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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의식과 에너지는 현실의 본질을 창조한다 ...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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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 유리타/ 아이커넥 -

 

경이로운 분자구조의 맨 처음 중심의 진동인 하나님아버지는, 한 번도 당신을 심판하지 않았다. 신은 완벽이라는 것도, 절대적 한계라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그 자신 전부를, 사랑하는 ‘있음’이며, 그 ‘있음’은 온 세상 사람들을 포용하는 힘이다.

 

신은 결코 당신을 심판한 적이 없으며, 또한 당신에게 성인이나 악마가 되라고 강요한 적도 없다. 단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그렇게 한 것이다. 모든 것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당신이라는 경이로운 존재에게서 즐거운 선함을 발견했다면, 그리고 많은 것을 이루었으나 당신에게 신성한 자아가 넘쳐나게 할 다음 순간의 삶이 아직 있다면, 사랑하는 존재여, 당신에게 말하노라, 내가 당신이 신이라고 할 때, 신으로서 살라. 그러면 진정으로, 당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있고,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미지(未知)의 신은 모든 것들이다. 황혼이자 한밤의 새이며, 덤불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이며, 때가 되면 떠나가는 아침의 철새들이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이며, 사랑하는 연인들이 느끼는 황홀함이며, 붉은 포도주이며, 달콤한 꿀이다. 신은 모든 것이다, 모든 것. 그것은 영원하다.

 

※ 람타 가르침의 핵심적 개념

 

의식과 에너지는 현실의 본질을 창조한다

 

신은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복제하는 것을 허용하여 각자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지(未知)의 신은

 

미지(未知)의 신은 모든 이들 안에 있는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모든 이들 안에 있는 하나의 마음의 조각들이다. 그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건 그들은 그런 마음의 조각들을 자각할 수 있다. 그것은 신이 베푸는 특성이다.

 

신은 사랑 – 우리는 신이 그 사랑으로, 절대로 거두어가지 않고, 오직 베풀기만 한다는 것을 안다 – 하고, 모든 것이며, 모든 생명과 사랑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존재하는 신은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줄 수 있다.

 

람타는 자신이 타고난 자아, 즉 자신의 육체와 성격 그리고 유전인자를 정복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끝나던 날,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섬세한 끈을 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 신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미지의 신이 얼굴 없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자 강한 욕구이다. 바로 그것이 람타가 되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신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닌, 한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의 일부가 되어 앎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그러한 존재인 신이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람타는 그것이 되었다.

 

람타는 왜 깨달았다고 불리는가? 그는 자신의 육신이 아니라 자신의 영이 되었기 때문에 깨달은 것이다. 람타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신은 우리가 영이라 부르는 것이며, 바로 그 영이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한다는 것이다.

 

신을 위한 가장 위대한 신전은 바로 인간의 육체이며, 그리고 바로 그곳이 영이 이 세상에 머무는 곳이다. 그곳이 바로 신전이다. 무엇인가를 배울 때 기쁘거나 기분이 좋아진다면, 당신의 영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피곤하거나 배가 고포거나 혹은 지루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육체가 느끼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영에 있지 않고 육체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배워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것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많은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미래와 현재에 유일한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원숭이 마음인, 당신의 인간 두뇌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당신이 당신의 한계들보다 더 위대한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더 위대한 것들이 당신의 영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영이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당신이 영에게 불행을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육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늘날 당신이 갖는 유일한 골칫거리이다. 그것은 바로 신경망에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쁜 일을 많이 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이 자신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고통이나 한계 그리고 결핍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은 당신의 책임이다. 이 말을 당신의 두뇌는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당신의 영은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두뇌는 누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누구에게 실망했는지, 왜 그러한 의심을 하는지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실수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지, 결코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의 두뇌가 가지고 있는 오만함이다.

