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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신에 대한 명상'

by tat tvam asi 202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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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진희 / 마이트리 -

 

 

 

폭풍우가 몰아쳐도 배의 키를 단단히 붙들고 있으면 안전하듯이 마음이 당혹하거나 불안할 때 하느님의 이름에 의지하라. 
간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신들을 경험할 것이다.
'그것'이 너무 감춰져 있거나 비밀스럽다고 생각하지 말라.

단지 그대가 명상을 훈련한다면 내가 말한 것을 알게 된다.
쇼엔 사쿠 선사

 

 

 

'라마(lama)'라는 티베트어는 산스크리트어 '구루(guru)'를 번역한 것으로, 영적으로 완성된 이를 뜻한다. 깨달음이라는 목표료 인도할 수 있는 영적 스승, 즉 라마가 될 수 있는 자질에 대해 기본 전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라마는 최소한 부동성과 학식이라는 두 가지 특질을 지녀야 한다. 부동성은 비구계를 적어도 10년 간 충실히, 그리고 끊임없이 지키는 것을 말한다. 학식이란 삼장(三藏)과 출가 의식을 집전할 수 있는 심오한 지식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대승 가르침에 따르면 라마는 열 가지 자질을 지녀야 한다. 

계율을 지켜야 하고, 명상을 수행해야 하고,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닦아야 하고, 제자보다 나은 학식과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노력을 다해 자신과 다른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데 헌신해야 하고, 삼장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현상의 본질, 즉 공성(空性)을 이해하고 제자들을 가르칠 기술이 있어야 하고, 제자와 모든 중생에 대핸 자비심을 가져야 하고, 제자들을 위해 자신이 당면한 어려움에 좌절해서는 안 된다. 만일 세상이 타락해서 이러한 라마를 찾을 수 없다면 최소한 여덟 가지 자질을 갖춘 라마를 찾는다. 

 

탄트라 승에 따르면 라마는 대승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자질 외에도 탄트라 스승으로서 몇 가지 특별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 영적인 스승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경전 속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자질들을 갖춘 사람을 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자진들을 갖추고 환생한 라마들을 린포체라 한다. 

 

카르마는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한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올 일이라면 올 것이고, 안 올 일이라면 몸부림쳐도 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프라랍드(prarabdh) 카르마, 즉 숙명은 이미 지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결코 피해 갈 수가 없다. 

창조주의 한 부분인 우리는 이 우주 속의 세상을 사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다른 옷을 입는다. 어느 때는 이런 모습, 어느 때는 저런 모습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 왔고, 이 세상을 떠난다. 이 우주는 출구와 입구가 있는 일터이다. 수많은 오고 감을 거쳐 다다른 이 생에서 이제 나는 윤회를 마감하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는 명상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인류는 하나이며, 이 작은 행성이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이다.
우리가 이 안식처를 보호하려면 각자가 보편적인 애타주의 의식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성실하고 넓은 마음으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질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착한 인간성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제 종교는 단순합니다.
사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복잡한 철학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와 가슴이 바로 사원이기 때문입니다
친절함, 그것이 저의 철학입니다.

 

 

수없이 지나친 길거리에서조차 안내자가 없으면 우리는 종종 길을 잃는다.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땐 조심해야 함다. 결코 혼자서 가지 말고 언제나 안내자와 함께 가야 한다. 영적 진화를 위해 우리에겐 스승이 필요하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의 잠재력의 마지막 단계까지 계속 나를 지지해줄 충분한 자비를 가진 누군가가 필요하다. 

 

☆ 영적 안내자

 

'구루'는 영적 스승을 가리키는 말이다. 밝게 깨달은 이, 혹은 어둠에서 벗어난 이를 말한다. 내적 깨달음을 얻은 자이다. 이런 안내자 없이 여행을 한다면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아주 많은 유혹과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스승이라는 안내자가 없다면 '신'을 깨달을 수 없다. 우리는 마음과도 싸움 중이고 감각의 지배 또한 받고 있기 때문에 영성 과학을 능히 알고 있는 스승이 필요하다. 우리를 가로막는 이러한 장애들 때문에 우리에게는 사트구루가 필요한 것이다.

