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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에큐메니컬 운동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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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1차 세계대전 이후 진정한 일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일치와 봉사를 통한 일치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1938신앙과 직제생활과 사역의 대표자들은 세계교회협의회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를 창립하기로 하고 WCC 헌장도 작성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교회의 낙관론은 산산이 조각났다. 전쟁으로 분열된 교회공동체는 복음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는데 무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세계의 흩어진 교회가 세상을 화해시키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교회가 일치되어야 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라틴어 에큐메니컬’(Ecumenical) 이라는 말은 경제학(economy) 용어로서 헬라어 οκονομία (oîkos, “”) + νέμω (“나누다, 할당하다”)의 합성어로 집안의 일을 나눈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에큐메니컬이란 전 지구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에 관심을 가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오이쿠메네는 신약성경에 몇 차례 등장하는데,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도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결국 오이쿠메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지향하는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개념이다. 교회의 일치와 연합, 이를 통한 선교의 의미를 담고 있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바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해서 나타난다.

 

 

2. 세계교회 협의회(WCC)의 성립과 발전

 

1) 19세기 복음주의적 에큐메니컬 운동과 에딘버러(Edinburgh) 세계선교 대회

 

19세기는 복음주의 선교의 세기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제국들이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과 복음의 선교가 함께 진행되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제국주의 선교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또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넓게 보아서 제국주의는 결국 기독교의 복음이 제3세계에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지역에서 닥치는 중요한 문제는 바로 각 교파 선교부와 선교단체들의 경쟁이었다. 서로 다른 나라와 기관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경쟁은 다툼으로 발전하기 일쑤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10년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열렸다. 에딘버러 선교대회는 두 가지 성격이 병존하는 대회였다. 한편으로는 이 세대 안에 전 세계 복음화를 달성하자!”는 구호가 말해 주듯이 선교를 독려하면서 선교 전략을 의논하고 연합운동을 모색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를 맞이하여 선교의 새로운 전환점을 구상하는 것이었다. 비록 후자의 경우는 이 대회에서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이후 생활과 실천’(Life & Work) 운동과 신앙과 직제’(Faith & Order) 운동이 시작되는 초석이 되었다.

 

2)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에딘버러의 세계선교 대회 이후 지속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느껴서 1921년에 국제선교협의회가 형성되었고, 1928년 예루살렘에서 IMC 두 번째 대회를 가졌다. 이 대회에서 중요한 기류의 변화가 있었다. 기독교 국가들이 앞장서서 1차 대전을 일으켰고, 1917년에는 볼셰비키혁명이 성공하였다. 선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인종문제나 농촌의 기아 문제와 같은 것을 선교의 중요한 주제에 포함시키기 시작하였다. 점차로 선교의 개념이 소위 하나님의 선교에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인도의 탐바란에서 열린 3차대회(1938)에서 기독교 피선교국가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캐나다의 휘트비 대회(1947)에서는 일방적인 선교를 지양하고 순종하는 동반자(partnership in obedience)”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독일의 빌링엔 대회(1952)에서 하나님의 선교개념이 더욱 굳어졌다.

1958년 가나의 아치모토에서는 교회와 선교의 관계를 재검토하면서 선교기관이 교회의 선교를 보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 결과 1961년 뉴델리에서 모인 제3WCC 대회에서 WCCIMC가 통합되었고, IMCWCC의 한 분과인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가 되었다. 고전적인 복음주의 운동의 노선을 걷던 선교단체들은 WCC에 합류하는 것을 반대 하고 독자 노선을 걸었다. IMCWCC가 개인의 구원을 등한히 하고 하나님의 선교에 집중한다는 이유였다. 특히 1972년 태국의 방콕에서 개최된 CWME 대회에서 통전적 구원’ (영과 육, 개인과 공동체를 포괄하는 구원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복음주의자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후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WCC를 비판하면서 로잔에서 대회를 가졌다. ‘로잔선언은 개인구원의 우선권을 강조하면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로잔선언에 자극을 받은 WCC 측에서는 1982년 중앙위원회에서 전도와 선교: 에큐메니컬 확언”(Mission and Evangelism: An Ecumenical Affirmation)을 채택하였다. 이 문서에서는 복음주의적 전도와 하나님의 선교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삶과 봉사’(Life & Work) 운동

