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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속죄제의 의미(레 4:1-12), 주일 예배 설교문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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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제의 의미>

 4: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되

화목제 제물의 소에게서 떼어냄 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통로입니다. 하나님과의 구체적인 만남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예배중에서 속죄예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속죄예배는 죄 때문에 생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예배입니다.

 

1. 속죄제가 필요한 이유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범죄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과녁을 빗나갔다”는 것입니다. 궁사가 활을 당겨서 과녁을 향해 쏘았습니다. 그러나 과녁에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범죄하여”라는 말은 나름대로 한다고 하다가 실수한 것을 말합니다. 자기 딴에는 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본문 2절을 보면 “그릇 범하였으되”라고 했고, 그리고 27절을 보면 “부지중에 범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자기도 모르는 중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무심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속죄제는 우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코 죄를 범했을 때 사함을 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성경이 말씀하는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속죄제는 이런 연약함 때문에 생긴 죄를 용서 받기 위한 예배입니다.

 8:26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속죄제라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어서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2. 누가 속죄제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레위기 4장을 보면 속죄제는 복잡합니다. 신분에 따라서 제물도 다르고 제사의 방법도 다릅니다.

 

제사장

3 /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회중

13 /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족장

22 / 만일 족장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평민

27 /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여기 보면 모든 사람이 속죄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거룩함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분에 따라 예배를 드린 다는 것이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제사장이라든가 족장이라든가 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더 큰 책임과 더 큰 거룩함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어떻게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가?

 

첫째, 제물을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옵니다.

 

4 / 그 수송아지를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제물은 반드시 회막 문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러 나아오는 자리입니다. 예배당은 사교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도 화목 제물과 같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회막문에서 죽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죽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교제란 불가능 합니다. 내가 회막문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회막문에서 내가 죽는 다는 것은 내가 추구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기 시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내려놓기 시작하면 주님이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와같이 속죄제란 죄인인 내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그의 자녀로 격상되는 엄청난 영적 교통이 일어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제물을 안수하고 죽입니다.

 

29 / 그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요

 

안수의 의미는 자기 죄를 제물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손을 얹으며 봉헌자는 빠르게 자기 삶을 돌아볼 것입니다.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잊고 있었던 자기의 허물과 죄가 주마등처럼 스쳐갈 것입니다. ', 내가 이렇게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구나'. 뒤돌아보면서 참담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이 지금까지 지은 죄를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앞에 내가 서라는 것입니다. 예배란 바로 이런 마음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행위, 다시 말해 죄를 회개하는 행위가 없이는 속죄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때는 희생의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회개하는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만 “향기로운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제물의 피를 성소에 뿌립니다.

 

6-7 /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1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2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3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속죄제의 피뿌림은 3개의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1단계는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리는 것입니다.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휘장을 가르고 지성소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휘장 앞에 일곱 번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휘장은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휘장 앞에 피를 뿌린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지은 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51:4 /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2단계는 제사장이 휘장에 일곱 번 피를 뿌리고 한 발짝 물러나서 향을 피우는 금향단의 뿔에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향단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3단계는 남은 피를 성소 밖에 있는 번제단 밑에 다 쏟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자신을 다 드리는 희생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속죄제는 피가 있는 제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의롭지 못한 자가 의롭다 칭함을 받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되고,

생명의 유업을 함께 얻을 자리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축복이 어디서부터 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10:19-20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이 나를 향한 사람의 피를 흘려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죄악의 길을 여전히 걸어가 영벌로 끝날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나를 향한 끝없는 사랑입니다.

그럼으로 내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반드시 통과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의 보혈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과할 때 비로서 우리는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도 그리고 다시 부활할 것도 마침내 영생을 얻을 것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네째제물을 불에 태워버립니다.

10 / 화목제 제물의 소에게서 떼어냄 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속제의 제물이 대신 죽은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십자가 죽으심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내가 드릴 나의 목숨을 예수님이 다 내어 놓으신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드리되 피 한방울 물 한방울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온전히 드렸습니다. 십자가라는 엄청난 시련과 고난 앞에서 예수님은 마치 어린양처럼 하나님께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배가 단지 물건을 드리는 행위로 변질 되고 말았습니다.

예배가 단지 예물을 바치는 데서 끝나면 안됩니다.

예물을 바치는 행위도 반복되다 보면 '틀에 박힌 일' 이 되버리고 맙니다.

 

이사야는 삶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제사에 꾸짖고 계십니다.

 

 1:11-12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입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격을 그분께 봉헌하고 있습니까?

삶으로 그분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삶을 세상 욕망을 위해 불태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위해 불태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바치며 행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재물을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라 파묻습니다.

 

11-12 /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

 

사실 속죄제는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이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14 /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이것이 죄다’ 하고 알고 저지른 죄라면 죄의식이 깊이 작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 지으려다 지은 것이 아니고, 남에게 큰 피해 준 것도 아니고, 대부분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나만 알거나 또 어떤 경우는 나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는 죄일 경우 그것을 죄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 그렇고 그런데 라는 마음이 들면 자기가 지은 죄를 죄라고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해 졌기 때문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죄를 저질러 놓고도 그것이 죄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동상 걸린 발가락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참회하자고 하면 막연히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의례적으로 참회합니다. 주님께서 그래 무슨 죄를 용서해 줄까? 물으시면 답변하기가 곤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죄에 민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죄를 범하고 있는지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아시는데 나는 모르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속죄의 예배를 통하여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마치 이것은 시체를 파묻듯이 바깥으로 가지고 나와 파묻습니다. 영문밖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시신이 땅 아래 묻히셨습니다. 속죄제물이 재가 되어 묻힌 것은 결국 내가 죽은 것입니다. 이제는 옛사람이 나오지를 않도록 단단히 묻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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