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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람타의 주장들...'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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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 유리타 /  아이커넥  -

                                                                 

 

 

사람의 원래 상태는 영혼이다. 모든 영혼은 태초에 창조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이 최초의 창조는 영적인 것이었다.

물질세계에서 영혼의 성장은 우리가 여러 가지 의식의 영역에서 경험한 것을 모아, 날실과 씨실로 짜서 만든 옷과 같다. 지상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교복, 유니폼, 작업복 혹은 결혼식 예복 등 여러 가지 옷을 입는다. 그리고 의지에 따라 방향이 정해진 마음에 의해 품위 있고 숭고한 것, 혹은 이기적이고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영혼 속에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영혼 속에 만들어 온 것이 우리에게 명예로운 지위에 오를 기회를 주기도 하고 불명예스러운 상황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의지의 힘으로써 그것을 명예로운 지위에 오르는 디딤돌로 만들 수가 있다. 이러한 것들도 역시 영혼에 각인된다.

우리의 의지는 극히 신성한 힘이다. 이 의지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 모든 영혼은 '창조력'의 자손, 신의 자손이며, 의지라는 특권을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해 왔는가에 대한 결과이다.

생명은 그 본질에 있어서 영적인 힘이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임을 이해하자. 생명의 자락은 이 지상에서 그런 것처럼, 물질계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 외의 여러 가지 의식세계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세계에 생명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마음'만이 온갖 세계를 통해서 작용하고 창조하는 보편적인 힘이다. 신으로 숭배하는 '창조력' 속에서 '자신'이라는 고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것도 이 마음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1. 인간의 육체를 감싸는 에너지 밴드

 

오라 장()을 찢을 수 있을까? 오라 장을 찢는다는 것은 에너지를 찢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을 찢는다는 것이다.

 

오라는 에너지 밴드를 일컫는 형이상학적 용어로써 그것은 본질적으로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인간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모든 생명은 의식과 에너지가 입자의 형태로 응결되어 형성되어 있다. 하나의 원자가 또 다른 원자와 결합하여 전자를 공유한다. 원자의 배후에 어떤 지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당신의 육체 또한 원자로 만들어졌다. 모든 원자는 의식에 따라 다른 원자와 관계를 형성한다. 그 의식이 바로 그들을 함께 묶어주는 양식이다.

 

에너지는 움직이는 의식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가 있다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의식이라 불리는 이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원자와 원자의 궤도까지, 즉 원자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모든 원자 구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원자를 만들기 위해 전체 피라미드가 필요하고, 원자 을 응결시키기 위해 시간과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초월적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면 그것은 하나의 생각체가 되고 그 생각체는 에너지의 주군이 된다. 그리고 에너지는 변화하여 관계를 형성하고, 생각의 패턴을 채우기 위해 응결된다. 모든 나무, 모든 곤충, 모든 모래알들은 초월적 지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모든 모래는 입자라는 형태로 된 응결된 에너지이지만, 그것을 결속시키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원자 에서 입자들을 연결시킨다. 입자가 자신을 스스로 끌어당기게 되는 것이다.

 

2. 예수아 벤 조셉의 기적

 

거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만들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로 잡기 위해, 당신 자신이 처한 현실의 풍경을 바꾸기 위해, 이러한 것들을 잘라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 밖으로 모래를 쓸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큰 구조에 맞춰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러면 큰 구조는 무너지고 그것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기 위해 새로운 관계로 다시 응결한다.

 

, 그러면 다른 차원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 빠른 시간들은 어디에 있을까? 예수아 벤 조셉이 그리스도가 되었을 때, 그가 행했던 일은, 7차원의 흐름 속에 사는 것이었다. 그의 육체는 1차원의 시간 흐름 속에 있는 모든 입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는 그의 의식과 마음을 줄곧 7차원까지 끌어올리는 데 남은 생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는 7차원에 흐르는 마음과 6차원에 흐르는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는 그 의식을 자신의 3차원적인 두뇌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3차원적인 사람처럼 생각하는 대신 6차원적인 신처럼 사고했다.