 

또한 당신은 모두가 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당신들 중 일부는 아직도 신이 천국이라고 하는 곳에 있으며 그가 – 그녀가 아니라 – 모든 것을 주관한다고 믿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에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신의 뜻이며, 신이 자신에게 벌을 내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신은 천국에 있는 편리한 존재로 비춰질 수도 있다. 신이 천국에 있는 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정의롭지 못한 당신을 처벌할 것이기 때문이며, 당신이 나쁜 생각을 할 때, 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신이 천국의 어느 곳에서든 그러한 일을 하는 존재라 생각한다. 또한 당신은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가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러나 천국이라는 곳은 당신 내면에 있으며, 당신이 자신에게 믿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당신이 허용할 때, 당신의 신은 오늘 당장 당신의죄를 용서할 것이며, 당신의 부족함을 용서할 것이다. 오늘부터 당신은 희생자가 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오늘부터 당신은 아프지 않아도 된다. 오늘부터 당신은 악마 대신 자신을 믿기 시작할 수 있다. 당신 내면에 신이 존재한다. 당신은 신이다. 그러니, 자신을 믿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람타 깨달음 학교 : 스스로에 대한 확신

 

이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당신이 단지 이 생에서 비롯된 자아와 맞서 싸워 그것을 정복한 후 자신이 원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가 되도록,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영,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신을 부활시켜 놀랄만한 일들을 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배우려고 하는 것은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해야겠지만, 결국 당신이 그렇게 되었을 때, 육체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무한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기적적인 일들을 할 수 있는 법을 배울 것이며, 그럼으로써 당신 자신을 더욱더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인성인 변형된 에고가 당신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번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깨어난 존재가 되면 그 길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당신이 변형된 에고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잃게 되는 것은 당신이 한 때 그렇다고 알았던 이 삶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그리고 당신은 영원한 삶을 얻게 될 것이다.

 

영원한 삶?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달라질까? 육체를 갖고 천국과 다른 차원을 방문하는 것을 배울 것이며, 그런 경험을 통해 당신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확장될 것이다. 당신이 죽는다면 혹은 죽는 것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은하계의 초월적인 종족이 당신의 부모가 되어, 당신은 아주 고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꿈도 꾸지 못하는 것들을 알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의식, 에너지, 마음 그리고 두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얻는다.

 

⯎의식과 에너지가 현실을 창조한다. - 의식과 에너지 없이 현실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현실이라는 것은 자기를 의식하는 것, 자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과 에너지 그리고 두뇌가 마음을 창조한다. - 두뇌는 의식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을 창조한다. 하나의 생각은 마음과 동일하다.

 

의식이란 바로 삶의 구조이다. 의식이 삶의 마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삶의 구조라고 말한 것에 주목하라! 의식은 자각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 의식과 에너지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 둘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무의식적인 에너지란 있을 수 없다.

 

의식과 에너지는 절대 근원이다. 그것이 생명을 부여할 때는, 하나의 생각 때문에 생명을 부여한다. 육체, 즉 인간의 육체는 두뇌를 가지고 있다. 두뇌는 의식과 에너지의 흐름을 위한 수단이다. 의식과 에너지라는 영(靈)은, 두뇌가 가진 힘의 원천이다.

 

두뇌가 하는 일은 신경학적인 차원에서 의식과 에너지의 전기 자극을 잡아 생각을 창조하는 것이다. 두뇌는 의식의 흐름을 실질적으로 토막 내 뇌신경 세포의 연접부로 가는 통로에 머물게 한다. 그래서 두뇌는 하나의 생각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두뇌가 하는 일이다. 두뇌는 자신을 통과하는 의식과 에너지의 흐름을 잡아, 시냅스를 점화시켜 전두엽에 이미지를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마음은 의식과 에너지가 아니다. 그것은 결과물이다. 마음은 두뇌에서 생각체나 기억을 창조하는 의식으로 일어나는 결과물이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이 마음을 만든다. 의식과 에너지가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을 통해 흐른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직 당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알고 있다.

