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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아름다운 왕비 에스더여,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에 9:22-32 - 부림절의 유래 -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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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2-3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유다인이 자기들이 이미 시작한 대로 또한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뜻을 정하고 자기들과 자손과 자기들과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하고 정해 놓은 때 이 두 날을 이어서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게 지키게 하되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백이십칠 지방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정한 기간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가 명령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하게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많은 성도들이 사랑하는 여인 중에, '에스더'가 있지요! 이분으로 인해, 부림절이  생겨나게 되었지요. 자세한 내막을 살펴볼까요?

 

에스더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주 극단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주전 587년 이스라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군대에 의해서 멸망 당하고 맙니다. 나라가 멸망당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약 50년 후엔 주전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합니다.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인 고레스가 포로로 잡혀왔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약 5만여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모든 사람이 돌아 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페르시아에 남아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말씀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페르시아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원전 538 1차 포로귀환이 있은 후 약 6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아하수에로가 페르시아의 왕으로 있던 때였습니다.

지난 번에, 아하수에로 왕이 누구인지 우리가 말씀 함께 나누었지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세계사적인 이름은 크세르크세스입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의 아버지 다리오 왕이 두번씩이나 전쟁을 실패하지요. 스키타인 족과의 싸움, 그리고 그리스와 마라톤 전쟁에서 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이 페르시아 제국의 위엄을 알리기 위하여 127개국의 방백들이 모아 잔치를 배풉니다. 그런데 그 잔치가 무려 180일 동안 하는 것입니다.

왕은 왕대로 왕후는 왕후대로 여인들을 모아 큰 잔치를 엽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왕의 잔치와 왕비의 잔치를 합해서 왕과 왕비가 만나는 장면을 끝으로 하여, 페르시아 왕국의 영원함을 모든 방백들 앞에서 나타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왕비를 오라 불렀지만, 왕비가 거절하고 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얼마나 화가 나는지 와스디 왕후를 폐위하고 법을 만들어 버리는데 22절을 보면 남편이 자기 집을 주관하게 하라는 법을  만들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후를 세우는데 모르드개가 자기 딸처럼 양육한 조카 에스더가 새로운 왕후가 됩니다그리고 2장 16-18절을 보면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사랑을 받습니다.

 

에 2:16-18 /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한편 2장 19절을 보면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성문을 지키는 군사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대개 재판관입니다. 문제가 생겨 자기들끼리 해결이 되지 않으면 그것을 성문으로 가져오면, 성문에 앉은 재판관들이 그 문제를 판결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르드개가 지도급의 인사입니다.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다가 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알고 사전에 막는 큰 공헌을 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각 사람 하만이라는 자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라는 사람을 자신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높은 지위에 오른 하만이 대궐 문을 출입할 때마다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는데, 유독 유대인인 모르드개만은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더 31절에서 이 하만을 아각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만을 소개하면서 ‘아각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유는 그가 유대인들에 대해 얼마나 강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성경학자들은 하만의 조상인 ‘아각’을 사무엘상 15 33절에 나오는 아말렉 족의 후속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셨고, 그 명령을 받은 사울 왕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아말렉과 싸워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말렉의 왕인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오고, 양과 소 등 많은 노략물도 산 채로 가져옵니다. 그 일로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이 사로잡아온 아각 왕을 길갈로 끌고 가서 죽이고 맙니다. 그 아멜렉의 후손이 페르시아 지역에 살고 있었고, 하만은 페르시아 왕들의 이방인 포용정책으로 인해 페르시아의 고위관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아각 사람 하만이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서 그의 눈에 거스리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대인인 모르드개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하만은 싫어하던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을 다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페르시아 전지역에 있는 인도로부터 이디오피아까지 127도 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다 잡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워 왕에게 찾아갑니다. 학자들은 당시 페르시아 제국에 있던 유대인들이 약 70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금 에스더 시대에는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에 의해서 페르시아에 있는 유대인 70만 명 전체가 죽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만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유대인을 모두 없애는 일이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는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반드시 아하수에로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유대인을 없애기 위해 왕에게 거짓 정보를 흘립니다.

첫 번째는 "폐하께서 다스리는 나라에 종교가 이상하고 풍속이 독특해서 도대체 말도 안 들어먹고 속을 썩이는 민족이 있습니다.’ ‘살려두면 백해무익입니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왕이 허락하신다면 이 종족을 싹 없애버리는데, 경비는 제가 다 지불하겠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를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에스더 당시인 주전 5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1년 세금 수입이 1 5천 달란트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을 제거하는 것을 허락해 준 대가로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주겠다고 한 금액은 페르시아 제국의 1년 예산의 2/3에 해당하는 어머어마한 액수입니다.  

