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생각을 비우고 긍정의 운을 끌어당기기 위한 방법
▶ 자연에 몸을 맡기고 마주하라
▶ 일상 언어를 긍정적인 말로 바꾸어라
▶ 마음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과 화해하라
▶ 내게 주어진 운 좋은 인생에 감사하라
▶ 내게도 성공의 경험이 있음을 자각하라
▶ 스스로 운이 강한 사람임을 믿어라
▶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내게 원인이 있다고 받아들여라
▶ 위대한 무언가가 내 인생을 인도한다고 믿어라
▶ 불안이나 기대 없이 모두 바치는 기도를 하라
※ 인생의 습관을 고치고, 인생의 해석을 바꾸고, 인생의 각오를 다진다.
인재를 고르는 기준 : 강한 운을 가진 사람
인생에서 커다란 운의 갈림길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운이 얼마나 강한지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인생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운이 강하다. 분야와 직업을 막론하고 인생과 일의 갖가지 국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운을 느끼고 좋은 운을 끌어당기며 호기를 붙잡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좋은 운을 어떻게 끌어당길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 상태는 그 마음과 공명하는 것을 끌어당긴다. 따라서 좋은 운을 끌어당기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이다. 긍정적 상념을 가지는 것!!!!!!!!!!
‘긍정적 상념 = 좋은 상념’을 가지면 ‘긍정적 사건 = 좋은 사건’이나 좋은 만남을 끌어당기고 좋은 운을 끌어당긴다.
운은 우리 마음이 그 상태와 공명하는 것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여겨진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긍정적 상념은 좋은 운을 끌어당기고, 부정적 상념은 나쁜 운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 세계를 다섯 가지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적 의식 세계
둘째, 집합적 의식 세계
셋째, 개인적 무의식 세계
넷째, 집합적 무의식 세계
다섯째, 시공간을 뛰어넘은 무의식 세계
불평이 많은 사람에게는 좋은 운이 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① 표면 의식 세계가 부정적 상념으로 채워지면,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② 표면 의식 세계가 부정적 상념으로 채워지면, 그 상념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말로 표현되어 주위 사람들이 멀어지기 때문이다.
③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중 8할은 비언어적이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에는 말로 전해지는 메시지 외에도 시선과 눈빛, 표정과 얼굴, 동작과 몸짓, 공기와 분위기 같은 말 이외의 것으로 전해지는 메시지가 있다. 사실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의 8할 이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불안이나 공포, 불만이나 분노, 혐오나 증오 같은 부정적 상념을 품고 있다면, 표면적인 언어 메시지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말 이외의 메시지로 상대방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 같은 일이 생기면 긍정적 상념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물리적으로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이 떠난다. 반대로 그 사람 주위에 부정적 상념을 가진 사람이 다가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갖가지 문제나 트러블을 끌어당기게 된다.
‘무드 메이커’가 중요하다. 이것이 두 번째 마음 세계인 ‘집합적 의식 세계’인데, 이 집합 의식은 집단이나 조직, 사회에 속한 개인의 의식이 모인 것이며, 종종 공기나 분위기, 문화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인생과 일에서 조직이나 팀 분위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집단이나 팀에서 좋은 운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무드 메이커 역할’을 하는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로 인해 집단이나 팀 전체에 좋은 선순환이 생기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좋아진다 → 긴장이 풀린다 →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분위기가 더 좋아진다
행복을 바라면서도 불행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세 번째 마음 세계인 ‘개인적 무의식 세계’와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 세계를 깊이 연구하여 다양한 가설을 제시해 왔다. 요약해보면,
① 무의식 세계의 상태를 우리의 의식 세계에서는 명확히 자각할 수 없다.
② 무의식 세계의 힘은 강해서 종종 의식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③ 무의식 세계에 영향을 미쳐서 의식적으로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 ‘나라면 할 수 있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같은 자기긍정 의식이나 자기존중 의식이 있으면, 이 긍정적 상념이 인생에서 행운처럼 보이는 사건이나 좋은 운을 끌어당긴다.
반면 ‘자기징벌 의식’이나 ‘자기부정 의식’ 같은 부정적 상념이 존재하면 모르는 사이에 현실 인생에도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나쁜 운이 끌어당겨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표면 의식의 인격)과 마음속 깊이 잠재된 모습(무의식의 인격)이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때로는 정반대의 경우도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조용한 사람이 극한 상황에서 갑자기 매우 강한 인격을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요한 것이 있다. 무의식 세계는 표면 의식 세계를 경유하지 않고 무의식 세계끼리 서로 감응한다는 점이다. 무의식 세계에 있는 부정적 상념이 당사자들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감응을 일으켜 서로 끌어당긴다.
