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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 30:1-6,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설교문

by tat tvam asi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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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 30:1-6

 

1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 /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 /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6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더라

 

할렐루야따뜻한 4월의 마지막 날을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보내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이 봄을 다들 충분히 만끽하고 계신가요우리나라가 사계절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여름과 겨울의 비중이 너무 커져서 흔히들 계절을 이야기할 때 '봄'! '여~~르음'! '갈'! '겨~~우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누구에게나 봄이 따뜻한 건 아닌가 봅니다스프링 피크곧 봄철에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을 뜻하는 이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해요이런 충동과 경향성이 해가 빨리 지고 바깥활동이 적은 겨울철이 아닌오히려 따뜻하고 화창한 봄철에 더 높게 증가한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에 대해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다양한 심리적생리적인 요인들이 제시되었는데그중 일조량 증가로 인한 호르몬 및 생체리듬 변화와 새 학기졸업인사이동 등 사회적으로 큰 변화혹은 봄을 만끽하는 사람들에 비해 그렇지 못하다는 상대적 박탈감 등이 이를 가중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맞아요! 봄은 '새 출발', '희망'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가 강한 계절입니다하지만 현실의 삶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심리적 괴리감이 증폭되어 오히려 절망을 깊게 느끼게 됩니다이렇게 치솟는 우울감과 충동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가 가진 여러 가지 방법들로 불안 상태를 잘 조절해 주는 것이 중요하겠죠일반적으로 흔히 취미활동심리 상담운동자기 계발 등의 방식이 사용되곤 하는데최근에는 ai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에 보지 못한 새로운 방법이 나왔죠. AI를 통한 고민 상담입니다.

 

이전에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있어서 궁금증이나 새로운 지식들에 관해 쉽게 검색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었죠알고 싶은 핵심키워드를 검색엔진에 적고 그에 관한 정보가 수집된 웹페이지를 열어서 사용자가 그 내용 직접 읽고 요약하여 필요한 정보에 도달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그런데 이  AI는 좀 다릅니다검색어가 아닌 프롬프트를 사용합니다이는 사용자가 AI에게 명령하거나 질문하는 문장인데즉 AI가 창의적·논리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입력입니다말하자면  AI한테  막 시키는 거에요. "나 이런 게 필요해. 네가 해줘!"

 

사실 점에 관한 인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으며, 고대 문명 초기부터 인간은 자연 현상이나 우연한 사건 속에서 초자연적인 메시지를 읽어내려는 시도를 해 왔습니다. 점은 예언뿐만 아니라, 신과 소통하거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각 문화권마다 고유한 형태로 발전해 왔습니다. 운세나 운명, 미래 곧 생존에 대한 인간의 지적, 본능적 호기심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주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운명을 예측하고 현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다시 AI가 받은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내가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알려줘"라고 질문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실 것 같나요?

 

아마 "점을 보는 것은 죄야.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하면 안 돼."라는 말을 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두 번째 질문이 뒤따르면 좀 당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왜 점을 보면 안 되나요? 왜 하나님은 점을 죄라고 하셨나요?" 이 질문에 대해 "그냥 믿고 기도해!"라고 말하기에는 우리 속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이 있기에 완벽한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마음의 거리낌이 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께도 이와 관련한 고민 상담이 많이 찾아옵니다. "목사님, 저와 가까운 사람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을 겪고 있는데 너무 답답해서 점을 보러 갔다고 해요. 저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과 믿음에 관하여 말하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찾아간 점쟁이가 어찌나 용한지 지금 상황을 정확히 알고 미래 일까지도 술술 예언해주었다고 하는데 말려야 하나요, 아니면 그냥 두는 게 좋을까요?" 이러한 고민은 우리 주변에도 많이 볼 수 있죠. 당장 내 근처 혹은 내게 직접적으로 닥친 질문일 때도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무겁고 딱딱한 규율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상세히, 면밀히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점이 왜 죄인지 알고 싶어요.’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신명기 1812절의 말씀으로 질책하기 보다, 어떤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우리에게 직접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십니다. 앞날을 척척 알려주는 점쟁이에 비해 믿음과 기도가 피상적이고 상투적이어서 무력하게 느껴지는 우리에게 성경은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과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 준수하고 키가 큰 청년이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웠는데, 사울이 얼마나 소심하고 부끄럼이 많았는지 그가 왕으로 제비 뽑혔을 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어 있었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 받아 무자비하게 쳐들어온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백성의 신임을 얻고 통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겸손과 순종이 계속되면 좋았을 텐데,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한 지 이년이 되었을 때, 사울은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이 약속한 날짜에 도착하지 않자, 사울이 스스로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보다 두려움으로 인해 순간의 임시방편을 선택한 사울의 행동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보다 더 익숙하지요. 아멜렉을 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구하고 사울은 마음의 욕심으로 인해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멸하고 아각 왕과 좋은 가축들을 살려두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불순종을 책망하자, 사울은 변명합니다. "오해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좋은 제물로 제사 드리려고 한 것 뿐입니다." 사울의 행위는 이해 가능한 범주에 있습니다. 듣고 보면 충분히 납득될 만한 변명이죠. 사실 우리가 주의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것이 하나님께 좋은 것이지. 나는 하나님의 일을 했어'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하고 자신의 욕망을 앞세우는 모든 것이 죄와 사망의 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그 후 시간이 지나고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 죽게 되었습니다. 어디에도 의지할 바 없는 사울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 질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다시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공포에 휩싸인 사울은 자신이 전부 쫓아내었던 신접한 여인을 직접 찾아갑니다. 변장까지 하며 어려운 걸음을 하였건만 그에게 들린 예언은 그가 내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죽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예언은 그가 그토록 의지하고 신뢰하던 사무엘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앞서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 죽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사무엘의 예언이 그에게 전해질 수 있었을까요?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요청한 것은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서 자신을 위한 해답을 간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의 청대로 여인은 그대로 행합니다. 결과는 무엇인가요? 모든 충격적인 말을 들은 사울은 왕의 위신을 잃게 되었죠. 너무 두려운 나머지 기절하듯 쓰러졌으며 완전히 낙담하여 망연자실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당장 주어진 눈앞의 해답, 만족을 추구했던 그는 하나님이 아닌 점쟁이를 의지하였고, 사무엘의 모습을 한 악한 영에게 엎드려 절했으며, 그 악한 영으로부터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절망 가운데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맞으러 떠났죠. 성경은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만난 일에 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겠습니다. 역대상 1013절로 14절의 말씀입니다.

