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를 찾아왔다, 나의 마음을 오롯이 다 아는 것처럼...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의 의식'과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의식'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확장된 '나의 깨달음'이 다스리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몇 차례 나누어 정성스레 담아보려 한다. 저자의 의도를... 존재의 근원이 나의 마음에 부으시는 대로...
Be still! - and KNOW - I AM - God.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그렇다, 그대로 하여금 그 모든 일을 하게 한 근본에는 바로 내가 있었다. 그대가 하는 모든 일들, 그대의 형제가 하는 모든 일들이 사실은 내가 하는 것임을 그대가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왜 그럴까? 그대 안에, 그대의 형제 안에 '내가', '나의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의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이며, 그대의 마음에 생각을 일으키는 존재이며, 그대의 심장을 뛰게 하는 존재이다.
'나'는 그대 존재에, 모든 생명에,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근원이요, 가장 내밀한 영이다. 죽음이란 사실 없나니, 왜냐하면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요, '초자아적인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한하고, 한계가 없는 존재이다. 우주가 '내 몸'이다. 존재한 모든 지성이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존재하는 모든 사랑이 '내 심장'에서 흘러나온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힘이 사실은 '나의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표현이 아닌 것, '나'의 현현이 아닌 것은 있을 수 없나니, '나'는 모든 형상을 짓는 자일뿐만 아니라 각각의 형상 안에 '거주하는 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가슴 안에 '나'는 살고 있다. 인간의 가슴 안에, 동물의 가슴 안에, 꽃의 가슴 안에, 돌의 가슴 안에, '나'는 살고 있다. 저마다의 가슴 안에서, '나'는 살고, 움직이고, '내 존재'를 가진다. '나'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나의 돌, 하나의 꽃, 하나의 동물, 하나의 사람과 같이, 겉으로 나타난 세상에 현현시킨다.
머지않아 그대는 '나'에게서 분리된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리라. 그대는 머지않아 '나의 초자아성'을 보게 될 것이고, 거기에 눈뜨게 되리라.
'나'는 그대의 '참자아'이다. 이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대의 인간적인 의식을 향해서 말하는 자가 다름 아닌 그대 자신이라는 것,자신의 '진정한 자아'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이 '나'는, 가장 미소한 원자에서부터 거대한 태양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뭇 살아 있는 것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영'이요 '생명'인 '참나'이다. 이 '나'는 그대와 그대의 형제⸳자매 안에 있는 '지성'이니, 그것은 만물을 살게 하고, 자라게 하고, 저마다 제 갈 길을 가게 하는 근원의 '지성'과도 같은 것이다.
아마도 그대는 이 '내가' 어떻게 그대의 '참나'가 되고, 그대 형제의 '참나'가 되고, 돌과 식물과 동물의 '지성' 또한 될 수 있는지, 아직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나가 동시에 다른 것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보라~
'나'는 그대이고, 그대의 '진정한 자아'이고, 있는 그대로의 그대 자신이다.
그대는 진정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대 스스로 생각하는 그대는, '참된' 그대 자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의 불멸하는 '신적인 자아', '참된' 그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그대가 소위 '나'라고 부르는, 그대의 인간적인 마음속에 초점이 되는 바로 그 의식이다.
나는 바로 그 '나'이지만, 그대가 '자신의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의식'의 실재 안에 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그릇에 적응하느라 '나의 의식'이 엷어져 버린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여전히 '나의 의식'이니, 그대의 인간적인 오해나 편견, 온갖 생각들에서 벗어나 그것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비울 수 있을 때,
'나의 의식'은 비로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날개를 얻을 것이고,
그 때에야 비로소 그대는 '나'를 알아볼 것이고, 그대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우치게 되리라.
그대는 '나의 의식'의 한 초점일 뿐이며,
'나의 의식'을 물질로 표현할 수 있는 통로요 매체일 뿐임을 알게 되리라.
'나'는 '만물'의 '지성'에 방향을 가리켜 보이고, 모든 물질과 질료에 '영'을, '생명'을, '의식'을 불어넣는다. 그대가 이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그대의 '참자아'는, 개체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그대의 진정한 자아는, 만물 안에 있고, 만물과 하나이며, '내' 안에 있고, '나'와 하나이다. 그대와 만물 안에 '내'가 있고, 그럼으로써 그대와 만물을 통하여 '나의 실재'를 표현하고 있듯이.