 

19141차 대전 이후 죄더블롬(Soederblom, 스웨덴 루터교회의 대주교)의 주도 하에 세계 평화를 위하여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가르침은 갈라지게 하지만 섬김은 연합하게 한다.”는 모토를 가지고 사회와 국제 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 스톡홀름의 제1차 세계대회와 1937년 옥스퍼드의 제2차 세계대회를 통하여 1,2차 대전, 공산혁명, 파시즘 등에 대하여 입장을 밝혔다. 1937년 대회 때는 이미 진행되던 신앙과 직제운동과 연합하여 WCC를 결성할 것을 결정하였다. WCC 암스테르담 창립총회 때 취한 입장은 참여초월의 긴장관계였다. 자칫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아니면 사회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 있다. 이 둘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적 사건들에 대하여 반응하며, 빈곤의 문제를 퇴치하는 디아코니아를 실천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후 러크나우(1952)와 에반스턴(1954)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선교개념을 받아들였다. 웁살라 총회(1968)에서는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아 정의와 평화와 같은 역사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나이로비(1975) 5차 대회에서는 JPSS(정의로우며 참여하는 지속가능한 사회, 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로 요약되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뱅쿠버 총회(1985)에서 JPIC(Justice, Peace and Integration of Creation)가 구현됨으로 생태학적 위기가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되었다.

 

4) ‘신앙과 직제’ (Faith & Order) 운동

 

WCC가 설립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임을 선포하며, 교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예배와 공동의 삶으로 표현된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성만찬적 교제 안에서의 가시적 일치의 목표로 초청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세상으로 하여금 믿도록하기 위함이다. 교회를 분리시킨 서로 다른 신학적 문제들을 검토하고 각각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가진 운동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WMC)이후 싹텄다.

 

미국 성공회 총회에서 신앙과 직제(Faith & Order)에 관한 문제를 숙고하기 위한 대회 개최를 결정하고, 1927년 로잔에서 제1차 세계대회를 가졌다. 1937년 에딘버러 2차 세계대회를 가진 후, 1948WCC의 신앙과 직제위원회로 편입되었다. 1952년 신앙과 직제위원회(룬드 대회)에서 룬드 원리라는 것을 도출하였다. “그들이[교회들이] 깊은 확신의 차이들로 말미암아 나뉘어져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을 제외한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함께 행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1963년 몬트리올(4) 대회의 제2분과 보고서인, “성경, 전승(Tradition), 그리고 전통들(traditions)”에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었다. 1963년부터 발언자와 손님으로 참여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간 중에 있었던 로마가톨릭과의 관계 정립을 위하여 성경과 전승(T)의 관계를 명백히 하였고, 개신교 내부 교파간의 관계 정립을 위하여 전승(T)과 전통(t)을 다루었다. 리마대회(1982)에서 BEM(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문서를 만들었고, 이 문서에 근거한 리마예전서(Lima Liturgy)를 만들고, 그에 따라 성만찬예배를 드렸다. 또한 세례와 성만찬의 의미가 보편적 세계의 정의와 평화 등의 문제와 결합되어 있음을 천명하였는데, 이는 신앙과 직제운동과 삶과 봉사운동을 연결시킨 뜻 있는 진보였다. 즉 세례는 개인적인 성화 뿐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며, 성만찬을 나눌 때, “모든 종류의 불의, 인종차별, 분리와 자유의 부재는 근본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고 천명하였다. 결국 WCC의 목적은 공동의 선교와 봉사를 감당하는 것인데, 교회가 분열되어 있어 이를 행하지 못하므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차이를 극복하고 가시적인 일치를 향한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3.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연도 장 소 주 제
1 1948 암스테르담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2 1954 에반스톤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소망
(Jesus Christ, the Hope of the World)
3 1961 뉴델리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빛
(Jesus Christ, the Light of the World)
4 1968 웁살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5 1975 나이로비 예수 그리스도는 해방하고 연합하게 한다.
(Jesus Christ Frees and Unites)
6 1983 뱅쿠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생명
(Jesus Christ, the Life of the World)
7 1991 캔버라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Come, Holy Spirit, Renew the Whole Creation)
8 1998 하라레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소망 안에서 즐거워하자
(Turn to God, Rejoice in Hope)
9 2006 포르토
알레그레
하나님이여,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
10 2013 부산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1) 1차 암스테르담 총회(1948)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38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에서 WCC 창립을 결의한 후, 10년이 지나 삶과 봉사운동과 신앙과 직제운동의 대표자들이 19488월 암스테르담에 모여 WCC를 조직하였다. “WCC는 성경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우호협력체로서 한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적 소명을 함께 성취하기를 추구한다.”는 강령 하에 연합운동과 사회문제를 위한 노력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초대 총무는 비서트 후프트(Visser't Hooft)가 맡았으며, 창립총회에 147개 회원교회로부터 351명의 총대들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주로 유럽북미 교회들과 소수의 동방정교회 대표들이었다. 주제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주제강연은 칼 바르트와 C. H. 다드가 맡았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만드는 어떤 종류의 계획과도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고 초월을 강조하였다. 초기 WCC의 교회론은 기독론 중심적인 비교교회론이었다. 비록 교회들은 분열되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일치(God-given-unity)가 있고 그것을 서로 확인하기 위해 함께 모이자는 것이었다.

