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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 - 신구약 중간기 ① -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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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시대를 대표하는  정복왕 알렉산드로스

하나님의 역사

 4: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말라기 2 5절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생명을 주시고 평강을 얻게 하려고 주신 거예요.

 

하나님아버지는 늘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십니다.

 

말라기 4 6절을 다시 봅니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질투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한 영혼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아버지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질투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현으로, 생명으로 인도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라기를 통하여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무엇이 진짜 믿음일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알고, 나도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랑을 따라가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말씀이 믿어지기에,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상황이 좋던 나쁘던 그것에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아버지의 나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내가 이제 알기에, 어떤 상황에도 아버지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알기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라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주께서 언제 저희를 사랑하셨나이까?" 고함치는 백성들을 보게 됩니다. 그 후 400년 동안 침묵하시다가 내어 놓은 답이 예수님입니다.

 

구약성경 말라기서가 끝난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때까지 약 400여 년의 시간이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이 시간을 가리켜 우리는 신구약중간사라고 말합니다이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4가지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

 ② 헬라제국의 시대

 ③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150년 전쟁

 ④ 이스라엘 국내적으로는 하스몬 왕가와 헤롯 왕가의 등장

 

신구약 중간기를 통하여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어떠했는가?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어야 했는가?  

 

이 두 가지 논제를 바르게 이해할 때, 비로서 우리는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1. 페르시아의 멸망

 

영상 페르시아의 멸망의 배경

 

기원전 356년에 필립 2세는 에피루스 출신의 올림피아스를 아내로 맞아, 아들 알렉산더를 얻게 되었습다. 알렉산더가 13세 되던 때 필립은 아들의 지혜가 자신을 능가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뛰어난 말이지만 다루기 힘든 말(무세팔루스)을 알렉산더가 쉽게 다루는 것을 목격하였기 때문이지요. 이 때 필립은 알렉산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너의 야망을 펼치기엔 마케도니아가 너무 작다더 큰 왕국을 찾아라.

 

필립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아들의 교육을 맡깁니다. 훗날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생명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주었고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 필립 2세가 왕의 근위병에 의해 암살되고 난 뒤, 아들 알렉산더가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페르시아를 점령하기 위하여 출병합니다.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넌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4만 명 군대와 그라니쿠스 강에서 격돌합니다.

그림 세계지도

 

알렉산더를 애송이라고 얕잡아본 다리우스는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신임하는 멤논 장군을 보냈습니다. 멤논 장군은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인 그라니쿠스 강을 전투지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알렉산더가 전쟁터에서 무모한 일을 벌입니다. 빨간 혹은 하얀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쓰고 진두 지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군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위험이 늘 있는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그라니쿠스 강을 말을 타고 건너가 페르시아 군과 싸우러 갑니다.

알렉산더는 기병대를 이끌고 상류를 건너 우측에서 적군을 공격합니다.

무모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알렉산더가 직접 앞에서 지휘했기 때문에 공격의 대상이기도 하였지만, 아군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장이 앞서 나가기에 부하들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습니다.

 

알렉산더의 돌진으로 그라니쿠스 강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마케도니아군은 페르시아군의 중심 대열이 약해진 틈을 타서 강을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페르시아 군대는 마케도니아의 창병부대와 알렉산더가 이끄는 기병대의 대담한 공격에 못이겨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333 11월 피나루스 강을 사이에 두고 이수스 지역에서 다리우스는 다음 번에는 자신이 직접 페르시아군을 지휘하여 알렉산더군을 무찌르려 합니다.

 

다리우스는 지중해 해안가에 기병대를 배치하고 언덕의 측면에 보병을 배치하여 알렉산더 부대를 포위하려고 했습니다. 알렉산더는 좌측에 파메니오 장군이 이끄는 보병을 배치하였는데, 페르시아 진형을 살핀 후에 좌측에 연합군 기병대를 더 배치하여 페르시아의 기병대에 맞서게 했습니다.

 

그림 이수스전투

그림 456

 

전투의 초반과 중반은 마케도니아 군대로서는 힘겨운 전투였습니다페르시아 진영 한 가운데로 진군한 마케도니아의 부대는 포위되어 맨주먹으로 싸워야 했어요거친 지형으로 인하여 마케도니아의 창병부대와 보병들은 육박전을 통해서 버텨야만 했습니다.