그러므로 그대가 그대의 '의지'라고 부르는 이 의지가 그대 개인의 것은 아닌 것이다. 그대의 마음 안에 있는 의식과 지성, 그리고 그대 몸의 모든 세포들의 의식과 지성이, 그대 자신의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단지 그대의 개인적인 자아에게 사용을 허락한 '내 의지'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대가 그대 안의 힘이나 능력에 더 빨리 눈을 뜰수록, 그레서 그것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할수록, 나는 그대에게 '나의 무한한 힘'을 더 많이 허락할 것이다.
그 모든 힘을 얼마만큼 사용하느냐는, '내 의지'의 쓰임새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정도에 달려 있다.
머지않아 그대도 깨닫게 되리라.
그대는 단지 '내 몸'의 세포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그대의 의지는 바로 '내 의지'라는 것을.
그대가 가진 의식과 지성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의식이요 지성이라는 것을.
그대라고 하는 개인은 결코 없다는 것을.
그대는 인간의 두뇌를 지닌 물리적인 형상일 뿐이라는 것을.
하나의 '생각'을 물질 안에 표현하기 위하여 내가 그렇게 그대를 창조했다는 것을.
그런 특별한 형상으로 내가 최선의 표현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내가' 곧 그대 자신임을, '내가' 곧 그대의 형제요 자매임을 그대는 아직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대들 모두가 '나'의 부분이며, '나'로부터 떨어진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하나'임을 깨우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대로서는 아직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대의 형제자매들의 혼들, 죽어질 그대들에게서 유일하게 실재하는 불멸의 그 부분들은, 소위 '본성' 안에 표현되어 나타난 '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그대와 그대의 형제자매들은 나의 '신적인 품성'의 국면들이나 속성들이다. 죽어질 그대의 육신이나 그대의 마음과 지성이 하나의 개성을 띠고, 그대라는 인간의 품성을 나타내듯이.
아직은 그대 안에 있는 '신성'을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대는 자신의 의식 안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 신성의 징후들을 알게 되리라.
이 신성의 징후를 알아채기 위해서 따라야 할 것은, 주의 깊게 탐구하고 사색하는 것이다.
나의 뜻을 (일부라도) 움켜쥘 때까지, 그것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도록 하라.
나는 먼저, '내 존재'의 비밀이 감추어진 모든 신비의 문을 열어젖힐 열쇠를 그대에게 준다.
이 열쇠는, 그대가 일단 그 사용법을 알기만 한다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과 모든 지혜의 문을 열어주리라.
그렇다, 그것은 '하늘 왕국'의 문을 열어 줄 것이고,
그러면 그대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열쇠는 곧 이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곧 창조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 그대 마음에 깊이깊이 새겨질 수 있도록 명상하라!
'생각하는 자'가 '창조주'이다!
"그대가 가슴에 생각을 품으면, 그것은 이미 그대와 더불어 있다."
'생각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의식적' 창조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그대가 '생각하는 방법'을 알기만 하면, 그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의지대로 창조할 수 있다. 그것이 새로운 인격이든, 새로운 환경이든, 새로운 세계이든.
그대는 의식이란 것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해 본 적이 있는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할 때,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해서 나를 뛰어넘는 상태의 인식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가? 그대의 의식은 마치 잠재된 어떤 힘에 의해 지시를 받고 봉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인간의 의식 안에 잠재 되어 있는 이 '힘'이야말로 '나의 의지',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힘은 '나의 의지'의 현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숱하게 들어왔다. 태초에 내가 '나의 형상과 모습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을. 그 후 내가 인간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고, 그래서 인간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다는 것을.
'나의 형상과 모습에 따라'인간을 창조함으로써, 나는 '나의 의식'전부를 '나의 의지' 전부를 표현할 능력을 지닌 생물을 창조한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나의 힘', '나의 지성', '나의 사랑'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가 있다. 태초에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의 완전함'을 본따서, '완전한 인간'을 창조한 것이다.
