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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주의 얼굴빛을 비춰주소서, 단 9:13~27, 다니엘서 시리즈 설교 ⑳

by tat tvam asi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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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0 - [종교] - 다니엘의 참회의 기도, 단 9:1~12, 다니엘서 시리즈 설교 ⑲

주의 얼굴빛을 비춰주소서

9:13~27

 

다니엘은 비록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였으나, 의지할 것은 오직 주님의 큰 긍휼뿐임을 고백하며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죄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9:13 /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70년이 지난 지금까지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계속 고통 속에 내버려 두시더라도 그들은 항변할  없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다니엘은 민족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9:14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9:15 /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재앙을 간직해 두셨다가"라는 말은 회개를 기다리며 재앙을 미루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회개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징벌을 내리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이 당한 수치는 하나님의 은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다 백성들이 악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9:16 /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9:17 /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다니엘이 민족의 죄악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이유도그가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의 의미를 간절히 알고 싶어 하는 이유도 성전의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성전회복은 다니엘  사람만 아니라 당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모든 유대인들의 최대관심사였습니다

 

또한 셀류쿠스 왕조의 지배를 받던 시대에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4세의 성전 파괴를 목격한 유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성전의 회복을 위한 다니엘의 기도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습니다

 

9:18 /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함이니이다

 

9:19 /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다니엘은 민족의 죄악이 얼마나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민족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9:20 /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다니엘이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던 결정적인 계기는 바벨론 포로가 7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전이 재건되지 못하고 유대인들이 바사(페르시아)에서 고통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다니엘의 기도가 계속되는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의 의문에 답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9:21-22 /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의 기한은 "일흔 이레"였습니

 

9:23-24 /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1) 다니엘은 예레미야가예언했던 70년을 기억했습니다( 9:2). 그런데 바벨론 포로가 시작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하나님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그러면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질문에 대한 가브리엘의 대답은 "일흔 이레"였습니. '이레'1주일 즉 7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흔 이레란 글자 그대로 칠십-칠십이 일곱 개라는 의미로 보입니다따라서 칠십 이레는 490년으로 아주 먼 미래의 일을 나타냅니다.

 

 9:1~19은 바벨론 포로 기간이 종료된 70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24~27절은 앞으로 다가올 70년의 7배인 칠십 이레(490)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예 먼 미래로 초점이 이동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기도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 아주 먼 미래에 일어날 일(그리스도에 대한 일) 임을 말합니다.

 

즉 가브리엘이 전해준 회복의 내용은 모두 여섯 가지입니다.

① 허물이 그치며죄가 끝나며죄악이 용서되며영원한 의가 드러나며환상과 예언이 응하며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이것은 다시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앞의  가지(①, ,)이 죄의 용서라면뒤의  가지(④, ⑤, ) 메시아의 등장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회복에 해당합니다이처럼 가브리엘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일흔 이레를 다시  단계로 구분합니다

 

9:25 /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9:26 /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9:27 /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위의 구절은 정확한 해석이 매우 어려운 구절로 학자들 마다 의견이 다 다릅니다.

그 이유는 70 이레에 대한 그 시작점이 언제인지, 가브리엘이 분류한 처음 7주와 그다음 62, 마지막 한 주는 각각 무엇을 말하는지, 성경에 그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 수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시기인 "일곱 이레" 49년 기간은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시대를 의미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이 기간은 남 유다가 멸망하는 BC 587년부터 유대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시점부터 바사 왕 고레스가 유대인의 예루살렘 귀환을 허락했던 BC 538년까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시기인 "예순 두 이레"BC 538년 이후 시간을 말하며, 세 번째 시기인 "한 이레"는 유대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던 셀루쿠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BC. 171-164).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운 일,

마지막 종말 직전의 때에 일어날 영적인 대 혼란의 시기를

이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하는 이중적 예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전하는 계시는  의미를 명확히 밝히는 데 한계가 있고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을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알 수 있는 바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70년을 가브리엘 천사가 ‘70 이레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해석의 과정에서 70년이라는 문자적 기간은 일흔 이레라는 상징적 의미로 변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 이후 변화된 세계 속에서 지금까지 추구하였던 단지 가정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과 부흥을 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부흥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마지막 때에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를 통하여 다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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