 

총회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WCC는 세계와 교회가 함께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창립되었다. 당시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 과제는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는 것이었다. 1WCC 총회에서 교회 대표들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만이 인간의 무질서를 해결할 수 있고, 교회는 하나님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교회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WCC는 교회가 분열을 회개하고 자기 갱신을 통해 일치를 추구할 것을 추진하였다. 1WCC 총회 주제는 인간의 교만함을 지적하면서 어떤 문명과 교회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하지 못한다는 바르트 신학이 나타나고 있다.

 

2) 2차 에반스톤 총회(1954)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이 시기는 냉전대립과 탈식민지화 운동이 고조되었다. 첫째, 1948년에 동베를린이 봉쇄되었고, 1949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결성되면서 미소 사이에 냉전 블럭이 형성되었다. 그해 중국이 공산화되었다. 둘째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셋째, 탈식민지화 운동으로 신생국가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1949년에 인도네시아가 독립했다. 1953년과 1954년에 이란과 과테말라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1950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관심은 탈식민지화와 신생국의 국가건설에 집중되었다.

WCC 내부에서도 서구교회들과 신생교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1950년 한국에 전쟁이 발발하자 토론토에서 모인 WCC 중앙위원회는 한국 상황과 세계질서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유엔이 한국에서 경찰행동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WCC가 초교회를 지향한다는 비난에 대처하기 위해 WCC의 본성을 밝히는 교회, 교회들, 세계교회협의회라는 문서를 발표했다. 한편, 1952년에 빌링겐 IMC에서 하나님 선교’(missio Dei) 신학개념이 등장해서 WCC 선교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1948~1958년의 10년 동안 IMCWCC 사이에는 통합문제가 논의 되었다.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그리스도-세상의 소망 (Christ - the Hope of the World) (4:4-7)

앞서 언급한 1950년의 토론토 WCC 중앙위원회는 차기 총회 주제에 대해서 세계는 거짓 희망,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총회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세상 모두에게 유일한 희망이라는 확증을 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WCC 헌장과 함께 이 주장은 향후 WCC 총회 주제들이 강력하게 기독론을 반영하도록 방향을 결정지었다. 에반스톤 총회는 교회들이 이념적 동서갈등, 경제적 남북갈등, 인종적 흑백갈등을 초월하여 서로 일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총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그 안에 있는 종말론적인 희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종말론적 희망(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그 역사적 관련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하지 못했다. 주로 유럽교회들은 희망을 종말론적으로 이해했고 미국교회들은 그것을 현실적 낙관론으로 이해했다.

