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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터팬데믹(Interpandemic) 기간의 교회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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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인터팬데믹(Interpandemic) 기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팬데믹과 팬데믹 사이의 휴지기를 의미한다.  코로나19가  3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향후 몇 년 안에 다시 닥칠지 모를 가능성 높은 또 다른 팬데믹을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팬데믹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대비와 준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이 때, 코로나19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짚어보고자 한다. 

 

 

1.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로 인한 기후 재앙의 위기에 대한 경고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메르스와 사스,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 바이러스들의 출현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온 세상이 재난의 위기에 처한 시기에 교회가 할 가장 필요한 일이 생긴 것이,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교회가 해야 할 가장 필요한 일'이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12:24)이다. '점점 더 어두워지는 세상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촛불이 되는 것'(5:14-16)이다.

 

재난 속에서 교회는 자기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칠 것이 아니라, 냉철한 상황 판단을 하며 고통 중에 있는 세상을 향해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어설프고 왜곡된 성경 해석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상황 판단을 호도하는 이단들의 거짓 가르침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

 

코로나19로 현대과학 지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길 현대과학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참 지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말씀은 재난으로 곤경에 처한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의료인들과 과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일반은총의 지혜를 통해서 지금의 곤경이 어떤 자연적인 원인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이 곤경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한다.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의료인들과 과학자들은 세상을 구원하고자 일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동역자들이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 기본적인 과학적, 의학적 이해 없이 바이러스 발생 원인을 마귀의 술수나 하나님의 심판으로만 돌린다거나 신앙의 열정만을 가지고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서 발생한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우리 시대 재난의 해결책 강구를 위한 과학적, 의학적, 도덕적, 정치적 노력을 지지하고 도와서, 하나님의 신비를 인간의 편견으로 왜곡하는 불경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자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과 함께,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한국 교회는 다시금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교회는 몰상식적이고 미신적인 사이비 이단들이 아예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기존의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근본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질문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면서, 성경에 대한 성실한 학자들의 연구를 존중하고, 신앙과 교회의 영역 밖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자세를 교회 안에서부터 훈련해야 할 것이다.

전 지구적 재앙의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은 좁은 의미의 교회 중심적인 신앙을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 전체를 품는 우주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창조자 하나님의 선한 뜻이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미래를 소망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우주적 신앙과 소망 아래 교회 안팎의 선한 사람들과 협력하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할 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 거듭나며 세상의 소망이 될 것이다.

 

한편, 인류 역사 속에서 재난의 시절이 되면 언제나 함께 등장했던 혐오를 다시 보게 된 것이 마음을 어렵게 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미국과 유럽 사회가 보여 준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은 매우 빈번하게 보고된다.

 

그런데 두려움이 커질수록 혐오도 덩달아 커지는 것을 보면서,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공동체적 전염병을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구하는 중에, 신약에는 전염병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개인적인 중병에서 병을 앓는 당사자에게 책임 소재를 묻고 비난의 여지를 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신체적 중병과 더불어 자신의 몸에 붙은 죄로 인해 심리적 중병을 함께 앓는 것을 보게 되었다. 죄인이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배제되고 격리되는 제의적 환경에서 나는 죄인이라는 자의식은 때때로 몸의 중병보다 더 심한 고통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쉽고 편하게 이들을 혐오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다. 예수님은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책임을 찾아내지 않으시고, 질병에 걸린 이들을 언제나 순전한 피해자로 대하셨다. 그리고 이 순전한 피해자들을 향한 그분의 마음은 긍휼,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예수님은 쉬운 증오나 혐오보다 어려운 긍휼을 택하셨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감이 쌓여가면서 사회는 분노의 조짐들을 곳곳에 쏟아낸다. 감염자의 무책임한 행동에 적정 수준을 넘어선 화를 분출하기도 한고, 타민족을 비롯하여 특정 지역이나 그룹에 대한 혐오를 필요 이상으로 발산한다. 그 어떤 대응이든 혐오를 동반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어려운 때일수록 주님의 마음을 확인하고 우리 안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2. 코로나 이후 한국 교회가 남겨야 할 것과 발전시켜야 할 것, 그리고 제거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가? 