왜 무의식끼리 서로 감응하는 현상이 생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 번째 마음 세계인 ‘집합적 무의식 세계’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람들 마음은 깊은 무의식 세계에서 서로 이어져 있다’는 칼 구스타브 융이 제창한 흥미로운 가설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심전심 or 동시성(synchronicity, 신기한 우연의 일치)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현대에는 이런 견해가 융만의 개념이 아니라 융 심리학을 원류로 탄생한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초개인 심리학 : 인간의 지각을 초월한 것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학문)’의 체계까지 이어진다.
‘집단적 무의식’이나 ‘초개인적 무의식’ 가설은 인간의 상념이 공간을 뛰어 넘어 전달되는 현상이나 어떤 커뮤니케이션 없이도 인간 집단 내에서 한 가지 상념을 공유하는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집단적 무의식’이나 ‘초개인적 무의식’ 가설로는 공간을 초월한 싱크로니시티는 설명할 수 있어도 시간을 초월한 싱크로니시티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시간을 초월한 싱크로니시티’란 무엇일까?
이것은 ‘시공간을 뛰어넘은 무의식 세계’에 대한 것과 연관된다.
‘데자뷰 [프랑스어]déjà vu, 기시감’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데자뷰’란 ‘이미 봤다’란 뜻의 불어로, 일상생활의 어느 한순간에 ‘아, 이 광경과 똑같은 광경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고 느끼는 현상이다.
또한 예감이나 예견, ‘미래의 기억’ 같은 현상 현상도 있는데, 이것은 과거에 봤던 광경이나 과거에 찍은 사진이 미래에 벌어질 현실과 신기한 일치를 보인다는 뜻에서 ‘시간을 초월한 싱크로니시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제로 포인트 필드’ 가설로 설명해 보겠다. ‘제로 포인트 필드’란 단적으로 말해 우주의 모든 곳에 편재하는 에너지장을 가리키는데, 이 장에 우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는 가설이다.
현대 과학인 양자물리학에서 아무것도 없는 진공 속에도 방대한 에너지가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양자 진공(Quantum Vacuum)’이라 불리는 극미소 세계 속에 방대한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본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현대 최첨단 우주물리학이 제창하는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탐구하는 우주 생성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138억 년 전에는 우주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양자 진공이 존재했을 뿐이다. 하지만 양자 진공이 어느 날 갑자기 흔들림을 일으켰고, 그 직후에 급격한 팽창(인플레이션)이 일어나 대폭발(빅뱅)을 거쳐 우주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렇듯 양자 진공 안에는 장대한 우주를 낳을 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깃들어 있는데, 이런 양자 진공 안에 ‘제로 포인트 필드(zero-point field)’라 불리는 장이 존재하며, 그 장에는 우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이 파동으로서 홀로그램 구조로 기록되어 있다는 가설이다.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이 파동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 있는 물질이라는 것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실체는 전주 다름 아닌 에너지이자 파동이고, 이를 질량을 가진 물질이나 딱딱한 물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일상 감각 때문에 생긴 착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은하계 우주의 생성이든 지구의 탄생이든, 당신의 태어남이든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일이든, 이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궁극적으로 전부 우주에서 생긴 에너지와 파동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 파동의 모든 흔적이 ‘파동 간섭’이라는 형태의 홀로그램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가설은, 홀로그램이 거의 무한에 가까운 방대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일정 부분 합리성이 있다고 하겠다.
현대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상대성 이론’에서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에 네 번째 차원인 ‘시간’을 더해 4차원 ‘시공 연속체’라는 견해를 제기했다. 이 ‘시공 연속체’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
영국 출신의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 비욘드연구소 소장은 시간을 ‘타임스케이프(Time-Scape)’라고 보았다. 이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 즉 ‘풍경’과 마찬가지 개념인데, 지도를 펼치면 모든 산과 강과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듯, 우주의 공간적인 전개 전부와 우주의 시간적인 전개 전부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타임스케이프’에서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우리 물리학자에게 과거, 현재, 미래라는 건 환상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확고해 보여도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로 포인트 필드에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정보도 기록되어 있다는 건 우리의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인가?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나?’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이다. 제로 포인트 필드에 기록된 미래는 ‘가능성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필드에 연결되어 예견할 수 있는 미래는 무수히 많은 미래의 가능성 중 가장 일어날 법한 미래이다. 따라서 현재의 행동이 변하면 가장 일어날 법한 미래가 아닌 다른 미래가 실현될 가능성도 커진다.
양자물리학의 세계에서 전자의 위치는 관측하기 전에는 다양한 장소에 존재할 가능성의 집합 즉 확률 분포로만 알 수 있다. 하지만 관측하면 그 위치가 확정된다. 이것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파동함수’개념인데, 양자 진공을 실체로 하는 ‘제로 포인트 필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확률분포 정보로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현재가 되는 순간 하나의 가능성이 현실로 확정된다.