 

☆ 마음을 넘어 영혼으로

 

에고는 마음의 본능이므로 우리는 먼저 마음을 정복해야 한다. 마음을 진압해야 에고를 몰아낼 수 있다. 감정도 본능도 마음의 표현이다. 감정이나 에고도 마음과 함께 온다. 영혼이 마음에 지배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마음의 노예일 것이고, 마음은 감각의 노예일 것이다. 감각의 노예인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정복되면 감정이나 에고 등은 사라진다. 

 

마음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영혼은 마음보다 훨씬 우월하다. 마음은 우리가 이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도구이다. 우리가 영혼이라는 것을 깨닫는 만큼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에고는 자신의 다양한 기능 및 성질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것들에 '나'라는 소유권을 붙이거나 저작권을 부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에고는 삶과 존재의 실상이긴 하나 근원이 아니기 때문에 정복할 수 있다. 원초적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통치권자는 아니다. 에고는 오직 그 환상적 성질이 인지될 때까지만 지배적이며, 에너지를 잃어버릴 때까지는 늘 변화한다. 

 

에고의 편집 과정은 궤변이고 투사이다. 에고가 실상의 실재적 바탕이 아니라 덧없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에고의 영향력은 감소하기 시작한다. 에고는 지상의 시간으로 정해진 시간 동안만 봉사한다. 

 

요가 스승 파탄잘리는 '마음을 정복하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다' 했고, '에고를 정복한 이들만이 진실하다'고 기록했다. 에고가 침묵할 때 삶은 자율적으로 계속되고, 역설적으로 말하면, 노력이 노력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가장 오래된 초기 《우파니샤드》에서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성자가 답한다.
 
그대가 들이쉬는 숨(프라나prana)으로 호흡하는 그가 그대의 자아(아트만atman)이다. 그것은 모든 것 속에 있다. 그대가 내쉬는 숨(아파나apana)으로 호흡하는 그가 그대의 자아이다. 그것은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다. 그대 안에 편재한 숨(비아나vyana)으로 호흡하는 그가 그대의 자아이다. 그것은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다. 그대의 상승되는 숨(우다나udana)으로 호흡하는 그가 그대의 자아이다. 그것은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다. 모든 것 속에 있는 그가 그대의 자아이다. 생사의 근본은 호흡이다. 중요한 것은바른 호흡을 익히는 것이다. 

 

이어서 《우파니샤드》는 숨에 대해 이야기한다.

 

숨이 말했다. "내가 스스로를 다섯 등분하여 이 육신을 받치고 있도다."
숨이 자리했던 육신에서 일어나 나가려 하니 모든 숨들이 차례로 따라 일어났고, 그가 앉으니 다시 모든 숨들이 따라 앉았다. 마치 여왕벌이 일어나면 모든 일벌들이 따라 일어나고, 여황벌이 앉으면 모드 따라 앉듯.

소리, 마음, 시력, 청각 등 모든 감각기관들이 숨을 쫓아 움직이니라.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자를 아는 사람은 오래 장수하며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된다. 숨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자이다.
한번은 감각들이 "내가 가장 훌륭하다, 내가 가장 오래된 자다"하며 다투기 시작했다. 감각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조주에게 갔다. 
"존경하는 아버지, 저희들 중에 누가 가장 훌륭합니까?" 
창조주가 말했다. "너희들 중에 누구든 떠날 때 그로인해 몸이 가장 곤란하게 되는 자가 가장 훌륭한 자이다."
목소리가 몸을 빠져나가 일 년 동안 밖에서 돌아다니다 돌아와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어땠소?"
다른 감각들이 말했다. " 말 못하는 사람처럼 말을 하지 않고 지냈소. 그러나 숨으로 숨을 쉬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지냈소."  그래서 목소리는 다시 들어왔다.

눈이 빠져나가 일 년 동안 밖에서 돌아다니다 돌아와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어땠소?" 
다른 감각들이 말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못 보고 지냈소. 그러나 숨으로 숨을 쉬고, 목소리로 말을 하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지냈소." 눈도 다시 들어왔다.

