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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2세기 비평가 켈수스가 폴리카르포스, 발렌티누스, 몬타누스에게 기독교 분파에 관해 질문하다 - '신학논쟁'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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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저 E. 올슨 지음, 박동식 옮김/ 새물결플러스 -

 

 

2018년, M.Div. 과정을 밟는 당시에 이은재 교수님의 교회사 강의를  들으며 작성했던 글이다. 

 

'신학논쟁'이라는 특별한 책과 조우하게 된 것이 신기하기만 했었다. 

 

저자 올슨은 신학사의 시대별 주요한 쟁점을 사상가들 간의 가상의 대화와 토론 형식에 담아 실감나게 풀어냈다.

 

2세기 폴리카르포스와 발렌티누스, 몬타누스가 기독교 비판가 켈수스 앞에서 벌이는 격론으로부터 시작해서, 중세와 종교개혁, 근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29개의 논쟁을 다루었다. 

 

나는 그 일부를 챕터별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 들어가는 말

 

"1:14~15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복음, 예수님이 증거하신 복음이 그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교회의 교회됨이 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주시기로 작정한 기쁜 소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분의 백성들의 삶에서 일하시는 삶의 흔적&자취가 교회사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전제(前提)조건이 회개인데, 하나님이 전부인 것에 우리 눈을 돌리는 것, 다른 것에 마음을 쏟던 것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이다."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공간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삶 속에서, 내 삶에 다가오시는 그분의 흔적을 느끼는 것(묵상)이다."

 

한국 교회를 위기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아니, 한국 교회까지 갈 것 없이 바로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가 위기임이 분명하다. 무엇이, 왜 위기일까

 

책을 읽으며, 한국 교회는 위기기회가 복잡하게 공존하는 미래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새로운 변화를 요청하고 계신다.

 

인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간섭하신 흔적을 교회사를 연구하며 찾아보는 첫 시간, 가장 먼저 대략적인 그 시대의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신학논쟁1장의 포인트, 3. 주요 논쟁에 대한 포인트에서 집어 보기로 한다.

 

몸 되는 말

 

1. 로마 제국의 등장과 이로 인하여 기독교 복음전파에 영향을 준 사회적 정황들

 

175년 아니면 180참된 교리로 흔히 알려진 반기독교 비평가인 켈수스(Celsus)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책을 통해 기독교의 종교는 위대한 것이 아니라 왜소한 존재였다고 하였다. 켈수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묘사에서 이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만일 하나님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셔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코자 하셨으면, 그가 세계의 한 구석을 택하여 그렇게 엄청난 사건을 전개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오직 우스꽝스러운 작가만이 하나님의 아들이 유대인들에게 보내졌다고 말할 것이다

 

켈수스의 주장처럼 사실 그리스도가 태어난 팔레스타인은 세계지도상에서 볼 때 변방에 불과한 지역이었다.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것이 없는 북에서 남까지 150마일, 동에서 서까지 75마일 정도에 지나지 않다. 예수는 이 국경을 넘어 간 적이 없고 그리고 그는 고작 걸어서 갈수 있는 거리만 다녔다. 그러나 구약의 솔로몬 시대를 생각해 보면 팔레스타인은 교통의 요지가 분명하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과한다. 그리고 이 통로를 장악함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던 솔로몬 왕의 전성기를 생각해 본다면 팔레스타인 지역은 중요한 통로역할을 하였다.

 

특히 예수님 탄생 즈음에 로마제국의 영토 확장은 복음 전파를 위한 용이한 환경을 조성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로마제국이 형성한 그리스-로마세계는 동으로는 유프리테스강에서부터 서로는 대서양까지, 그리고 북으로는 다늅강, 라인강과 스코틀랜드로부터 남으로는 북부아프리카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1) 정치적 통일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로마제국은 정치적인 통일국가를 이루고 세계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으므로 기독교의 복음전파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조성하였다. 로마제국은 관용, 인내, 화합, 동화 등을 국가의 정책으로 삼아 통일제국 내에서의 자율성을 인정하였다.

 

2) 문화적 통일

 

알렉산더 대왕 이후에 전파된 그리스문화의 보편화 작업은 로마제국의 팽창과 더불어 그리스-로마문화를 형성하여 단일화된 문화권에서의 복음전파를 용이하게 했다. 그것은 희랍의 철학, 사색, 로마인의 법률, 질서 조직 등을 들 수 있다.

