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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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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

 1:1-2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번에 우리가 느헤미야서 말씀을 볼 때 뭘 봤느냐 하면, 느헤미야라는 분이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는데,

그가 총독 자격으로 말미를 얻어 온 기간이 12년이었습니다.

 

느헤미야 5 14절 아닥사스다 왕 20년에 이스라엘 총독으로 부임하고, 다시 페르시아 수산으로 돌아간 것이

느헤미야 13 6-7절 아닥사스다 왕 32년에 돌아갔기에, 딱 12년을 예루살렘 총독으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느 5:14 /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느 13:6-7 /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벨론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아마도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느헤미야는 아주 정확한 사람입니다.

정확하게 12년 되는 그 날에 왕에게 딱 돌아왔습니다.

그 때는 느헤미야의 나이가 상당히 들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와 왕에게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옵니다.

그리고 인사할 곳을 다 인사하고, 수 일 후에 아니면 몇 달을 지나고 난 뒤에 다시 왕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청합니다.

그래서 1년 혹은 1년 반 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불과 느헤미야가 떠난 바로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이스라엘은 모든 것이 흔들려 있었습니다.

 

그림 느헤미야 여정

 

여러분! 말씀의 부흥도 있었던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였습니까?

돌아와 보니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성전 관리하던 레위인들이 다 자기 살 길 찾아 갔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에스라가 세상을 떠나고, 느헤미야도 페르시아로 가고 나니까 지도자도 없고 어른도 없고 하니,

국민들은 그냥 십일조도 하지 않고 첫 열매도 가져오지 않고 하니, 국민들이 십일조를 내야 레위인이 먹고 살고, 성전 관리도 할 텐데, 아무도 십일조도 첫열매도 가져오지 않으니까 레위인이 먹고 살 길이 없어, 살 길을 찾아서 이리 저리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벽 건축에 반대하였던 도비야가, 떡하니 성전에 큰 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온 느헤미야는 도비야를 내어 쫓고, 레위인들을 다시 성전에 복귀 시킵니다.

그리고 온 국민들을 불러서, 정확하게 십일조 헌물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전부 맹세를 시켰어요.

 

느헤미야가 이룬 개혁은 무엇입니까?

 

13에 보면

1-3  이방인 축출 / 느헤미야는 율법책 대로 이방 결혼을 허용치 않는다

4-9  성전 정화 운동 / 도비야와 내통한 엘리아십이 큰 방을 내어줄 때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 있었다. 그를 내어 쫓고 성전 골방을 정결하게 한다.

10-14  레위인들의 복직을 위한 기도 / 성전 직무를 다시 수행토록 하고 백성들은 헌물을 하나님께 드린다.

15-22  안식일 준수 촉구(부흥 운동) / 또한 장사하지 못하도록 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고

23-31  이방인과의 통혼 금지 / 이방 여인을 취한 자들은 쫓아내어 떠나게 한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죽고 난 뒤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바로 이것이 말라기의 주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것이 다 귀찮다는 것입니다. 번폐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가져와도 저는 것, 병든 것, 눈먼 것, 이런 것만 가져옵니다.

'어차피 불살라 버리는데, 좋은 것은 길러 돈을 버는데 사용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불살라 제물로 쓸 때 연기만 올라가면 되지 꼭 좋은 것 바칠 필요가 있느냐' 하면서 인색한 마음, 이기적인 마음이 틈타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천하에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아니계시고, 그 하나님 여호와가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왔는데,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 7월에 성경을 낭독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는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머리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도자가 떠나 버리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것입니다. 모세부터 말라기까지 하면 꼬박 1천년입니다.

천 년을 하나님께서는, 온갖 방법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모세를 보내고 여호수아를 보내고  사사들을 보내고 사무엘을 보내고 다윗을 보내고, 나중에 엘리야를 보내고 엘리사를 보내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고...