귀가 빠져나가 일 년 동안 밖에서 돌아다니다 돌아와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어땠소?" 
다른 감각들이 말했다.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못 듣고 지냈소. 그러나 숨으로 숨을 쉬고, 목소리로 말을 하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지냈소." 귀도 다시 들어왔다. 

마음이 빠져나가 일 년 동안 밖에서 돌아다니다 돌아와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어땠소?" 
다른 감각들이 말했다. "마음 없는 어린애들처럼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소. 그러나 숨으로 숨을 쉬고, 목소리로 말을 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지냈소." 마음도 다시 들어왔다.

이제 숨이 몸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훌륭한 말이 채찍을 맞고 묶어 놓은 못을 땅에서 뽑아버리듯, 숨이 다른 감각들을 몸에서 뽑아버렸다. 그러자 모든 감각들이 숨에게로 와서 말했다. "숨이여, 그대가 우리들의 주인입니다. 우리 중 그대가 가장 훌륭합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소리, 눈, 귀, 마음, 어느 한 가지만 감각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숨은 감각이라 한다. 모든 감각들은 숨이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숨이 말했다. "나의 음식은 무엇인가?"
감각들이 말했다. "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그대의 음식입니다."
숨의 음식이 되는 그 모든 것은 '아나ana'의 것이며, 아나는 숨의 또 다른 이름이다.

 

프라나야마의 기술과 효과는 놀랍다. 명상으로 이러지기 위해서는 호흡 기술을 통해 감각 회수 프라티아하라(pratyahara)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명상의 기본 토대가 생겨난다. 

 

프라나를 설명하는 것은 '신'을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물질적, 정신적, 지적, 그리고 성적인 에너지인 동시에 영적이고 우주적인 에너지이다. 모든 진동하는 에너지가 프라나이다.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프라나는 생명과 의식에 관한 원리이기도 하다. 프라나를 흔히 '호흡'이나 '호흡 기술'로 번역하는데, 그것은 프라나가 인간의 육체에서 드러내는 여러 양상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 영적 존재인 우리는 두 가지 축복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첫 번째는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난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흫 거쳐 받은 귀한 선물이고,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이다.

 

두 번째 축복은 완전한 스승을 만나 수행을 하여 높은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다. 명상과 수행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잔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 왜 소리가 중요한가?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말할 때, 모든 것의 근원이 공으로부터 소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처음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소리이고, 소리가 빛과 광선을 만들어낸다.
이 세 가지를 첫 잠재력이라고 부른다.

이 소리는 보통 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외적 소리이다. 
또 다른 내면의 소리가 있는데, 그것은 진동으로만 느낄 수 있다. 
이 진동의 소리를 듣거나 내면의 소리를 듣는 데에는 귀가 필요치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밀의 소리이다. 이 비밀의 소리는 우리의 본성을 발견했을 때 발견된다.
본성을 발견했을 때, 이것이 에너지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비밀의 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티메트 스승 독첸

 

 

♬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 우리의 가슴은 감동으로 벅차오른다, 그 감동을 만드는 것은 피아노가 아니라 연주자이다. 피아노는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도구일 뿐이다. 연주자는 우리의 스승이다.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의 가치를 발휘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잠재적으로는 신이지만,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그 신성을 온전히 회복할 수 없다.

 

스승들은 시간 너머의 차원에 무한한 힘을 지닌 보편적이고 비선형적인 에너지장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 차원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의식'이라불리는 이것에서 '시간'이라는 차원이 생겨나고, 여기에 물질이 더해져 '공간'이 생겨난다.

 

이 드러나지 않는 차원에 대한 이해는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수행'이든 '학습'이든 '전생 복'이든 '은혜'든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헌신과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영적 행운'이라 부르고 싶다.

 

영적 제자와 헌신자들을 위해 시대마다 수많은 스승들이 이 땅에 오셨다. 그분들은 우리가 갖고 태어난 것들을 발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장애와 유혹과 함정들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명상 수행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명상하면 여기저기 떠도는 마음이 서서히 잠잠해진다. 명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집이나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도 평화를 유지할 만큼 훈련되어야 한다. 

