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28-44
슬픔 속에서도 주님을 찾는 마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이 죽음에서 살아난 기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인생의 문제와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역사하시는 부활의 주님에 대한 깊은 영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던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도 예상치 못한 시련과 아픔 앞에서 하나님의 침묵하심을 경험하며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순간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1.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는 마리아 (요 11:28-31)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요 11:28-29)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전한 소식은 단순했지만 강력했습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이 한 마디가 슬픔에 잠겨 있던 마리아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자마자 급히 일어나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리아의 반응입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이 자신을 부르신다는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뒤로하고 주님께로 달려간 것입니다.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요 11:30-31)
조문객들은 마리아가 급히 나가는 것을 보고 무덤에 가서 통곡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향한 곳은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차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의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믿음의 사람은 문제 해결자이신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도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있습니까? "내가 너를 부른다"는 그 다정한 음성 말입니다. 우리 삶에 어떤 어려움과 시련이 닥쳐올지라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위로도 필요하지만, 진정한 위로와 해답은 오직 주님께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주님 앞에 엎드려 아픔을 토로하는 마리아 (요 11:32-35)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요 11:32)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항복과 의존의 자세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아픔을 솔직하게 토로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이 말 속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습니다. 아쉬움, 원망, 그리움, 그리고 여전한 믿음까지 말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원망하면서도 여전히 주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계셨다면 분명히 오라버니를 살리실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요 11:33)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놀라운 심정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 표현들이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비통히 여긴다'는 원어는 '엠브리마오마이'인데, 이는 마음이 격동하며 분노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무엇에 대해 예수님이 분노하셨을까요? 죄로 인해 이 세상에 들어온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통 가운데 빠뜨리는 모든 악한 세력에 대해서 분노하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원어는 '타랏소'인데, 이는 깊은 동정심과 연민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4-35)
그리고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눈물을 흘리다'라는 표현은 조용히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감정이 북받쳐 터져 나오는 눈물을 의미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아픔과 슬픔 앞에서 함께 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아플 때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못하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십니다(히 4:15).
3.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들 (요 11:36-40)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요 11:36-37)
예수님의 눈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맹인의 눈도 뜨게 했는데 왜 나사로는 죽지 않게 할 수 없었을까?"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런 반응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요 11:38-39a)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비통한 마음을 품으시며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명령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으로는 무덤을 다시 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39b)
마르다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무덤을 열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0)
예수님의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우리의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예수님의 기도 (요 11:41-42)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1:41-42)
드디어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옮겨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일은 놀랍습니다.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아직 나사로가 살아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결과를 본 후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완전한 교제와 신뢰 관계 속에서 이미 응답을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기도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 받은 분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고자 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단순히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곧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5. "나사로야 나오라!" - 부활과 생명의 선포 (요 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 11:43-44)
드디어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 한 마디 말씀이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수의에 싸인 채로 무덤에서 걸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에 앞서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나사로가 살아난 후에는 그의 수의를 풀어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돌을 옮기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맡기셨을까요? 왜 나사로의 수의를 직접 풀어주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셨을까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고,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돌을 옮기고 수의를 푸는 것은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까지 대신 해주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참여와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돌들을 옮기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6. 오늘 우리가 옮겨야 할 돌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돌이 무엇입니까?
첫째, 불신앙의 돌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믿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서 믿는 신앙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과거의 상처와 원망의 돌입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 하나님께 대한 원망,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우리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돌들을 과감히 옮겨놓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 세상적 가치관의 돌입니다. 물질,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세상적 가치관이 하나님보다 우선순위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우상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넷째, 두려움과 염려의 돌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건강에 대한 염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들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런 돌들을 옮겨놓아야 합니다.
다섯째, 교만과 자기의의 돌입니다. 자신의 의로움과 능력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지는 않습니까?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주님께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7. "나사로야 나오라!" - 오늘도 들리는 주님의 음성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외치셨던 그 음성이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절망의 무덤에서 나오라! 인생의 실패와 좌절로 인해 절망의 무덤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오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죄의 무덤에서 나오라!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인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오라! 내가 너의 모든 죄를 사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겠다!"
두려움의 무덤에서 나오라! 염려와 두려움으로 인해 움츠러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오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병의 무덤에서 나오라! 질병과 고통으로 인해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오라!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다!"
가난의 무덤에서 나오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오라! 하늘의 모든 창고를 열어 네게 복을 부어 주겠다!"
8.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삶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을 때, 그는 여전히 수의에 싸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구원받은 우리도 때로는 과거의 습관과 생각의 수의에 여전히 매여 있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새로 태어났지만, 실제 삶에서는 여전히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속적인 성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수의를 푸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잘못된 생각과 가치관의 수의를 풀어내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해줍니다.
기도로 수의를 푸십시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옛 사람의 습관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교제로 수의를 푸십시오.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권면하며,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혼자서는 풀기 어려운 수의들도 성도들의 도움으로 풀 수 있습니다.
섬김으로 수의를 푸십시오. 다른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통해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의 수의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9. 매일 경험하는 부활의 능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단순히 미래에 경험할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오늘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지만, 동시에 날마다 부활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죽음들을 경험합니다. 실패의 죽음, 실망의 죽음, 좌절의 죽음, 관계의 죽음 등등.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에게는 "나사로야 나오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아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약해져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사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분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돌들을 옮기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돌, 원망의 돌, 두려움의 돌, 교만의 돌들을 과감히 옮겨놓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사로야 나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음성은 절망 중에 있는 우리를, 죄의 무덤에 갇힌 우리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를 부르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들을 때 우리 마음속의 모든 슬픔이 문을 열고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 음성을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 있던 모든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오늘 결단하십시오. 이 예수 그리스토를 여러분의 마음에 모셔들이십시오. 그분을 여러분의 구주로, 여러분의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인생을 사십시오.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에게 먼저 가지 마시고 주님께 먼저 나아가십시오. 주님이 계신 곳이 우리의 피난처요 안식처입니다.
믿음으로 돌을 옮기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벽들을 믿음으로 제거하십시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사십시오. 날마다 죽지만 동시에 날마다 사는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주 안에서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서로의 수의를 풀어주십시오. 혼자만 은혜받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형제자매들도 함께 자유케 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사로야 나오라!"는 주님의 음성이 오늘도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 음성에 응답하여 새 생명으로, 새 소망으로, 새 능력으로 살아가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깊이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돌들을 보게 하시고, 그 돌들을 믿음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불신앙의 돌, 원망의 돌, 두려움의 돌, 교만의 돌들을 과감히 제거하고 주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시옵소서.
"나사로야 나오라!"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들려주시옵소서. 절망의 무덤에서, 죄의 무덤에서, 두려움의 무덤에서 우리를 불러내시는 그 사랑의 음성에 응답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죽지만 동시에 날마다 사는 부활의 능력이 우리 삶에 충만하게 하시옵소서. 어떤 시련과 고난 가운데서도 주 안에서 승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망과 위로를 전하는 복된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기도를 부활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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