 

6차원의 왕국은 1차원과 굉장히 다르다. 왜 그럴까? 그곳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명체들이 있는데, 당신은 그것들을 떠올릴 어떠한 참고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1차원에 있는 것뿐이다. 6차원과 그것의 신비함, 무한함 그리고 영원함을 창조한 마음은 1차원에서 발전시킨 것과 똑같은 마음이다. 예수아 벤 조셉이 생명을 어떤 식으로 보았는지 살펴보라. 그는 어떤 것을 보더라도, 그것은 정확히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맹인을 만났을 때 맹인은 그에게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허리를 굽혀 진흙을 주워 그것에 침을 뱉었다. 그는 진흙과 침, 이 둘의 입자 관계에 새로운 생체 을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아 벤 조셉은 진흙을 주워 빚은 후 장님의 눈에 붙이는 내내 장님의 완전한 시력을 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진흙은 완전한 시력을 위한 촉매제가 된 것이다. 그가 맹인의 눈에 그 진흙을 바르자, 생체 또는 형태 은 시신경이 후두엽에 연결되도록 순식간에 복원되어 맹인이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 부른다. 예수아 벤 조셉처럼 입자장과 연결되어 매일매일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강력할까? 그는 어떻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길을 가다가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순간적으로 선택한다 그 광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혹은 그것을 바꿀 것인지 알아차렸다. 예수는 길을 가다가 흙먼지가 일어날 때 그것이 재미있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맹인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는 재료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은 어떤가?^^ 길을 가다가 먼지가 일어난다고 해서 짜증을 낸 적이 얼마나 많은가? ^^ 그렇게 짜증나면 더욱 더 화가 나지 않는가?

 

예수가 군중에게 다가가 가르침을 전하고 먹을 것을 나눠 주려 했을 때, 오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단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 밖에 없다면, 당신은 뭐라고 하겠는가? 이럴 때 당신을 어떻게 했을까? 당장 시장으로 가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마음과 물질 간의 상관관계를 알고 있었던 마스터였기에, 그가 한 일은 오직 자신이 본 것에 대한 그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속에서 빵과 물고기는 증식을 위한 씨앗이 되었다. 그가 그것을 씨앗으로 보는 한, 그는 빵과 불고기를 무한히 공급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공급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에서 왔다. 그가 했던 일은 그것을 무수히 만들어 내는 그는 흩어지고 재 응고 되는 에너지를 취해 물고기와 빵으로 응결시키는 틀을 만들어 그것들을 모방해 계속 만들 수 있었다.

 

잠시 생각해 보라. 누군가가 장미에게 장미가 되라고 말했고, 그 누군가가 장미에게 어떤 향기를 가지라고 말했으며, 머릿속에서 장미를 붉은 벨벳으로 묘사하였다. 그 누군가가 그 일을 했던 것이다. 장미는 저절로 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미가 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무와 새, 물 그리고 모든 자연이 그러한 방법으로 창조되었다. 누군가가 그것들의 진화에 대해 집중했었다. 그자들이 누구일까?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그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예수아 벤 조셉은 6차원까지 도달한 마스터였다. 그의 역할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의 마음으로 현실과 맞서는 것이었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잠시 멈추고 그것에 대해 숙고한다면, 당신의 생각으로 인하여 삶이 어떻게 고정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시로 가기 위해 차를 몰면서 도시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 곧 도시가 나타난다. 거지를 몰 것이라고 예상하면, 거지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가는 도중에 고장 난 차가 도로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면, 당신은 반드시 고장 난 차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고 당신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매일 마음으로 물질적 현실을 거부하고 그것을 덮어씌워야만 했던 존재나, 존재들에게 입문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보라. 그들의 마음은 아주 강력하여 그곳에 없던 것을 만들 수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당신의 현실이 당신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당신이 더 강하다. 그러나 당신의 에너지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에너지는 삶에서 당신이 받아들인 평범한 것들에 있다. 당신은 질병을 받아들이고, 걱정거리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동결시킨 후, 그 에너지를 하나의 관계에 가두어 버린다. 이러한 것이 당신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당신은 신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매일 아침에 일어나 당신이 처한 현실을 거부학고 평범했던 일들을 놀랄만한 일들로 바꾼다고 상상해보라! 그 다음 날 일어나면 몇 가지는 변하겠지만 모든 것이 다 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이전으로 돌아가 지루한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어떤 생명체든, 어떤 상황의 에너지 이든 받아들여서 순식간에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마음을 창조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기를 원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집중하는 것이다.