 

 3:13절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의 허락을 받은 하만은 열두 번째 달인 아달월 13일을 유대인을 진멸하는 디데이(D-Day)로 잡았습니다.

아달월 13일에는 누구든지 유대인을 닥치는 대로 죽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페르시아가 다스리는 127개국 70만 명의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빼앗으면 1만 달란트는 족히 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으면 왕에게 1만 달란트를 드리고도 자신에게도 많은 돈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만은 일거양득이 되는 것입니다. 눈엣가시처럼 미운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을 죽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재산을 탈취함으로써 엄청난 재산상의 이익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왕의 인장인 반지를 받아 조서를 만들고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 그 조서를 전달했습니다. 그 조서가 전달되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엄청난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아달월 13일이 되면 유대인들은 모두 처참하게 죽어야 하고,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후 100여년 이상 피눈물 나게 일해서 만들어놓은 재산을 다 빼앗기게 생겼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하만의 간계에 의해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모두 살육을 당해야 하고, 재산을 다 빼앗겨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없습니다. 지금 페르시아 제국에 있는 유대인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기를 벗어 날 수 있었습니까?

아달월 13일의 위기를 헤쳐 나갈 뿐만 아니라 하만과 그 대적들을 멋지게 복수 할 수 있었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납니까?

 

왕이 그의 인장반지로 도장을 찍어 내려 보낸 조서가 쉽게 철회되거나 변경되는 법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르드개와 그리고 왕비 에스더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왕의 이름으로 내려진 조서인데, 왕이 그것을 쉽게 철회하거나 그 내용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까?

 

에스더 4 1-3절, 엎드려서 울부짖고 금식하며 애통하고 곡읍하고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한 것입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온 도성 수산에 있는 유대인들이 전부 다 재에 뒹굴면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철야하는 것입니다.

 

에 4:1-3 /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그리고 이 소식을 왕비 에스더가 궁에서 들었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내용을 알아오라 합니다.

 

모르드게가 상황을 설명하고 "너는 어떻게든지 왕에게 들어가서 이런 사정을 이야기를 해서 손을 좀 써봐라."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를 보고 에스더가 답장하기를, "아무리 왕비라 할지라도 왕이 부르지 않으면 왕 앞에 가지 못합니다. 부르지 않았는데 불쑥 나타났다가 금 지휘봉을 내밀면 살지만, 안 내밀면 목이 달아납니다."  하고 모르드개에게 답장을 합니다.  

 

모르드개가 다시 편지를 하기를,

"너는 왕궁에 있으니까 너 홀로 피하고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지금 왕후의 지위에 나간 것이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편하게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때를 위한 것이다." 하고 에스더에게 기별합니다.

 

에스라가 편지를 보고 답장을 합니다.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해서 금식하되 밤낮 3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4장 16절 ‘나도 왕이 부르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것이지만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가겠습니다까짓것 죽으면 죽겠습니다.’ 하고 나가는 거예요.

 

에 4:16 /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당시에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가는 것은 왕을 암살하려는 자로 취급되어 처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하수에로 왕 이전부터 내려오는 페르시아의 오래된 법이었습니다. 왕을 모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백성들도 다 알고 있는 아주 중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자기 동족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왕을 만나야 합니다. 왕이 언제 자신을 불러줄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왕이 불러줄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결단을 합니다.

 

에스더 5 1 -2 처음부터 아름다운데다가 3일을 금식을 했으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왕이 왕비가 나오자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금 홀을 내밉니다. 사흘 굶은 페르시아 최고 미인이 왕앞에 나오니 그야말로 환상이죠.

그리고 왕이 자기 옆에 앉히는 것입니다.

 

 5:1 -2 /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에 잡았던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이 소원이 무엇이냐 묻습니다.

만일 이 자리에서 살려 달라 말했으면 결과는 장담 못할 것입니다.

만일 이때 이스라엘이 풀렸났다면 이것은 사람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을 증거합니다.  

5 4절에 보면 세상에 소원이라는게 ‘제가 베푼 잔치에 왕과 하만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소원이 너무 크면 말하고도 부담스럽습니다. 이럴 때 소원을 작게 말하면 더 큰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날 밤 에스더 6 1절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안오는 것입니다.

 

에 6:1 /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왜 잠이 안 올까요?

맞아요. 수산성 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3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아하수에로 왕이 잠 못들도록 막으신 것 아닙니까?

