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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 1, 2의 내용을 촘촘히 정리하다

by tat tvam asi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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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주 지음, 김유기 옮김 / 한국문화사 -

 

 

 

 여는 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구약 말씀, 이스라엘 역사, 메소포타미아라는 여러 갈래의 선들이 줄기 하나로 엮어지는 기적의 참 맛을 보았다!!!

 

예전부터 메소포타미아에 관심이 많았었다. 구약시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온 백성 또는 각 부족의 집단적 역사였든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개인적 역사였든 간에 하나님의 가르침과 항상 함께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고대 그리스어 'Μεσοποταμία'에서 온 말로서 '메소'는 중간이라는 뜻을, '포타미아'는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래로 역사지리학  고고학적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알고 있다.

 

성경을 연구하며 중동 문제와 연관지어 책을 보고 있던 차에, 현재는 이라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인간이 부딪치는 역사는 본질적으로 고대와 현대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그 문명에 대해 전공자의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대인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소개하며 광범위한 시대를 넘나드는 이 책은 당시 사회의 다양한 문화와 문학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이 방대한 역사서술의 의무를 넘어, 문화와 사회경제적 상황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특별히 이번 과제를 통해 여러 자료들을 읽으며, 고대 근동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배우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한 구약성서의 재해석을 이루어 내기까지 기대와 설렘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몸 되는 글

 

. 메소포타미아 문명

 

1) 메소포타미아 특징

 

- 메소포타미아에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있다.

- 이 강들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땅은 광활하고 비옥하다.

- 이 땅은 여러 문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 이 곳 북부에는 계곡이 많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서쪽으로 사막이 이어진다.

- 여기에는 원유, 역청, 석회석이라는 자원이 있었다.

- 이 풍부한 자원 덕분에 메소포타미아는 다른 지방과의 무역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 메소포타미아는 주요 교역로로 지중해와 아랍-페르시아 만의 해상로를 발전시켰다.

 

2) 메소포타미아 문명

 

기원전 375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에 인구학적, 기술적, 문화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는 7세기 후에 수메르와 아카드라는 역사적인 나라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새로운 이주민들은 유프라테스 강과 그 지류를 따라 정착했다. 우바이드 시대에 있던 큰 중심 마을 주변으로 작은 마을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이 관찰된다. 이 중심 마을은 교역이 중심지인 동시에 모든 사람의 번영을 주관하는 여러 신을 섬기는 제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가뭄으로 인한 유량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큰 운하를 팠다. 이 일을 위해 필요한 집단적인 노동력을 확보했다. 이를 이용해 얻은 관개수를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 도시의 전통적인 시장이었던 고위직 사제의 책임과 권위가 강화되었고, 따라서 신전은 그 영역을 확대하게 된다. 종교적 지도자는 군사 지도자의 직책을 겸했으며, 종종 군사 지도자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이제 이 땅에 요새화된 도시, 경계가 명확한 영토, 그리고 신들의 대리인인 군주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급 위에서 계층화된 수메르와 아카드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우루크 시대와 도시의 발전


도시 우루크는 두 개의 쌍둥이 마을의 융합으로 생겨났다. 서쪽에 쿨라바가 있었고 동쪽에는 에안나가 있었다. 각 마을에는 신전이 하나씩 있었다. 쿨라바는 수메르의 최고신인 아누의 보호 아래 있었고, 에안나는 이난나 여신 (이슈타르)의 보호 아래에 있었다. 에안나의 중심에는 거대한 지구라트가 서 있었는데, 측면의 길이는 52미터이고 현재 상당히 파괴된 상태의 높이가 8미터이다. 8993


우루크 시대 때 세공술은 특히 메소포타미아인의 환경 일상생화, 신념에 관해 우리에게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기원후 19세기 제외하고 이러한 기술 혁신의 탄생은 먼 옛날 우루크 시대 밖에 없다. 주요한 혁신, 바퀴, 쟁기 돗단배 금속 제품의 공업 생산은 문자의 발명 앞에서 빛이 바랜다.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서가 그림문자 토판의 형태로 출현한 것은 3300년경 우루크의 에안나 고대 신전 내부이다. 문자가 우루크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3) 문자의 기원

 

문자는 수메르인이 발명하여 사용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의 발명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고대 세계에서는 진흙 위에다 글자를 썼다. 글을 쓰는 기술은 단순했다. 서기관은 물이 가득한 단지에 보존되어 있던 입자가 아주 곱고 질 좋은 흙덩어리를 잡아서 한 덩어리를 뜯은 후, 그것을 손으로 빚어 일종의 자은 방서이나 판 모양을 원하는 크기로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이 반죽에다 갈대 줄기 끝으로 자신의 언어를 표현하는 기호를 그렸다. 그 후 이 판을 태양에 말리거나 화덕에 구웠다.

