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행태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된 시기는 대체로 1513-1517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1512년 30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서학 교수로 취임하였다. 루터는 성서학 교수로서 시편 강해(1513-15년), 로마서 강해(1515년), 갈라디아서 강해(1516년), 히브리서 강해(1516년)을 저작하면서 로마서 1:17의 “하나님의 의”라는 개념을 발견하게 된다. 이 하나님의 의는 전통적 해석에 따라서 심판하시고 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하지 않고, 죄인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인간에 의한 공로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인정된다. 루터의 은총 개념은 바울의 복음이해와 어거스틴의 죄론과 은총론에 영향을 받았다.
바울이나 어거스틴에 의하면 인간은 완전히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스콜라주의적 공로사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나 타울러의 영향을 받아, 인간 구원의 문제는 어떤 종교적 체제나 제도, 거기서 활동하는 사제집단에 의해서 매개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직접적 만남의 경험을 통해서만 해결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루터의 생각은 윌리엄 오컴의 사상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오컴에 의하면 이성과 계시는 엄격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당시 카톨릭 교회의 신학적 전통인 자연과 은총의 종합과 여기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공로에 의한 구원론은 비성서적이라고 보았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찬론 즉 화체설은 전적으로 이성과 계시의 혼돈에서 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루터는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체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그를 통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강조한다. 이러한 결과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에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의 대학 성당 정문에 붙임으로써 그의 개혁운동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2. 95개조 반박문
루터는 95개 반박문에 다음의 4가지 문제를 다루었다.
1) 마음으로 믿어 구원에 이르는 주님의 은혜를 주장하였다.
반박문 1조에서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4:1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조에서 "이 말씀은 고해성사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니, 성직자들에 의해서 집행되어지는 고백과 속죄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13세기 중엽부터 로마가톨릭교회는 7성례를 강조하였다. 일곱 가지 생활의 영역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선행의 공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7성례 중에서 가장 강조되는 성만찬과 고해성사는 거듭 반복되는 성례들이다. 루터는 종탑의 체험을 통해 은총은 오로지 신앙만에 의해 (sola fide)이루어 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0) 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태복음 4:7에 나오는 ‘회개’는 그리스어로(μετάνοια) 즉 생각을 변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넘어서 라틴어는 transmetamini은 인간의 감각의 회복, 또는 한 가지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변화, 또는 영혼의 변화가 담겨져 있다. 이렇게 회개는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때 까지 끊임없이 이루어 진다. 그래서 반박문 1~4조에서 루터는 외부의 행위를 넘는 내부의 종교를 강조한다.
2) 교황의 사죄권의 한계와 면죄권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었다.
6조에서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고 하였다. 첫째 루터는 교황의 죄사함 권세는 오로지 교회법(canonical order)에 어긴 자들에게만 허용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교황의 죄사함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로 나타난다. 루터에게 따르면 교황은 잘못(guilt)을 경감할 수는 있지만,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세시대에서 죄인들은 가톨릭 교회가 정한 7성례를 통해서만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한다. 하지만 루터에 따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7성례의 법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죄는 교회나 교황이 아니라 하나님 홀로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로써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 면죄부 설교자들은 모두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21조)라고 말하고,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32조)라고 주장했다. 또한 ‘어떠한 기독교인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해서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36조)고 하였고, ‘참다운 회개는 형벌을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부에 대하여 관대한 것은 형벌을 등한시하게 하고 슬퍼하게 하며, 설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40조)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루터는 교황이 죄를 면제할 자격도 권한도 없다고 지적한다. 루터는 면죄부을 판매 행위는 철저히 잘못된 것이며, 더 나아가 면죄부을 샀다고 하는 이유 때문에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거나 죄에 대한 형벌을 등한시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3) 교황의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구원문제를 지적하였다.
로마가톨릭에서는 면죄부를 정당화하고자 연옥(purgatory)설을 각인시켰다. 로마 가톨릭의 연옥설은 사망 직전에 신부의 종부성사를 받지 못한 자들이 거처하는 임시처소다. 초기 루터는 연옥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연옥에서는 구출을 보장하는 면죄부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1530년에 이르러서야 성경에 나오지 않는 허구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고(18조), 연옥설에 대한 반론을 펴게 된다. 22조에서 루터는 교황이 죽은 자들이 연옥에 있는데 그들에 대해서 속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제기하였다: “교황이 연옥에 간 영들의 죄를 사면할 수 없다. 이는 그 영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교회법대로 속죄행위를 했어야 할 것이었다.“
95개 조항에서 중반부에 나오는 지적들은 거의 요한 텟젤에게 향한 것이다. 도미니크 종단 신부 텟젤 (Johann Tetzel)은 루터의 교구에 인접한 곳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극적인 장면을 설명하면서 면죄부를 구매하게 하였다: "땡그랑 하고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에, 연옥에 있던 영혼이 천국으로 뛰어오른다."
