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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2세기와 3세기에 오리게네스와 테르툴리아누스가 믿음과 이성의 관계성 및 영원한 신성의 본성에 관해 토론하다 - '신학논쟁'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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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저 E. 올슨 지음, 박동식 옮김/ 새물결플러스 -

 

 

2018년, M.Div. 과정을 밟는 당시에 이은재 교수님의 교회사 강의를  들으며 작성했던 글이다. 

 

북아프리카의 테르툴리아누스(가장 유명한 라틴 교회 교부들중 하나)는 오리게네스(아마도 가장 총명하고 다작했던 교회 교부)를 만난다. 그들은 신학에 관한 매우 다른 두 가지 기독교 정신을 대표한다. 

 

그들이 만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가상의 대화를 통해 실감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 들어가는 말

 

기독교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본질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십자가의 은총을 드러내는 것이 삼위일체의 진리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헬라 철학이 무장된 삼위일체 이론은 소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 때문에 나를 포함한 일반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론 밖에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삼위일체론이 나 같은 범인(凡人)들에게 이해 될 수 있을까?

이 삼위일체론 때문에 기독교가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고, 수없는 분열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싸우고 죽었다... 그렇다면 이 삼위일체론이 기독교 이천 년 시간을 헛되이 보내게 한 것일까? 만약 아니라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몸 되는 말

 

기독교의 삼위일체 이해

 

삼위일체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는 니케아 종교회의(325)를 거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381)에서 공식적으로 확립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지 어느 한 시점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삼위일체는 기독교 사상 속에서 300년 이상 지속되어져 오던 신() 존재론적 논점들을 묶어낸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사상은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계속된 신 존재에 대한 고백에 대한 신학적 결과물이라 할 것이다.

 

 

1. 삼위일체의 배경

 

삼위일체 사상의 원형은 마태복음 28:19과 고린도후서 13:13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삼위일체의 원형적 사상은 바울이 빌립보서나 골로새서에서 예수의 동등본질(2:6-8) 및 선재성(1:15-17)에 대하여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서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그레코-로망 사회와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교부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 신념들에 대해서 변증할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변증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몇 가지 분야에서 신학적인 틀을 마련해야만 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재하시는 분으로서의 예수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로고스 기독론의 문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특별히 기독교 변증가들은 요한복음의 사상을 통해서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이 사상은 아테나고라스(133190)에 의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신적인 영의 일체성과 권능으로 말미암아 성자는 성부 안에 있고 성부는 성자 안에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은 성부의 지성이자 말씀(νους κι λογος)이다.” 라는 표현으로 로고스 기독론의 의미를 구체화하였다. 이것은 유일신을 신앙하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진리를 훼손시키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의 관계를 지적으로 만족스럽게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기인한 신학적 결과였다. 그러나 이들의 변증에는 성부와 성자간의 차별을 두는 종속설적 경향이 따라다녔다.

 

이러한 삼위일체적 신앙은 이레나이우스(130-202)에 의해서 진화하게 된다. 그는 세례 문구와 계시에 나타난 삼위일체 개념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나라가 지상에서 발전해오는 과정과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점진적으로 나타내 오신 과정이, 세 개의 연속저인 단계로 이어진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세 위격의 관계를 에베소서 4:6에 따라 설명하면서 성부가 만물 위에 계시고 그리스도의 머리이시며, 성자가 만물을 통해서 계시고, 교회의 머리이시며, 성령이 만물 안에 계시고 생명수의 근원이라고 한다. 삼위일체께서 세상을 초월해 계시다는 견해를 내비치긴 하지만, 미약한 암시 수준을 넘어 서지는 않는다. 이레나이우스는 성자와 성부의 영원한 공존을 언급함으로써 성자의 신성을 확증했지만 성자와 성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설명하지 않았다.

