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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영지주의'에 대해서 이것저것 섞어 보다...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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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남미의 그레나다 선교사로 활동하는 아들의 논문을 읽다가, 영지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들에게 허락을 받고 논문의 내용을 조각조각 내서 기재해 보기도 하고,  '이것이 영지주의다' 라는 책의 내용을 참조해 넣어보기도 했다. 두서 없이 조각난 내용이지만 영지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마냥 신기하다...

 

 

 

시대를 달리하며 영지주의자들이 믿었던 영지주의 전통의 일부를 먼저 살펴보았다.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하나의 영적 통일체가 있고 그로부터 수많은 발현물이 방출되어 나왔다.

물질과 마음(mind)으로 구성된 지금의 우주는 근원적인 영적 통일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열등한 권능자들을 거느린 영적 존재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이 조물주들의 목적 중 하나는 통일체(하느님)로부터 인간을 영원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복합체이므로 내면은 궁극의 신적 통일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불꽃이지만 외면은 열등한 조물주들의 작품이다.

물질과 마음의 힘에 의해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 무감각해진 까닭에 초월적인 신성을 지닌 불꽃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심적 감옥 속에 잠들어 있다.

잠들어 있는 불꽃들은 궁극의 통일체에 의해 버려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깨달음과 해방을 향한 한결 같은 노력은 이 통일체로부터 나온다.

인간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신적 본질에 대한 자각은 그노시스라고 불리는 구원의 지식을 통해 얻어진다.

그노시스는 믿음이나 고결한 행위나 계명에 대한 순종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기껏해야 해방의 지식을 위해 인간이 준비되도록 도와줄 뿐이다.

잠들어 있는 불꽃들을 돕는 존재들 가운데 특히 영예롭고 중요한 자리는 통일체의 여성적 방출물인 소피아(지혜)가 차지한다. 소피아는 세계의 창조에 관여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아 신세가 된 인간 자녀들의 안내자로 남아 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영혼 속에서 그노시스를 촉진시키기 위해 빛의 사자들이 궁극적 통일체로부터 보내지고 있다.

인간의 역사적 지리적 환경에서 볼 때 이 사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강한, 하느님의 로고스(말씀)였다.

예수는 이중의 사역을 담당했다. 교사로서 그노시스를 얻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사제로서 신비 의식을 전해주었다.

예수가 전해준 신비 의식(성례전으로 알려진)은 그노시스로 가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과 계승자들에게 그것을 위임했다.

신비 의식의 영적 수행과 그노시스를 향한 단호하고 비타협적인 노력을 통해 인간은 물질이나 그 밖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해방으로 나아가는 이 과정의 최종 목표는 구원의 지식을 성취하는 것이고, 그 지식을 통해 물질적인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져 궁극의 통일체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예루살렘 파괴 사건이 있은 후, 그리스도인들이 팔레스타인 너머로 확장되면서, 특별히 그리스-로마(Graeco-Roman) 세계 내에서 유대교와 매우 다른 문화들과 만났다. 많은 회심자가 품위 있는 그리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참고서들로 그들이 배운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인간 예수가 또한 하나님일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신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 플라톤의 저서를 읽는 사람들인 그리스인들에게는 더 어려웠다. 어떻게 유대인 목수의 아들로 사형틀에서 고통의 울부짖음 속에 죽은 자가, 변화와 욕정이 없으며 완전하기에 실체의 분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신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여러 다른 대답이 있으며, 많은 이가 진리에 대해 자기만의 특별한 지식(gnosis)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세기 말 이미, 주류 기독교를 정의할 지도자인 리용(Lyons)의 감독 이레니우스(Irenaeus)는 그러한 대안적인 기독교들을 그노스티케 하이레시스(gnostike hairesis, 대안적인 지식)라고 불렀는데, 그 추종자들을 그노스티코이(gnostikoi)”라 불렀다. 17세기 캠브리지의 학자인 헨리 모어(Henry More)는 이것을 영어 단어, “영지주의”(gnosticism)로 바꾸었다. 적의에서 생긴 이름을 받아들이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 다양한 경향을 함께 토의하는 것은 여전히 유용하다. 영지주의는 교회의 대안적 미래를 대표했다. 2세기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은 어디서나 이레니우스 같은 사람들에 의해 꽤 많은 사람들이 그노스티코이라고 불렸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덕택에 지난 세기를 지나면서 영지주의자들을 더욱 쉽게 알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1945년 이집트 사막 나그 함마디(Nag Hammadi)에서 현장 작업자가 우연히 발견한 이집트 콥트어(Coptic)로 된 52개의 4세기 본문이 든 항아리였다. 그것들 모두는 다른 언어, 주로 그리스어로 된 더 오랜 본문들로부터 번역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 하나는 플라톤의 국가(Republic)에 속하는 부분이다.

