분위기에서 가르친다. 이 때, 목회자는 속회 리더들에게 양질의 장소와 먹거리를 대접한다. 봄성경학교가 지난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교육 받은 웨슬리 설교문에 대한 느낌을 속회별로 나누게 한다.

- 사역자들이 작은 것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계획하여, 속회 리더에게 알리도록 한다.

- 홍보 인테리어 : 교회 현수막, 포스터, SNS 등등

행사 및 이벤트 : 조별 발표회(함께 만든 공동 작품을 발표하고 사진촬영을 한다.)

 

* 행사 진행 방안

봄성경학교 첫째 주일

- 포스터 만들기 : 조별모임에서, ‘칭의를 감사하는 포스터를 전지 크기로 합력하여 제작한다. 제작 후에 교회 곳곳에 붙인다. 협력하여 만든 자신들의 작품을 볼 때 구원에 대한 감사와 공동체 의식이 고양(高揚)된다.

 

봄성경학교 둘째 주일

- 전문인을 강사로 초빙하여 예쁜 글씨, 멋있는 글씨 켈리그라피를 경험하게 한다. ‘성화를 다짐하는 기도편지를 켈리그라피로 작성한다. 기도편지 작성 후에, 온전한 성화를 이루게 하실 주님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봄성경학교 셋째 주일

- 쿠키 만들기 : 은총의 수단이 기도와 말씀, 성찬임을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 쉬운 방법으로 쿠키를 조별로 함께 만든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따로 만들어 기도’, ‘말씀’, ‘성찬글자의 쿠키를 구워, 조별 접시에 담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짤막한 동영상을 보며, 조별로 만든 쿠키를 먹는다. 사역자들은 미리 동영상을 찾아놓도록 한다.

 

봄성경학교 넷째 주일

- 축제분위기의 성만찬 : 빵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면서, 우리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을 기념하며,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 예수를 다 함께 찬양한다. 5:12

 

* 행사를 통한 교육의 기대효과

우리들은, 만들어진 예배를 관람하는 구경꾼에서 창조적인 예배를 만들어가는 생산자로 성도들을 교육할 수 있다. 웨슬리 설교문을 가지고 이벤트로 진행되는 오후예배를 통하여, 예배의 진정한 참여는 외부로부터 모방하여 가져올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할 수 있다.

 

성만찬을 통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한 식탁에서의 교제에 우리도 참여한다는 현세적인 의미를 가르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기억하게 한다.

 

우리들이 계획하는 축하행위로서의 예배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향한 피조물들의 응답이다. 기독교의 예배가 구원을 베푸신 영원한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의 순수한 표현으로 응답하는 것이고, 절망과 좌절 속에서 희망과 적극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헌신과 사랑을 축하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할 수 있다.

 

미래교회는 소그룹 중심의 교회라고 한다. 소그룹 안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발견하고, 회복할 수 있다. 소그룹 활동을 통해, 성도들의 개성과 창조성을 고취하기 위한 학습방법으로 성도의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교육방식이기에, 성서적인 기초에 의거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과의 끊임없는 친교 속에서 인생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봄성경학교의 소그룹 활동을 통해, 또한 웨슬리 설교문을 공과로 한 속회 모임을 통해, 신앙공동체의 교제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에 의해 변화되는 신앙성장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함께하는 작업을 통해, 다른 사람도 나와 동일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문제를 보다 넓은 시야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해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되고, 똑같이 고민하는 사람과 동지의식을 갖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소그룹활동을 통해, 소속의식을 갖게 되고 마음으로 안정된 상태 속에서 자기회복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각각의 생각, 의견, 경험, 가치관, 신앙적인 확신을 주고받으며 신앙 안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 갈 수 있게 된다.

 

. 나가는 글

 

나와 우리 가족, 우리 교회 공동체는 불확실성이 크게 증폭된 시기, 엄청난 위기와 기회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시기를 살고 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영성(靈性)과 사고(思考) 훈련을 통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시대를 꿰뚫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함께 살아나는 교육과 교회를 소망하며 미래 세대를 준비한다는 것은,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 성도들을 포함하여 많은 청소년, 청년, ()중년(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세대, 50~70)들이 하나님의 인재(人材)로서, 조화와 변화, 가능성을 가지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성도들에게는 어떤 기독교적 훈련이 필요한가?’

 

미래 세대를 세우기 위해 교육의 바람을 바꾸기를 소망한다. 공교육이 무너져 가고 있는 이 때, 교회는 130여 년 전 조선의 선교사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공교육이 변화되지 않는 것을 한탄하지 말고, 교회가 교육을 바로 세워 나라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130여 년 전에도 나라가 하지 못하는 일을 교회가 했다. 130여 년 전에도 교회가 했다면 그때보다 양적&질적으로 성장한 한국교회는 충분히 교육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교회가 앞장선다면 나라가 하지 못하는 일, 학원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에 덧붙여 미래 인재를 위해서는 교육의 대상을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청소년뿐 아니라 청년과 신중년에게까지 교육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인재로 세워져야 세상이 변한다.

 

21세기에 진입한 새로운 차원의 4차 산업혁명은 삶의 모든 방식을 재편할 것이라고 한다. 일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선택하는 방식,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 선택의 방식, 의사결정의 방식, 심지어는 쉬는 방식까지 모든 방식이 바뀔 것이라고 한다.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지만 미래 변화는 우리가 준비할 시간과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자연스럽게 녹아들 리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준비 없는 무방비 상태라는 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아직사이의 위기(危機), 우리 모두에게 위험(危險)한 기회(機會)라는 것!!! 이 시점에서 웨슬리 설교문을 읽었다...

 

나로부터, '하나님 마음에 합한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우선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혀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막혀도 안주하지 않도록 나 자신부터 훈련할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훈련의 길을 지향할 것이다. 시대의 바람과 물결을 파악하고 헌신을 이어가며 주어진 시대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훈련할 것이다. 어떻게?!!!

 

기독교 교육이란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세상 속에서 예수의 길을 따르도록 할 것인가를 돕는 결정적인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내면, 특히 나의 영 가장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내 안에서 내가 느낀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고 표현하게 할 것이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movement가 일어나게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게 교육할 것이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이것이 교육의 핵심이므로, 기독론으로 다시 돌아가게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교육할 것이다!

 

사람들 저마다 삶을 이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자신의 독특한 색채로,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존재의 목적대로 각 사람마다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공동체를 회복하는 교육, 사랑을 회복하는 교육, 실천을 회복하는 교육의 자리에 나아가리라! ‘진리의 공동체가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 바로 가르침의 자리이기에,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성 안에서 순종의 자리에 머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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