 

당신을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당신이 보고, 말하고, 사고하는 방식이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당신의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나타난 결과이다.

 

당신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머릿속에는 당신의 부모가 가르친 모든 것들,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들, 역사가 가르친 모든 것들 그리고 문화가 가르친 모든 것들, 그밖에 경험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그중에 진리는 얼마나 될까? 바꾸어 말하면 당신의 두뇌는 깨어 있는가 아니면 그냥 기록된 것들뿐인가?

 

우리가 기적을 이룰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배워 머리에 들어 있는 것들만 진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적은 당연히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만 일어난다. 그것이 일어나길 기대하면, 그것은 일어나는데 이것을 당신은 진리로써 알지 못한다.

 

삶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신은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 줄 아는 것만 반복하며 그것만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진리인 것처럼 살기 때문이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진리만큼 위대하다!

 

당신은 지식, 철학 그리고 경험으로 일어난 진리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삶을 살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지, 삶을 두려워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두뇌를 사용해 생각을 만들고, 무지를 정복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으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무지(無知)를 정복한다. 그것은 변형된 에고나 인성 그리고 육체보다 그들의 영을 개발하여, 그 에너지의 구현으로 그들의 일상을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들은 결코 늙지 않을 것이며 항상 에너지가 넘쳐날 것이다. 그들은 창조한다. 그들은 또한 놀랄만한 수용능력을 갖게 된다. 그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믿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항상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의식과 에너지 훈련

 

의식과 에너지는 현실의 본질을 창조한다. 그 현실은 인간의 육체와 가장 위대한 기관(器官)인 두뇌를 창조하였다. 두뇌는 의식과 에너지를 창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식과 에너지의 도구이다. 두뇌가 하는 역할은 의식과 에너지를 취하여 그것을 기억화된 생화학적 생각이라는 정지 화면 즉 프리즈 프레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생각은 현실을 창조하는 데 더해지며, 두뇌에 있는 생각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실로 창조된다. 의식과 에너지를 취하여 순수한 생각을 만드는 것은 진화적인 것이다. 좀 더 위대한 생각을 함으로써 당신은 좀 더 위대한 삶을 창조한다. 그럴 때 당신 내면의 신, 영이 진화하고, 당신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당신 외부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마음이 현실을 창조한다. 당신의 모든 나날은 지금까지 당신이 생각해온 방식으로 일어난 결과이다. 우리가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고 당신의 수용 능력과 이해의 수준을 확장한다면, 당신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당신의 삶에서 진리를 구현하여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은 어린아이와 같다. 다른 행성, 다른 은하계, 다른 차원들 그리고 다른 시간의 흐름에는 당신들보다 훨씬 더 진보된 문명들과 존재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신들보다 약간 뒤떨어진 문명과 존재들도 있다. 당신은 어린아이들 같다. 당신은 신이라고 부르는 공동체의 일부이다. 우리는 영겁의 세월동안 당신을 잊혀진 신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인간 드라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당신은 자신의 신성함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육신과 물질적 자아에 몰두해왔다.

 

보이드(허공 Void),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

 

보이드는 광대하다. 그럼에도 그 광대함 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의 광대한 무(無, One Vast Nothing)이다. 무(無)란 어떠한 원소나 생각조차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no-thing). 그래서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무(無)이다. 그러나 광대한 無일지라도 그 안에 모든 가능성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는 보이드를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무(無, One Vast Nothing)이지만, 잠재적으로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그것이 보이드다!

그러면 그 광대한 무(無)는 얼마나 오래됐을까? 보이드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보이드에서 나온 하나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보이드는 항상 존재해왔다.

 

보이드의 영원함에서 보이드는 모/부 원칙 혹은 절대 근원으로 불리며, 이 절대 근원에서 모든 생명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아무런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생명이 탄생할 수 있을까? 보이드가 어떻게 생명이 아닌 것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을까?

 

보이드가 아주 놀랄만한 일 – 단 하나의 일 –을 했다.