 

이전에 우리는 이레니우스 감독 같은 편견을 가진 주석가들에 의해 적대심으로 여과된 영지주의에 대해 알았지만, 이제 그 자체의 글로 만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운동들과 혼합된 사상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영지주의의 기원에 대해 하나의 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영지주의의 대부분은 유대교와의 대화인데, 특별히 나그 함마디 문서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하지만 대화의 상대자가 반드시 그리스인인 것은 아니다.

 

영지적 사고의 흔한 형태는 선과 악, 어둠과 빛의 경쟁하는 힘 사이의 우주적 투쟁을 전망하는 이원론인데, 이는 이란(Persia)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의 이원론과의 관련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현재 힌두교로 알려진 복합종교를 가진 인도로부터의 영향도 논쟁거리인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인들을 인도와 접촉하게 하였고 로마의 상인들도 멀리 동쪽까지 풍부한 교역을 계속했었다. 영지문학에 속하는 모든 본문이 기독교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기독교 자체보다 앞선다는 증거는 거의 없는 듯하다.

 

대개의 영지주의 체계에는 암시적으로 유대교적인 창조의 개념에 대한 불신이 있다.

 

영지주의 사상은 유대인이 존재하는 문화 속에서 태동하였으며 영지주의자란 곧 유대교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하는 자들, 아마도 변절한 유대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영지주의는 문화적 접경지역, 예를 들어, 알렉산드리아 같이 유대교가 그리스 문화와 상호작용한 곳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의문을 가지는 그리스식의 사고의 형태가 하나님의 창조는 선하다는 유대교의 주장에 질문을 일으킬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왜 이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고난과 비극이 있는가? 왜 인간의 몸은 이토록 사멸하는 신체이어서, 젊음의 아름다움조차도 질병과 사소한 욕망에 쉽게 좌우되는가? 인간의 삶이 비실재적이라는 플라톤식의 가정이나, 매일의 고난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스토아적인 이야기들은 더 이치에 맞는 대답을 얻기 위해 동방의 이원론과 의기투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육체적인 감각으로 경험하는 것은 단수한 환상이며, 영적인 실재의 희미한 반영이다. 감각의 세계가 열등한 존재의 상태라면, 최고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타나크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질문과 대답으로부터 많은 영지주의 문서에서 다양한 형태로 인지할 수 있는 생각들이 따라 나온다. 우선 만약 물질적인 세상을 창조한 유대인의 하나님이 진실하고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기껏해야 그는 플라톤의 표현으로 데미우르고스’(demiurge, 물질적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로 묘사되었고, 그보다 모든 진실한 것의 제1원인, 즉 진정한 하나님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하나님을 인간에게 나타내었기에 그는 유대인의 창조자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물리적 세상의 창조로 나타난 재난 이전, 우주의 원래적 조화를 사고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며, 그와 같은 조화는 물리적 창조와는 너무도 멀고 분명하여 (각기 다른 영지주의 체계에서는 지루할 정도로 상세하고 다양하게 친절히 묘사되어 있는) 존재와 실재의 복잡한 위계질서를 이룬다.

 

이러한 조화와 위계질서를 이해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그들 외부의 운명인 예정에 의해 그러한 특권을 부여 받았다고 알려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하러 온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누구인가? 영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 사이에 진정한 연합이 있을 수 없다면, 영지주의자들의 우주적 그리스도는 인간 여인을 통해 육체를 실제로 취할 수 없으며, 그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 느끼는 것을 결코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인간의 고통을. 역사에 있어 그의 고난과 부활은 그러므로 그렇게 보였을지라도 육체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천상적인 연극이었다는 것이다.(그리스어 dokein, 즉 본다는 것에서 온 가현설<Docetism>로 알려진 교리).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적인 것의 실제적인 본성은 인간 몸의 육체와 연대를 갖지 않기에, 도마복음서에 써 있듯이 우리는 지나가는 존재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한한 육체는 더럽기에 한탄할 것이고, 그 반대로 영혼은 육체와 독립해 있기 때문에 극도의 세속적인 방종도 영혼의 구원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2세기 영지주의는 사상의 정글과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도마복음과 같은 영지주의적 복음을 포함해서 엄청난 양의 저술을 낳았다. 이 저술은 영지주의 신념을 지지했던 예수의 발언이라 주장되는 것들을 포함했다. 2세기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의 그림자와도 같았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후기 기독교 정치 지도자들의 통치 하에, 그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영지주의와 유사한 분파들은 학자들이 은밀한 기독교라 부르는 것을 비밀리에 후대에 전했다.