내가 인간의 몸에 '내 숨결'을 불어넣자, 인간은 그때부터 '나'와 더불어 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나의 의지'를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어디 바깥쪽에서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내면의 하늘 왕국'에서 불어넣은 것이다. 그 이후부터 언제나 나는 인간의 '내면'에서 숨쉬며 살았고, '나의 현존'을 경험했다. 왜냐하면 오직 그 목적을 위해서만 '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제 스스로는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이, 여기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적인 자아보다 훨씬 더 위대한 그 무엇인가가 인간의 몸 안에 살고 있으며, 인간의 폐를 통해 숨을 쉬고 있다. 그러니 그의 몸 안에 있는 위대한 힘이 폐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 힘은 또한, 폐를 통해 들이쉰 생명력을 함유한 피를 몸 안의 모든 세포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심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피와 섬유 조직과 털과 뼈를 만들기 위해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흡수하는 위장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기관들 역시 마찬가지다. 권능의 그 힘은, 생각하고, 말하고, 인간이 하는 모든 움직거림을 위해, 머리를 사용하고, 혀를 사용하고, 손과 발을 사용한다.
이 힘이 바로 인간 안에 '존재하고 있고' '살아 있는' '나의 의지'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간이든 그는 바로 '나'이고, 어떠한 일을 하든 그 일은 '내가'하는 것이며, 그대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 그대의 몸을 통해 생각하고 말하는 이는 바로 '나'인 것이다.
그대는 이런 말도 들어왔다. 그렇게 '내 숨결'이 불어넣어지고 난 후, 인간에게는 자신의 모든 왕국을 다스릴 지배권이 주어졌노라고,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지상과 바다와 대기와 에테르의 군주로서, 살아 있는 뭇 존재들의 주인으로서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왕국의 뭇 존재들은 인간의 의지에 복종하고, 그를 따라야 한다.
본래부터 그렇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신 안에서, 모든 의식의 안에서, '나'는 언제나 '나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의 지배자이자 군주인 '나'는, 의식 있는 모든 생물의 군주이자 지배자이다. 모든 의식이 '나의 의식'이고,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나의 의식'이 살고 있기 때문에, 또한 생명이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의식'은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다. 땅 속에, 물 속에, 공기 속에, 불 속에, '나의 의지'가 없는 공간은 없다. 사실 '내 의식'은, 인간이 소위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의식 안에 잠재된 존재로서의 '나의 의지'는, 어느 곳이든 미치지 않는 데가 없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의 의지'가 결집된 상태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의지 또한, 어느 곳이든 미치지 않는 데가 없어야 한다. 모든 생물체의 의식은, 심지어는 그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의식도, 인간의 지시와 통제에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인간이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이를 아는 일뿐이다. '내가', '내면의 진정한 자아'가. 모든 생물들의 의식을 조종하고, 지시하고,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만이 필요하다. 언제 어느 때 어느 순간이든 말이다.
나는 이런 일을 인간의 '생각'을 통하여 행하고 있다. 인간의 '생각'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인간의 몸을 통하여, 인간의 몸과 더불어, 이런 일을 한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통하여 생각하는 자는 '나', 인간의 내면에 있는 '진정한 나'다. '생각과 말'을 통하여 나는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을 성취하고, 인간과 그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지어 나간다.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그것들 모두가 '나의 의도'에 따라 '내가'창조한 것이다.
'내가' 모든 생각을 다 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렇다. 그게 풀 수없는 수수께끼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주의 깊게 경청하기만 한다면, 신비가 그대에게 문을 열어 보일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그대 인간에게,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가르칠 것이므로.
창조의 비밀 THINKING AND CREATING
인간의 내면에 있는 내가, 그가 하는 모든 것을 한다. 하지만 그의 생물학적인 몸을 통해서, 그의 개성을 통해서, 그의 마음과 영혼을 통해서 그렇게 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하지를 설명해보려 한다.
무엇보다 먼저, 내가 그대를 '나의 형상과 모습에 따라' 지었음을 깨닫도록 애쓰라. 그대 안에 있는 '나의 현존'을 느껴보도록 애쓰라. 그대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신이란 어딘가 밖에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고 해도, 그래서 우리가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대 안에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잠시만이라도 그렇게 해보라.
다음으로는, 그대가 생각을 할 때, 그대가 생각하는 것은 '참다운'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라. 왜냐하면 그대가 생각하는 것은 '깨어 있는'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는 '나'를 의식하고 있지 않다. 그대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모든 생각과 사상의 감독자이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인 '나'를 의식하고 있지 않다.