 

3) 언어의 통일

 

당시에 희랍어가 세계적인 공용어로 사용되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전파를 위한 언어 소통이 쉽게 이루어 졌다. 원래 팔레스타인의 언어는 아람어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어에 능통해 있었다. 그리스어는 지중에 연안의 동쪽 끝까지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서 사용되든 보편적인 용어였다. 로마에서는 라틴어를 사용했으나 그리어도 사용되었다. 바울은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15:23)라고 하였으니 그의 복음은 로마보다도 먼 서쪽인 스페인에서 그리스어로 전파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4) 교통의 발달

 

로마를 중심한 교통의 발달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독교의 확장과 발달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쉽게 할 수 있었고 동서양의 활발한 교역을 이룰 수가 있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로마제국내의 교통도로는 로마의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하였고, 사람들의 왕래는 곧 다른 문화와 지역과 대한 이해와 접촉을 촉진시켰다. 기독교는 이러한 환경을 통해 복음을 더욱 쉽게 전파할 수 있었다. 길 가던 여행자들이나 학생들, 유랑극단들 그리고 군인들에게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이는 교통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강도들의 위협에서 안전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고후 11:26)

 

5) 다원주의적인 종교정책

 

로마제국은 모든 제국내의 모든 국가와 국민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는 정책을 취했고, 이로 인해 기독교도 황제 숭배와 충돌하기 전까지 상대적인 자유를 얻으면서, 복음전파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6) 히브리 종교

 

이 모든 국제적인 환경보다도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신적인 대비는 유대인의 종교였다. 오리겐은 켈수스의 기독교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에 답하면서 적합한 대답을 하였다.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으신다. 인간들 가운에서 발생한 모든 좋은 일들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오직 한 장소에서만 가능하였다. 그 장소는 인간들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믿었던 곳이며, 그리스도를 예언한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있었던 곳이며, 그 장소로부터 그의 가르침이 온 세상으로 흘러 넘쳐야 할 바로 그 때에 오실 장소였다.“

 

우리는 위의 오리겐의 고백을 통해,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며 유대종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음서에서는 이 사실들을 더욱 확정하고 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4:21). 이러한 사상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의 전역에 디아스포라(diaspora)로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초기 선교사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이러한 제반 여권과 더불어 로마제국은 제국의 지배 하에서의 평화(Pax Romana)를 추구하였고, 이러한 정책가운데서 제국내의 관용의 정신은 상인과 군인 그리고 자유인들의 왕래를 활발하게 하였다. 그리고 여러 민족의 이동과 접촉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인 환경은 복음전파에 유리한 못자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제국내의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있던 유대인들 공동체와 그들의 회당은 초기 기독교 복음전파에 결정적인 교량역할을 하였다. 이는 로마제국이 하나의 정치체제로 통일된 세계를 형성하지 아니했더라면 불가능했던 환경이었다.

 

2. 2 세기의 기독교의 특징

 

세기는 기독교의 특징은 박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로마제국의 손으로부터 박해의 파도는 쉬지 않고 교회를 때렸다그러나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하여 성장했고 확장되었다이는 믿는 이들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진지하게 수행한 결과이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그들만이 진리를 선포한다고 주장했다그들은 기독교는 “단지 또 다른 종교라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회중 생활을 통하여 그들이 선포한 바를 그대로 살아냈다. 뿐만 아니라 믿으면 죽이겠다는 위협의 효과는 박해가 교회를 순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외형적인 부흥은 내부적인 문제를 드러내게 되었다. 특별히 성직자주의로 하나님의 백성을 계급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신약의 가르침을 넘어서 성직자들의 특권권능 및 권위에 대하여 구약성경의 레위 성직자제도로까지 연결하려 하였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단순성과 순결을 강조하기 보다는 인간의 고안물이라 할 수 있는 상징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2세기 기독교의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반향점에 섰던 것이 몬타누스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 역사가들은 몬타누스파에 대하여 이단으로 분류하지만, 어쩌면 주교의 교회들은 몬타누스주의에 지나치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실수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2세기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열정을 꺼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예언과 방언 그리고 성령의 또 다른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라고 지적하는 올슨의 비판과도 같이 몬타누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기에는 성급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몬타누스파는 믿는 이들과 교회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크게 강조했다그리고 복음에는 성직자에게 아무런 특권이 없음을 표명했다그리고 개인적인 회심과 결단을 강조하다 보니 제도권 교회에서 온 사람에게 다시 세례를 주었다. 이는 교제의 순결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몬타누스파에 대하여 제도권 교회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몬타누스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난은 열광적인 종파의 신자라는 것이다몬타니스트 교회의 영성과 삶은 제도권 교회들의 형식주의 및 무감각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역사가들 중에 몬타니스트를 옹호하는 역사가들이 있는데 그들 중 몇몇을 인용하면, 초기 역사가인 W.R. 윌리암 박사는 “그들의 가르침에서 교리적 오류를 발견하기가 힘들다그들의 감정의 표현은훨씬 후 종교개혁시대에 많은 다른 교사들이 강조한 바와 같이은혜의 참된 경험은 믿는 이의 삶에서 분명하다는 그들의 믿음에서 유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Schaff-Herzog 종교 백과사전의 기고자인 몰러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몬타니즘은 기독교의 새로운 형태가 아니며 몬타니스트는 새로운 종파가 아니다오히려 몬타니즘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 가운데 안락하게 안주하려는 그 시대의 두드러진 경향에 대항한 단순히 고대 초기 교회의 반발이였다.” (Grimith, J. W. A Manual Of Church History: Vol. II. p. 36)