 

부차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자들 모두가 공유했던 핵심교리(또는 사상), 물질은 악하며 어떤 식으로든 악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질로 구성된 몸은 죄의 자리이므로 참된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창조했을 리가 없고, 물질세계는 미쳤거나 타락한 데미우르고스(demiurge), 즉 하등한 신이 창조했다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그들의 반감은 그들로 하여금 천상의 구원자가 몸을 취했으며 그가 참으로 완전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게 했다. 그들은 그가 인간처럼 보였거나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된 소수에게 높은 지혜를 가르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도구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침내 영지주의자들은 각 사람의 내적 자아나 혼이 하나님의 불꽃이라고 가르쳤다. 이 불꽃은 자신의 신성을 잊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기원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것이 영지(gnosis)의 본성 또는 지혜라고 영지주의자들은 가르쳤다.

 

(영지주의자들은 물리적-물질적 영역을 넘어 탐구하는 일들을 하며, 인간의 성전 안에 거하는 순전한 우주적 그리스도의 영을 발견하려고 한다. 물질을 영-(soul-sprit)의 감옥이라고 말하며, 참된 지혜는 일련의 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지혜(Christ-wisdom)로서 물질적 영역 위에서 온다고 말한다. 이 지혜를 영-혼의 내적 신성에 대한 지식,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신적 빛과 불꽃으로 표현하며 그것을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영지주의 현상은 초대교회 시대 때부터 매우 논란이 되어 왔던 문제였다. 교부들은 세상을 부정하고 신화론적인 사변과 여러 가지로 자유로운 윤리를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을 날카롭게 비난하였다. 그들은 구약성서의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분리하며 기독교이 복음을 왜곡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영지주의는 이단자로서 대교회에서 분리되어야 했던 사교적 집단의 하나로 보였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영지주의는 초기 기독교가 헬라주의 세계와 만나는 가운데서 생겨난 기독교 종파 운동의 역사에 속하는 기독교의 내적 현상으로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기독교회의 기원을 종교사적 배경에서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에 의해서 영지주의는 결코 초기 기독교회사의 테두리 속의 한 형태로서만 파악될 수 없었으며 여러 가지 종교적이며 정신적인 운동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헬라주의 세계에서 여러 종류의 운동으로 나타났다.

 

또한 영지주의는 원시 기독교 이전에 그리고 같은 시기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으며 그 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독교적 요소들과 결합되었으며 상당히 많은 기독교적-영지주의적 집단을 형성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종교사적 연구를 통하여 영지주의의 형태가 한편으로는 보다 명백해졌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복잡하게 더 뒤엉켜 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란, 바빌론, 이집트 및 구약성서적-유대적 개념들이 헬라 철학과 결합되어 모든 면에서 다채로운 색깔이 채색된 하나의 기묘한 형태로 되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어야 했다.

 

여러 가지 사상들이 세상과 인간에 대하여 하나의 의미를 주려고 하는 현존(Dasein)에 대한 특정한 견해에 의하여 응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상들이 서로 결합될 수 있었다. 영지주의 사상에 있어서 늘 견지되어 있는 이론적인 특징은 영지주의가 이란 사상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기는 하지만 세계 부정과 참 인간의 구원을 위한 노력 등을 통하여 영지주의는 세상을 타향으로 판단하고 영혼이 오랫동안 떠나 있던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말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영지주의가 기독교에 앞서 일어나 널리 퍼져 있던 운동으로서 초기 기독교와 같이 활동하면서 기독교와 여러 가지로 결합되었다는 사실이 인정을 받고 있다. 교부들이 영지주의 이론에 반박하면서 그들의 이론을 조금씩 인용하여 놓은 예부터 잘 알려진 문헌들 외에도 최근에(1945-1946)는 이집트 상부의 나그 함마디(Nag Hammadi)에서 많은 영지주의 문헌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문헌들, 즉 위경, 복음서, 교훈서, 서신들과 묵시록 등은 이집트에 있는 기독교적 영지주의자들이 복음서들을 영지주의적으로 해석하고 구원에 이르는 길로서 참된 지식을 열어주려는 시도를 하였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비록 이런 문헌들이 예외 없이 기독교 이전 영지주의의 형태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을 해줄 수 없는 기독교적인 문헌들이 중심이 되어 있지만 많은 텍스트는 교부들이 영지주의를 반박하면서 인용하였던 왜곡된 글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말로써 영지주의 집단에 대한 깊은 지식을 얻게 해준다.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문헌들은 중요한 점에 있어서 각기 다른 여러 층의 영지주의 현상들을 보여 주고 있다. 여하튼 기독교 이전 영지주의에 대한 문헌적인 증거가 빈약해서 그의 기원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하게 추론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영지주의를 언급함에 있어서는 여전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러 연구의 상황에서 영지주의의 근본 구조를 가능한 한 적절하게 표현하려고 한다면 도대체 영지주의는 그들 자신의 견해에 따르면 무엇이 되려고 하였는가 하는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영지라는 말은 인식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헬라철학에 있어서처럼 학문적인 연구나 비판적인 반성의 방법으로 얻어지는 통찰력으로 인해 되지 않는다. 또한 유대적 묵시문학에 있어서처럼 신의 역사 계획의 맥락에 대한 통찰이나 쿰란 공동체에 있어서처럼 신의 율법에 대한 참된 인식을 의미하는 지식을 말하지 않는다. 지식은 인간에게 신 인식을 주는 계시를 통하여 주어진다.