그 다음에, '내가 그대 안에 있기 때문에, 그대는 나의 형상에 따라 닮은꼴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나의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대는 '생각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도록 하라. 그러나 생각하는 것이 곧 창조하는 것임을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그대가 '나의 신성한 권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대는 온 생애 동안 생각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하기'였다. 그 동안 내내 '헛짚은' 생각들을 해온 것이다.
그대는 지금껏 잘못된 생각을 해왔고, 그래서 '나의 힘'을 잘못 사용해 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그대의 의식에서 멀리멀리 분리된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나의 의도'를 충족시켜 주는 일들이며, 장차는 그 모든 것이 명백해지리라.
그대가 잘못 생각해 왔다는 증거는 명백하다. 그대는 자신이 '나'로부터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질세계에 살고 있으며, 살과 피로 지어진 몸을 갖고 있기에 고통과 쾌락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위 마귀라 불리는 악의 세력이 '나의 의지'에 반하여 이 세상에 만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대는 이런 모든 것이 그렇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대에게는, 그것들이 존재한다. 죽어질 인간의 의식에는 만사가 그렇게 비친다. 그가 생각한 것, 그가 믿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그의 생각, 그의 믿음이 곧 그의 세상 자체이다.
악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에게는 악이 나타나도록,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것 역시 '내 의도'에 적합하고, 창조의 법칙을 만족시킨다.
진실인지 아닌지 한번 살펴보자.
어떤 것이 그렇게 존재한다고 그대가 '믿는다면', 그대에게는 그것이 정말로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일까?
죄나 악, 슬픔이나 과로움, 걱정 따위가 그대에게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대의 생각이나 믿음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아주 다르게 보고, 그대의 생각을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창조의 법칙이 만약 진실이라면, 그대의 몸과 개성, 그대의 성격과 주변 환경, 그리고 그대의 세상은 그대에게 그렇게 나타난 것일 뿐이다. 그대가 그것들을 지금의 상태가 되도록 생각해 온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그리 즐겁지 않다면, 그대는 동일한 과정에 의해 그것들을 바꿀 수 있다. 생각의 힘으로 그대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대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대는 물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진짜' 생각을, 의식적이고 깨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먼저, '그대의 진정한 자아'인 나는, 그대로 하여금 기쁘지 않은 일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집중하게 하여, 그것들이 그대에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나, 오직 '나'만이, 그대 인간의 마음을 그렇게 준비시킨다. 그리하여 그대가 신앙과 믿음 안에서 내면의 '나'에게로 시선을 돌릴 때, 불만족스럽게만 보이는 일들의 실상을 그대에게 보여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유혹하여 지상에 묶어 두는 겉만 그럴듯한 것들을 그대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누구인 줄 아느냐? 바로 '나'다. 인간의 마음에 물질로 나타난 것들의 덧없음을 그대에게 가르쳐주기 위하여,인간의 이해가 얼마나 얼마나 틀리기 쉬운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그대로 하여금 마침내 그대 안의 '나'에게로, '나의 지혜'를 향하게 하여 '오직 하나'이며 '유일한 해석자'이자 '안내자'인 '나'에게 귀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하여.
그대가 그렇게 내면의 '나'에게로 방향을 틀 때, 나는 그대의 눈을 열어 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지금 이렇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그대의 자세를 먼저 바꾸어야 한다. 그대 안의 내가 깨어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어도, 그래서 그것이 몸을 불편하게 하고 마음에 걸리더라도, 그것이 그대에게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멈추도록 하라. 그것이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멈추도록 하라.
주인은 누구인가? 바로 그대의 몸이고, 마음이고, 그대 자신, 곧 그대 안의 '나'이다.
어찌하여 그대 자신이 주인임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대 안의 내가 그대에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진정한 것들을 생각함으로써, 그대가 주인임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은가?
진정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고, 이런 조화롭지 못한 생각들이 그대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고,그럼으로써 그대는 거기에 힘을 부여한다. 그대를 매혹시키고, 그대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이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대가 그러한 것들에 스스로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진정하지 않은 것들에 힘을 부여하는 생각을 멈추고, 내면의 '나'에게로 방향을 틀어, 생각의 방향을 내가 가리킬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진정하지 않은 것들은 그대의 의식에서 즉각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대의 생각으로써' 창조된 그것들은 무(無)로 용해되어 버릴 것이다.