 

또한 테르툴리아누스(155~225)는 하나님은 한 본질(substance)속 세 위격(personae)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로 삼위일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즉 그는 본질(substance)과 인격(person)이라는 두 용어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통일성을 추구했다. 3개체는 하나이면서 나눌 수 없는 본질을 소유하면서 서로 방해받지 않고 3개의 개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렇지만 셋은 지위에 있어서가 아니고 정도에서이며, 본질에서가 아니고 형식에서이며, 능력에서가 아니고 그 양상에서 나뉜다. 그렇지만 그 분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이러한 정도들과 형상들과 외양들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면 여전히 하나님의 본질이며, 하나의 조건이며, 하나의 능력을 갖는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개념이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리게네스(185-254)은 제 1원리에서 이렇게 집약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시고 질서를 주시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우주를 존재케 하셨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사 참으로 인간이 되셨다. 그리고 참으로 고난당하셨고, 참으로 죽으셨다. 그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 하늘로 올리셨다. 성령께서는 그 존영과 권세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과 연합되어 있으시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으며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부활할 것이다. 모든 인간의 영혼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악한 세력들은 죄악으로 영혼을 무겁게 하여 떨어뜨리려고 힘쓰기 때문에 믿는 영혼들은 그와 같은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리게네스의 신론, 특히 삼위일체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공헌(?) 중의 하나는 성자와 성부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이다. 오리게네스는 성자를 성부와 같이 영원한 분으로 보았다. 오리게네스의 영원 전 나심은 후에 삼위일체 정립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오리게네스는 로고스를 둘째 하나님으로 이름 지을 정도로 과감해서 이 로고스 인물을 그의 창조자인 최고의 하나님에게 종속되거나 낮은 수준의로 여기는 소위 종속주의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신격의 세 위격에 대해서 오리게네스는 본체(Hypostasis)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개별적 요소 혹은 개별적 존재라는 의미에서이고 아들과 성령은 본질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동시에 세 위격은 의지와 조화와 통일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종류의 통일성을 말하기 위해서 오리게네스는 동일본질(Homoousios)이란 개념을 사용했다. 이처럼 오리게네스는 아들을 아버지의 피조물이라고 아들의 종속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이들과 아버지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말하고 싶었다.

 

오리게네스의 죽음과 아리우스 논쟁이 시작되기 전 오리게네스가 주장하는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하든지 새롭게 다듬어져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종속을 엄격하게 주장하든가 아니면 오리게네스를 넘어서서 상이한 실체 간의 본질적 하나 됨을 강력하게 주장하든가 하여야 하였다. 따라서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신학이 오리게네스의 좌파에 서든지 혹은 우파에서 그의 주장을 이어 나갔다.

 

2. 아리우스와 알렉산더의 논쟁

 