 

 

인간은 인식의 대상, 즉 하나님 자신에 의해 감동되면서 이러한 인식을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물론 미지자로서 도달할 수 없으며 그에게 이르는 직접적인 어느 길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신으로부터 영혼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았다. 영혼은 황홀한 지경에서 그를 인식한다. 영혼의 위치가 갑자기 이 세상에서 분명하게 되면서 영혼이 물질 속에 갇혀 있음을 보게 된다. 영혼이 체험하는 지식은 영혼이 원래 속해 있던 신의 세계에로 귀향할 수 있는 능력을 그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식에서부터 물질로 형성되어서 악하고 또 인간 속에 잠재하고 있는 신적인 빛의 능력에 적대적인 것으로 대하는 세계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헬라주의적-로마적 세계에서는 동양의 종교적 전승 속에서 만나는 외국적인 것들이 훨씬 높이 평가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종교적 표상들 속에서 신비에 가득 찬 신적 지식을 인식하고자 하였으며 그래서 많은 신화론적인 전통들을 즐겨 받아들였고 그러한 것들로부터 신의 계시를 알고자 노력하였다.

 

 

영지주의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인 채 교회에서 이단이라는 굴레를 쓰고 근 2천 년 가까이 비난 받아 왔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영지주의는 기독교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분파적 교리가 아니었다.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사교집단이 고의로 퍼뜨린 사악한 지식은 더더욱 아니었다. 영지주의(Gnosticism)의 어원인 헬라어 그노시스(γνσις)’는 영어로 Spiritual truth, 영적 진리(靈智)”라는 뜻이다. 지식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해의 여지가 많다는 학자들의 견해다. 그노시스는 이성적 인지를 통해 습득되는 지식이라기보다는 직관적 깨우침혹은 알아차림”, 즉 통찰을 통해 얻어지는 에 더 가깝다

 

 

G. R. S. 미드는 이단 연구가로 활동한 교부들이 남긴 영지주의 관련 기록들을 모아 거기에 <적들이 말하는 그노시스(The Gnosis, according to Its Foes)>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수세기 동안 그들의 기록은 영지주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한 출처였는데, 이들 중 세 사람, 리옹의 이레니우스, 로마의 히폴리투스, 살라미의 에피파니우스는 극단적인 반(反) 영지주의 관점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성인으로 추대되었는데, 그들의 저서에서 영지주의가 그릇되고 기만적이고 사탄의 산물 그 자체라고 공개적으로 적대감을 표현하였다.

 

그들이 정통파 교회에서 도식화시켜 통용한 영지주의는 세 가지 특징으로 전해진다.

 

첫째, 영지주의는 철저하게 이분법적 세계관을 견지한다. 인간의 영혼은 죄로 가득 찬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으며, 영적 세계로 다시 돌아갈 구원의 날만을 갈망한다.

 

둘째, 영지주의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하려다 실패한 천사의 미완성 작품이라고 믿는다.

 

셋째, 영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한다. 죄로 오염되지 않은 순도 100% 영적인 존재인 예수가 잠시 인간의 모습만 빌렸을 뿐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가현설(Docetism)을 믿는다.