 

 

3. 주요 논쟁에 대한 포인트

 

1) 켈수스(Celsus) : 조롱

 

켈수스는 플라톤 사상과 스토아 사상을 중시하는 로마 철학자로, 반기독교 논쟁서참된 교리를 저술한 제국 내의 선도적인 기독교 비평가였다. 그는 이 책에서 기독교와 '참된 교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고 암시하면서, '참된 교리'라 함은 플라톤주의와 스토아주의의 측면들을 결합한 철학의 혼합물임을 명시했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지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거의 상상할 수 없는데, 이것은 모순이다.

 

플라톤 사상은 이데아를 추구하고 자연과 이성에 근거를 둔 윤리적-영적 철학으로, 이상하고 신비한 권위적인 선포를 인정하지 않는다. 켈수스는 기독교 믿음이 그리스 철학과 갈등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신은 육체에 들어가 고통을 당할 수도 죽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죽은 몸은 결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런 믿음을 미신이라고 했다.

 

켈수스는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를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기독교를 미신과 같다고 조롱했을 뿐이다. 또한 그는 기독교 안에서조차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에 관해 서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조롱했다.

 

켈수스는 기독교인들의 천박한 지성을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점잖은 주인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하다가 (전혀 교육받지 못한)노예, 어린이, 여자들이 오면 '시부렁시부렁' 하면서 기독교를 전한다. 이런 수준의 인간들이 믿는 종교는 그 미래가 암담하다.”

 

켈수스가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을 부정적으로 비교한 결과로 2&3세기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그 둘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다.

 

2) 폴리카르포스(Polycarp) : 정통

 

폴리카르포스는 일반적으로 사도적 교부 중의 한 명으로 간주된다. 사도 요한을 알았다는 그의 주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2세기 중엽의 중요한 기독교 지도자였다. 바로 이것이 그가 155년 스미르나에서 로마 관료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당한 이유다. 대부분의 기독교 학자는 그를 2세기 정통주의의 표준으로 간주한다. 그는 정통 그리스도인은 일치하고, 같은 것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켈수스가 참된 교리라 믿고 있는 것이 플라톤과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의 불안정한 혼합이라는 것을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사도들이 가르쳤던 것을 정확히 믿는다. 가톨릭, 정통이라 부르는 기독교회의 주교들은 모두 사도들의 후예들이다. 폴리카르포스는 사도적 계승을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발렌티누스나 몬타누스와 같은 거짓 예언자를 대적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여전히 살아 있는 분임을 강조하며, 그리스 철학에 나오는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인간이 된 자라고 말한다. 폴리카르포스가 말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치고 기록했던 것을 정확히 믿을 뿐 아니라, 사도들로부터 받은 유일한 진리는 교회에 의해 전해지는 진리라고 선포한다.