1517년 가울 루터는 비텐베르크 근처의 위터보그(Juterbor)에서 요한 텟젤의 설교를 하는 것을 들으면서 2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텟젤이 설교하는 것이 성경에 위배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행하는 설교는 반 가톨릭적이고, 반 성경적이다. 루터는 “심지어 텟젤은 미래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판매한다.”고 비난을 한다. 둘째 루터는 이러한 텟젤의 잘못된 설교는 주교의 권력과 관련 되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28조의 설명은 지금도 교회가 받아들이는 모든 헌금이나 기부금이나 교회 소속 재산들을 취급할 때에 들어야 할 경구이다. "헌금궤에 돈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소유욕과 탐욕이 자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교회의 대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suffragium... ecclesiae est in arbitrio Dei soli).“ 이와 같은 루터는 교황이 내세 문제에 대하여 관여할 권세가 없고, 죄의 면책권도 없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내세를 결정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며,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도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교황에게 내세권과 사죄권과 연옥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고 하는 로마 천주교회의 주장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4) 십자가의 신학이 잘 나타나 있다.
95개조 마지막 부분은 루터의 초기 개혁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학이 반영되어있다. 루터는 영광의 신학에 대조되는 개념으로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하였다.
92조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평안하라 평안하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평안이 없는 선지자들은 다 떠나라고 말하였다(겔 13:10, 16; 렘 6:14, 8, 11; 살전5:3)”.
93조 그리스도의 백성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를 지라고 부르짖는 모든 예언자들은 축복을 받을지어다.”
94조 그리스도인은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훈계 받아야 한다. 이 같이 하여 역시 면죄부를 구입한 자들에게 평안의 위안으로 만족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95조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행 14:22).” 이는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훈련과 고난을 강조한다.
***루터가 붙잡았던 '영'은 성경과 십자가의 정신이었다. 라틴어 성경이 주를 이뤘던 중세 유럽 교회 시대에 15세기, 16세기 자국어 성경 운동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어떤 학자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켜서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자국어 번역 운동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토속 신앙과 섞여 본질을 잃고 있었던 중세유럽 가톨릭 교회, 죄를 씻기 위해 고행과 금욕을 강조하였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그 속에서 성경을 통해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했고 그것이 결국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만족시켜 천국에 간다는 그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가를 폭로해 냈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주역으로서 성경의 본질과 십자가 정신을 붙들었다.
3. 다시 세워야 할 한국교회
한국교회의 쇠락의 원인을 이덕주 교수는 압축성장의 결과요 후유증이라 말한다. 근현대 한국 사회의 특징이 있다면 압축 고도성장이라 말할 수 있다. 즉 짧은 기간 경제부흥을 이룩하듯이 한국교회도 짧은 130년 역사에서 서구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압축 경험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특징을 단어로 열거하면 물질만능주의, 세속주의, 상업주의, 개교회주의 등 성장 만능주의 라는 지극히 부정적인 단어들로 한국교회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교회의 특징이 있다면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 등 돈과 관련된 범죄행위였다. 오늘 한국교회도 성직매매, 대형교회의 사유화, 변칙적 교회 세습, 돈 봉투로 얼룩진 교단장 선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돈과 관련된 문제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는 무너져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덕주 교수는 이분을 한국교회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이라 라고 일갈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한국교회를 세워 나가야 하는가?
이덕주 교수는 교회가 타락하고 몰락할 때마다 십자가는 다시 등장 하였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근거이자 존재 이유인 십자가를 재발견한 개혁자들의 메시지와 실천을 통해 교회는 다시 세워지는 역사가 반복되었다. 부자와 권력자를 위해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빌어주는 번영의 신학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신학이라면 자발적 청빈과 순결, 고난과 희생을 실천하는 십자가 신학이 교회를 다시 세우는 길이라 주장한다. 루터가 종탑에서 씨름하듯 기도하며 마침내 예수님의 은총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 먼저 주님 앞에 나의 욕망들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며 자리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나로부터 세워지는 새로운 종교개혁의 진앙지가 되기를 기도한다.
참고도서
교회사, 아우구스트 프란쯘, 분도출판사,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신앙과 지성사. 이덕주
마르틴 루터의 신학사상과 윤리, 대한기독교서회, 손태규
중세교회사, 은성, 유토스 L. 곤잘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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