아리우스 논쟁은 약 318년경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 알렉산더(Alexander)와 그 교회 장로 아리우스(Arius) 사이에서 발생한 논쟁을 말하는데, 한 마디로 오리게네스 좌파인 알렉산드리아 장로 아리우스와 오리게네스 우파인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 사이에 일어난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역사가 소크라테스(Socrates)에 의하면 이렇게 발단되었다. 디오클레티안 박해 하에 순교한 알렉산드리아 감독 베드로를 승계하여 아킬라스(Achillas)가 알렉산드리아 감독이 되었고, 다시 아킬라스를 이어 알렉산더가 알렉산드리아 감독이 되었다. 그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감독이었다. 한번은 알렉산드리아 감독인 그가 자신의 교구 장로들과 교직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삼위일체의 통일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설명을 하면서 야심적이고 확신에 찬 신학적 견해를 펴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 있던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인 아리우스가 일어나 감독은 사벨리우스(Sabellius)의 교리를 말하고 있다고 하면서 정면으로 감독의 삼위일체 견해를 반박해 버렸다. 아리우스는 만일 성부가 성자를 낳았다면 난 자는 존재의 시작을 가졌을 것이며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아들의 존재는 성부와 같은 본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부터 나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는 역동적 단일신론을 주장한 사모사타의 바울의 제자였던 루키안(Lucian)의 문하생이었다. 루키안의 지적 세계는 오리게네스의 많은 사상을 계승했는데, 아리우스는 루키안보다 훨씬 더 오리게네스적으로 신학을 재구성했다. 이로 보건대 아리우스는 동방에 유행하던 두 가지 신학 사조, 곧 알렉산드리아와 가이사랴를 중심으로 전파된 오리게네스의 사상과 안디옥을 중심으로 전파된 루키안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아리우스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초월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아리우스의 신앙고백을 보면, "우리는 홀로 유일하게 비출생적이고 홀로 유일하게 영원하시고, 홀로 유일하게 시작이 없으시고, 홀로 유일하게 주님이시며, 홀로 유일하게 만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고백한다"고 되어 있다. '하나님'이라고 쓰는 아리우스의 사상에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을 뜻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초월적이고 불변적이므로 다른 어느 존재에게도 전달될 수 없다. 그러므로 초월하신 한 분 하나님 이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창조되었음이 확실하고, 무에서 창조되었음을 뜻한다. 아리우스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왔다는 사상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와 같은 사상 형식은 하나님의 육체적인 범주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 이상 이외의 다른 생각은 하나님을 '복합체'로 만들려는 것이며 따라서 그릇된 것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아리우스도 자기 앞의 변증신학자 이레네우스와 테르툴리아누스처럼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말씀과 지혜로 더불어 계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씀과 지혜를 위격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시간의 시작 이전에 무로부터 창조된 것으로 보았다. 아리우스는 아들을 다른 피조물과 같은 수준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에 의하면 아들은 완전한 피조물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들을 피조물이라고 할 때, 아리우스는 아들의 산출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 아들과 아버지가 너무도 가깝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로지 "파생적인" 의미에서 아들의 "출생"의 뜻을 사용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적인 동일성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있을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서 하나님은 항상 아버지가 아니고, 하나님은 혼자 계신 때가 있었으며, 아직 아버지가 아닌 때도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경우와 같이 아들의 불가변성을 주장할 수 없다. 아들은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의 신성을 속성에까지 연장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수여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Alexander, 312?-328 재위)는 오리게네스의 성자의 영원 발생 교리를 좀 더 발전시켜서 성자는 성부의 본질로부터 영원 발생된 동일본질의 위격적 존재라고 보았다. , 말씀은 한 위격으로서 성부와 구분되며, 또한 성부는 말씀 없이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은 성부와 동등 영원하다. 그러나 말씀의 아들 됨은 실재적이고 형이상학적이지 입양에 의한 것이 아니다. 둘은 상호 불가한 두 실재이며 완전히 같으나 하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아리우스의 견해가 그릇되며 그는 더 이상 그 견해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감독 알렉산더는 성자가 시간과는 무관하게 영원히 발생하며 '무로부터'라기 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며 불변하고 완전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양쪽 당파 모두 성경으로부터 뽑아낸 증빙 구절들과 아울러 상대방의 위치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였던 논리적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리우스는 우선 알렉산더가 기독교적 유일신론을 부인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 감독의 주장에 의하면 신성을 지닌 존재가 둘 있게 되므로 결국 두 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는 이에 답변하기를 아리우스의 이론은 말씀의 신성을 부인함으로, 이에 따라 예수님의 신성이 부인된다고 하였다.

 

알렉산더가 아리우스 신학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리우스 신학은 일견 하느님의 절대 유일성을 강조하여 그리스도교를 다신론의 위험으로부터 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신약의 새로움을 모조리 제거해 버리고 사실상 구약의 신관, 즉 단순한 유다이즘으로 회귀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결국 구원론의 수준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는 다는 것이다. 즉 신성을 지니지 못한 구원자, 사람과 꼭 같기만 한 구원자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구원에 있어서 위로부터의 은총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수덕적 노력으로 모방해야 할 대상 혹은 모범으로 축소되고 만다.