 

3. 양자역학에서의 관찰자 효과

 

양자역학 양자란 역학적인 활동을 하는 에너지의 작은 다발을 의미한다 은 숭고한 과학이며, 이 학문은 과학계에서 지지를 받아 점차 입자를 넓혀가고 있다, 아이작 뉴턴의 현실 과 양자역학의 다른 점은, 양자역학에서는 과학자들이 경험했듯이 입자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항상 그러하다 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입자의 행동이 절대적으로 관찰자에게 달렸음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잠시 부연해 보자면,

 

실험에 임하는 과학자들이 수소 원자와 그 주위의 전자에 대하여 항상 내렸던 결론은, 공전하고 있는 전자들이 언제나 궤도 안에 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이것에 대해 연구했을 때 전자가 원자핵 주위에 다양한 궤적을 그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관찰자가 언제나 입자들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원자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은 입자라기보다는 전자구름이라고... 다시 말해 그것은 구름처럼 움직였던 것이다. 그들은 옳았다. 그들이 언제 전자를 발견했는지 아는가? 그들이 전자가 그곳에서 발견되리라 예측한 순간이었다.

 

, 우리가 등을 돌리면 이 모든 원자들이 어떤 일을 할지 상상해 보라. 당구대를 떠올려 보라. 당신이 고개를 돌려 그것을 보면, 모든 공은 제자리에 있다. 당신이 등을 돌리자 그것들은 희미해져 버린다. 다시 당신이 고개를 돌려 그것들을 바라보는 순간, 그것들은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당신이 자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가 여전히 둥글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당신이 여전히 이곳에 있을 거라고 어떻게 아는가? 이것은 과학에 있어 위대한 도약이었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그들은 다음 차원으로 나아가 삶을 창조하는 것은 당신이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화형 당하거나, 총살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상에 끊임없이 매달리고 있다. 그것이 어떤 법인지 아는가? 당신은 형상에 복종해야 하고, 그 형상을 부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그 법은 말한다. 당신은 합의된 법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런 방식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당신들이 이 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무엇으로 그렇게 할까?

 

예수아 벤 조셉이 자신의 마음을 높은 상태로 끌어올린 후 그 상태를 유지했을 때, 그는 사실상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의 영적 자아는 6차원으로부터 나온 반면 그의 육체는 1차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6차원에 이를 때까지는 죽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최후의 시험이었다. 그는 마지막 입문으로써 죽는 것에 동의해야 했던 것이다. 당신이라면 죽음과 어떻게 맞서겠는가? 우선,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

 

그 시험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상상해보라. 당신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러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을 이 세상에 완전히 구현시킨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 그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마지막 시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죽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그렇게 강력했으며, 그는 그런 마음을 내 안의 하느님아버지’ -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하느님 아버지는 바로 제로 포인트에 있는 존재이며 우리 모두의 안에 존재한다 라 불렀다. 그의 마음은 아주 강력하여 그의 육에가 죽어 부패하는 것도 허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적당한 때가 되면 육체와의 관계성을 회복하여 육체를 복구하려 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과학자들이 우리가 입자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 것에 따른다면,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물론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번도 제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 당신들 중에 내 시체를 눕혀라. 그러면 나는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현실을 어느 누구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경지에까지 진보하지 못하였다. 아직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면 평온, , 우주의 원기를 맞아, 자신의 존재 이유인 진리에 결정적으로 가 닿아야 진정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예수가 바로 그런 경지에 다다른 분이다.