 

3) 3차 뉴델리 총회(1961)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55년에 나토에 대응하는 동구권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결성되며, 세계가 미소 양대 블록으로 재편되자, 아시아,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반둥 비동맹회의를 결성하면서 제3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1956년에 스탈린은 헝가리의 자유혁명을 진압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강점하였다. 1957년 가나가 영국연방에서 독립하여 아프리카 민족독립의 선봉이 되었다. 1959년에는 쿠바가 혁명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다. 1960년 남아공정부가 샤퍼빌에서 흑인들을 대량 학살하였고, WCC의 인종차별반대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WCC1955년부터 10년 동안 일어난 이스탄불 내전의 피해 복구를 지원했고, 소련의 헝가리 침공 때에는 난민들의 이주 정착을 지원했다. 그리고 1958년에 WCC와 러시아 정교회 사이에 대화와 방문이 활성화 되었다. 이러한 봉사와 대화는 4개의 동방정교회가 WCC에 가입하는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한편,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은 급속히 발전하여 1957년 동아시아기독교협의회(EACC: CCA의 전신)가 조직되었다.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Jesus Christthe Light of the World) (8: 12)

뉴델리 총회의 주제는 신앙고백과 아시아를 함께 고려하여 결정되었다. 뉴델리 총회에서는 WCC 헌장의 확대수정, IMCWCC의 통합, 동방정교회의 가입, 여러 아프리카 아시아 교회들의 가입, 로마가톨릭교회의 업서버 참석, 타종교인들과 대화의 길 개방 등 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것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개념이 필요했고 세상의 빛이라는 개념이 선택되었다. 에반스톤 총회의 주제는 그리스도를 사용했으나 뉴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용한 것은 당시에 WCC를 향해 신학적 상대주의혹은 혼합주의라는 비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주제는 나는 세상의 빛”(8:12)이라는 예수님의 선언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너희는 세상의 빛”(5:14)이라는 요청을 암묵적으로 담고 있었다. 예수님의 빛은 십자가라는 고난과 수치에 가려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지만 부활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교회도 십자가를 짐으로 주님이 세상의 빛이라는 증언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4) 4차 웁살라 총회(1968)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60년대는 세계사적 혼란기였다. 첫째, 과학의 발전은 핵무기 경쟁을 가져왔다. 둘째, 충격적인 케네디 암살(1963)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1968)이 일어났다. 셋째, 1965년 월남전이 시작되었고 1967년 중동에는 6일 전쟁이 일어났다. 1968년 체코의 민주화는 소련 군대의 학살로 막을 내렸다. 넷째, 혁명의 열기가 불타고 있었다. 1963년 미국에서는 20만 명의 흑인들이 인권시위를 했고 1968년 전 유럽에서는 학생들의 반전시위가 일어났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를 열어 교회개혁을 단행했고 메델린 주교회의(1968)는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정치적 선택을 하였다.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Behold, I make all things new) (21:5)

당시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심 안건은 사회정의와 경제정의 문제였다. 혁명적 시기에 개최되는 총회를 준비하면서 WCC 지도부는 기독론을 넘어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주제로 삼았다. 주제로 인용된 성경구절은 역사의 최종적인 의미가 밝혀지는 순간을 미리 보여주는 의미가 있었다. 이 주제는 WCC교회일치선교보다도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관심이 만물에 있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가져왔던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했다. 즉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소이며 이곳에 교회가 함께 일하도록 요청받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하나님 선교 신학이 강하게 표현되었다. 주제 안에서 새로움(new)은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주시는 새로움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5) 5차 나이로비 총회(1975)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동안 제3세계 안에서는 자유와 해방에 대한 몸부림이 거세게 일어났다. 1969년에 리비아에서는 카다피가 집권했다. 1971년에 중국은 유엔에 가입하면서 국제무대로 다시 나왔다. 1972년에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1973년에 미국은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붕괴시켰다. 1974년에 포르투갈에서 스피놀라가 집권한 후, 앙골라, 모잠비크, 기네비소, 쌍토메프린시페, 까보베르데를 독립시켰다. 사이프러스에 친 그리스계 정부가 등장하자 터키는 북사이프러스를 점령했다. 1975년에 크메르 루즈는 캄푸치아를 장악하고 3백만 명의 국민을 살해했다.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점령했고, 유럽에서는 헬싱키 협정으로 냉전이 종식되었고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1939~1975)가 종식되었다.

