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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2020년 청년들과 나눈 이야기...)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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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IOaqMpLtfA

 

 

소중한 이들에게, 가장 귀한 것을 선물🎁로 주고 싶은 것이 나의 마음이다...

 

그런 나의 마음이 다 배어나오지는 못하였지만...

 

사랑하는 사당중앙교회 청년부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일 수 있겠지요... 모두 재주꾼들이라,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 중의 하나일 거예요.

 

모든 인간에게 가장 큰 관심은 아마도 건강,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물질, 가족 & 동료들을 비롯한 타인들과의 관계 같은 것이겠죠.

 

150편으로 기록된 시편만 보더라도 인간이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간구하는 것은, 바로 건강의 문제, 물질의 결핍 문제,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의 문제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건강, 물질, 인간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무척 중요하죠...

 

그런데요, 오늘은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먼저 다루어보려고 해요. 종교 이야기요...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의 말을 인용해 볼게요.

 

폴 틸리히는, “인간이 어디에 궁극적인 관심을 가지느냐가 그 사람의 종교다!”라고 이야기했어요. 궁극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죠? 궁극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끝’, ‘더할 나위 없는 지경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폴 틸리히의 말에 따르자면, 자신이 가장 마지막까지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사람의 종교가 된다는 뜻입니다.

 

명예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명예가, 건강이 제일 관심인 사람에게는 건강이, 돈이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는 돈이, 그 사람의 종교라는 말이죠.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나 신념체계를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이 종교가 될 수 있구요.

 

하지만 우리들이 통상적으로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에 대한 궁극적인 관심이 진정한 의미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종교에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기독교에서의 핵심은, 궁극적 실재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도 계시지요? 방금 이야기한 폴 틸리히처럼 종교를 궁극적인 관심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그분들도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해요! 왜냐 하면요, 무신론자들도 모두 다 자기 나름대로의 궁극적 관심은 있으니까요...

 

사당중앙교회 청년들에게 예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번 이야기 해보죠.

 

만일, 성경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한 채, 그저 말씀을 암송만 하고 있다면 그건 마치, 핸드폰은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핸드폰 사용 설명서를 외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사과를 먹어 본 적도, 직접 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 사과에 대한 설명을 외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구요...

 

청년부 여러분! 혹시... ‘여호와를 맛본다는 표현이 성경에 있을까요? 있다구요? 맞아요, 있어요!!!

 

시편 34편 8“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어요~~~

 

마치 바나나를 맛보고 나면 바나나 맛에 대해 아는 것처럼, 하나님을 맛보아 알라는 것이죠!

 

그런데요... 하나님 체험이란 내가 의도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셔야 가능해요. 하나님이 친히 어떤 이와 더불어 친밀한 사랑의 교제와 하나 됨을 이루시고, 그의 마음을 높이 들어 올려주셔야, 하나님의 빛과 사랑 안에서 그분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편에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체험은 하나님 소관이니까 그분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하는 것이 옳을까요?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만 하는 것은요?

 

하나님이 만나주시면 만나고 아니면 할 수 없지 뭐...”라고 해야 할까요? ............

 

하나님 체험을 하기 위해 인간 편에서는 무슨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 첫 발자국 떼는 법을 오늘 이야기해 볼게요.

 

유대인들의 지혜의 말들 가운데, “신은 자신을 어디에 숨겼는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인간의 마음 안에!” 라는 대화가 나와요. 마음 안이라고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신을 찾고 정작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찾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인간이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다는 것, 우리가 많이 나누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을 의식하며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알고 있지요. 무슨 말인고 하니, 불안한 생각이나, 강박적인 성향, 우울한 느낌 등을 가지게 되면, 그런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데요.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어요. 이것은 나의 겉 사람일 뿐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나’,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나는 겉 사람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의 참된 모습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내면에서 추한 모습이 올라오면 그런 자신을 자책하거나 죄책감에 놓아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더 큰 자아가, 작고 못났다고 자책하는 자신을 공간을 둔 채로 바라보며 그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 필요해요.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시작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추하고 못난 겉 사람의 모습, 여러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이 바로 라고 여기며 그것을 곱씹고 빠져나오지 못하고 힘들어 하며,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구요. 반대로 모든 어려움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도 있구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프로그램 되었기 때문에요.

 

청년부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고 자신의 마음을 고요하게 할 때 자신의 안을 들어다 보게 되는데, 그 때 인간의 ’, ‘’, ‘중에 자신의 영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 먼저 우리가 할 일은, 혼과 육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우리의 영을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의 수많은 생각들과 그로 인한 감정들, 시각 미각 청각 후각 촉각, 오감이 습관적으로 느끼던 것에서 관심을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에 의해 작동되는 육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것에서,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시면서 우리 안에서 일하심에 관심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 오늘은 영이 드러나기 위해 일 단계 훈련을 해봅시다. 지금부터 어떤 판단도 중지, 어떤 평가도 STOP해 봅시다. 지금 자신 안에, ‘누가 나에게 함부로 말해서 속상하다, 왜 엄마가 내 편을 안 들어주고 동생 편을 들어줬지? 밉다!’ ‘내일 내 연인을 만날 수 있다, 좋다!’ 이런 모든 것들을 STOP하는 거예요!

 

나의 좋다 싫다 예쁘다 밉다 속상하다 화난다 이런 느낌, 감정, 오감 다 내려놓고 그냥 나의 존재 ‘I am’, 그 자체로 있어보는 거예요!

 

여태껏 우리는 시공간 안에서 계속 무언가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차별해 왔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자기 자아, ego로부터 자기Self를 볼 줄 알아야 해요. 생각, 감정에 막 흔들리고 어리고 못난 자기 ego, 하나님이 처음 만드셨을 때의 존재의 원형, 더 큰 자아 Self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어린 ego를 또 다른 나의 큰 자아 Self가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봐 주는 거예요. 지난 주에 영상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의 작은 자아가 Up and down하는 움직임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렇게 Up and down하며 움직이고 요동치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런 ego로부터 떠나서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이면 Up and down하는 것을 멈출 수도 있어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에 그냥 빠져 있지 않고 하나님 말씀 따라 나올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어떤 생각이나, 감정, 오감이 느껴질 때, ‘예수여하고 부르며 그 상황에서 물러나 보세요.

 

과거에 힘들었던 것에 대한 여러 생각들, 과거의 기억으로 솟구치는 많은 감정들이 솟구칠 때, “예수여하고 그 이름을 부르세요!

 

생각, 감정을 곱씹고 있지 마세요. 곱씹을수록 점점 더 그 생각에 빠져들면서 그 생각, 감정이 나 자신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니까요. 미래에 대한 염려, 불안, 두려움이 밀려올 때 또 예수여하면서 거기로부터 한 발자국 떠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I am OK.”“나 괜찮아!” 하는 거예요!

 

우리 편에서 스스로 이런 영의 훈련을 한 걸음 떼고 있으면...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깊이 만나주시는 역사를 시리즈로 펼쳐내실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꼭 얼굴을 마주하며 말씀을 나누고 싶네요. 건강하세요!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더욱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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