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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주일 예배 설교문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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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3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불안이 있다고 합니다.

 

가난과 실패와 질병과 노후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가 없는 세상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세상에는 이런 세계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언젠가는 죽음으로 인생을 마치는 유한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대한민국을 떠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든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 할지라도 유한한 사람인 우리에게는 늘 두려움이 따라 다닐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가난, 실패, 질병, 노후, 죽음이 다가옵니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간다면 삶은 피곤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을 때 피곤의 연속으로 살라고 만드셨을 까요?

어떤 물건의 존재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를 알면 됩니다. 시계가 만들어진 이유는 시간을 알기 위함입니다.

우산이 만들어진 목적은 비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이와같이 물건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면 그 물건의 존재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삶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여쭈어 보면 됩니다.  

 

조각가들은 조각하기 전에 이미 머리 속에 무엇을 만들까 이미 완성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린을 만들려다 다리가 부러져 사슴을 만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조각가들도 적당히 만들지 않는데, 하물며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우연히 혹은 적당히 만드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설계 도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설계 도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설계 도면을 공개 하도록 하겠습니다.

 

1. 나는 복덩어리로 창조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3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나에게 주시기 위하여 즉 하늘의 복덩이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나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복을 갈망하고복을 얻기 위하여 목마른 자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복 그 자체복덩어리로 나를 창조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나를 친구삼기 원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4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왜 나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시려 하였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빛으로 표현합니다. 즉 빛 앞에 모든 어둠은 사라집니다. 결국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시려 하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친구로 삼아 늘 옆에 두시길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아이가 아빠 하고 달려들 때 가장 기쁘지 않습니까? 한번은 첫째 아이가 변비가 걸려 똥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똥구멍을 살살 간질러 주는데, 똥이 얼굴을 향하여 발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의 아내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구요. 부모는 아이의 존재 그 자체가 기쁨 아닙니까?

하나님도 우리 존재 자체가 기쁨이 되십니다.

 

3. 나를 예수님만큼 귀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에베소서 1:5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나를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로 세우시기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 마저도 십자가를 지게 하실 정도로 나를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비룩 나는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귀히 여기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4.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할 입니다.

 

에베소서 1:6 /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나를 지으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지금 내 모습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신령한 복덩이입니다.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존귀한 자입니다.

그리고 나를 통하여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자리에 있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나를 만들신 하나님의 설계 도면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잘 나가면 그때 교회에 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잘 나갈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픔을 줍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요청합니다.

 

눅 15:12 /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런데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받은 재산을 가지고 먼 곳으로 가서 다 날리고 맙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났지만 작은 아들의 삶은 빈곤과 비참함 뿐입니다.

 

아들이 돼지와 함께 밥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자 아버지에게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가 나를 받아 주실까?

아버지가 나를 용서해 주실까?

 

작은 아들이 여러번 질문을 하였지만, 마음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은 내가 사는 여기보다는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결단하여 아버지 집으로 떠나갑니다. 그는 자식으로의 복권을 희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요구할 염치도 없었습니다. 그냥 종으로만 받아 주셔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날부터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사랑이고 사랑은 용서였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혼돈과 어두움의 문제는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으로 해결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

작은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20절을 보면 나타나 있습니다.

 

1.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15:20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보고'라는 단어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먼저 본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날부터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보면 '아직도 거리가 먼데', 즉 거리가 있었음에도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았고 보자마자 측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가 아들을 보는 눈은 차가운 관망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끝없는 사랑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2.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으로 달려오시는 분입니다.  

 

15:20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달려가’ 라는 단어입니다. 아들은 달리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머뭇거릴 것입니다. 과연 아버지가 집도 버리고, 아버지도 버리고, 모든 것을 다 허비하고,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여 주실까? 아들은 깊은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아들을 알아본 아버지는 달려오고 계셨습니다. 아들이 한 걸음을 걸을 때 아버지는 열 걸음을 달려오고 계셨습니다.

 

3. 하나님 아버지는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15:20 /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입을 맞추니’ 라는 단어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끝임없이 용서의 입맞춤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입맞춤은 아들에게 과거가 있고, 흠결이 있고, 상처가 있지만, "내가 더 이상 과거를 묻지 않겠다.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나의 기쁨 그 자체란다." 아버지의 넉넉하고도 끝없는 용서와 사랑에 대한 무언의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앞에 오자마자 어버지에게 21절의 말씀처럼 이야기 하였을 것입니다.

 

15:21 /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마도 둘째 아들이 이 말을 다 끝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 맞추고 끊임없이  

“괜찮다, 아들아, 내가 다 안다, 내가 다 알아.

그리고 또 다시 입을 맞추시고

“사랑한다 아들아, 난 이미 다 용서했단다. 너는 나의 기쁨 그 자체란다.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때도 너는 내 아들이다.

그러나 힘들게 애를 썼지만 텅 빈 바구니만 들고 있는 그 순간도 그리고 기가막힌 실수로 치명적인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떠났다 할지라도 너는 분명 내 아들이다.

너는 여전히 내 아들이다. 나는 너를 한 순간도 포기한 적도, 잊은 적도 없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으로 모든 것이 회복 되었습니다.

절망은 생명으로, 수치는 영광으로, 배고픔은 배부름으로, 어두움은 빛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종의 신분으로 회복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아들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공허함과 혼돈과 어두움의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으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한 준비를 완벽하게 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3 16절 말씀을 보면

 3: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옆 사람과 인사하기 원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찬양)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예수님은 나를 하나님 나라의 보물 1호로 만들 길 원하십니다.

지금 내 모습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베스트 프랜드로, 복덩이로   나를 세워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이 믿어질 때 나는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교회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이제는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세상을 향하여 담대히 선포하시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늘나라 걸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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