 

인류사에서 대부분의 시대 전환은 변화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면서 균열하는 체제를 낡은 관습이 힘겹게 둘러 싸매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외부의 충격으로 관습이 해체되고 체제가 붕괴하는 방식으로 도래했다. 중세의 균열은 신앙의 힘으로 긴 시간 봉합을 시도해 왔지만 흑사병이라는 외부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면서 가속화됐고, 그렇게 르네상스가 열렸다. 19세기 유럽 팽창주의의 위험성도 벨에포크(Belle Epoque)의 화장술로 감춰지는 듯했지만 양대 세계대전을 막아내지는 못했고 유럽 팽창주의가 붕괴하고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시대가 열렸다. 시대 전환은 시간적 패러다임의 교체로 나타나기도 했고 공간적 패권주의 이동을 초래하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도래하는 위기 앞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대정신의 교체가 요구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바꿔 놓을 세상, 즉 포스트 코로나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 기존의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일까? 그렇다면 새로운 것은 한 번도 도래하지 않은 세상일까?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순환일까? 그리고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에 적극 올라타야 하는가? 그렇지 않고 저항해야 하는가?

 

인류가 방역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동안 수십 년 이래 가장 깨끗한 지구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아프니 지구가 건강해진다는 환경의 역설을 여기저기서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산업 정책에 대해 반성의 기회를 가지고 적극적인 친환경적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조금만 억제하면 환경은 바로 화답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하였으니, 교회는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거의 강제적으로 내몰리듯 늘어난 재택근무와 화상수업은 산업과 교육 분야에서 인간의 공간 활용에 대한 재고의 기회를 제공했다. 분명 우리는 산업현장에서 필요 이상의 공간을 낭비하고 있다. 교육 현장, 특히 고등교육을 위한 도시 공간 점유는 우리 사회에서 과다한 특혜였다.

 

유래 없는 종교 활동의 온라인 활용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종교는 정치, 교육과 더불어 공간적 특혜를 가장 많이 받아온 분야다. 위압적 공간으로 교세를 자랑하는 종교관은 중세 이래 전혀 변화가 없는 전통이다. IT 분야의 발전으로 가상공간이 물리적 공간을 일정부분 대치 또는 보완할 수 있다면 그것은 4차 산업의 긍정적 효과이고 포스트 코로나의 긍정적 측면일 것이다.

 

코로나19로 힘들어 하는 성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나 자신부터 깊은 영적 수련을 하다가, 명상(瞑想, meditation)을 알게 되었다. 명상은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에서 뜨거운 감자이다. 명상은 기독교 전통에서 보면 경계해야 할 면이 많다. 그래서 나 자신부터 명상을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다가 종교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명상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명상은 바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집중하여 의식의 중심으로 모으고, 마침내는 내면에 흐트러짐이 없는 마음의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공간에서 쉬기도 하고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며, 혹은 영성적인 주제를 살펴보기도 하는 것이다. 영성은 명상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에 서양에서 불고 있는 명상 열풍은 종교적 색체를 떠나서 의학계와 심리학계의 치료적 접근법을 포함하여 명상의 과학화와 명상의 생활화가 대세를 이루는 실정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부는 명상의 열풍은 서양에서 부는 명상에 대한 열풍을 역수입해 명상 수행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명상에서 관심을 가지고 주로 다루는 영역은 마음챙김(mindfulness)과 알아차림(awareness), 잠재력, 특히 창의성 계발, 스트레스와 우울증 치료 등 마음의 평화와 관련된 부분들이다.

 

명상에 대한 정의는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명상에 대한 공통적인 견해는 종교와는 관계없이 명상은 삶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명상을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고 있다. 다만 자신들이 지금 명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지치고 피로하면 쉬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지치고 힘들면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쉰다. 긴 한숨은 일종의 심호흡이다. 명상에서는 심호흡을 좀 더 의식적으로 수련할 뿐이다. 어떤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꼭 철학자나 사상가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기의 관심거리에 대해 모두 진지하고 바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모두 사실은 명상을 알게 모르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명상은 다만 좀 더 진지하고 전문적으로 쉬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 목회상담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하워드 클라인벨(Howard Clinebell)은 명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명상은 자신의 의식을 침묵하게 하여 중심으로 모으는 방법이며, 또한 심리학적으로 명백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다.”

나는 명상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여 고요히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사물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면서 나 자신을 온전히 알아가는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치유를 경험하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게 되는 은총을 입게 될 것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자신을 맡기고 모든 세상 염려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묵상이다. 이것을 성도들과 나누려고 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모든 것을 머리의 차원에서 해결하고 거기에 머무르고 마는 경향이 있다. 머리의 차원에서 마음의 차원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학문도, 인간관계도, 종교도, 심지어는 명상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머리의 차원에서 마음의 차원으로 옮겨야 한다. 명상의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는 머리의 차원에서 마음의 차원으로 녹여 들이는 것이다. 먼저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깊은 호흡을 할 때, 호흡이 단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깊은 호흡은 잠들어 있는 내면세계의 평온감과 주의집중력을 발달시키는데, 이에 수반되어 일어나는 감각을 느끼면 영성이 깊어지고, 이것은 다시 치유와 변화로 이어진다.