 

남미에서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pedagogy)종속이론이 등장했다. 또한 실천-반성’(Praxis and reflection)의 방법론에 근거한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들이 나타났다. 인종차별주의와 다국적기업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다. 1971년 기독교교육세계협의회는 WCC에 통합되었는데 WCC는 의식화 교육프로그램과 행동신학(Doing Theology) 연구를 지원했다. 일부 지도자들은 WCC가 사회참여로 경사되는 불균형을 우려했고 복음주의권의 그리스도인들은 WCC의 방향을 비난했다. 1973년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오늘의 구원(Salvation Today)를 발표했다. 방콕대회에서 아시아 교회들은 존 가투가 제안한 선교 모라토리움을 강력하게 지원했으나. 나이로비 WCC 총회는 모라토리움을 수용하는 대신 선교적 동반자 관계’(partnership in mission)를 발전시켰다.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Jesus Christ Frees and Unites)

나이로비 총회 주제는 종말론에서 다시 기독론으로 돌아왔다. 이 총회는 사회참여를 지속하면서도 해방과 진보의 슬로건에 가려있었던 선교와 일치의 주제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했다. 기존의 WCC 총회 주제들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문에 대해 시대적 징표’(sign of time)를 담아서 대답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에큐메니컬 운동의 딜레마는 예수를 해방자(frees)로 고백하면서, 동시에 분열자가 아닌 화해자(unites)로 고백하는 것이었다. 성경적 자유 개념은 바울 신학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 , 율법, 죽음으로부터 자유 한다(6.7; 1:20; 5:1, 7;24).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운명을 극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이기 때문에 인류와 함께 연대해야 하는 정치성을 포함하게 된다. 총회 주제가 하나 되게 하신다.”는 표현을 담은 것은 WCC의 신학적 방향이 웁살라 총회의 사회참여적 성격에서 통전적인 방향으로 교정된 것을 나타냈다. 그러나 당시 WCC 안에서는 교회의 일치가 하나님의 선물인가?’ 아니면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냐?’ 하는 견해 차이로 논쟁이 있었다.

 

6) 6차 뱅쿠버 총회(1983)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77년에 파키스탄에서는 민주적인 정권이 다시 군사쿠데타에 의해 전복되었다. 1979년에 이란에서는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반미 이슬람 정권을 세웠다. 니카라과에서도 독재자 소모사가 추방되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아프가니스탄의 대소항쟁이 전개되었다. 1980년에 살바도르 독재정권은 로메로 주교를 암살했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독재에 의해 고통 받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짐바브웨가 백인독재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고, 이 과정에서 WCC는 짐바브웨 해방 전선을 지원하였다. 한국에서는 신군부에 의한 광주시민 학살이 일어났다.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1982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5차 나이로비 총회 이후 WCC1977년에 종교간 대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했다. 1980년에 멜버른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는 가난한 사람들이 현대 선교에서 더 소외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선교의 대상이면서도 하나님 선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주제에 대한 신학적 특징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 (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 (11:25, 14.6)

뱅쿠버 총회의 주제는 성령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독론적 신앙고백을 사용했다. 당시 시대적 징표는 생명이었다. 총회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적 억압, 경제적 착취, 군사주의, 인권유린,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 등을 생명을 죽이고 손상하는 죽음의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생명으로 고백하는 것은 바로 죽음의 세력에 대응하는 것이고, 그 내용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주제의 성경적 배경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11:25)이었다.

