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부활절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제는 자신의 세상이 되었다고 기뻐하였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늘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의 상징인 봄을 보십시오. 황량한 겨울의 들판에 새싹이 돋고 푸른 잎이 나고 꽃이 핍니다. 저는 교회 앞 개나리 꽃과 교회 옆 화단에 있는 목련꽃을 볼 때 마다 부활절이 되었구나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부활절 전후가 되면 나무마다 꽃들이 활짝 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겨우내 바싹 말라 죽은 것 같은 나뭇가지마다 싹이 나오고 꽃이 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봄이 되니까 싹이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나무는 아무리 봄이 되어도 다시 싹을 내거나 꽃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싹이 올라오는 것은 그 나무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부활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활절 하면 무엇이 연상이 되시죠? 바로 부활절 계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부활절 하면 무엇이 연상이 되시죠? 바로 부활절 계란입니다.
부활절 계란을 예쁘게 채색해서 서로 나누어 받는 행사를 하는데, 이 부활절 계란의 유래가 있습니다.
➀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의 직업이 계란 장사였다고 합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잠시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고, 슬퍼하며 집으로 돌아온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닭들이 낳은 알들이 무지개 색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교회에서 부활절에 계란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➁ ‘로잘린’ 이라는 부인은 십자군 전쟁에 남편이 참여하게 되자, 동네에 나쁜 사람들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쫓겨나게 되었답니다. 로잘린 부인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한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로잘린 부인은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마을 주민들에게 보답의 뜻으로 색 달걀을 만들고 그 달걀에 집 가훈을 써서 동네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였답니다.
십자군의 패잔병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들어 죽어가던 로잘린의 남편이 우연찮게 그 계란을 받게 되었는데, 그 계란에는 자신의 집 가훈인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라는 글귀를 써 있는 것을 보고 이 계란을 만든 사람이 자신의 부인이라고 직감하여 힘을 내어 아내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후로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어주게 되는 것이 풍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월 아직 찬바람이 불던 2월 14일 성회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절이 시작하여, 오늘 3월 31일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매년 부활절 계란으로 전도하는데, 올해도 지난주간 교회 1층에 부활절 계란 비치하였습니다. 월요일부터 속회별로 미리 준비하여 달라 부탁하여 하루에 2-3판씩 비치하였는데, 매일 준비한 계란을 다 소비할 정도로 반응에 굉장히 좋았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나면 여러분에게 부활절 계란이 전달 될 텐데 여러분들이 직접 나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전도용으로 잘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부활절 계란을 받으며 기뻐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 안에 생명 있음을 알았기에 사망을 향하여 뭐라고 했습니까?
고전 15:55 /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런데 바울이 사망을 비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부활하시기까지 무덤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난 뒤 부활하기까지 하신 일이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육체는 무덤에 머물러 계셨을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의 영은 옥으로 내려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벧전 3:19 /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런데 예수님이 옥에 가셨다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죽음에 대하여 이해하여야 합니다.
많은 분들은 사람이 죽으면 천국과 지옥으로 곧장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눅 16:22-23 /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그런데 성경에 보면 천국과 지옥이 언제 열리는가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나서 천국과 지옥은 열린다 말씀하십니다.
계 20:11, 15 /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그런데 아직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기 전입니다. 따라서 죽은 영혼들은 낙원이나 음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은 예수님이 영으로서 옥에 찾아가셨다는 구절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게 구원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 오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의 죽음 후에는 다시 구원받는 일이 없습니다. 즉 구원은 우리에게 생명 주신 이 땅을 살아가면 얻는 것입니다.
히 9: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가상7언 가운데 4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 27:46 /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우리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데 옛날에는 기도할 때 자의적으로 기도하지 않고 시편의 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기도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4언의 말씀도 예수님이 자의적으로 기도하셨다기 보다는 시편의 말씀을 암송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4언은 어느 말씀이겠습니까? 시편 22편 1절의 인용입니다.
시 22:1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은 새벽부터 고초를 받으셨기에 이미 기운이 다 소진되어 시편 22편 첫 구절 이상을 소리 내어 읊조릴 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마지막 구절까지 외우셨더라면 확신에 찬 다음 기도로 마무리하셨을 것입니다.
시 22:27-28 /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부활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영광은 반드시 악을 승리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부활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두려움은 없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당부의 말씀을 주십니다.
고전 15:20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 말씀의 핵심은 십자가 사건이 단순히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인류를 품고 죽은 대표적 행위였던 것처럼, 부활도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부활도 개인적 사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부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라고 표현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부활의 첫 열매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부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죽은 자가 살아난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다시 살린 사건,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립니다. 심지어는 죽은 지 나흘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립니다. 그런데 그런 것과 예수님의 부활은 차원이 다릅니다. 숨을 멈춘 사람의 호흡과 생기를 회복시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소생(蘇生)입니다. 그들은 다시 살았으나 다시 늙어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부활은 완전히 다른 현상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고린도전서 15:42-44절에 보면 4가지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고전 15:42-44 /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➀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➁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➂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➃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다시 말하면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는 몸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육체라고 해야 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부활이 일어난 사람은 예수님이 최초입니다. 첫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인 이유는 바로 그 다음절에 분명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고전 15:21-22 /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여기서 언약과 대표성의 원리가 나타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우리를 대표하는데 그가 범죄하여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었지만,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표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인 그리스도 먼저이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주안에서 순교한 자가 부활 할 것이며, 그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되어 주님을 만나게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예고편입니다.
우리도 장차 그분처럼 신비한 몸으로 영원히 다시 살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럼으로 오늘 부활의 아침 세상을 향하여 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반드시 최후 승리와 영광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 것입니다.”
이 기쁨으로 세상 한 가운데서 날마다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한자로 날마다 승리하는 주님의 백성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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