 

영혼의 구원은 선택된 소수에게만 허락된 “비밀스러운 지식”을 통해 가능하기에,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보내졌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것이 주류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지주의의 핵심이다. 한 마다로 정통파 교회는 그노시스를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은폐된 “비밀스러운 지식”으로 오독했고 위험한 반기독교 사상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한편, 교부들이 영지주의 이론에 반박하면서 그들의 이론을 조금씩 인용하여 놓은 예부터 잘 알려진 문헌들 외에도 최근에(1945-1946년)는 이집트 상부의 나그 함마디(Nag Hammadi)에서 많은 영지주의 문헌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문헌들, 즉 위경, 복음서, 교훈서, 서신들과 묵시록 등은 이집트에 있는 기독교적 영지주의자들이 복음서들을 영지주의적으로 해석하고 구원에 이르는 길로서 참된 지식을 열어주려는 시도를 하였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비록 이런 문헌들이 예외 없이 기독교 이전 영지주의의 형태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을 해줄 수 없는 기독교적인 문헌들이 중심이 되어 있지만 많은 텍스트는 교부들이 영지주의를 반박하면서 인용하였던 왜곡된 글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말로써 영지주의 집단에 대한 깊은 지식을 얻게 해준다.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문헌들은 중요한 점에 있어서 각기 다른 여러 층의 영지주의 현상들을 보여 주고 있다.

 

만일 우리가 이러 연구의 상황에서 영지주의의 근본 구조를 가능한 한 적절하게 표현하려고 한다면 도대체 영지주의는 그들 자신의 견해에 따르면 무엇이 되려고 하였는가 하는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영지라는 말은 인식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헬라철학에 있어서처럼 학문적인 연구나 비판적인 반성의 방법으로 얻어지는 통찰력으로 인해 되지 않는다. 또한 유대적 묵시문학에 있어서처럼 신의 역사 계획의 맥락에 대한 통찰이나 쿰란 공동체에 있어서처럼 신의 율법에 대한 참된 인식을 의미하는 지식을 말하지 않는다. 지식은 인간에게 신 인식을 주는 계시를 통하여 주어진다.

 

여기서 잠간, 나그 함마디 문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194512월 이집트의 한 농부가 남부 이집트의 한 계곡에서 비료를 파내다가 사본들로 가득 찬 점토 항아리를 발견했다. 어떤 학자들은 이 항아리가 나그함마디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산 속의 수많은 동굴 가운데서 발견된 것이라 추측하는데, 그 이유는 기도원 운동의 창시자인 콥트 교회의 수도사 파코미우스가 거대한 수도원 공동체를 설립한 곳이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기독교 수도 공동체인 파코미우스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애독되던 영지주의 문헌들이, 4세기 후반 이단적인 문서를 파기하라는 알렉산드리아의 한 감독의 명령을 받고 차마 그것들을 소각하지 못한 수도사들에 의해 땅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1,600년 동안이나 땅속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13권의 파피루스 사본은 훗날 나그함마디 문서’(Nag Hammadi Library)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이름 그대로 다양한 읽을거리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문고이다. <조스트리아노스(Zostrianos)>와 플라톤의 <국가(Republic> 일부, 그리고 헤르메스주의적 입교식을 이야기하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영지주의와 관련된다. 영지주의와 관련된 자료들은 여섯 가지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창조와 구원에 관한 신화로서, 세계 창조, 아담과 이브, 그리고 구원의 로고스 곧 예수의 하강에 관해 이야기한다.

 

두 번째 범주는 영혼의 본질, 영적 구원, 세상과 영혼의 관계 같은 다양한 영지주의 주제에 대한 설명과 해설이다.

 

세 번째 범주는 예배와 입교식에 관한 문서들이다.

 

네 번째 범주는 여성성을 지닌 신적 존재, 특히 소피아에 관한 문서들이다.

 

다섯 번째는 사도들에 관한 문서들이고,

 

여섯 번째는 예수의 말씀과 그의 삶에서 벌어진 사건에 관한 문서들이다.

 

나그함마디 문서에서 복음서(Gospel)’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경전은  <도마복음>,  <빌립복음>,  <진리복음>,  <이집트 복음>이다.

 

나그함마디 문서들이 처음부터 위험한 불온 문서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기독교 초기에는 히브리성서(구약성서) 외에 더 많은 복음서들과 사도들의 이름으로 기록된 풍성한 증언들을 거룩한 책으로 아끼고 공유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훗날 기독교가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교회 전통 안으로 흡수 되지 못하고 이단 서적으로 낙인찍혀 배제되었다. 영지주의 문헌으로 분류되어 온 나그함마디 문서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지금은 이 문헌들이 초기 성서로서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소중한 자료들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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