 

알렉산더는 결국 감독의 권위와 책임에 근거하여, 320년경 약 100명의 이집트 주교들로 구성된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와 그의 동료 성직자들을 파면하였다. 아리우스는 이러한 처분에 승복하지 않고 알렉산드리아 시민들과 안디옥에서 그와 함께 수학하였던 동방 제국의 중요한 감독들에게 호소하였다. 곧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아리우스의 신학적 요절들을 외치며 행진하는 일반인들의 시위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아리우스의 호소를 받은 감독들은 아리우스의 입장을 옹호하여 알렉산더의 이론이 오류라는 서신들을 띠우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 지방 신학 논쟁이 전체 동방 교회를 분열시킬 위협을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리키니우스를 패배시킨 직후 콘스탄틴이 중재에 나섰을 때의 상황이었다. 제국을 위해 교회의 통일을 원했던 콘스탄틴은 우선 종교 문제에 관한 한 그의 고문이었던 코르도바(Cordova) 감독 호시우스(Hosius)를 파견하여 양파의 화해를 꾀하였다. 양자간의 갈등은 결코 중재로 해결될 수 없다고 호시우스가 보고하자, 콘스탄틴은 제국 전역으로부터 기독교회의 감독들을 소집하여 대 종교회의를 열게 되었다. 당시 선명하게 기준이 되는 정책들을 필요로 하였던 몇 가지 문제들과 아울러 이 대회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 논쟁을 해결해야만 했다.

 

3. 삼위일체 논쟁에 대한 비판

 

현대 신학자들 예를 들면 슐라이마허, 틸리히, 몰트만 등등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고백하는 신앙은 헬라 철학적 사유의 표방일 뿐 기독교 성서의 계시와는 무관한 것이라 지적한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철학적 유일신도 아니고 삼위로 계시는 삼위일체적 존재일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삼위일체에 대한 라틴어 사용권인 서방 교회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대부분은 이 논쟁에 관해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서방 교회는 당시의 논쟁이 단지 오리게네스의 추종자인 동방 교회 출신들 사이에 발생한 국부적 논쟁으로만 생각하였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 테르툴리아누스가 선포한 바대로 하나님은 "한 본질에 세 위격(three persons and one substance)"이시라고 정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삼위일체를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면 삼위일체가 철저하게 '존재론적 이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도 삼위일체를 철학적, 존재론적 지식으로 받아들이면 이해하기 힘든 과제일 것이다. 오히려 삼위일체를 내 삶의 모퉁이마다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죄인 된 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령의 마음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고백될 수 있는 과제라는 것이다. 나를 불러주신 아버지의 사랑,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의 사랑, 나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고백하게 하시는 성령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찬양드리는 고백이 삼위일체라는 것이다.

 

4. 본교재의 논쟁 포인트

 

북아프리카의 테르툴리아누스(가장 유명한 라틴 교회 교부들 중의 하나)와 오리게네스(총명하고 다작했던 교회 교부)는 신학에 관한 매우 다른 두 가지 기독교 정신을 대표한다.

 

테르툴리아누스(155~225)는 신학적 사고에 있어서 세속적인 철학적 추론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어떤 신학적 개념, 또는 사상이 철학자들에 의해 표준적 추론을 통해 반증된다 할지라도, 종교적 신앙인들은 절대 세속적 사상으로 신학을 설명하거나 논증&논박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는 기독교인은 다른 세속인들이 하는 다양한 문화적 의식이나 행사에 절대 참여하면 안 되며, 언제나 기독교인으로서 겸손과 순전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리게네스(185~254)는 기독교 교리문답학교에서 클레멘스의 후계자로서 그 학교의 교장 직분을 맡았던 자로, 철학 지향적이었다. 오리게네스는 대량의 편지와 약 2천 편의 뛰어난 논문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가장 중요한 책은 <원리론(De principiis)><켈수스 논박서(Contra Celsum)>. <켈수스 논박서>에는 기독교를 공격하는 로마 철학자의 책인 <참된 교리>가 거의 전체가 들어가 있다. 오리게네스는 이것을 인용하여 이 책이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도인들을 비평함에 있어 결점이 있음을 입증한다.