따라서 우리가 ‘제로 포인트 필드’에 연결되어 미래를 예견할 때는 확실히 도래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어날 법한, 확률이 높은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가능성의 미래’를 현재로 만들 때 하나의 미래가 확정된다. 이것이 ‘제로 포인트 필드 가설’이 가르쳐 주는 ‘가능성의 미래’이다.
제로 포인트 필드에 모든 정보가 파동으로, 홀로그램 구조로 기록된다는 이야기는, 정보가 파동의 간섭을 이용한 홀로그램 원리로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다.
홀로그램 기술은 파동의 간섭을 이용해 정보를 기록하는 기술로, 각설탕만 한 크기의 매체에 국립도서관의 모든 장서 정보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 따라서 제로 포인트 필드가 홀로그램 구조로 정보를 기록한다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방대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제로 포인트 필드 가성은 우리의 마음이 제로 포인트 필드와 양자 레벨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제로 포인트 필드에서 정보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정보를 보낼 수도 있다는 가설이기도 하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양자 뇌 이론’이 주목 받고 있다.
이론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와 마취과 의사인 스튜어트 하머로프가 제창한 이 이론은, 우리 뇌의 작용에 양자과정이 깊이 관여한다는 관점에서 의식 문제나 뇌 내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명하려는 것이다. 우리 뇌가 커뮤니케이션에 양자과정을 이용한다면, 뇌가 제로 포인트 필드와 양자 레벨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있음직한 일이다.
제로 포인트 필드의 홀로그램 가설과 양자 뇌 이론 가설이 옳다면,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념이 비슷한 것을 끌어당긴다는 것을 설명하기가 쉽다.
제로 포인트 필드에 기록되어 있는 정보가 홀로그램 기록이라면 파동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고, 우리 뇌나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념 역시 양자과정으로 존재한다면 이 또한 파동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동은 그 파동과 유사한 주파수의 파동과 공명을 일으킨다.
따라서 뇌나 마음이 제로 포인트 필드와 연결될 때 우리 뇌나 마음속에 있는 상념이 그 필드 안에 있는 유사한 정보와 공명해서 끌어당김을 일으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상념이 그와 유사한 것을 끌어당긴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제로 포인트 필드 가설을 요약하면,
① 이 우주의 모든 곳에는 제로 포인트 필드라 불리는 에너지장이 편재한다.
② 제로 포인트 필드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③ 따라서 우리 마음이 제로 포인트 필드에 어떤 형태로 연결될 때,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물론 미래에 일어날 사건도 예감하고 예견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 세계에는 제로 포인트 필드와 연결된 제5의 세계인 시공간을 뛰어넘은 무의식 세계가 있고, 그 필드에는 시공을 초월한 모든 정보가 모여 있기 때문에 마음이 시공간을 뛰어넘은 무의식 상태가 되면 공간을 초월한 싱크로니시티뿐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싱크로니시티도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양자 진공 속에 존재하는 제로 포인트 필드의 성질이 과학적으로 밝혀져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보 전달이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이제까지 과학이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연이나 착각, 오해나 환상, 그릇된 믿음이나 미신 등으로 여겨지던 이심전심, 텔레파시, 투시, 원격 투시, 예지, 예언, 데자뷰, 미래의 기억, 현몽, 영적 교신, 배후령, 전생의 기억, 환생 같은 현상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일반인과 천재라 불리는 사람의 차이는 타고난 뇌 구조나 유전자의 차이, 선천적인 능력 차이가 아니라 제로 포인트 필드라 불리는 것과 연결되는 능력의 차이이고, 그 능력은 마음 세계를 바꾸는 방법을 습득하여 후천적으로 익힐 수 있다.
좋은 운을 끌어당기는 힘의 차이도 사실은 타고난 운이 강해서가 아니라 제로 포인트 필드와 연결되는 능력의 차이이고, 그 힘 또한 마음 세계를 바꾸는 기법을 습득함으로써 후천적으로 익힐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속을 긍정적 상념으로 채우는 방법은 뭘까?
기존의 많은 책들은 표면 의식 세계에 긍정적 상념을 강하게 품어 그것을 무의식 세계에 침투시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런 방법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 이유는 무의식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부정적 상념이 긍정적 상념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비꾸는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 상념을 품는 방법이 아니라 부정적 상념을 없애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 세계에 긍정적 상념을 침투시키기보다 오히려 무의식 세계에 숨어 있는 부정적 상념을 깨닫고 없애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1. 무의식의 부정적 상념을 정화하기 위해, 인생의 습관을 고치자!
