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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종려주일을 맞이하며> - 영혼의 목자에게로 돌아오다 -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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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을 맞이하며> -  영혼의 목자에게로 돌아오다                  

벧전 2 : 24 - 2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너희가 전에는 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신 날입니다. 그때에 수많은 무리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길가에 펴고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다음과 같이 소리지르며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그래서, 오늘 이날을 가리켜, 종려주일(Palm Sunday)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당시에 새끼나귀 위에 올라 타셔서 이같이 열렬한 환영을 받으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한번 헤아려보게 됩니다. 물론, 당시에 무리들이 겉으로는 그토록 뜨겁게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바로 저들이 또다시 빌라도의 법정으로 몰려가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칠 사람들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편치만을 않으셨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게 되면 다시는 살아 내려올 수 없는 마지막 길이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같은 죽음의 길을 향하여, 묵묵히 올라가셔야 했던 주님의 심정은 복잡하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만 믿고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3년 동안 동거동락 하였던 12제자조차도, 예수님이 지금 걸어가시는 이 길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환호하는 군중들 틈에서 우쭐거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처럼 눈앞에서는 뜨거운 환호와 영광스런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감내하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어려운 십자가를 어떻게 지실 수 있었습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1.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1:21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3:11 /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3. 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귀신을 내어 쫒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막 3:14-15 /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4.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4: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고, 제자삼아 마귀의 권세를 쫓아내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막는 세력이 있는데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자아를 추구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죄악을 길로 인도하여 멸망 길로 이끌어 갑니다.  

 

벧전 1:6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사람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어떻게 하면 고난을 피할까? 어떻게 하면 고난을 당하지 아니할까?' 생각합니다. 또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고난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고난을 피하게 하실 수 있을텐데, 피할 길을 찾기 보다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만나거든 오히려 감사하고 기쁘게 여기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영생의 길에는 반드시 넘어가야 할 것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말하지만, 내게 조금 손해가 된다 싶으면,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혈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풀어가야 할 마귀와의 영적전쟁입니다.

 

그럼으로 육체의 본성을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것이 종려주일의 영적인 의미입니다.

7:8 /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죄란 내면적인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내 속에 온갖 탐심’이란 ‘내 마음 가운데 나타난 죄악’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달라 붙어 죄를 짖게 합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을 속여 죄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자존심이 상처를 받게 되었거나 이익을 추구하다가 손해를 보게 될 경우가 되었다든지,

잠을 더 자려는데 못 자게 방해를 받았다든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을 때

이러한 경우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혈기가 나오기 쉽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다가 퇴근해 보니 아내가 밥상을 조금 늦게 가져다 주면,

‘여편네가 집에서 뭐하는 것야’

운전하다가 차량이 아주 많이 막혀서 마음에 짜증이 나 ‘에이 씨’라고 나옵니다.

교회에서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보여 시샘이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럼 생각이 마음을 훑고 지나가면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불평이 가득합니다.

결국 나는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와 영혼이 망가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에 '예루살렘이란 도시'를 품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경건을 가장하고 있지만 거룩함과 타락이 함께 숨 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온 세상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품기 위해 입성하십니다.

가장 높으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십니다.

그 이유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를 다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는 것>입니다.

 

찬송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것은

성도들이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날지라도

범죄하지 않고 선한 생활을 계속함으로써,

정결한 성도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만드시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목적에 무엇입니까?

 

벧전 2:21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위하여  그 자신을 낮추시되 종의 자리로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스스로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들에게 고난에 대한 본을 끼쳐 그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은 성도들로 하여금 따라 배우게 하는 본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성도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고난의 참된 본보기를 제시하시고서 그 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종려주일은 육체의 본성을 믿음으로 제어하는 날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고난이 따라 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먼저 고난을 당하여 모범을 보여 주심으로써 성도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고난의 모범을 따르는 자세가 무엇입니까? 종의 마음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해야 합니다.

 

벧전 2:18 /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예수를 믿는 사환들은 종의 마음으로 주인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며, 지속적으로 주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대답은 "예"입니다어떤 명령에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결과가 무엇입니까?

 

벧전 2:24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첫째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은 새로 거듭난 자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의 종 된 자리에서 해방하시고, 그 안에서 새 생명을 받은 새 사람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를 죄를 담당하시는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나음을 받아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저주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과 육이 함께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벧전 2:25 /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해 주심으로써 우리를 인도하는 목자가 되어 주셨고, 우리를 보호해 주는 감독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계시며, 우리 영혼의 감독자로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에는 목자를 잃은 양으로 방황했는데, 이제는 목자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양이 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십자가의 고난 앞에 서 있습니다.

영혼의 목자가 되신 주님을 바라보는 종려주일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에게 주시는 축복

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1:12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 천국백성이 됩니다.

 3:20 /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 영생을 얻게 됩니다

 3: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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