뒤척이다가,  뜬금없이 역대 일기를 읽으라는 것입니다.

 

왜 역사 읽기를  하였겠습니까?

맞아요. 수산성 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3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역대 일기를 읽으라 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왕의 일기를 읽다 보니, 모르드개가 한 일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불러 존귀한 사람을 어떻게 대접하면 좋을까 묻습니다. 하만이 오해하기를 왕에게 귀한 사람은 자기라 생각하고 왕에게 대답합니다.

 

"왕복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선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이 일을 하라" 명령을 내립니다.

 

참 놀랍지요. 극적인 반전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까?

기도하면!

죽으면 죽으리 믿음으로 결단하면!

 

아무리 왕의 사랑을 받고 있는 왕비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그 무엇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와 에스더 왕비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결단을 보시고,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이후의 장면은 우리가 잘 알고 있지요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만든 나무에 자신이 매달려 죽게 되고, 왕은 다시 127개국에 조서를 내려 유대인들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에 9:22 /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여러분 슬픔이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나누는 기쁨으로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어떤 사람을 통하여 주님은 세계사를 뚫고 들어와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노셨습니까?

하나님의 감동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주님과 함께 하려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자, 이제 여기서 바로 에스라 7장으로 가봅니다.

 

스 7:1 / 이 일 후에 바사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여기서 이 일 후에를,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에스더 사건도 다 지나간 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닥사스다’라는 사람은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이에요.

 

..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저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에스라는  1차 포로 이후에 2차 포로 인솔자로 오게 되는데, 2차 포로 인솔자로 온 에스라가 돌아온 시기가 B.C. 457년 경입니다.

그러면 1차 귀환이 B.C. 537년이고, 2차 귀환이 B.C. 457년이니까,  80년 만에 돌아온 것입니다.

1차 포로 귀환과  2차 귀환 사이가 80년이나 간격이 있었어요.

그 어간에 에스더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1차 포로 귀환해 온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 이런 분들은 성전 건축하고 성벽을 만들고 거리와 해자를 이루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주거 지역을 만들고 하는 거니까  요즈음 말로 하자면 사람이 살 만한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부연하면 하드웨어를 구축하신 분들이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였고, 귀환해 온 사람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심으신 분, 즉 소프트 웨어를 구축하신 분이 에스라이신 거죠.

 

스 7:6-9 /  에스라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이라 첫째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정월 초하루에 출발해가지고 오월 초하루에 도착하면 만 4개월 걸리는 걸린 것이지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4개월이 걸리는 길이에요.  그 먼 길을 자기 편안하고 안일한 삶을 누리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귀환공동체에 성경 가르치기 위해서 왔습니다. 자기 성공할려고 온 게 아니죠. 자기 성공할려면 거기 있어야죠. 차라리..

자기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 속에 무엇을 심으려고 하느냐?

 

7:10  /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가 올라온 목적이 그거죠.

 

이분이 와서 처음에는 살피는 것, 백성들이 지난 80년 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을 열심히 합니다.

 

스 7:12-15 /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너는 네 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학사인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하고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를 파송하며 조서를 내립니다.

 

스 7:16 -20 /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마치 백지 수표도 한 장 끊어준 그예요!.. "뭐든지 필요하거든 더 가져가도 괜찮다. 왕의 내탕고에서 가져갈만큼 가져가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 정도 권세와 권위가 있고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는 분이 에스라예요.

 

스 7:21 - 22 /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달라는 대로 다 줘라.

이렇게까지 명령이 난 거예요.

 

스 7:26 /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사법권까지도 부여해서 보냅니다.

 

자, 이제 에스라 8장으로 갑니다. 

 

스 8:1 / 아닥사스다 왕이 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보계가 이러하니라

 

에스라 8절 14절까지 있는 이름들은 에스라와 함께 올라온 사람들의 명부가 적혀 있습니다.

인수는 1,800명 정도 올라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출발할 때 아하와 강가에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3일 동안 거기에서 유하면서 살펴 보니까 레위인들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레위인도 좀 챙기고 거기서 금식을 합니다.

 

스 8:21-23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왜 금식하고 기도하느냐 하면, 에스라가 평소에 아닥사스다 왕에게 성경과 하나님을 가르칠 때에,

"하나님은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위험에서 건져주시고 대적하는 자를 반드시 징벌하는 분이다." 이런 식으로 가르쳐 놨거든요...

 

그래놓고는 에스라가 올라오면서, "폐하, 호위병을 붙여 주시옵소서..." 해보세요.^^

"너희 하나님이 잘 지켜 준다면서..." 할 거 아니예요...