 

명상은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이며 휴식 공간이다. 명상은 농작물늘 지키는 울타리와 같이 우리의 행복을 지켜준다. 

 

명상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을 깨닫는 것이다. 

 

성인들의 가르침은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생활방식이다. 그들의 가르침은 순수한 본질을 경험하도록 도와주고, 바른 삶을 살도록 안내한다. 꾸준히 바른 삶을 이루는 일상생활이 명상을 도와준다. 

 

명상은 마음을 통한 길이 아닌 '마음 아닌no mind' 길이다. 명상은 영혼과 관련되어 있다.

 

마음을 금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에 비유한다면, 어항에 있는 물은 의식이고, 금붕어는 생각이나 개념들이고, 금붕어의 배설물들은 우리의 감정이다. 

 

영적 작업에서는 이해 자체가 내적 변화를 일으킨다. 이해는 내적인 성숙과 영적 발전을 가져다준다. 영적 노력은 잘못된 관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관점을 선택하는 것이다.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되는 또 다른 요소는 성급함, 조급증이다. 천천히 바르게 훈련하는 것이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 성급하게 마음과 싸우려드는 것은, 전혀 쓸모없는 일이다.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우리 안에 있는 영적 힘과 에너지, 그리고 더 높은 에너지장들, 스승들과 그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 

 

컴퓨터로 치면 의식은 하드웨어이고, 사회적 프로그래밍은 소프트웨어이다. 소프트웨어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하드웨어는 여전히 물들지 않은 채 본래의 순수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진리는 원래 단순하다. 우리들의 에고가 만들어낸 온갖 환상이 그것을 복잡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 뿐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

우리의 삶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위기가 발생한다.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은 없다.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인간관계에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고, 세계적인 격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안에 평화가 있다면 마음의 안정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마음의 안정은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의 질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신을 불행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 불행은 이해의 부족에서 온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을수록 걱정은 밚다. 걱정이나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말라. 미래를 염려하지 말라. 남들을 비판하지 말고, 자신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라. 걱정이나 두려움, 그리고 불행을 주는 생각과 느낌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런 것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내면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명상을 통해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내면의 힘이 생겨난다. 우리 안의 생명 에너지를 이해할  때 우리는 행복해진다. 영적 지식을 흡수하기 시작하면 내면의 순수성이 더 개발된다.

순수성은 마음이라는 신전의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매일 쓰레기가 신전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내적으로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딘가에 부정적인 것이 숨어 있다면 발견하고 즉시 청소하라. 신전이 깨끗해야 주님이 들어와 앉을 수 있다. 

순수성이 정직함을 가져온다. 부주의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나의 생각과 느낌이 내면에 얼룩을 만들지 않도록 하라. 순수성이 진리를 낳는다. 그것이 평화이고 사랑이자 행복이며, 영혼의식이 가장 높은 자아이다. 우리들은 물질세계와 관계를 계속 맺어야 한다. 몸이 있으니 타인과의 관계도 필요하다. 균형을 잃지 않고 신호들을 지키며 가야 한다. 영혼의식에 머무를 때 비로소 신께로 가는 길이 보일 것이다. 

내적인 행복은 에너지이다. 항상 신을 기억하는 연습을 하면 행복이 쌓여 '나는 행복하다'고 느껴진다. 슬픔이나 두려움 때문에 신을 기억한다면, 위로받을지는 몰라도 내적 힘은 얻지 못한다. 사랑과 행복을 가지고 신을 기억하라. 신을 당신의 편으로 만들라.

영혼의 본성은 단순하다. 영적 수행과 성장이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것은 육체의식이 낳은 의존, 욕망, 불신과 같은 습성들 때문이다.  영혼의식에는 복잡한 것이 없다. 흔히 '깨달음'이라고도 하는 영혼의식은 우리의 무지와 기만을 치유해준다. 영혼의식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정상적인 존재 방법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나면 나머지는 '사랑'이 알아서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문진희님이 권한 아봐타 위저드 코스!