 

예수아 벤 조셉은 가지고 있던 육체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였다. 부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전에 우리가 1차원의 시간으로 하강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하강해왔다. 하강하면서 우리 모두는 흔적을 남겼다. 그 말은 제로 포인트에서 1차원까지 하강하는 동안 우리는 각각의 차원을 구성하는 환경과 마음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각기 다른 시간의 틀에 맞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각 차원마다 그곳에 해당하는 다른 육체가 이미 존재한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우리는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 5차원, 6차원, 7차원, 즉 모든 차원에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육체는 우리가 남겨 두고 온 흔적이다. 그것은 마음이며 그것들은 똘똘 말려 있고 펼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이 작은 것이 말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접혀 있는 일곱 개의

 

집중에 의해 이러한 차원에 존재하는 육체와 접촉하는 그 순간 우리의 수용 능력이 이러한 차원 중 하나와 동등해질 때 우리는 그 차원에서 새로운 환경을 펼치기 시작하며, 그것은 의식의 흐름이 되어 우리 두뇌 안에 있는 파충류 뇌로 흘러간다. 그것은 마음의 흐름이며, 여기로 흘려 신피질을 활성화한다. 이런 차원과 접촉할 때 그곳이 아주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육체를 남겨 두고 온 것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떠나면 그것이 다시 여기의 환경으로 똘똘 말려 버리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이 하나의 꿈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일곱 개의 몸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은 모두 이 육체(물질적인 육체) 안에 포개져 있으며, 그것들은 당신의 손끝까지 뻗쳐 있는 오라 으로 빛을 발한다. 일곱 개의 모든 몸은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물질적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거친 물질 안에 다 들어 있다. 당신이 이 타임라인에서 1,050만 년을 살아왔고 455,000년 전에 두뇌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약 40,000년 전이 되어서야 두뇌를 개발하였다 , 모든 육체는 한 번도 3차원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한 채 윤회의 굴레에 갇혀 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우리가 매번 태어날 때마다 우리 육체 안에 4개의 또 다른 빛나는 육체를 온전히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3개의 육체를 가지고 죽음을 맞게 되지만, 라이트 바디(Light body : 빛을 방사하는 몸(光體)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몸은 의식적 인식 및 가시광선 주파수 밴드인 3차원에 속한다) 안에 4개의 또 다른 주파수를 가진 4개의 또 다른 몸들이 들어 있다. 빛으로 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일 뿐이다. 빛의 육체 속에는 포개어진 4개의 다른 육체가 있으며 그것은 각기 다른 시간대에 존재한다. 그 육체들은 그곳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매개체이다.

 

4. 그리스도의 부활과 일곱 가지 의식 차원

 

전생에서 당신은 빛 너머로 가본 적이 없다. 이 세상에 환생하기 전 빛 속에서 당신은 전생을 회고하였다. 즉 라이트 바디 상태에서 전생을 회고하였다. 회고가 시작되면, 모든 에너지가 풀리고, 당신이 전생에 무엇을 했으며, 누구였으며, 무엇을 이루고, 어떻게 발전하였으며 그리고 어떤 면에서 발전하지 못했는가를 영상을 통하여 보게 된다. 그것은 단지 에너지를 풀어 영상으로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후 당신은 인간의 육체 상태가 아닌 라이트 바디 상태에서 다음 생에 환생하기로 결정한다. 당신은 자신이 다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빛으로 간 존재들이 전생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을 인지한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그들에게는 두뇌가 없을 터인데 어떻게 그들이 본 것들을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도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있다. 단지 인간의 머리 안에 들어 있었던 회색의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그 당시 그들이 거하고 있는 육체와 동등한 두뇌이다.(?!?!?!)

 

죽으면 당신은 즉시 적외선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것은 심령 영역이다. 그곳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나타나고 당신이 그 빛을 따라가면 실질적으로 적외선 영역의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빛을 만나게 된다. 그 빛은 누구일까? 당신이다. 그곳에서 당신은 모든 것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당신의 물질적 생을 결정하는 동안에도, 빛에 들어 있는 4개의 다른 잠재적인 삶 혹은 육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당신이 했던 유일한 일들은 항상 이곳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당신은 상위의 씰들 즉4개의 다른 육체들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들을 감추어진 것들이라 부른다.

 

우리는 매번 라이트 바디를 바꾼다. 라이트 바디는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물질적 육체와 비슷한데 다만 좀 더 젊고 건강할 뿐이다. 라이트 바디는 왜 당신의 육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왜냐 하면 마음이 육체에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라고 하여 그것을 빛의 장으로 둘러싸지 않는 한, 당신은 지금의 모습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매번 라이트 바디, 적외선 육체, 물질적인 육체를 사용한다. 상위 4개의 영역에 감추어진 육체는 사용하지 않고 말이다!