이때 알렉산더의 기병대가 다리우스의 전차를 향해 돌진을 시도했어요. 허벅지에 상처를 입을 정도로 맹렬한 돌진을 하는 알렉산더의 기병대에 놀란 다리우스는 줄행랑을 쳤고, 이수스 전투는 알렉산더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수스 전투 이후 알렉산더는 포로들 속에 다리우스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직 미혼인 두 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다리우스 왕이 전쟁터에서 전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알렉산더는 그들에게 다리우스가 죽지 않았다고 알려주면서 그들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수스 전투를 통해서 알렉산더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 이끄는 가장 강력한 군대를 무찌른 자가 되었습니. 이후 다리우스 왕은 알렉산더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몸값을 줄테니 포로를 석방해 달라는 요구와 함께, 유프라테스 서쪽과 딸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인은 페르시아의 장부들을 물리치고 다리우스 왕과 당신이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까지 물리쳤다이후 내게 할 말이 있으면대등한 어투를 쓰지 말고 아시아의 왕에게 하듯이 하라당신 소유의 것은 모두 다 이제 내 것이다왕위를 원한다면 도망가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싸워라어디에 숨어 있든 내가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

 

기원전 331년 가을, 그라니쿠스 전투, 이수스 전투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알렉산더는 다리우스가 살아있는 한 아시아의 통치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리우스 또한 알렉산더를 물리치지 못하면 아시아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우가멜라(Gaugamela)에 군대를 주둔시킨 다리우스는 병사들의 칼과 창을 예전보다 길게 만들었고, 적군들을 겁주기 위해서 커다란 낫을 단 200대의 전차를 준비했습니다.

다리우스와 알렉산더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 가우가멜라에서 벌어집니다.

영상 가우가멜라 전투

전투가 개시되고, 바퀴에 낫을 단 전차부대가 달려오자 마케도니아의 창병부대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창병부대는 적군에게 창을 던지며 전차부대의 공격을 저지했습니다. 대부분의 전차부대는 저지되었지만, 저지선을 뚫은 전차부대로 인해서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희생도 컸습니다.

 

이때 알렉산더는 전차를 타고 지휘하는 다리우스를 향해 돌진해 나갔습니다. 자신에게 돌진하는 알렉산더의 기병대에게 자신을 보호하던 병사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다리우스는 전차를 버리고 말을 타고 도망쳤습니다.

 

그때 위기에 처한 파메니온 장군이 알렉산더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다리우스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알렉산더의 기병대는 파메니온 장군을 구하기 위해 페르시아 기병대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가우가멜라 전투는 전투 지휘자로서 알렉산더의 천재성이 드러난 전투였습니다. 다리우스가 보병 대신 중무장한 기병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알렉산더는 다리우스의 양쪽에 있는 기병대가 마케도니아의 기병대를 향해 돌격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진영에 틈이 생겨 알렉산더의 기병대가 직접 다리우스를 공격할 수 있을 때까지 마케도니아 기병대가 버텨주기만을 바랬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탁월한 전략이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숫적으로 열세였지만, 이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군대는 100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다리우스의 군대는 30만 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알려졌습니다. 가우가멜라 전투 이후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지배권을 장악했습니다.

 

기원전 330 1,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지 4개월 후,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를 장악했습니다.

 

가우가멜라 전투 이후 마케도니아 군대 내부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원정으로 지친 병사들은 고향으로 가고 싶어했어요. 그리고 알렉산더가 10년을 전쟁하고 그만 술과 열병으로 죽고 맙니다.

 

하나님 없는 이스라엘은 동네 북입니다.

하나님 믿지 않으면 편할 것 같고잘 될 것 같았는데, 하나님 없는 삶은 전쟁과 고통과 슬픔 밖에 없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는 바로 하나님 없는 삶이 지옥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정말 깯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있는가 그 사랑이 느껴질 때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사랑입니다.

병을 고쳐도 사랑으로, 능력을 베푸셔도 사랑으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으셔도 우리를 잊지 못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시 부활하십니다.

영원히 사랑하시기 위해 부활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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