♬ 위저드가 지켜야 할 조건 

1. 나는 부러움을 품지 않으며, 결코 노여움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2. 나는 욕망이 적어야 하며, 사소한 것에서 만족을 찾는다.
3. 나는 생활과 말이 가능한 한 평범하고 온건해야 한다.
4. 나는 잘 생각하고 나서 의도적으로 살고 행동한다.
5. 나는 내 스스로 동의한 바에 충실하며 의무를 다 한다.
6. 나는 우정을 지키며 모든 존재를 공평하게 대한다.
7. 나는 그릇된 행위와 악은 자연스럽게 고쳐진다는 이해심으로 본다.
8. 나는 생명이 위태롭지 않은 한, 남들이 승리를 차지하도록 한다. 

 

 

☆ 종교의 오류     

 

                               영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혼동하지 말라. 둘은 전혀 다른 길이다.
영적 진리는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진실한 것이다. 종교는 애초에는 영성의 핵심을 갖추고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영성의 빛을 잃는다.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

 

 

종교적인 전통들이 지닌 오류의 근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스승의 본래 가르침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그릇된 해석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번역되고 베껴지는 과정에서 오염은 더 심해진다. 둘째는 좀 더 일반적이면서 정도가 심한 왜곡으로, 이런 오류는 흔히 '교리'라고 부르는 원칙들에 의해 생겨난다.

 

☆ 우울증에 대해 
                                         - 데이비드 호킨스 - 

우울의 에너지장에 빠지면 세상을 죄와 고통이 가득하고 슬프고 가망 없는 곳으로 보게 된다. 스스로 무가치하고 죄 많은 존재라는 느낌과 수치심에 위축되고, 파괴적인 자기혐오와 함께 죽음 직전과 같은 낮은 의식상태가 된다. 우울증은 내면을 향한 분노라고도 말할 수 있다.

우울증은 뇌의 생화학적 작용에도 원인이 있다. 뇌 안의 화학작용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뇌의 화학작용 변화는 결과이다. 뇌가 우울한 상태에 빠지면 신경전달물질이 침체되는데, 이러한 신체적 차원의 증상들은 항우울제 복용으로 개선할 수 있다. 

오늘날 이용되는 항우울제는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에 약리학적 치료도 안전하다. 그러나 우울 저변의 두려움을 직시하면 우울증이 완화되니, 용기를 내어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환경을 바꿔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되풀이해서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통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생긴다. 이러한 이해는 심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우울증의 발병이나 재발을 막아준다. 

우울증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문제는 행복의 원천을 외부에 두는 마음의 태도이다. 행복의 원천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면 우울과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다. 임상학적으로 우울증을 촉발하는 요인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은 돈이나 지위, 권력과 같은 힘의 원천과 분리되었을 때 우울증에 빠진다. 여성들의 우울증은 주로 관계의 단절에서 온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형태와 표현이 다를 뿐, 근본 문제는 같다. 행복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면으로든 커다란 시련에 부딪혔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성장이 일어난다.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이런 시련이나 고통을 통해 이루어해 하는 목적이다. 이 시련이 나에게 주려는 교훈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속의 생각들, 마음의 체계, 혹은 신념체계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모든 병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이 생에 올 때 종합병원과도 같은 몸을 지고 왔다. 나를 찾아온 모든 병은 내 믿음체계의 결과이다. 대개 거기에는 무의식적 죄책감이 동반되어 있다. 그러니 몸에 병이 있다면 내 안에 무의식적인 죄책감이 있다고 짐작하라. 무의식적 죄책감이 없으면 많은 병은 생겨나지 않는다. 자기혐오를 동반한 파괴적인 것만이 부정적인 에너지장에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통찰하는 것이 치유의 비밀이다. 처치treating, 치료curing, 치유healing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어떤 병이든 치유의 유일한 기회는 부정적 에너지장에서 벗어나 긍정적 에너지장으로 이동하는 데 있다. 에너지장이 긍정적이고 고차원적일수록 치유력은 증가하고 기적적인 치유가 가능해진다. 가장 먼저 무의식적 죄책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치유 인자가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약점들까지 치유해낸다. 