 

내면에 흐트러짐이 없는 마음의 공간이 형성될 때 편견을 내려놓고 어떤 것을 바라보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좀 더 정확하게 그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 즉 바라보는 사물이나 생각 등의 본질에 대해 좀 더 깊은 차원에서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고요한 마음의 공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프로이드와 융의 이론도 보고, 나 자신의 성격도 본다. 그러면 좀 더 분명하게 보인다. 분명하게 보이면 변화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명상을 통하지 않고서는 변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성직자의 설교나 현자의 가르침이나 심리학자들의 치유의 이론이나 유명한 학자들의 강연 등이 변화의 씨앗은 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그 씨앗들이 명상 속에서 싹이 터야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을 나는 깨달음 혹은 성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깊이 묵상하지 않는 종교, 명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심리치료는 성숙과 성장으로 가는 데 한계가 있다. 성장하지 않고 성숙하지 않으면 변화하기 어렵다. 영성의 속성 중에 하나는 변화이다. 그 영성을 담아 싹을 틔우는 그릇이 바로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와 명상으로 깊은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

 

또 다른 큰 그림으로,

내가 섬기는 교회와 사역자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급격히 변화된 목회 환경에 위기를 느끼고, 올바른 신학적인 길을 찾으며,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하고,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교회 예배에 나오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집에서 신앙 생활하도록 돕기 위해 <방구석 성경학교>2020624일 개교하였다. “교회중심의 신앙을 지켜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정중심의 신앙으로 세워주기 위해, 아이들이 방구석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계획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시련에 약하다'라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를 이길 '마음의 힘',

'믿음의 힘'을 키우도록 하기 위해, 이천년 동안 다른 민족의 박해를 받으며 이곳저곳 떠돌아 살면서도 늘 가지고 다닌 수 있는 재산인 '지식과 지혜'가 최고임을 알고 가정에서 교육했다는 유대인의 가정교육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일주일에 다섯 번씩 띄워주었다.

 

온라인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기간에, 주중에도 말씀을 읽고 부모님과 질문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하면서, 말씀을 배우는 시간을 가질 때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제공하였다.

 

성경 핵심 120가지를 성경을 읽으며 배우고, 집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활동을 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유튜브로 들을 수 있는 찬양을 BGM으로 틀고 활동하도록 찬양곡도 추천해 주었다.

 

직접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서 부모에게 신앙 교육 소스(source)를 제공하여 아이들에게 가정 신앙 교육을 하는 목회를 해야 할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는 재택근무와 온라인 교육으로 모든 것을 바꿔놓은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학교 선생님 역할, 교회 목회자 역할을 모두 해야 하는 것이었다.

 

책 읽고, 질문하고, 토론하며 부모가 자녀의 생각을 키워주고 넓혀주는 일, 창의적이면서도 책임감 있는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일, 코로나 시대에 부모의 몫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웨슬리의 자비의 삶을 본받아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지역공동체 운동을 실시하여 시대의 부름에 임하기를 원하였다. 섬기는 교회에영화 상영회를 하고, 지역 내 다양한 영역에서의 아동 프로그램(독서 테라피 보드 게임 전통놀이 클레이 영어 그림책 원예 과학놀이 냅킨 인성 예술분야 지도)과 더불어 성인 독서모임을 진행하였다. 인문학 강좌와 문화체험 교실도 열었다. 앞으로도 함께 살아나는 지역과 교회가 되기 위해, 이 분야를 더 활성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와 교회가 마음의 힘을 기르도록 '운동'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달리기는 호흡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운동이자,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호흡에 귀를 기울이며 긴 호흡, 고요한 호흡으로 살아간다면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러너(runner)들은 달리다가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까지 다스려 정신적&영적 세계를 저절로 경험한다.

 

아울러 시련을 이기도록 돕기 위해 마이너스(-)를 메꾸는 삶이 아니라 플러스(+)를 쌓는 삶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하고 싶은 일을 여유롭게 해나갈 수 있는 금전적인 풍족함이나 육체적 건강이나 심리적인 강인함을 가질 수 있도록 성도들이 자시 앞에 있는 시련이 그동안 자신의 몸에 밴 '쓰는' 습관에 의한 것인지 점검하도록 도울 것이다. 시련 앞에서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멘탈 트레이닝을 하도록 방법들을 모색할 것이다. 성도들이 일상생활이 평화롭고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자신에게 필요한 감정, 재정, 건강을 버는 삶을 향해 자율적인 노력을 하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사람들이 격리된 결과, 사람들의 마음이 우울하고, 특히 어린이들의 마음이 병들었을 때 상담을 많이 하게 되었고, 부모라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불평하기보다 빨리 코로나19 이후 세상을 이해&분석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도록 하고 아이들이 이 시련을 넘어가도록 감정과 생각에 '이해'라는 징검다리를 놓아주도록 서로 도왔왔다.