 

기독론은 20세기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초대교회 이후로 성육신 기독론(from above)과 십자가 기독론(from below) 사이에는 긴장이 있었다. 바울은 십자가의 빛으로 부활을 이해하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전개했고, 요한복음은 부활의 관점에서 성육신을 이해하는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독론은 성육신십자가부활을 연속적으로 연결시키면서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WCC 안에는 루터의 종교개혁 전통이 강조해온 아래로부터의 기독론과 동방정교회의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왔다. 개신교는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관계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면서, 부활을 하나님의 새로운 행동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동방정교회는 성육신하신 인자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십자가와 부활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불연속성을 강조하면 성육신을 약화시키고, 연속성을 강조하다보면 십자가의 의미를 약화시키게 된다. 그래서 WCC는 성육신 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의 의미를 강조했고, 십자가 신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악과 투쟁하시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하신다는 것을 강조했다. 따라서 WCC 총회 주제들에 나타난 기독론은 이 두 차원을 상호 관련시키고 있다. 콘라드 라이저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생명이라는 뜻은 또한 세상의 주인”(Lord)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생명과 세상은 모두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세상의 창조주가 되신다. 그래서 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세상의 주인으로 아는 사람들의 고백이 된다.

 

7) 7차 캔버라 총회 (1991)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지금까지 WCC 총회가 열리지 않았던 대륙은 오세아니아 뿐이었다. 환경 문제, 원주민 문제, 영성 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호주의 캔버라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말부터 동구와 남아프리카에 변화의 바람이 몰려왔다.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동구권의 교회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1990년에 나미비아가 남아공에서 독립을 이루어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통치가 끝이 났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곧 바로 새 시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구 소련연방과 발칸반도 안에서 인종 충돌과 인종 학살이 일어났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페루 등지에서는 내전이 벌어졌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민중들은 초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았다. 페르시아 만에는 걸프 전쟁이 일어났다. 광범위한 환경오염과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의 사막화 확대는 현 인류와 미래 인류의 생존권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강대국들의 핵실험장이 되고 폐기물 처리장으로 황폐화되고 있음을 호소했다. 사회적인 대안 모델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었다.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Renew the Whole Creation).

캔버라 총회는 성령론을 주제로 택하면서, 신앙고백이 아닌 기도형식을 사용했다. 총회 개막 연설에서 사무총장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세 가지 우선 안건을 제시했다. 첫째, 탈근대화 시대에 세계적으로 종교부흥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교회는 성령이 모든 영성과 종교들 안에서 활동하는지 아니면 기독교 신앙 안에서만 배타적으로 활동하는지 답해야 한다. 둘째, 사회주의가 붕괴했고 서구 자유주의(liberalism)도 파산했기 때문에, 교회는 대안적 사회 모델을 찾아야 한다. 셋째, 다양한 교파들은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시적 일치가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카스트로의 말에서 주장하듯이 세계적으로 깊은 영적인 요구에 대한 열망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WCC는 새로운 성령론적 신학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총회는 환경문제와 생명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나타내었다. 총회 주제는 환경문제와 창조신학을 연결시켰고, 경제와 생태계에 대한 윤리가 교회의 삶 속에서 성찰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호주 원주민들의 땅에 대한 영성이 이러한 주제를 논의하는데 매개체가 되었다.

 

8) 8차 하라레 총회(1998)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동구권 해체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경제적 빈부차이를 심화시켰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대규모의 외환위기가 초래했다. 경제적 위기로 인해 유럽 사회가 보수화 되었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방향과 재정에도 큰 위기가 나타났다. 1990년 이후 지구온난화와 엘니뇨현상이 세계적인 기상 이변을 일으켰고, 자원의 고갈과 인구 증가가 또 다른 위기로 등장했다. 1997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교토협약’(Kyoto Protocol)이 체결되었다. 1994년에 르완다 내전에는 끔찍한 인종 청소가 자행되었으나 국제 사회는 이것을 막지 못하고 묵인했다.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하나님께 돌아가자, 소망 중에 기뻐하자(Turn to God, Rejoice in Hope)

하라레 총회의 주제는 기독론, 성령론에 이어 삼위일체론으로 확대되었다. 이 주제는 희년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회개와 갱신을 강조했고, 로마서 12:12절에서 소망 중에 기뻐하자는 말을 인용했다. 사무총장 콘라드 라이저는 총회 주제를 언급하면서 철저한 회개 및 방향전환과 자기평가, 에큐메니컬 운동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화해와 일치로 초대, 21세기의 전야에서 희망의 공동체가 되라는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브라질 여성신학자 데이펠트(Wanda Deifelt)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인간성으로 돌아가서 우리 시대의 특징인 고난과 고통과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코수케 고야마는 탕자를 끌어안는 아버지, 홈리스 예수의 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붓기 위해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희망은 시간이야기”(time-story)가 아니라 사랑이야기”(love-story)라고 말했다. 총회는 2000-2010폭력극복을 위한 10’(Decade to Overcome Violence)이라고 선언했고, 3세계의 가난한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해 부채탕감운동을 전개하자고 선언했다.