 

그는 영지주의자들을 반박하기 위해, 교회의 권위를 강조하고, 교회를 강조하기 위해 사도적 전통을 내세웠다. 교회는 사도들의 선교로 세워졌고, 장로와 감독들의 전승이 내려왔다. 이 사도적 전통은 온 세계를 통하여 동일한 것이며 또한 단 하나 밖에 없다. 폴리카르포스는 사도들로부터 배웠고 그리스도를 본 많은 사람들과 교재 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게 의해 아시아 곧 서머나 교회에 감독으로 정립되었다. 끝으로 폴리카르포스는 교회를 사도 시대와 연결시켜 주었다.

 

또한 폴리카르포스는 발렌티누스 같은 영지주의자들을 이단으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는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 그는 성육신 사건을 중요시 여기고, 영지주의의 가현설을 반대했다. 그는 성육신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에게는 신성뿐만 아니라 인성(人性)도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오셨으며,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키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을 주셨다.

 

3) 몬타누스(Montanus) : 성령주의

 

몬타누스는 소아시아에서 살았고 '새 예언파' 운동이라 부르는 그리스도 모임을 이끌었다. 그들은 2세기 중엽의 극단적 성령은사주의자들이었다. 그는 성령의 대변자로서 새 예언이 결국 제국 전역에 퍼질 것이며, 기존 교회의 무미건조한 종교 체계들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도 강한 술을 피하고, 시간 대부분을 기도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데 써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영을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몬타누스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신탁 중 하나로 간주했고, 자신의 발언을 사도들의 발언과 등등한 권위의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러나 속히 이뤄지리라 여겼던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자 뜨거웠던 종말 신앙은 점점 퇴색했다. 몬타누스주의는 이처럼 신앙이 약화되고 경직되는 경향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났다. 이 운동은 기독교로 개종한 몬타누스가 160년경 소아시아 프리기아에서 성령이 자신에게 임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몬타니즘 운동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자 그리스도를 인정했고, 교리적인 면에서 영지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용납할 수 없었던 표면적인 이유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 몬타누스는 자신의 가르침을 새 예언(new prophecy)'이라고 하면서 방언과 열광적인 체험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유일한 신탁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신탁 중 하나로 간주했으며 자신의 발언을 사도들의 발언과 동등한 권위의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제도권을 위협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기독교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몬타누스주의'는 성서에 내용을 더하는 예언에 참여하는 기독교 모임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몬타누스는 그를 통하여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자신과 그를 돕는 두 여사제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를 통해 성령이 말씀하신다고 했다. 초기 기독교 자료는 몬타누스 및 그와 함께한 두 여성 예언자를 극단주의자로 묘사한다. 그들은 임박한 종말을 대비하면서 결혼을 금하고 금식과 엄격한 금욕생활을 실천하였으며 순교를 장려했다. 3세기에 들어서 몬타누스주의 운동은 큰 힘을 얻었는데, 그것은 후대에 서방 교회 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가 이 운동의 염격한 도덕 생활과 금욕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일시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후 성령 운동이나 예언 운동의 그룹에 선두적 영향을 주었으며, 사도적 신앙을 계승하려는 교회가 계속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이러한 여러 이단들의 활동으로 부터 진리를 수호하고 성도를 보호하려는 여러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은 교회들의 연합, 정경(正經)과 교리의 확립, 이단자들에 대한 정죄와 축출 등으로 나타났다.

 

4) 발렌티누스(Valentinus) : 영지주의

 

발렌티누스는 2세기 영지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영지주의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을 악으로 간주했고 예수의 참된 인성과 그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했다. 물질은 악하며, 어떤 식으로든 악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질로 구성된 몸은 죄의 자리이므로 참된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창조했을 리 없고, 물질세계는 미쳤거나 타락한 데미우르고스(demiurge), 즉 하등한 신이 창조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신적 광명의 세계 불씨들이 인간 육신 안에 갇히게 되었다고 하며, 사악한 영들에 의해 잠들은 영혼을 신적 광명의 불씨를 통해 깨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자신 속의 영혼을 깨닫고, 악한 물질에서 벗어나 "영혼들의 상승" 혹은 "영혼들의 여행"을 일깨워야 한다고 보았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등한 신의 존재와 야웨를 동일시했고, 기독교 안의 모든 유대교적 요소를 거부했다.