기꺼이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그때에야 비로소 그대는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나'에게 지시를 받는 '깨어 있는 생각하기'로써, 내면의 내가 창조하기를 바라는, 영원하고 진정한 것들을 창조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대가 그렇게 진짜와 가짜를, 겉거죽과 알맹이를 분별할 수 있을 때, 그대의 '깨어 있는 생각'은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게 된다. 과거에 그대가 '깨어 있지 못한 생각'으로, 한때는 원했지만 이젠 마뜩치 않게 여기게 된 그런 것들을 창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대가 경험하는 세상이나 삶은 과거의 언제인가 그대가 실현되기를 원했던 것들이다.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서, 그대는 스스로 바라는 것들이 작동되도록 창조의 힘을 부여해 버린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일하는지, 그 과정을 분석하거나 탐구해 본 적이 있는가? 실현 가능성 있는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면, 그것이 어떻게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연구해 본 적이 있는가?
마음속의 바람이 어떻게, 어떤 '생각하기'를 거쳐서, 마침내 실제적인 열매를 거두게 되는지, 탐구해 본 적이 있는가?
그 과정을 탐구해 보기로 하자.
어떤 일이 실현되기 전에는, 언제나 생각이 앞서 존재한다. 그것이 실현될 필요가 있는지, 실현될 기회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생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안에서 왔는지, 바깥에서 왔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감을 불어넣은 것은 언제나 '나'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기가 주어질 때, 그대의 의식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대가 분주한 마음의 활동을 멈추고 얼마만큼 고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 정도에 따라, 잡다한 생각들을 의식에서 추방하고 그 생각에 얼마나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그래서 그 생각이 얼마만큼 지배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나는 그대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주고, 그 생각이 품고 있는 다양한 국면들과 가능성들을 그대 앞에, 그대의 내적인 응시 앞에 펼쳐 보인다.
그대 스스로는 아무런 용기를 발휘하지 않아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그대의 마음에 가능성의 전망을 보여주어, 그대의 관심 사항으로 떠오르게 되면, 그때는 그대의 인간적인 개성이 그 과업을 알아서 떠맡게 된다. 그대의 마음에 생각을 창조하고 영감을 불어넣었듯이, 그 생각을 여물게 하여 그대로 하여금 생각의 모든 가능성이 겉으로 나타나도록 실현시키겠다는 욕망을 품게하는 것도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 욕망을 가지는것이, '나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데 있어 세상을 사는 원동력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개성이란 것이 '전능한 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쓰여지는 세상적인 도구인 것과 같다.
그렇다, 모든 생각과 모든 욕망은 그렇게 '나'에게서부터 온다. 그것들은'나의 생각들'이고 '나의 욕망들'이다. 내가 그대를 통하여 그것들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그대 마음에, 그대 가슴에 불어넣은 것이다.
그대 자신만의 생각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나에게서 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욕망도 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욕망은 좋은 것이고, 그것을 흠 없이 이해했을 때, 빠르고도 완전한 성취를 맛볼 수 있다.
그대는 '나의 욕망'이라는 것을, 내면으로부터 불어오는 '나의 자극'을 잘못 해석하여, 그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것이 허락될 때라도, 그것 역시 '나의 의도'를 충족시킨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들'의 완전한 표현을 위해, 그대를 사심 없고 정갈한 통로(채널)로서 만들어 주는 것은, 그대로 하여금 '내가 준 재능'을 남용하게 하고 그런 남용이 가져온 고통을 경험하게 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마음에 생각을 품는다. 그런 다음엔 그 생각을 외부적으로 실현시킬 욕망을 품게 된다.