 

☆ 죽음에 대해                                          

                                               - 데이비드 호킨스 - 

죽음은 몸에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영혼이 몸과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 

죽음과 관련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죽음이라는 신체적 경험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과 함께 맞이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자각능력·의식·존재의 상실이다.

죽음의 경험은 의식의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슬픔의 단계에서는 후회와 상실감, 낙담의 과정이 일어난다. 

두려움의 단계에서는 걱정과 불안이 찾아온다. 두려움은 미래와 관련되어 있으며, 위축의 과정이다. 

분노의 단계에서는 죽음의 경험 전체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불만을 갖는다. 의심은 커지고 자신감이 왜소해진다.

용기의 단계를 넘어 자발성과 수용의 단계에서는 의식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감사와 연관된 사랑의 에너지장으로 올라가면 고요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내면의 평화의 단계로 들어간다. 지복을 경험하게 되고, 형언할 수 없는 빛 속으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간다. 더욱더 깨우친 상태에서는 신과의 합일을 경험하게 된다. 

 

 

♬ 홀로 가지 말고 안내자와 함께 가라 

 

지금은 인도 베아스에 있는 라다소아미 본부...

 

1891년에 설립되어 차츰 여러 나라로 퍼져나간 라다소아미는 처음부터 조직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명상하기 좋은 곳을 찾던 창시자는 가시덤불과 협곡뿐인 베아스 강의 거친 둑 위 버려진 땅에 자리를 잡았다. 꿀이 있는 곳에 벌이 모이듯이 구도자들과 헌신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 뒤로 자연스럽게 라다소아미의 근거지가 되었다. 라다소아미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발전해왔고, 지금도 자연스럽게 발전하고 있다. 아무런 계획 없이 한 성인을 중심으로 생겨나 성장해온 곳이 라다소아미이다. 

 

'라다Radha'는 '영혼'이고 '소아미Soami'는 '주'이다. 문자적으로 '라다소아미는 절대 지고의 존재를 뜻한다. 라다소아미는 정치기구나 상업기관과 관련 없는 순수 비영리단체이다. 모든 종교의 영적인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영적 스승의 안내에 따라 내적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영성 단체이다.

 

인간 삶에는 영적인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에게 내재한 신성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라다소아미의 핵심이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신은 오직 한 분이며 우리 모두는 그분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가르친다. 

 

저자 문진희는 1996년 6월, 라다소아미의 6대 스승에게 입문했다. 그녀는 첫 한국인 제자로 입문하게 되었고, 명상에 대한 기술이라는 열쇠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명상 구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 문진희의 말이다.

 

인간이 한 생에서 받는 가장 큰 선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육신이다.
인간의 몸은 수백 만 종의 진화를 거친 뒤에 받은 귀한 선물이다.
또 하나는 스승이다.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이 생의 최고의 선물이다.



그녀의 온 생을 정리해 준 책을 베아스에서 받았다고 한다. 그 책의 이름은 《영혼의 과학 The Science of the Soul》.

 

신은 우리의 몸 안에 계십니다. 
참된 스승을 찾아 그에게서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신은 우리 내면에 계신다고 수많은 성인들이 말씀하셨다. 수많은 고대 경전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듣기도 하고 읽기도 하고 보기도 했음에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면의 영적 여행을 단순하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저자 문진희는 라다소아미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나도 이 여행을 함께해주는 스승이 되고 싶다. 나도 '수없이 지나온 길이라도 혼자서 가지 말고 안내자와 함께 가라'하실 때의 그 안내자가 되고 싶다. 

 

라다소아미에서 저자 문진희의 스승이 들려준 이야기다.

♣ 옛날에 한 장님이 살았다. 어느 날 장님이 작은 죄를 저질렀고, 왕은 이 불쌍한 사내를 미로처럼 생긴 감옥에 넣었다. 감옥에는 수많은 가짜 문이 달려 있었고, 단 하나뿐인 진짜 문을 통해서만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누구든 진짜 문을 찾는 사람은 즉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장님은 오랜 시간 동안 감옥 벽 사방을 조심조심 더듬으며 진짜 문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진짜 문에 도착할 때마다 가려워진 머리를 긁는 바람에 자신을 자유로 인도할 문을 자꾸만 놓치고 말았다.