 

상위 4개의 영역이 있는 감추어진 육체들은 지금 당신 안에 존재하며 당신을 둘러싸고 있다. 당신의 손을 보면서 우리가 방금 다루었던 원자 에 대해 생각한다면 이것에 대해 생각해보라 원자 한 개로부터 방출되는 빛은 이러한 육체 중의 하나에서 방출되는 빛과 같은 것이다. 즉 손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는 일곱 개의 시간 차원의 합성체이다. 그래서 손은 7개 차원이 이것(물질)으로 응결되어 나타난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현재 자신의 모습을 부인하고 다른 모습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 그럴 수가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일이 전자에게만 적용되고 당신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신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이 안에 7개의 육체가 들어 있으며 그것들은 각각 당신 자신의 세포 안에 숨겨져 있다. 세포가 죽으면 먼저 육체 하나를 포기한다. 그것은 적외선에 있는 육체이다. 적외선 육체 안에는 높은 차원에 있는 모든 육체다 들어 있는데, 당신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버린다.

 

그렇다면 상위 4개의 육체는 예수아 벤 조셉이 그리스도가 된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는 위에 있는 신의 왕국과 접촉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는 수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통해 그것들을 증명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그 당시 헬레니즘 사상을 따르던 유대인들은 윤회 사상을 믿었던 유일한 민족이었다. 아브라함이 따르던 유대인들은 윤회 사상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지옥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다. 지옥이라는 말은 단지 얕은 무덤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그들이 죽어서 얕은 무덤에 묻힌다면 사지가 잘려나갈 수도 있다고 믿었다.

 

예수아 벤 조셉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죽음 후에 삶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바로 1 번째 씰과 2 번째 씰에 있는 의식을 빼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육체가 죽도록 내버려 두고, 7 번째 씰까지 다른 모든 육체를 계속 펼치면서 올라왔다. 그는 말했다. “나의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곧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마음은 이 끔찍한 시대의 다윗의 집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나의 마음은 내 안에 존재하는 나의 아버지이다.” 이렇듯 최초의 마음을 선언하고 나서 그는 모든 육체를 벗어야만 했다. 심지어 라이트 바디까지 말이다. 그는 그것을 계속해서 입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라이트 바디를 벗고 블루 바디(Blue Body)로 현현해야 했다. 그는 블루 바디 그것은 시바이다 를 벗고 골든 바디(Golden Body)로 현현해야 했다. 그는 골든 바디를 벗고 로즈 바디(Rose Body)로 현현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무한 미지(Infinite Unknown)로 가야 했다. 그는 그곳에 갔다. 이 일을 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이다.

 

그가 육체를 부활시켜 생명을 불어넣은 곳은 바로 7차원이었다. 그가 불어넣은 것은 영원한 생명이었다. 7차원에 있는 그의 육체는 거의 빛의 속도로 진동하였다.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진동수를 낮추었다. 그의 육체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진동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의식이 7차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은 이제 인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끌어올려 그것의 물질을 재구성하였지만, 신의 영역에서 재구성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진동했던 것이다. 그가 떠났을 때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단지 계속하여 진동수를 높여나갔다. , 그는 원자 주위를 돌리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그것이 원자핵까지 영향을 미쳐 원자핵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계속 돌리면서 모든 입자들이 자유로운 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그는 7개의 육체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사라졌을 때, 그는 빛에서부터 모습을 감추었다.

 

그때서야 그는 비로소 일어선 자, 그리스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그것은 그의 의식이 신과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죽음조차도 그의 마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예수아 벤 조셉에 대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종교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예수아 벤 조셉의 진정한 가르침은 예수가 당신의 삶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단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신의 힘을 증명해 보인 마스터였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어느 누구든 그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면, 그가 인간의 영이 영원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오직 그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구한 세월을 통해 모든 문화에서 드러났고 입증되었지만. 사람들은 금새 잊어버렸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갖게 되었나? 예수가 신의 독생자라는 종교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가 진정 원하는 건, 모든 사람들이 신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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