2. 인생의 부정적 경험을 플러스로 전환하기 위해, 인생의 해석을 바꾸자!
3. 궁극의 긍정적 인생관을 체득하기 위해, 인생의 각오를 다지자!
위의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촘촘히 알아보기로 한다.
무의식 세계를 바꾸어 좋은 운을 끌어당기는 첫 번째 방법은 무의식 세계에 존재하는 갖가지 부정적 상념을 정화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습관, 자연의 위대한 정화력에 맡긴다.
우리가 정말로 자연의 정화력에 몸을 맡겨서 무의식 세계를 정화하고 싶다면 하늘, 바다, 산, 숲, 아침 해, 노을, 달, 별 무엇이라도 좋으니 혼자서 조용히 그 자연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몸을 맡겨야 한다. 그리고 자연이 내 속으로 스며드는 이미지를 마음에 그려야 한다. 이때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신선한 공기를 깊이 들이쉬고 내뱉는 호흡법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방법을 습관처럼 몸에 익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실천한다면, 우리의 표면 의식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무의식 세계도 확실히 정화될 것이다. 가까운 공원의 녹음도 좋고 매일 보는 길가의 나무나 플꽃이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자연과 허심탄회하게 마주보는 일이다.
진정한 명상이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명상은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일어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명상이란 의도적으로 마음을 명상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마음이 문득 명상 상태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명상이나 좌선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인위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명상이 아닌 ‘자연에 몸을 담근다’라는 방법을 권하는 이유는 자연에 몸을 담글 때 가장 쉽게 명상의 마음 상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 속에 몸을 두고 자연에 몸을 맡기며 자연의 훌륭함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명상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두 번째 습관, 말에 숨겨진 정화력을 활용한다.
부정적인 일상 언어를 쓰지 않고, 긍정적인 일상 언어를 사용하라!
긍정적인 일상 언어에는 하늘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감탄’을 담은 말, ‘감사’를 담은 말, ‘감동’을 담은 말을 쓰면 하늘이 움직인다.
세 번째 습관, 화해의 상념이 가진 정화력을 이용한다.
이것은 일상생활이나 일과 관련된 인간관계에서 마찰이나 갈등, 반목, 충돌이 있는 사람과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화해하는 방법이다. 마음속에서 감사의 말을 하며 한 사람 한 사람과 화해한다. 마음에 맺힌 것이나 마음의 응어리를 발견하고 그 대상이 된 사람을 떠올린다. 우선 자기 마음속을 구석구석까지 조용히 바라보며 마음에 맺힌 것을 살핀다. 그 사람이 마음에 떠오를 때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뭔가 언짢은 기분이 든다’ ‘떠올리면 불쾌해진다’ 같은 생각이 드는 마음 상태를 보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감정을 명확하게 만들어본다. 감정의 원인을 깊게 바라보는 것이다. 왜 이 같은 감정이 생겨났는지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할 일은 ‘상대와 화해하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어쩐지 마음에 걸리고’ ‘뭔가 언짢은 기분이 남아 있으며’ ‘떠올리면 불쾌해지는’ 맺힌 것이나 응어리진 감정을 깨닫고 그것을 깊고 조용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감정이 향하는 대상과 마음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똑바로 마주한다는 말의 의미는 상대방을 삐딱한 태도로 보지 않고 마주 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으면 그를 삐딱한 태도로 보기 때문이다. ‘어차피 저 사람은...’ ‘저 사람이 그렇지...’ ‘결국 저 사람은...’ 같은 치우친 감정을 품고 상대방을 보게 된다.
똑바로 마주할 수 없을 때, ‘만약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까?’생각해 보라! 이렇게 시점을 바꿀 수 있다면, 조금은 상대방의 논리, 기분,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 다음, 마음속으로 감사의 말을 한다. 마음속으로 상대방에게 ‘○○씨, 고맙습니다’라고 말을 건다. 이렇게만 해도 마음속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뭔가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 마음은 깊은 세계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내 심경이 정말로 달라지면 신기하게도 상대방에게 전해져서 다음에 만날 때는 그 사람의 심경도 달라지는 일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화해를 사과나 용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 세계에서는 사과나 용서가 그리 옳지 않다. 왜냐하면 사과나 용서는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한쪽은 잘못했다는 구도를 만들어서 부정적 상념이 슬그머니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감사라는 행위에서는 이런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분리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부정적 상념이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이 사과하거나 용서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다.
남을 탓하는 마음은 내 마음을 괴롭힌다. 마음속에서 마찰이나 갈등, 반목, 충돌을 느끼는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리고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의 말을 하며 마음속으로 화해할 때 우리 무의식 세계도 정화된다.