 

대상 10:13-14 /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 왕이 내일 일어날 전쟁의 패배를 알게 된 것이 삶에 무슨 유익이 되었습니까? 오히려 그는 심히 두려워하고 내일이 오기 전 이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사울과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결과가 어쨌든지 간에 신접한 여인이 정말 불러낸 것이 사무엘이고, 그 영이 미래의 일을 예측했다면 점을 보는 행위가 효과가 있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 사울이 마지막까지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사무엘 사사라면 그도 하나님의 뜻을 간구했던 것이 아닌가요?

 

이 질문은 예언에 대한 우리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 앞으로 펼쳐질 운명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보낸 예언자들 역시 미래를 보고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겠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자'는 단순한 미래 예측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입니다. 즉 예언자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시대와 백성에게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마치 점처럼 미래를 미리 알려주는 능력으로 오해하고 이를 간절히 원하기도 합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와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점을 통해 해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영험한 존재나 초월적인 신에게, 혹은 기막힌 우연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은 다른 어떤 인간적인 노력이나 계산을 멈추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참된 예언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공감하는 자,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자가 바로 예언자요, 인생을 넘어 세상을 올바르게 세우는 사람입니다.

 

당장의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사울과 정반대의 선택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다윗입니다. 다윗은 지금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태입니다. 부마 자리도, 자신의 가족도, 모든 재산도 잃고 심지어 자기를 따르던 그의 사람들에 의해 돌팔매질 당할 죽음의 위협 가운데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삼상 30장 6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봉독하겠습니다.

 

6 /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하나님은 갈급하게 하나님을 찾은 다윗에게 응답하사 아멜렉 군대를 그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삼상 30장 17절로 20의 말씀입니다.

 

17 /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18 /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19 /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20 /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오늘 말씀을 통해 드러날 것은 다윗과 그의 위대한 업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울은 불순종해서 죽었고, 다윗은 순종해서 승리하였다 식의 겁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길 원치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의 선택과 인생을 통해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라'입니다. 솔직히 죄의 경중을 따졌을 때 다윗의 범죄함이 더 과중하지요. 다윗은 애매모호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그런 평면적인 사람이 아니죠. 우리와 같이 실수하고 죄를 짓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평가됩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도덕적 완전성에 있지 않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의 투명성과 의존성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 점쟁이를 찾아가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점으로 본 미래가 맞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점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 두려운 가능성에 매이게 하지요. 하지만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을 선택하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사람이 점칠 수 있는 최선보다 훨씬 크고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예언할 수 있는 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올바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신접한 여인의 예언은 사울을 죽음으로 이끌었지만하나님의 예언은 우리를 생명으로승리로 이끄십니다오직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지혜를 생명을 승리를 얻는 사당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모든 것을 아시고모든 것을 만드시고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내 주로 고백합니다내가 어떤 상황에서든지심지어 나를 놀라게 하고 크게 다급하게 하는 그 순간 속에서도 오직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게 하소서하나님을 믿고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하소서예언과 기도와 믿음의 참 능력을 알아 내 욕망이 아닌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게 하소서.  동행하시며 인도하시고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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