그래도 안 되어 결국은 바벨론에 70년 포로생활 하는 가운데,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곳에 가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천하에 유일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여 성전도 건축하고 성경통독까지 다 해보게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아버지와 이스라엘 사이의 마지막 대화가 오고 갑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뜸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했나이까?" 하고 덤비는 것입니다.

 

아마 이 한 마디가 하나님 가슴을 후벼 팠을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충격이 컸는지, 말라기 이후 하나님이 400여 년 간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모세부터 말라기까지 하나님이 천 년을 사랑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대답을 들으시고 그냥 무너지십니다.

 

. 느헤미야가 바라본 이스라엘: '영적인 무감각'

 

그림 말라기까지의 역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원전 587년 경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 갑니다.

기원전 538년에 페르시아의 왕인 고레스가 칙령에 의하여 다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기원전 538년에 스룹바벨의 인도로 약 5만 명 정도가 1차로 귀환했고, 기원전 458년에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귀환을 했고,

기원전 444년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3차 귀환을 합니다.

그래서 성벽도 재건하고, 말씀이 흘러넘치는 기적도 맛보았습니다.

언제 주님의 역사가 일어났었습니까?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감동을 붙들고 일어날 때 - 성전건축

죽으면 죽으리라 주님의 말씀과 동행할 때 - 에스더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다스릴 때 - 느헤미야

 

말라기서가 기원전 430년 경에 기록되었으니까, 불과 몇 년 만에 그들의 믿음이 껍질만 남았습니다.

 

주전 1446년 경에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나왔는데, 말라기가 주전 430년 경이니 모세로부터 1,000년의 시간이 흘러간 때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후, 하나님께서 1,000년을 사랑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1,000년 동안 사랑한다 고" 합니다.

 

말라기 1 2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주여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신 거냐"고 대들고 있습니다.

바락바락,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 느헤미야가 바라본 이스라엘: '영적인 반항심'

 

아마 이 말씀을 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사랑해서 용서하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사랑 받은 기억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반항을 합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1:2)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 1:6)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 1:7)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 2:17)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 3:8)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 3:13)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허물을 회개하기는커녕 반항을 합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을 멸시하고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냐고 우겨대기 시작합니다. 우기는 사람 앞에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오히려 자리를 피합니다.

430년 동안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습니다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의 사랑을 알 수 있을까 정말 생각을 많이 하십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예배를 업신여깁니다.

 

 1:13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사장들이 왜 바쁜데 이런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예배를 업신여기기 시작합니다. 꼭 이런 희생의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는가 하면서, 형식적으로 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한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병든 것, 눈 먼 것, 상한 것을 가져다가 형식적인 예배 흉내를 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2: 5 /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생명을 주시고 평강을 얻게 하려고 주신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늘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4:6 /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질투하시면서까지 사랑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한 영혼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질투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을 까요?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2개의 기관이 있어요. 가정과 교회입니다. 

 

왜 가정과 교회가 중요하냐면, 바로 교회에서 가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며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용어는 모두 가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요, 우리는 형제 자매'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가정이 흩어집니다.

사랑으로 보듬지 않으면 교회가 갈라지지요.

결국 가정과 교회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라기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무엇이 진짜 믿음입니까? 진짜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그 사랑을 알고, 나도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랑을 따라 가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지옥 갈까 떨면서 믿는 것은 아버지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천당 갈 욕심으로 믿는 것도 아버지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말씀이 믿어지기에,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이 고백이 진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께서 언제 저희를 사랑하셨나이까?" 고함치는 무리를 향하여 400년 동안 씨름하시다가 내어 놓은 답이 예수님입니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시고, 우리와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마굿간 말구유에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내가 너희를 이처럼 섬기겠노라" 말씀하신 하나님 되신 예수님!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며 떠나 갈 것을 아시고도, 십자가 앞에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던 예수님!

끊임없이 사랑으로 제자들을 붙들고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정말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있는가!!!'

그 사랑이 느껴질 때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번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전능합니다. 그럼으로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는 그 자리에 우리가 함께 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 가는 믿음의 교회와 가정과 성도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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