무의식 세계를 바꾸어 좋은 운을 끌어당기는 두 번째 방법은 과거 인생에서 일어난 부정적인 경험을 하나한 플러스로 전환하면서 무의식 세계에 있는 부정적 상념을 없애는 방법이다.
우리 마음 세계에 부정적 상념이 생기는 또 다른 원인은 과거 인생에서 다양한 형태로 겪은 부정적인 경험이다. 예를 들면,
“부모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병으로 고생했다.”
“바라던 회사에 취직하지 못했다.”
“일에 크게 실패했다.”
“사업을 시작했다가 좌절했다.”
......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우리 무의식 세계에 ‘나는 별로 우수하지 않은 인간이다’ ‘나는 별로 장점이 없는 인간이다’ ‘나는 별로 운이 따르지 않는 인간이다’같은 자기를 한정하거나 부정하는 부정적 상념을 낳고 고착시킨다. 이런 과거의 부정적 경험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의미를 재고하고 해석함으로써 그것이 결코 부정적 경험이 아님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생의 해석을 바꾸는 것이다.
우선 해석의 첫 번째 단계는 내 인생에 성공의 경험이 많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아주 작은 성공의 경험이라도 좋다. 인생의 다양한 장면을 회상해보고 그것이 실은 성공의 경험이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인생을 돌아볼 때 얻은 것보다 얻지 못한 것에 눈이 가는 경향이 있다. 성공한 일보다 실패한 일에 마음이 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 상념이 생기는 큰 원인이다. 따라서 인생을 돌아보며 소소한 성공 경험을 정성껏 재고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상념은 조금씩 긍정으로 바뀐다.
이렇게 성공의 경험을 정리할 때 중요한 것이 있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때 느낀 기쁘고 즐거웠던 감정을 떠올려야 한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무의식에 영향을 주는 방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행위는 “그건 좋았지” “그건 나빴어” “덕분에 성공했어” “그 탓에 실패했어” 같은 형태로 플러스 상념과 마이너스 상념 혹은 긍정적 상념과 부정적 상념을 분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성공 경험에 대해 생각하면 반드시 그와 반대되는 실패 경험이 마음에 떠올라 부정적 상념이 생긴다.
애초에 생각하는 행위는 논리(로고스)를 사용하는 행위이며, 논리란 대상을 절단하고 분할하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행위는 반드시 진위(眞僞), 선악(善惡), 미추(美醜), 달성과 좌절,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같은 형태로 긍정적 상념과 부정적 상념의 분리를 낳는다.
음악의 힘을 활용하여, 좋은 기분을 느끼자! 들으면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고양감과 전능감이 솟구치게 하는 곡을 들어라!
이제 해석의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가 본다.
내가 운이 강한 사람임을 깨닫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강한 운을 가진 사람이란 ‘나는 강한 운을 가졌다’고 믿는 사람이다.
인생을 가만 응시해보면 어느 누구의 인생에나 행운으로 인도된 많은 경험이 있다. 문제는 그것을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의 차이이다. 한번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나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아’ ‘나는 운이 좋지 않아’ 같은 부정적 상념이 어둠 속에 빛이 비치듯 사라진다.
이를 위해선 또 하나 중요한 시점 전환이 필요하다. 이 시점 전환을 할 수 있다면 해석의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인생에 대한 해석력이 좋은 운을 끌어당긴다. 행운으로 보이는 일이 일어났을 때만 운이 좋은 것이 아니다. 불운해 보이는 일이 일어났을 때도 운이 좋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우리 인생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우리 인생을 가른다. 확실히 그렇다. 인생의 역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인생을 크게 변화시킨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에도 그 사건의 좋은 부분이나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보며 ‘나는 운이 좋았어’ ‘나는 운이 강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힘 즉, 인생에 대한 해석력이 바로 운을 끌어당기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해석력이야말로 부정적 경험을 긍정적 경험으로 바꾸어 마음속 부정적 상념을 긍정적 상념으로 바꾸는 힘이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최고의 해석력을 끌어낸다.
실패한 경험이 실은 성공의 경험이다. 과거의 실패 경험을 돌이켜보며 잃어버린 것과 얻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는 한 그 실패 경험은 부정적 경험으로 남는다. 하지만 어떤 실패 경험에도 반드시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있고 얻은 것도 있다. 우리 인생은 실패 경험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것과 실패로 인해 얻은 것에 눈을 돌릴 수 있느냐 없느냐 에서 갈림길에 선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다. 간단히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사랑한다면, 어떤 실패 경험이 있더라도 빛나는 부분을 바라볼 수 있다. 빛이 있는 부분을 바라보며 자비롭게 끌어안 듯 사랑하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말 그대로 강한 운을 끌어당길 수 있다. 신기할 정도로 좋은 운을 끌어당기게 된다.
