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1:4-10 /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하나님의 일로 부르셨습니다. 그 일은 니느웨에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그러나'로 반응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요나 내면에 니느웨에 대한 치유되지 않은 상처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모른 것과, 대가 지불의 두려움 그리고 '나 같은 것이 뭘 할 수 있을까'하는 자기 생각이 요나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였습니다.
욘 1:3 /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기 욥바는 요나가 가야 할 니느웨의 정 반대 방향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당시 배들은 여객선이 아니라 상선으로 다시스는 솔로몬 왕 때부터 이스라엘과 무역을 해왔는데, 그 시대에 다시스와는 3년에 한 번씩 무역을 했습니다.
왕상 10:22 /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그러니까 다시스로 가는 배는 오늘 있고, 내일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것은 기적 중의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말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일이 잘 풀란다고 해서 모두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보세요! 지금 요나가 하나님께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순종하고 세상으로 빠져가는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수 있느냐 말입니다. 마침 요나의 전용 배처럼 다시스로 가는 배가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 생각에는 아니 불순종하고 돌아서면 있던 배도 끊겨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이 잘 풀리는 것입니다. 딱 불순종하고 돌아섰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출발하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세상에서 일이 술술 잘 풀리니 이건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요나를 보세요. 지금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기 위해 욥바로 갔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스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때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데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려 요나가 탄 배를 파선될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큰 풍랑이 일어나는 순간, 요나는 배 밑창에서 깊이 잠 들어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낯을 피해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작용하여 밑창에까지 숨어든 것입니다.
욘 1:5 /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모든 뱃사공들이 큰 풍랑을 두려워하여 자기들 신의 이름을 부르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지중해의 사정에 능통한 전문가로 언제 어디서 어떤 풍랑이 부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태풍의 계절에는 배를 운행하지 않으며 통상적인 풍랑은 항해 기술로 뚫고 나갑니다. 그런데 지금 이 풍랑을 만나자 노련하고 경험 많은 뱃사공들이 자기들 신의 이름부터 불렀고 짐을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뱃사공들이 목숨과도 같은 짐을 바로 버리지 않으면 배가 물에 전복되겠다는 것을 직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한 뱃사공들이 풍랑을 이겨보려는 시도들이나,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무기력한 요나나 풍랑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합니다.
2. 질책당하는 요나
그런데 이 순간 선지자 요나가 세상 사람으로 상징되는 선장에게 질책을 당합니다.
욘 1:6 /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요즘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질책합니까? 주님은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라고 교회를 세우셨는데, 거꾸로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이 말이 하나님이 요나에게 주시는 말씀 같은데 자세히 보면 세상 사람이 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 겁니다.
그리고 선장은 누가 믿는 신이 노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제비를 뽑자고 제안했는데 마침 요나가 당첨되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이 마련해놓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욘 1:7 /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욘 1:8 /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우연이란 자기가 소원 ·계획· 시행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우연이 여러 번 겹치면 그 배경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나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탄 배를 파선시킬 수 있었지만, ‘거의’ 깨어질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이것이 요나를 포기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제비에 뽑히고 나서 요나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도피 행각을 순순히 인정하고서 자신을 “히브리 사람이요”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덧붙였습니다.
욘 1:9 /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욘 1:10 /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요나는 여호와를 하늘과 땅에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 이라는 것입니다. 바다와 육지를 지었으니 이 풍랑도 일으켰고 나중에 안전하게 육지에 도착시켜줄 분도 오직 여호와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고백을 보면 요나는 분명히 유일신 창조주가 실존하실 뿐 아니라 지금도 그분이 세상만사를 통치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머리로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가 이번 일을 통해 생전처음 그 크신 여호와를 깊이 체험했을 것입니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고, 때에 맞지 않는 급격한 풍랑도 일었고, 제비에 자기가 뽑혔습니다. 세 번의 우연의 일치가 겹칩니다. 그러니 요나는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고도 도망갔다는 생각에 얼마나 마음이 불안하였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정말로 큰 벌을 내리시는 구나 여겼을 것이고, 제비까지 자기가 뽑았으니 죽음을 면할 길이 없다고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를 포기할 수 없으셨던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다시 보여 주십니다.
오래 기다려 주시고, 자격도 없고, 끝없이 못하겠다고 버티고 배 밑 바닥까지 내려갔던 우리 인생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니느웨를 구원시키는 이 일도 중요하지만 사역자로 부른 너를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도 이해해 달라며 달려가신 그 주님의 심정, 그 심정을 우리가 알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 회복해야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어요. 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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