 

영의 세계에서 그리스도는 인간 위에 계시므로 우리의 영과 혼은 그의 영과 혼과 하나 되기 위해 인간 몸을 벗어나서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 속으로 들어오셔서 고통당하고 죽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했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가 인간처럼 보였거나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된 소수에게 높은 지혜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도구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는 높은 천상의 하나님이 보내신 영적 사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은 소수의 제자들에게 다룰 수 없는 비밀스러운 지혜를 가르치기 위해 다시 내려오셨다. 그 비밀스러운 지혜가 바로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불꽃이란 말이다. 인간의 영혼은 우주에서 자신의 길을 잃고, 물질 감옥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들은 기도와 지식과 묵상을 통해 물질에서 영혼을 해방시켜 영혼 집인 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각 사람의 내적 자아나 혼이 하나님의 불꽃이라고 가르쳤다. 이 불꽃은 자신의 신성을 잊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기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것이 영지(gnosis)의 본성 또는 지혜하고 영지주의자들은 가르쳤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지혜이지, 일련의 교리가 아니며 그들은 지옥 불과 유황불처럼 두려움에 가득 찬 가르침을 전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참 지혜는 물질 영역 위에 일어난다. 이 지혜는 영-혼의 내적 신성에 대한 지식이다. 이것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신적 빛과 불의 불이다. 플라톤, 스토아 사상의 철학자들이 말한 지혜로 볼 수 있다."

 

영지주의는 그리스의 철학, 유대교의 야웨 사상, 조로아스터교의 선과 악의 요소들을 기독교에 종합하려는 시도를 했다. 이들은 "아는 자들(영지주의자들)", 영적이고 차원 높은 지적 성찰을 거쳐 엘리트 종교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지주의는 "소수의 사람들"의 철학과 신학 전통을 세웠다.

 

. 나가는 말

 

오늘날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을 조롱한다. 기독교인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성 윤리 문제, 돈에 대한 탐욕의 문제, 교회 권력의 세습 문제, 시대에 맞지도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타 종교를 향한 현대판 십자군 전쟁의 문제, 타락한 중세 시대에나 있었던 교권의 절대화 문제 등이 터져 나온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는 독단적이며, 이웃과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고 자신들의 성을 쌓아올릴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조롱 앞에 한국교회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한국 교회는 지금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위기 속에 있다.

상황은 이러하지만 한국 교회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할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자면, 앞으로 10년이 한국 교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오늘날 전 세계 많은 교회가 교권화 문제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새 기독교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것이다. 교권주의를 넘어 살아있는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한가?

폴리카르포스의 정통주의가 답인가?

 

주교의 교회들은 몬타누스에 지나치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실수를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2세기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열정을 꺼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예언과 방언, 그리고 성령의 또 다른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불행한 일이지만 이해할 만도 하다. 초기 교회는 영적 열광주의를 해치면서까지 질서 잡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몬타누스의 방법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거부하는 것이 타당한가?

 

오늘 한국 교회가 지닌 배타성의 문제가 한국교회의 위기를 맞이한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영지주의가 그리스, 유대, 조로아스터의 요소들을 기독교에 종합하려고 시도하였던 점에 비추어, 한국 교회가 배타성을 극복하고,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아우르며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물론 영지주의의 교리적인 측면을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수용하려는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발렌티누스의 영지주의는 어떤가?

 

 

영적 대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각성은 과거가 아니라, 깨어서 오늘의 세계를 보게 한다. 전통적인, 위로하는 기독교는 실패했다. 그것은 작동하지 않는다. 영성을 깨닫는 것은 인간의 번영을 위한 가능성을 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식별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별하는 것은 자아, 이웃,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비전 로 인도한다. 깨어나야 한다!!!, 식별해야 한다!!! 마음에 그려야 한다!!! 그리고 행해야 한다!!! 미래를 달라지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하고 무엇을 행해야 하며, 우리 존재에 대한 이해를 변화시키는 사랑 과 충분히 소통하는 신앙에 대한 각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시대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더불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성령의 존재를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리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성경대로 사는 삶이 중요한 세계가 되었다. 다시금 새로운 성령 운동이 있어야할 것이다.

 

아파하는 사람에게 치유를, 절망적인 사람에게 희망을, 좌절한 사람에게 용기를, 슬픈 사람에게 위안을, 외로운 사람에게 소속감을, 자신감을 잃은 사람에게 정체성을, 방황하는 사람에게 의미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기독교적이고 성서적인 운동이 어디에 있겠는가!

 

영적 부흥과 성공은 갑작스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흥은 현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각고의 노력과 헌신, 희생과 온 마음을 다하는 기도의 정성으로 뼈를 깎는 교회 갱신의 주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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