인생에서 힘든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긍정적인 해석력을 발휘하여 성장의 과점에서 이렇게 자문해 보라.
‘이 사건은 내게 무엇을 깨닫게 할까?’
‘이 사건은 내게 무엇을 배우도록 하는가?’
‘이 사건은 내게 어떤 성장을 요구하는가?’
인생에서 어떤 불운해 보이는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이런 물음을 가슴에 품고 그 사건을 성장의 양식으로 삼을 수 있다면 불운해 보이는 사건 또한 실은 행운의 사건임을 깨달을 수 있다. 이는 인생에서 불운해 보이는 사건의 의미가 정반대의 의미인 행운이로 전환되는 멋진 순간이기도 하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우연히’, ‘어쩌다가’, ‘뜻하지 않게’, ‘때마침’, ‘운 좋게’ 같은 단어를 가장 많이 쓴다. 하지만 이 성공한 사람들이 단지 행운만으로 인생을 개척하진 않았다. 그들은 인생에 주어진 불운해 보이는 사건 속에서도 성장을 위한 양식을 발견하고 걸어갔다. 그러면서 불운해 보이는 사건을 행운의 사건으로 바꿔나갔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 실은 성공 경험이었음을 깨닫고, 불운해 보이는 사건이 실은 행운의 사건이었음을 깨닫는다면 해석의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운 좋은 인생에 감사함’이다.
바꿔 말하면 하늘의 뜻이나 위대한 무언가의 인도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힘으로 인생을 개척했어’라는 자력의 함정이 빠지지 않는 것이다.
과도한 자력 의식은 무의식 세계에 부정적 상념을 낳게 된다. 자력 의식이 강하면 설사 무언가에 성공할지라도 ‘내가 자력으로 해냈어’라는 의식 이면에 반드시 ‘다음에는 잘될까?’ ‘내 힘도 여기까지가 아닐까?’라는 불안이나 공포가 싹트기 마련이다.
반면 무언가에 성공하거나 어떤 일을 해냈을 때 그것이 ‘하늘의 뜻’이나 ‘위대한 무언가의 인도’ 덕분이라는 겸손한 감사의 상념을 가지면, 이 상념이 무의식 세계에 ‘하늘이 인도해주고 있다’ ‘위대한 무언가가 이끌어주고 있다’라는 깊은 안도감을 만든다.
자력 의식이 강하면 표면 의식 세계에는 긍정적 사념이 있더라도 무의식 세계에는 불안이나 공포 같은 부정적 상념이 생긴다. 반면 ‘하늘의 뜻’이나 ‘위대한 무언가의 인도’에 겸손하게 감사하는 자세는 이런 부정적 상념을 낳지 않고 무의식 세계를 긍정적 상념으로 채운다.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왜 무슨 일에 성공하거나 어떤 일을 해냈을 때 ‘덕분입니다’라는 말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기 위한 말도 아니다.
‘위대한 무언가가 인도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받쳐주고 있다’는 감사의 상념은 실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상념 가운데 가장 긍정적 상념이다. 이런 말들은 무의식 세계를 긍정적 상념으로 채우기 위해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의 부정적 경험에서 생겨난 부정적 상념을 없애기 위한 해석의 그 다음 단계는 내 인생에 주어진 궁극의 성공 경험을 깨닫는 것이다.
궁극의 성공 경험이란 ‘이렇게 살아 있음은 고마운 일이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이 점을 깨달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주어진 인생을 무조건 긍정하는 가장 근원적인 감사의 상념이 생긴다. 이런 근원적인 감사의 상념을 마음에 품을 때 우리는 좋은 운을 끌어당긴다. 이 감사의 상념 속에서 인생이 조용히 빛나기 시작한다.
무의식 세계를 바꾸어 좋은 운을 끌어당기기 위한 세 번째 방법은,
궁극의 긍정적인 인생관을 체득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적으로 보이는 사건이나 만남도 모두 무조건 전적으로 긍정함으로써 무의식 세계를 ‘궁극의 긍정적 상념’으로 채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모든 사건이나 만남을 무조건 전적으로 긍정하기 때문에 애초에 마음속에서 긍정적 상념과 부정적 상념이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의식 세계를 정화하는 궁극의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섯 가지 각오를 지닌 인생관을 가지도록 하자!
첫 번째 각오, 위대한 무언가가 내 인생을 인도한다고 믿는다.
두 번째 각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각오,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내게 원인이 있다고 받아들인다.
네 번째 각오, 위대한 무언가가 나를 성장시킨다고 해석한다.
다섯 번째 각오, 역경을 극복하는 지혜는 전부 주어진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역경’이란 실로 성장을 위한 최고의 기회이자 탈피와 비약의 기회이다.
‘지금 위대한 무언가가 나를 성장시키려 한다.’