놀랄만한 일이란 보이드가 스스로 숙고한 것이었다. 자, 아이처럼 양팔을 벌려보라. 숙고하는 것을 이런 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 오른손과 왼손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 자식의 중심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나는 곳이 자석의 중심이다. 자석의 중심은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렇게 존재한다. 보이드 – 양팔을 벌린 상태 – 보이드, 하나의 광대한 無가 스스로 숙고했고, 그것이 숙고한 순간, 하나의 점이 생겨났다.

보이드는 스스로 사색하여 자신의 메아리를 창조하였다. 즉 보이드는 자신의 변형을 창조했으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점으로 이해한다. 이 점이 항상 존재해왔던 보이드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보이드가 스스로 숙고했던 곳에서, 메아리가 되었지만 한 점으로 모여 집중된 상태이다. 이것은 진화이다. 이것은 당신이 시작된 모습이며, 의식과 에너지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의식과 에너지이다. 자, 이것이 당신의 시초가 되었지만, 당신은 아직 여정을 시작하지 않았다. 당신은 단지 보이드에 의해서 숙고되었을 뿐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보이드에 관한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2차원적인, 선형적인 시간의 개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이제 하나의 기준점(Reference Point)이 되었다. 이제 이것을 신이라 부른다. 점 위에 ‘나는 신(God I am)’이라고 지금 적도록 하라. 이 사색 점(Contempoation Point)은 의식과 에너지의 시작이다. 이것(보이드)은 그 점에 생명을 준 모/부 원리이며, 바로 거기에서 당신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보이드는 이 작은 존재에게 말을 한다. “안녕, 나는 내 한가운데서 너의 존재를 염원해왔어, 너의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어. 나를 이용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렴.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너는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거야. 자, 이제 나를 이용해 네 마음대로 신나게 만들어보렴.”

 

보이드는 제약이 없으며,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나를 이용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렴.”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해 보라. 보이드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거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거리가 존재하지 않으면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좋았어. 나는 여기저기 다닐 거야. 재미있겠군.” 하지만 당신이 여기에 나타나는 순간 당신은 제자리로 온다. 왜냐하면 보이드에선 ‘여기’가 바로 ‘저기’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당신은 약간 실망하며 “글세, 괜찮아. 그러면 이 아래로 내려가 보자.” 라고 말한다. 하지만 보이드에게 ‘아래’란 무엇인가? 당신은 결국 아래로 내려가서는 “아하.”라고 말한다. 보이드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곳이 똑같다. 이 존재는 보이드 전체를 돌아다니지만 아무 곳도 가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그 존재가 얼마나 오랜 영겁의 세월을 이곳에 머물며 부모가 말한 대로 모든 것이 되어 보기 위해 노력했는지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확실히, “모든 것”은 하나의 새로운 이해를 얻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식은 모든 곳으로 자신으ㄹ 던져보았지만, 그것은 이미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어느 곳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것이 거기에 앉아서, 스스로 숙고하였다. 그것은 스스로 숙고하였고 숙고할 때마다 진화한다. 그렇게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내면으로 들어가자, 숙고의 점이 생겼다. 이 작은 점은 스스로 숙고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갔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둘로 갈라졌다. 제로 포인트가 스스로 사색하는 순간, 그것은 두 개로 나누어졌다.

 

거울 의식과 시간의 창조

 

이제, 의식과 에너지에게 동반자가 생겼다. 즉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게 되었다. 보이드가 제로 포인트를 낳았고, 제로 포인트는 이것(거울 의식)을 낳았다. 이것이 무엇일까? 이것은 제로 포인트에서 낮아진 것이다. 보이드에서 두 손 사이에 있는 이 공간은 아주 특별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처음으로 두 개의 의식 점 – 하나, 둘 –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개의 의식 점 사이에 새로운 현실 또한 생겨났는데, 그 현실은 시간이라고 한다. 오직 여기에만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개의 현실 점 사이에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위대한 창조를 한 것이다. 다른 의식이 갈라져 나옴으로써 시간, 거리 그리고 공간이 생겨났다.