 

이해는 주어진 사물의 실체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해력을 기르면 놀라운 생각과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이해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 공감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해력은 생각하고 배우고, 또 남을 배려하는데 필요한 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경 말씀과 오디오북의 좋은 내용들을 스마트폰에 띄워주어,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들을 모색하도록 도왔다. 무엇인가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도록 격려하였다.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도록 격려하였다.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바른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도록 격려하였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라는 말씀처럼, 기존의 생각의 틀로는 대응할 수 없는 일들을 '유연성'을 가지고 대처하도록 도울 것이다.

 

유연성은 변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말한다.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한다. 유연성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면 창조적인 길이 새롭게 열린다. 또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을 익히게 된다. 유연성은 우리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도록 도와준다.

 

코로나 이전에도 기독교를 믿는 젊은이들이 줄고 특히 아이들이 줄어갔다. 코로나를 계기로 언컨택트(uncontact) 시대가 자연스러워졌다. 교회가 어떤 형태로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해야 할까?

 

지역 독거노인들께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지역 아동들을 섬기는 일을 실행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지역 아동센터를 운영하여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며 하나님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독거노인 가정에 반찬 제공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담 분야의 공부를 활성화하여, 사회관 등을 운영하며 가정 사역 프로그램이나 상담을 전문적으로 제공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은 자살 공화국이라는 명칭이라 부를 정도로 많은 이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자살의 원인에는 단순한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원인이 있다. 이러한 자살에 대해 현 교회는 자살에 관해 기독교 윤리학, 심리학, 상담학, 사회학 등의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을 해 보고 오늘 이 한국 사회에서 자살이 무엇을 의미하고 교회적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돕는 자의 자리에 나아가도록 하겠다.

 

또한 지금 구상하고 있는 것은, 다문화 사회에 관심을 갖고 다문화 사역, 다문화 선교에 관심을 갖고 교회의 역할을 찾아보겠다. 결혼 이주 여성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가 그들의 어려움에 동참하며, 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여 그들을 속회 공동체에 초대하겠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공간과 사람이다. 목회자가 열린 마음으로 성도와 함께 자비의 삶을 훈련하면 양질의 인적 구성원을 사회로 배출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과제를 하며 생각해 본 것인데, 일인 NGO 만들기, 일인 후원, 한 가정에 NGO 하나씩 후원하기 등을 실천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가정이 먼저 행복하고, 그 행복을 바탕으로 교회가 지역사회의 행복발전소가 되는 길이 전도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언제나처럼 주님의 손길로 행복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는 것이 전도의 지름길일 것이다.

 

3. 온라인 예배와 오프라인 예배에 대한 나의 견해를 말해보겠다.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가장 큰 논쟁 가운데 하나는 예배였다. ‘예배를 꼭 교회에서만 드려야 하는가?’라는 도전적 질문이 기독교 역사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유구한 전통을 배경으로 삼은 모이는기독교 예배는 이런 질문을 소멸시켜 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인간의 생존적 상황은, 여기에 대한 신학적 토론이 완성되기도 전에 새로운 예배의 생태계를 형성시켜 버렸다. 그래서 어떤 깊은 고민이 성숙되기 전에 상황을 따라가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편으로 흩어져서드리는 온라인 영상예배가 대세인 상황으로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이 논쟁 자체는 아직 결론지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 예배 공동체에 예배를 꼭 교회에서만 드려야 하는가?’라는 종류의 질문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하나님아버지는 신령하고 진정한 예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모이는 예배든지 흩어지는 예배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는가?’ 이제 기독교 예배는 이러한 영적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하며 대부분의 교회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며, 정해진 시간 함께 모여 드리던 예배를 가정예배로 전환하는 전무후무한 경험을 우리는 하였다. 박해의 시대에도 순교로 믿음을 지켰던 전통을 두고서 주일 예배까지 가정예배로 드리다니, 누가 이런 일을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처음 주일 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리던 날, 텅 빈 예배당을 바라보는 마음은 힘들고 무거웠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한다. 끈질기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은총은 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늘 예수님을 찾는 예배,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나 무엇을 할 때나 예수 이름을 부르는 성도가 되게 할 것이다. 그럴 때 칭의들을 경험하게 되고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 '길'이 날 것임을 확신한다. 그 길에서 '감'을 잡으면 어느 날 갑자기 성도들의 심령 가운데 불이 떨어질 것이다. 그 때부터는 성령이 우리 모두를 떠나지 않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확고한 칭의의 단계에 들어가면 불이 붙고 우리 심령 가운데 불길이 일어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바로 성령의 확증이 있는 것이다. 신앙은 결코 막연하지 않음을 교회 공동체와 나눌 수 있는 날이 이제 왔다.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는 이들과 성경에서 제시해 주는 은총의 수단을 매일매일 나누도록 교회를 구성하고 있다.