‘이 역경을 내림으로써 나를 성장시키려 한다.’
‘성장한 나를 통해 대단히 훌륭한 일을 완수하려 한다.’
이런 기회를 다지면 이후 인생에서 부정적인 사건이라는 것은 없어진다. 모든 일이 깊은 의미를 지닌 궁정적인 사건을 깨닫는다.
왜 뜻이나 사명감을 품고 사는 사람은 좋은 운을 끌어당길까?
이유는 분명하다. 뜻이나 사명감을 품고 사는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 ‘위대한 무언가가 나를 인도하고 있다’, ‘위대한 무언가가 나를 통해 무언가를 완수하려 한다’는 감각을 가지기 때문이다.
본래 사명감의 ‘사명(mission)’에는 ‘하늘에서 주어진 임무’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 일찍이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전 세계의 미개척지로 들어가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위대한 무언가가 나를 인도한다’ ‘위대한 무언가가 나를 통해 무언가를 완수하려 한다’는 각오를 바탕에 품었기 때문이다.
궁극의 긍정적 상념을 품고, 인생에서 뜻이나 사명감을 지니고 살아갈 때, 역경을 극복하는 지혜까지도 전부 주어진다고 마음을 다잡을 때, 자연스럽게 좋은 운을 끌어당겨서 신기한 일들이 다양한 형태로 일어날 것이다.
그 신기한 일이란,
첫째, 어떤 감이 느껴진다(직관).
둘째, 문득 미래를 느낀다(예감).
셋째, 기회를 잘 잡는다(호기).
넷째, 우연의 일치가 일어난다(싱크로니시티).
다섯째, 어떤 의미를 느낀다(콘스텔레이션).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이란 ‘별자리’란 뜻의 영단어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보이는 별들은 서로 간에 전혀 관련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별들의 배치를 보며 의미와 이야기를 느끼고, ‘오리온자리’, ‘전갈자리’ 같은 이름을 붙여, 이를 ‘별자리’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콘스텔레이션을 느낀다’는 말의 의미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언뜻 보기에는 무관한 사건이나 만남에서 어떤 의미나 이야기를 느끼고, 그 의미나 이야기에 따라 선택하거나 행동하면 좋은 방향으로 인도된다는 뜻이다.
그동안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통하지 않았는가? 소망의 기도를 올렸는데도 실현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소망의 기도가 마음속에 플러스 상념과 마이너스 상념의 분리를 일으켜서이다. 즉 마음 표면에서는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기도해도 시험에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부정적 상념이 생긴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생기는 이런 부정적 상념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기도가 되고 만다.
기도란 손을 모으고 비는 동안의 상념이 아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늘 존재하는 상념이 가장 강력한 기도가 된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병에 걸리는 게 아닐까?’라는 공포심을 계속 품으면 그것이 실제적으로 매우 강력한 기도가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병을 끌어당기고 만다.
이렇듯 ‘소망의 기도’는 마음속 깊은 곳에 그와 반대되는 상념을 낳고 그것이 진짜 기도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올려도 그 기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핬던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적 상념을 낳지 않는 궁극의 기도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전탁(全託)하는 기도’이다. ‘전탁(全託)’이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맡긴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위대한 무언가의 인도에 맡기고 의탁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나 “이번 거래가 성사되게 해주세요” 같은 기도는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할까?
“인도해주시옵소서.”
이뿐이다! 그냥 이것이 전부이다. ‘전탁하는 기도’란 모든 것을 위대한 무언가에게 맡기고 의탁하는 기도이며, 그 밑바탕에는 다음 같은 각오가 있다.
‘위대한 무언가가 내 인생을 인도하고 있다.’
‘위대한 무언가는 내 인생을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인도한다.’
만약 이 ‘전탁하는 기도’의 결과가 내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온다 해도 이 또한 깊은 지혜를 가진 위대한 무언가의 인도이다. 그 인도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며 주어진 문제나 역경과 똑바로 마주하고 더 큰 성장을 목표로 있는 힘껏 걸어간다면 반드시 멋진 인생으로 인도 받을 것이다.
‘전탁하는 기도’를 매일의 습관으로 삼고
첫째, 위대한 무언가가 내 인생을 인도한다.
둘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셋째,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내게 원인이 있다.
넷째, 위대한 무언가가 나를 성장시킨다.
다섯째, 역경을 넘어서는 지혜는 전부 주어진다.