 

이것이 7차원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양손을 합치면, 우리는 하나가 된다. 양손을 벌리면, 우리는 둘로 나뉜다. 7차원에선 얼마나 빠르게 현실이 일어나는가? 만일 당신의 의식 차원을 7차원으로 되돌려 어떠한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을 구현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7차원에서 어떤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순간적으로 구현된다.

 

신(그림의 왼손)과 신의 거울 의식(그림의 오른손) 사이에 생명이 생겨나고 있다. 이 양손 사이에 지구와 같은 완전한 현실이 존재한다. 단지 하나는 1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7차원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이곳에서 더 나아가기 위한 준비로 했던 일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 자아는 여기저기 헤매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여기 있는 마주보고 있는 또 다른 손이다.

 

6차원

 

이 제로 포인트는 이 거울 의식에게 똑같이 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이 한 일은 시간을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이제 그들은 하나가 된 것이다. 그들은 숙고할 때 더 이상 7차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7차원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들은 숙고하여 여기 7차원을 끌어당겼지만, 그들의 프로그램은 7차원에 속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6번째 현실을 가지게 되었다. 7차원과 6차원은 무엇이 다른가? 6차원에서 시간의 흐름은 7차원보다 더 느리다.

 

이제 당신이 6차원에서 산다면, 당신이 품은 생각이 현실로 일어나기까지 7차원에 사는 사람보다 조금 더 느리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다른 점이다.

 

이제 여기에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차원이 생긴 것이다. 여기 7차원이 있고, 그리고 6차원이 있다. 6차원에서의 거리는 7차원에서의 거리보다 더 길다. 이것이 시간의 비밀이다. 그것은 의식 속에서의 관계이지, 멀리 떨어져 있는 별처럼 굳어진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의식이다. 자, 우리는 실질적인 창조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보이드가 있고 보이드로부터, 보이드 안에서, 의식과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비밀을 배우게 되었다.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숙고하라. 그러면 당신은 확장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신의 의식을 항상 반영하는 거울 의식, 건물을 지어 올릴 사다리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의식 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생명의 가능성이라고 불리며 7차원은 6차원과는 다른 현실을 가지고 있다.

다시 제로 포인트를 그려보라. 이 두 점 사이에 7차원이 존재한다. 두 손을 합치고, 여기로 내려오면 또 다른 차원, 즉 6차원을 창조한다. 이런 식으로 7개의 점이 만들어질 때까지 아래로 그리도록 한다.

 

제로 포인트로부터 의식과 에너지의 하강 ​

 

이 트라이어드(triad)는 지금까지 창조되었던 신성한 기하학 중 가장 성스러운 형상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트라이어드는 모든 것들이 발생하는 본질적인 시점에서부터 창조의 생각이 펼쳐진 지도이기 때문이다. 이 트라이어드는 각 차원에서의 의식과 에너지로써 생명의 주요한 구성요소이다.

그림의 선들은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타임라인을 가리킨다. 이 선은 각 차원을 기반으로 하는 타임라인이다. 오늘날 인간들 모두는 1차원에 내려와 있다. 당신은 시간의 흐름이 가장 느린 타임라인에 살고 있다. 현재 우리가 있는 이러한 장소, 당신들이 앉아 있는 같은 공간에 다른 타임라인에서 존재하는 다른 의식의 차원이 있지만, 그들의 타임라인은 여기보다 더 빠르다. 즉 당신이 있는 바로 이곳에 다른 타임라인이 존재한다. 그곳의 진동주파수는 여기보다 빠르며 이런 식으로 지금 이곳에 수많은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지금 이 공간에 차원이 다른 생명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 그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에너지 진동주파수가 당신들의 진동주파수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다. 지구가 8헤르츠의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 한 당신들 또한 8헤르츠 주파수로 진동한다. 하지만 당신들 사이에 있는 영적 존재들은 320헤르츠로 진도할 수도 있다.