 

'매일의 삶'은 하나님의 영원과 만날 수 있는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나와 내가 섬기는 교회 역시 하나님의 은총 속에 거하며, '매일의 시간'을 '거룩한 시간'으로 살아가도록 하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다시 부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본래의 목적이란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늘가는 길(=복음)을 지향할 때 참된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성령공동체여야 한다.

교회는 하늘가는 길이 체질화 & 내재화 되도록 연습하는 연습장이다.

 

교회 공동체의 삶은, '신실한 믿음을 가진 이들의 모임'을 통해 '순전한 말씀 선포가 이루어지며' '올바른 성례전이 집행되어야 한다'는 전통이 있다.

교회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교회는 중요한 은총의 수단 중 하나로, 이 교회에서 사람들이 경건의 삶과 자비의 삶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하며, 이로 인해 성령의 열매들(거룩한 성품들)을 맺도록 하고, 마침내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를 기회(?) 삼아, 교회 전통을 넘어선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았다. 활성화된 유튜브 방송의 형식에서, 서로 댓글을 주고받으며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부모들이게 필요한 콘텐츠 영상을 찾아 함께 공유하며 비대면의 일상생활에서 영성훈련과 마음 챙김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말이다!

 

이제 다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고, 식탁 공동체로서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4. 교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느끼며 그것에 따른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기존의 교회 모델과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맞춰 교회의 목적과 방향성, 운영 방식 등을 조정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교회가 더욱 현대적이고 관련성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문화와의 연결: 교회는 문화와의 연결을 강화하여 사회와 교류하고 신앙을 살아가는 방식을 현실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문화적 변화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응을 통해 교회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사려된다.

 

  참여와 협력: 교회 패러다임 변화는 성도들의 참여와 협력을 중요시하여, 교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들이 교회의 의사결정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를 조성해 나아갈 때 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예배 형식과 의식: 교회 패러다임 변화는 다양한 예배 형식과 의식을 도입하여 성도들의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관습적인 예배 형식 외에도 참여형 예배, 현대적인 음악 예배, 창작 예배 등을 도입하여 성도들이 예배를 더욱 의미있고 관여할 수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현재 많은 교회들이 예배 형식 외에도 다양한 혁신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 교회 패러다임 변화는 디지털 기술의 활용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온라인 예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도구, 소셜 미디어 등을 활용하여 성도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강화하며, 온라인 공간에서도 신앙 생활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교회의 사역과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다.

 

커뮤니티 서비스: 교회가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복지 프로그램, 재난 구호 봉사, 건강 관리 프로그램, 교육 지원 등을 실시다. 교회는 사회적인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지역사회 내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랑과 봉사의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

창업 지원: 몇몇 교회는 성도들이 창업하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창업자들을 위한 교육 세미나, 컨설팅 서비스, 자금 지원 등을 제공하여 교인들의 경제적인 성장을 지원하고, 사업을 통해 직업적인 사역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청년 사역: 교회는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사역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한다. 청년들을 위한 예배, 새로운 모임 형식, 청년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 사회적인 활동에 대한 참여 등을 통해 청년들의 관심과 요구에 부응하며, 신앙적인 성장과 지속적인 사역 참여를 도모해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교회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활용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성도들 간의 온라인 그룹, 온라인 예배, 온라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교류와 소통 등을 통해 교회 구성원들 간의 연결을 강화하고, 신앙적인 자원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교회는 신앙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해야 한다. 성경 공부, 신앙 개발 세미나, 육성 과정, 가족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성도들이 성장하고 신앙적인 영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들은 교회가 변화하는 사회와 시대에 대응하고, 성도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충족시키며, 신앙 생활을 지원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교회는 사회적인 영향력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교인들의 성장과 사역 참여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속적인 학습과 발전: 교회 패러다임 변화는 지속적인 학습과 발전을 추구한다. 교회 리더십과 구성원들은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회 패러다임 변화는 교회의 생명력과 영향력을 유지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는 교회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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