 

 

우리가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스승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마침내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 삶을 소모해 버리면 결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마음과 감각에 주의가 분산되어, 구원을 위한 단 한 번의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다고...

 

수행이 사람을 완전하게 만든다.
그대의 창조자처럼 그대도 완전해져라.
마음과 그 속임수를 조심하라.
내가 원하는 것과 그분이 나에게 주시는 것이 다르다.
나는 '이것'을 바라는데, 그분은 '저것'을 주신다.
나는 늘 내 욕망대로 원하는데, 그분은 늘 그 욕망을 깨뜨리는 데 필요한 도구를 주신다.
내가 원하는 것과 그분이 주시는 것은 지금까지도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고 죽는 삶이다.
생사고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으라.
만일 그대의 본성이 장님이라면 어떻게 출입구를 찾겠는가?
방에 들어가 그대 자신을 보라.

 

 

성인들은 우리에게 실제 생활에서 영성을 익혀나가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이 몸이라는 실험실에서 영적으로 진화하고 종교와 철학 너머의 원래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치신다. 이 생명의 흐름을 뭐라 불러도 좋다. '신', '로고스', '도'...

 

저자는 그것을 '신께 돌아가는 길'이라 부른다고 했다. 저자는 수없는 환생을 거쳐 이곳까지 내려온 우리의 영혼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스승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오하다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스승님들을 만나소 듣고 배운 저자 문진희는, 라다 소아미에서 비로소 영적 수행의 핵심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명상 수행을 통해 샌트 맷sant mat 생활 방식대로 온전히 살아가는 것을... 저자는 이것이 자신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저자가 흠모하는 <마가복음>의 말씀대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리 믿고 사는 것이라고 권면하고 있다. 


좋은 사람이 되라.
기어가는 개미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히 있으라.
마음속에 설계되어 있는 악한 계획에서 벗어나라.
명상에 방해되는 것은 주저없이 버리라. 

 

1996년 라다 소아미에서 영적 수행의 핵심 기술을 배운 저자 문진희는 2022년 9월 말경, 25년 넘는 세월 동안 구도자로 함께해 온 벗으로부터  《더 하트풀니스 웨이 The Heartfulness Way》라는 책을 소개 받으면서, 현재 하트풀니스 본부의 스승인 다지Daaji를 알게 된다. 

 

다지의 말이다.

《The Heartfulness Way》는 전 세계에서 하트풀니스를 실천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 간단한 실천을 경험하기 위한 초대장이다. 물론 어떤 책도 우리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우리에게 지혜를 줄 수 있지만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 수는 없다. 책은 우리에게 지식을 줄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그 지식의 진실을 경험하게 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 진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 경험적인 방법이 하트풀니스이다. 

여러 곳에서 영성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영적 원천은 결코 외부에서 찾을 수 없다. 그것은 결코 잡을 수 없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느끼는 것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슴은 감정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하트풀니스를 실천하는 형식 이상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의례와 의식 뒤에 숨은 실제를 찾는 것이다. 가슴속 핵심에 자신을 집중시키고 그곳에서 진정한 의미와 만족을 찾는 것이다. 경험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자신의 가슴을 실험실로 만들어 하트풀니스 실천을 실험하라고, 다지는 구도자들에게 말한다. 

어떤 실험이든 실험자가 있고, 실험의 대상이 있고, 결과가 있다.
영적 실험에서는 세 가지 역할이 모두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실험자이고, 실험의 대상이며, 그 결과이다. 
이 실험에서 최종적인 것은 없으며, 단지 지속적인 발견의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하트풍니스의 기쁨이자 경이로움이다. 

 

 

하트풀니스 전통의 첫 번째 인도자인 라라지Lalaji는 소리에 대해 많은 것을 글로 남겼다. 그는 '소리는 의식의 현시manifestation이다. 생명 중의 생명이며, 영혼 중의 영혼, 그리고 존재 중의 존재이다. 소리는 온 세상의 바탕이다. 소리는 모든 창조의 절대적 기초이며, 영원한 토대이다. (...) 모든 곳에서 소리의 움직임이 있는 어디든, 그곳에는 소리의 흐름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트풀니스에서는 '소리'를 '트랜스미션transmission'이라고 한다.