 

당신이 제로 포인트에서 태어났을 때, 즉 당신의 신이 당신을 창조했을 때, 숙고를 통해서 당신은 하강의 여정을 시작했으며, 그러는 동안 당신은 보이드에서 더욱 더 깊이 그리고 더 깊이 성장하고 있었다. 제로 포인트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직 거울 의식만 움직인다. 우리가 하강했을 때 그 과정을 하강의 서(Book Of Involution)라고 불렀다.

 

당신은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오게 되었는가? 누가 이곳을 나쁜 곳이라 말했는가? 당신을 여기까지 내려오게 한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다. 바로 당신이 자신의 육체와 여기의 타임라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여기 이 타임라인의 운명에 따라 다양한 육신으로 태어나 자신만의 탐험을 하면서 영겁의 세월을 윤회해 온 것이다.

모든 것들이 제로 포인트 그늘 밑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당신이 지금 앉아 있는 바로 그 시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타임라인은 환영이다. 피라미드의 중간으로 내려오는 선, 그것을 지금(Now)이라 부른다. 당신이 앉아 있는 바로 그곳에 놀랄만한 지성이 당신과 함께 있다. 그 지성이 놀랄만한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에너지 라인을 살펴보자.

7차원의 에너지

 

 

두 개의 의식 차원이 위의 그림처럼 있을 때 여기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단지 이 두 개의 의식 포인트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 만약 두 개의 의식 포인트를 하나로 합치게 되면(제로 포인트) 여기에 있던 에너지는 어디로 가겠는가? 만약, 이 두 개의 의식 차원 사이에 에너지가 춤추고 있다면 우리가 두 개의 의식을 하나로 합칠 때 그 에너지들은 어디로 가겠는가? 그것은 다시 의식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한 손을 6차원으로 벌린다면 여기 제로 포인트와 7차원 사이의 짧은 파동이었던 의식은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가 이 의식을 6차원으로 벌린다면 그 차원에 있던 에너지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만약 두 개의 의식 포인트가 하나는 제로 포인트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6차원에 있다면, 7차원에 있던 신성한 에너지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점점 축소된다. 그것은 스스로 이렇게 감겨버린다. 그 사이에 6차원 즉 의식이 창조한 현실에서 7차원보다 더 긴 에너지 파동과 느린 시간의 비율이 생긴다.

모든 차원이 존재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당신이 어느 차원에 있는가를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7차원에 있는 에너지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들은 6차원에 감겨 있다. 우리가 그것을 5차원으로 내리면 6차원에 있던 에너지는 어떻게 될까? 더 팽팽해질까? 그 에너지는 점들이 된다. 만약 에너지가 감겨서 팽팽해지면, 그리고 우리가 이 에너지를 취해 5차원으로 잡아당긴다면, 그것은 오직 5차원 주파수로 진동한다. 우리가 그것을 잡아당긴다면 그것은 튀어오른다. 그렇다. 그것은 이미 원자핵이 시작된 7차원 에너지로 튀어 올라갈 것이다.

 

일곱 차원에 존재하는 에너지

 

에너지 라인을 그려본다면, 6차원과 5차원은 각기 다른 에너지를 그려넣어야 한다. 5차원에서 시간의 흐름은 6차원보다 느리다. 7차원에 그려 넣은 에너지 선으로 6차원에 작은 원자핵을 만들고, 그런 후 원자핵 주위를 6차원의 에너지로 감싸라. 3차원도 그려본다. 4, 5, 6 그리고 7차원에 빠른 속도로 진동하겠는가? 그 육체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비물질적인 영적 존재라면, 이 차원의 요소로 만들어진 육체를 입어야만 여기에 존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보이드에서 나온 영이 시간의 차원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시간으로부터 만들어진 옷을 입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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