이 다섯 가지 각오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 인생은 인도 받을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필요할 때 필용한 손길이 내려온다. 그리고 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인생을 살아가다가 ‘필요할 때 필요한 손길이 내려온다’는 사실을 일상적인 일로 느끼게 된다면, 더 이상 ‘좋은 운을 끌어당긴다’는 생각을 하거나 ‘운’이라는 단어를 의힉할 필요가 없는 경지가 찾아온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현상적으로 무슨 일이 있든 원래부터 위대한 무언가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무언가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참 자기’라 불러야 할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진실을 이해할 때 예부터 내려오는 지혜의 말씀이 마음속 깊은 곳에 배어든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 좋은 일이다.”
우리 마음 상태는 그 마음과 공명하는 것을 끌어당긴다. 운을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 좋은 운을 끌어당기길 바란다면 무의식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부정적 상념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마음 자세 전환을 위해,
인생의 습관을 고치고 인생의 해석을 바꾸며 인생의 각오를 다진다는 세 가지 방법으로 풀어나갔다. 그것을 각각 세 가지 습관, 다섯 가지 해석, 다섯 가지 각오로 설명한 것이다.
첫째, 무의식의 부정적 상념을 정화하는 방법
① 첫 번째 습관, 자연의 위대한 정화력에 맡긴다.
② 두 번째 습관, 말에 숨겨진 정화력을 활용한다.
③ 세 번째 습관, 화해의 상념이 가진 정화력을 이용한다.
둘째, 인생의 부정적 경험을 플러스로 전환하는 방법
① 첫 번째 해석, 내 인생에는 성공 경험이 많이 있음을 깨닫는다.
② 두 번째 해석, 내가 운이 좋은 사람임을 깨닫는다.
③ 세 번째 해석, 과거의 실패 경험은 사실 성공 경험이었음을 깨닫는다.
④ 네 번째 해석, 내게 주어진 운 좋은 인생에 감사한다.
⑤ 다섯 번째 해석, 내 인생에 주어진 궁극의 성공 경험을 깨닫는다.
셋째, 궁극의 긍정적 인생관을 체득하는 방법
① 첫 번째 각오, 위대한 무언가가 내 인생을 인도한다고 믿는다.
② 두 번째 각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③ 세 번째 각오,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내게 원인이 있다고 받아들인다.
④ 네 번째 각오, 위대한 무언가가 나를 성장시킨다고 해석한다.
⑤ 다섯 번째 각오, 역경을 넘어서는 지혜는 전부 주어진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더 나아가 보자!
이 책의 사상은 어떻게 하면 부정적 상념, 부정적인 것, 불운한 사건을 부정할 것인가가 아니라, 본래 우리 인생에는 부정적 상념도 부정적인 것도 불운한 사건도 없다는 ‘전적인 긍정’의 사상, 즉 ‘절대 긍정’이다.
'절대 긍정 사상'이란 무엇일까? 바로 원래 우리 인생에는 부정적인 것은 전혀 없다는 사상이자, 인생에서 주어지는 모든 사건과 만남은 아무리 부정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과 영혼의 성장이라는 의미에서 반드시 깊은 의미를 가진다는 사상이다.
우리 인생에는 본래 좋은 운도 나쁜 운도 없다.
‘인생에서 주어진 것’ 전부를 긍정하는 ‘절대 긍정, 궁극의 긍정적 상념’을 익히는 수행을 계속한다면, 자연스럽게 ‘좋은 운’과 ‘나쁜 운’이라는 이항대립의 말도 사라진다. 물론 ‘좋은 운’이라는 말이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가 추구하던 것을 잃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어느덧 진정으로 추구하던 것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있는 궁극의 긍정적 상념 덕분에 인생에서 어떤 역경이 주어져도 그것을 인간적 성장으로 연결하면서 앞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삶 덕분에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인간성, 그 사람들과의 만남 하나하나에 감사할 수 있는 겸허함과 깊은 기쁨, 궁극의 긍정적 상념 덕분에 인생에서 주어진 어떤 사건에서도 깊은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는 지혜, 그 지혜덕분에 살면서 만난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지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감사 그리고 궁극의 긍정적 상념 덕분에 어떤 한계나 억압도 없이 크게 꽃피우는 재능.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던 것 아니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좋은 운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인생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인생 풍경이 바뀐다. 궁극의 긍정적 상념을 품고 바라볼 때 인생 풍경은 빛나기 시작한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인생 풍경은 결국 우리 마음의 모습이 비친 것이므로.
우리가 ‘마음 닦기’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세계로 연결된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개인적 무의식 세계’와 ‘집합적 무의식 세계’를 넘어 ‘제로 포인트 필드’로 연결된 ‘시공간을 뛰어넘은 무의식 세계’가 있다.
그 세계가 바로 인류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이라 불러온 터이다. 그리고 그 세계가 바로 ‘참 자기’라 불러야 할 우리 본연의 모습이다.
우리 인생을 신기한 형태로 인도하는 것은 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당신이 세계이고 세계가 당신이다.
- 크리슈나무르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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