그래서 호위병을 구하는 것을 에스라가 부끄럽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기도했던 대로, 가르쳤던 대로 하나님만 믿고 호위병 없이 예루살렘까지 가겠다는 거죠. 그런 믿음을 가졌어도 겁이 나겠지요...거기서 금식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라의 마음이 이렇게 투명합니다.

그런 부끄러웠던 것도 다 기록한 거예요. 그런 것은 안 써도 큰 문제가 없는데 말이..

 

스 8:31 / 첫째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에 매복한 자의 에서 건지신지라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그러니까 대적도 있었고 매복하는 사람도 있었죠?

있었는데, 정말 금식하며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셔서, 그런 모든 것을 다 물리치고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정황을 살피고 그러는데,

뭔가 좀 에스라가 볼 때 숨기는 것 같고 주저주저 하는 것 같고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에스라가 느끼기에요...

 

원 세상에!!! 그 바벨론에서 돌아왔던 사람들이, 1차 귀환 때에 왔던 사람들이, 지도층에 있다는 사람들이, 전부 이방 여자를 취해서 아내를 삼았다는 거예요...

 

에스라가 그걸 통분히 여기고

 

스 9:3 /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수염과 머리를 다 잡아뜯고 옷을 찢고 그렇게 슬퍼하는 거예요.

 

에스라 10장으로 가 보십시다.

 

스 10:44 / 모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라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그러면 에스라가 이렇게 명단을 작성하고 그냥 말겠어요?

보나마나 어느 날을 정해가지고 한 사람씩 불러오겠지요.

"어떻게 할 거냐?"

"너의 아내와 같이 이 공동체에서 추방될 것인지, 아내를 기한을 정해서 내어보낼 것인지 각서를 쓰라."

이렇게 해서 다 쫓아내는 겁니다. 전부 다... 예외없이...

 

머리털을 쥐어뜯으면서 수염을 다 쥐어뽑고  통한히 여기는 에스라가, 그대로 두겠어요?

 

다 척결해서 내보내는데, 그렇게 내보내는 데까지는 추진했겠죠.

그렇게 추진했는데, 문제는 그 여자들이, 아이고 "우리가 잘못 왔으니까, 그저 말없이 물러가자. 떠날 때는 말없이.." 그렇게 갔을까요?

어떻게 했겠어요?

이 여자들이 다 이방여자들이죠.

경건한 유대인 여자들이 아니고 이방여자들인데, 여자들이 자기 젊음을 자기 청춘을 자기 인생을 망쳐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냥 있을 리 없죠.

그냥 있을 수도 없지 않겠어요!

자기 친정 나라로 가서, 친정 오라버니· 남동생· 조카 · 어중이 떠중이  할 것 없이, 떼로 몰려와 가지고 단합하여 예루살렘을 침략해 온 것입니다. 이방 여자들 친정나라 사람들이 말입니다...

 

침략해 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다 허물어버리고, 성문을 다 불태워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 버렸어요.

자기 신랑이었던 사람도 잡아갔겠죠.

이렇게 해서, 에스라의 개혁은 큰 난관에 봉착합니다.

 

"무릇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지요.

 

옳은 말, 바른 말 한 사람 중에 세례요한이 계신데, 핍박 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옳은 일, 바른 일 하다가 고난이 있더라도,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에스라가 하는 일은 율법에 옳은 일이고 바른 일인데,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거예요.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물러서버리면 이 귀환공동체가 아예 정착도 안 되고, 이 길로 그냥 완전히 민족의 존폐가 걸릴 정도로 어려졌어요.

추진하자니 힘이 없어요. 지금...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 되어 갔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을 중수하는 것도 어렵고 자체 경비 인원도 없습니다.

그 정도로 어렵고 힘겨운 때가 에스라 시대입니다.

 

그런 어려운 이야기가 놀랍게도 빠져 있습니다.
 

에스라서 뒷부분과 느헤미야서가 연결되어 있는데, 연결 되는 첫 부분에 그 사이의 역사가, 이를테면,

그 당시 역사의 현장을 조사해서 이야기를 메꾸어야 될 부분이 책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가진 성경에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따로 분리되어 있지만, 원래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한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에스라의 입장에서 볼 때, 개혁하는 것은 옳습니다. 에스라는 마땅히 추진할 것을 추진했지만, 엄청난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진퇴양난으로,  추진을 하지도 못하고 안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남자들이 엄청나게 죽고 잡혀가서 예루살렘 성 안의 경비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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