 

라라지가 말하는 소리는 외부의 소리나 음악 같은 소리가 아닌 가장 오묘한 진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른 의미로 온통 사랑이라고 한다. 

 

라라지의 영적 후계자인 바부지Babuji는하트풀니스 수행을 현재의 형태로 완성하여 전 세계의 구두자들을 안내했다. 그 후계자이자 세 번째 인도자인 차리지Chariji가 2014년 12월 20일 세상을 따났을 때, 다지는 하트풀니스의 네 번째 계승자가 되었다.  이분이 지금의 스승이다. 

 

하트풀니스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트 1은 영적 탐구의 본질을 검토하고 명상과 요가 에너지 전달의 수수께끼를 푼다. 

파트 2는 명상, 정화행법, 기도라는 핵심 실천법을 소개하고 기초지식과 실제 교육을 안내한다. 

파트 3은 내적 여행을 지탱하는 스승의 중요한 역할에 대한 논의이다. 

 

하트풀니스 명상행법을 집중적으로 실천했을 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긴 세월 명상을 수행하면서도 남아 있던 갈등을 해소시킨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생각없는 세계, 영혼의 세계, 그리고 내면의 깊은 평온한 상태를 경험한다고 했다. 

 

구도자라는 이름으로 40여 년을 살면서 육신의 나이가 70을 넘긴 저자는, 긴 세월 동안 영혼에 자양분을 라다 소아미에서 얻었고, 라다 소아미의 뿌리 위에 하트풀니스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 했다. 

 

라다 소아미의 열쇠로 이제야 비로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는 저자 문진희... 그곳애 자신이 내려야 하는 종착역이길 기원한다고 했다. 

 

저자는 구름이 걷힐 때 태양이 빛나듯, 자신은 지금 구도자라는 감옥에서 나왔다고 했다. 자기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이제는 스스로 걸어 나왔다고...

 

저자는, 진리가 있어도 진리에 이르는 길을 모르는 이들에게, 진리가 있어도 진리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 깊이 영적 수행을 하는 이들에게 부족함 없는 구도의 길과 신께 가는 길을 보여 주겠다고 말한다. 

 

2023년 인도 하이데라바드로 가서  하트풀니스의 네 번째 계승자인 다지를 친견하고 프리셉터Precepyor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을 옮겼다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그리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긴 여정을 지나 이 생을 마감할 때, 혹시 나를 이 땅에 내려보내 주신 그분을 만난다면,
합장하며 "잘 다녀왔습니다" 할 것이다.
그분께서 빛나는 미소로 "잘했다" 하셨으면...

나는 큰 복도 받고 행운도 꽉 차 있습니다.
하늘의 뜻을 이 땅에 다 놓고 갑니다.
'음'들이 모여 음악이 되듯이 많은 성인들의 만남으로 나는 하늘의 음률을 듣습니다.


《기탄잘리》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멀기만 합니다.
나는 태양의 첫 햇살을 수레로 타고 출발해,
수많은 별과 행성들에 자취를 남기며
광막한 세계로 항해를 계속하였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 길을 돌아가야 하며,
가장 단순한 곡조에 이르기 위해
가장 복잡한 시련을 거쳐야만 합니다.

여행지는 자신의 집에 이르기 위해
모든 낯선 문마다 두르려야 하고,
마침내 가장 깊은 성소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바깥세상을 헤매 다녀야 합니다.

눈을 감고 '여기 당신이 계십니다!"하고 말하기까지 
내 눈은 멀고도 오래 헤매었습니다.

'아, 당신은 어디에?' 하는 물음과 외침이 녹아
천 개의 눈물의 강이 되었고,
'내 안에 있다!' 라는 확신이 
물결처럼 세상에 넘칠 때까지.

 

 

영적인 작업에서는 
이해하는 것 그 자체가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해는 내적인 성숙과 영적인 발전을 줍니다.

영성이란, 살아 있는 스승의 안내와 
그에 따른 수행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영성은 수행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명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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