 

9) 9차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2006)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는 세계의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켰다. 20019.11사태 이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2003년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고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자살 테러가 이어졌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자연재해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2004년에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밀어닥친 최악의 쓰나미로 인해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58월말에 카타리나 태풍으로 인해 미국의 뉴올리앙스에 1만 명이 희생되었다. 하라레 총회 이후 WCC 선교신학은 복음과 문화, 세속주의 안에서 증언, 건강과 치유라는 세 측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늘의 일치 안에서 선교와 전도(Mission and Evangelism in Unity Today, 2000)를 발표했다. 특별히 세계평화를 위한 타종교와의 대화 프로그램이 지속되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전에 대해 아가페 과정(AGAPE Process: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WCC는 특별히 아프리카의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HIV/AIDS극복을 지원하고, 아프리카 어린이의 권리를 강조했다.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 주제는 하라레 총회에 이어 하나님이 중심이 되었고 기도형식을 사용했다. 여기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다. 기독론적 주제에서 사용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와 세상의 대칭 구조가 여기서는 하나님과 세상의 대칭구조로 변화되었다. ‘은혜라는 표현은 WCC3대 구성 요소인 개신교회, 동방교회, 오순절 교회의 신학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표현이었다. 이번 총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내적 위기 극복, 종교적 다원성 안에서 기독교의 정체성 확인이라는 내적 과제를 해결하고, 경제정의환경파괴폭력극복 평화실현이라는 외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많은 안건을 다루었다.

 

10) 10차 부산총회(2013)

 

시대적 배경과 WCC의 활동

 

1961년 인도의 뉴델리 총회 이후 42년 만에 열리는 아시아 대륙의 총회였다. 특별히 생명의 중요성과 한국의 통일, 아시아의 정의와 평화 문제를 반영하였다.

 

주제에 나타난 신학적 특징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

총회의 주제를 뒷받침 하는 성경구절로는 이사야 42:1~4절로 하나님의 종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고”(3),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른다”(4)는 것이었다. “갈대등불은 생명을 나타내고, “꺾지 아니하며” “끄지 아니라고는 평화를 나타내며, “공의는 정의를 상징하는 것이다.

 

 

5. 나가는 말

 

에큐메니컬 운동은 결국은 교회일치 뿐만 아니라, 전 지구에 있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살피고,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정신이 WCC 정신이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WCC의 정신은 한국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 시킨다. 이 문제는 특별히 구속사와 보편사의 문제일 것이다. 구속사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요, 보편사는 세계사를 통한 하나님의 일반 섭리의 역사다. 그런데 에큐메니컬 운동은 선교개념을 영혼구원이라기 보다는 인간화와 사회화, 인권신장 등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기조는 인간이 영혼의 구원만으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없고 구원받은 영혼이 인간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의 구원이 필요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독재국가나 공산국가나 빈곤국가에서는 인간답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영혼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사회의 빈부격차나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이나 지역차별이 없는 사회를 필요로 한다. WCC가 이러한 인간화와 사회화나 인권신장의 차원에 기여를 한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혼구원을 받지 못하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천하를 얻고도 그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아시아와 제3세계 국가에서는 인간화, 사회화, 인권신장 등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또한 복음화의 문제도 있다는 것일 것이다. 1974년 로잔회의 이후에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 이해에 나타난 가장 중대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 개념이 채택된 것이다. 여기에 이미 1982WCC에서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컬 확언”(Mission and Evangelism, An Ecumenical Affirmation)을 발표한 적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도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전쟁과 가난과 불의로부터의 해방이 기독교의 복음이라고 말하면서 가난한 자들과 연대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결국 에큐메니컬 운동이 교회일치 뿐만 아니라, 전 지구에 있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살피고, 함께 공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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