관계라는 게 그렇게 된다. 이제 실현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생각의 그림이 마음에 펼쳐지는 명확함의 정도에 발맞춰, 생각이 나름대로의 개성을 소유하는 정도에 따라, 창조의 힘은 '욕망'에 추진력을 얻어, 일을 진행시킨다. 마음으로 생각을 품고, 그것을 그림으로써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생각의 살아 있는 질료를, 물과 불과 바람과 흙이라는 초자아적인 질료를 마치 진공상태에 불어넣는 것처럼 불어넣을 수 있도록, 내적인 형상을 지음으로써, 생각은 마침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침묵으로든 귀에 들리는 말로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씀'이 선포되면, 이 질료는 즉각 물질화를 시작한다. 무엇보다 먼저 의식을 조종하고 의식에게 지시를 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모든 활동에 방향을 줌으로써, 생각과 이어진 마음과 몸의 모든 활동에 지시를 내림으로써. 왜냐하면 모든 의식, 모든 마음, 모든 몸은 다 '나의 것'이고,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며, 모두가 개체를 뛰어넘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억하라. 그렇게 주변 환경과 사물들을 끌어들이고, 지시하고, 모양을 짓고, 틀을 만들어, 생각은 실제로 눈에 보이도록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모든 환경이, 일어나는 모든 일이 먼저 마음에 생각이 있고나서 부터이다. 마음에 '욕망'을 가짐으로써, '생각'을 함으로써.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생각은 마침내 눈에 보이는 모습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깊이 생각해보고, 스스로 증명하도록 하라.
그대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생각을 품고, 앞서 이야기한 실현화의 과정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대가 이미 이루어 낸 일을 거꾸로 추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대가 그렸던 그림에 대해서라도 좋고, 그대가 발명한 기계에 대해서라도 좋고,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이나 특별한 물건에 대해서라도 좋다.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이것이 모든 '진정한 생각하기'의 과정이요, 계획이다. 모든 '창조'의 과정이요 계획이다.
들으라! 그대는 생각하기의 이런 힘을 통해서, 지상의 모든 왕국을 지배하고 있고, 지배해 왔다. 그대는 지금 이 순간, '생각하고' '말씀'을 선포하기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을 알고,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하고, 전능한 힘을 갖는 그대의 진정한 자아, 그대 안의 나는, 생각의 열매를 맺게 할 것임을 '선포하라'. 그대의 힘을 실현시킬 말을 선포하라. 그대의 의지와 주의가 쏠리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모든 물질의 보이지 않는 세포 의식에게도 선포하라. (그렇게 대기하고 있는 의식은 '나'의 의식임을 기억하라.) 그러면 그대가 '생각함으로써' 준비해 온 계획들이나 그림에 따라 그 모두가 즉각 복종하여 현실로 이루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만물은 '말씀'에 의해 만들어지고, '말씀'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이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대 안의 진정한 나의 의식'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의식과 더불어, 심지어는 무생물의 의식과도 더불어, '하나임'을 알기만 한다면, 그래서 어떠한 의지이든 그것은 곧 그대의 의지와 더불어 하나이고, 그것은 곧 '나의 의지'임을 알기만 한다면, 그대의 모든 바람은 '나의 바람'임을 알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대 안의 '나'를 알고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나의 생각'의 '힘'과 '영광'을 알게 되리라. '나의 생각'은 그대를 통하여, 그대 개인을 뛰어넘어, 스스로를 영원히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대가 품고 있는 생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떻게 '나'에게서, 다른 누가 아닌 '나'에게서, 지시를 받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생각의 근원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원하지 않는 생각들을 의지에 따라 의식에서 몰아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대의 욕망들을 조종하고 활용하는 법을 익혀야 하고, 그래서 그대의 욕망이 그대를 위해 언제나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그대의 바람, 그대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 안에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표현되어야 하고, 그대를 통하여 표현되어야 한다. 나의 생각은 스스로를 완전하게 표현할 것이다. 그대가 부리기만 한다면, 그대의 인간적인 마음을 잠재우고, 모든 개인적인 생각들과 신념들, 견해들을 옆으로 치워놓기만 한다면, 그래서 '나의 생각'이 흐를 수 있도록 허용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내면의 나'에게로 방향을 트는 일뿐이다. '나'에게 그대의 생각과 그대의 바람을 지시하도록 허락하는 것뿐이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하기를 바라든, 그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대의 바람은 실현되리라. 그대의 삶은 위대한 조화를 노래 부르게 되리라. 그대의 세상은 천국이 되고, 그대의 자아는 '나의 자아'와 더불어 하나가 되리라.
그대가 이것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이 말 속의 속뜻을 곁눈질이나마 할 수 있을 때, 그대는 다음에 올 말씀의 진정한 취지를 손에 거머쥘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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