 

<원리론>은 넓은 범위의 기독교 교리를 포함해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세계관에 대한 포괄적인 강해다. 매우 철학 지향적이지만 광범위한 성서적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 오리게네스는 자신의 선생 클레멘스처럼 그리스 철학을 성서의 가르침 및 사도의 가르침과 결합하려 했다.

 

또한 <원리론>에서 모든 것의 궁극적 화해, 즉 아포카타스타시스(apokatastasis)를 제안했다. 그런 궁극적 화해에 사탄을 포함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나, 오리게네스는 모든 피조물까지는 아닐지라도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할 것이며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다. 오리게네스는 이런 보편주의(universalism)의 기초를 하나님은 완벽하시다는 논리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논리에 두었다. 그의 가르침이라고 여겨지는 사탄과 하나님 사이의 최종 화해에 관한 것 때문에,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 사이에서 오리게네스의 명성은 더럽혀져 있었다.

 

이에 반해 테르툴리아누스는 사도들의 가르침인 신앙의 규범에 반대하거나 넘어서는 것을 배제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기독교 교리를 탐구하고 해석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 하나님의 단일성과 다중성에 대한 기독교 관념을 설명하기 위해 용어와 개념을 빌렸을 뿐이나, 오리게네스는 새로운 교리를 창안하기 위해 그리스 철학에 깊이 뿌리를 둔 사상의 궤적을 따라갔다. 이 때 테르툴리아누스는 보편적인 법률언어인 라틴어를, 오리게네스는 보편적인 문화언어인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교회 사가(史家) 아돌프 폰 하르낙(독일)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 같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를 그리스화했다는 이론을 발전시켜 명성을 쌓았다. 하르낙에 의하면 그들은 복음이 인정받을 수 있게 복음으로 하여금 그리스 사상을 수용하게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로고스의 개념을 어떤 식으로든 사용했다. 요한복음 1장에서의 로고스는 그리스도의 선재와 그와 하나님의 관계를 표현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교 해석자이자 철학자인 필론(Philo)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시대 인물이며, 로고스 사상을 세상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내재성에 관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다. 유대인이었지만 그리스 사상가이기도 했던 필론은 로고스와 이성을 동일시하곤 했고, 알렉산드리아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오리게네스의 로고스 사용은 의도치 않은 결과들을 야기했다. 오리게네스가 죽은 지 약 100년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부에 종속되는 로고스를 강조하며 "성자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선포했다. 오리게네스가 로고스의 영속성을 확증했지만 로고스가 성부에 종속한다는 것도 확증했다.

 

오리게네스는 삼위일체를 가르치면서도 삼위일체에 관해 약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즉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개념 모든 것의 원천인 최고의 존재는 창조세계의 불완전에 의해 영향 받지 않아야하기에 중개적 존재인 로고스를 통해 피조세계와 관계해야만 한다 고 믿었다. 이것은 로고스가 성부만큼 형이상학적으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로고스가 성부만큼 완벽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로고스 상태에 관한 것은 후에 기독교 신학에서 큰 문제를 야기했다.

 

. 나가는 말

 

책과 자료들을 살피며 불현 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기독교 신학은 일원론과 이원론의 긴장관계 속에서 이 세상의 문제를 설명하여 온 것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전통적인 일원론 또는 이원론의 관점은 본래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답이 서로 비슷하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일원론의 경우, 세상을 신의 주권 아래 있는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하지만,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죽음이나 자연재해, 전쟁 등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생기면 심오한 그 무엇이 있는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운명론에 빠질 수 있게 한다.

 

반면 이원론은 이 세계와 초월의 영역인 저 세상을 구분함으로써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기면 이 땅에서는 그 답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문제의 해결을 저 초월의 영역으로 돌려버리게 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이 역사 속에서 무엇인가?“

 

"나 역시 이단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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