 

많은 학자들은 수메르 문자는 물건의 수를 세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추정한다. 문자 모양과 크기에 따라 단위를 표시하기도 하고 단위의 곱을 표시하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기원전 3500년경 수사에서 발견된 이런 물건들은 점토 봉인으로 봉해져 있고, 밖에는 가은 모양의 흠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곧 이 문자는, 셈과 관련된 기억 보조 장치라는 원시적인 목적을 빠른 속도로 넘어서게 된다. 발명 이후 단지 몇 세기 만에 정신 활동의 모든 영역에 활용되면서, 방대하고도 수준 높은 문학을 전달하는 매체 역할을 하게 된다.

 

. 수메르 문명

 

1) 수메르 문명의 탄생

 

고대 수메르 문명이 메소포타미아에 어떻게 정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수메르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방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1869년에 문헌학자 쥘 어페르가 분명 아시라어도 바빌로니아어도 아닌 일부 메소포타미아 명문의 언어를 '수메르어'라 부를 것을 제안하고, 8년 후 에르네스트 드 사르젝이 텔로에서 진정한 의미의 쉠르 문명을 발견한 이래로 여러 차례 걸쳐 논쟁의 대상이 남았다.

 

수메르라는 단어는 이라크 남부 지방의 고대 명칭 수메르에서 유래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슈메르이며 쇄기문자 문서에서는 일반적으로 KI.EN.GI라고 적혀있다. 역사시대 초에 이 지역에서는 세 민족 집단이 긴밀히 접촉하며 살았는데 서로 사이가 좋았던 것 같다. 수메르인은 니푸르 근처에서 아랍-페르시아 만 연안까지 최남단에 주로 살았고, 셈족은 아카드의 고장이라 불리는 니푸르와 바그다드 지역 사이에 많았으며, 마지막으로 이름을 알 수 없는 흩어진 소수민족이 있었다.

 

수메르 문학이 묘사하는 사람들은 지적이고, 근면하며, 말로 논쟁하기 좋아하고, 유머 감각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면서도 무척 종교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기원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2) 수메르의 신들

 

수메르 문명을 이어받은 아시리아-바빌로니아 문명은 어느 각도에서 접근하더라도 거의 언제나 수메르의 원형에 이르게 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예는 종교다. 역사의 시작부터 아카드 셈족의 종교는 그들의 이웃인 수메르인의 종교에 녹아 들어간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셈족의 종교가 훨씬 단순하고 덜 구조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적 개념을 체계화하고 이를 신의 가족과 신화라는 형태로 표현한 것은 아마 기원전 제 4천년기에 하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화 단계에서 시작된 듯하다. 신의 계보와 신화적인 이야기가 다양하며 종종 모순된다는 점에서, 이런 체계화와 표현이 다양한 신학적 학파에서 이루어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수메르와 아카드의 도시들이 지역 전체에 공통된 신들의 목록을 보고서 그중에 각자 자신의 수호신을 택하자는 합의가 당시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가설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은 사람의 모습, 특성, 결점,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특별한 능력과 초자연적 힘을 부여받았으며 영원히 죽지 않았다. 또한 그들에게서 '광채'가 났다고 한다. 이 후광은 사람을 공포와 경외심에 사로잡히게 했으며 신적인 것과 접촉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불어 넣었다. 이런 감정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핵심 요소이다.

 

*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계층 구분도


 가장 하위 계층- 선하거나 악한 유령이나 귀신으로 각 개인에게 붙어 있는 일종의 수호천사로서 개인의 행복과 성공을 책임지면서 개인과 더 높은 신들 사이에 중재자 역할 담당


 도구와 직업의 신들 - 하위 계층보다 한 단계 위에 위치하여 도구(곡괭이, 벽돌 제조 틀, 쟁기)와 직업(도공, 대장장이, 금은 세공인 등)을 관장함.


 자연의 신들 - 그 위의 광범위한 의미의 자연(광물, 식물, 가축과 야생 동물, 다산과 출생의 신, 치료의 신, 폭풍우와 바람과 불의 신)을 관장하는 신들의 무리


 저승 세계의 신(에레슈키갈, 네르갈), 전쟁의 신(니누르타)


 천체의 신들- 달의 신(닌나/), 해의 신(우투/샤마시)


 계층의 맨 꼭대기를 차지한 우주적인 세 신 - 아누, 엔릴, 엔키

 

우주적인 세 신들 중, 아누는 하늘의 신이며 원래 의미로나 비유적 의미로나 가장 높은 신이다. 그는 모든 신의 신으로서 신들의 논쟁을 조정하고 판결하는 반면에, 인간사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수메르의 진정한 최고신은 엔릴로, ‘공기의 지배자 혹은 대기라는 의미인데, 이 단어는 무한한 공간, 바람의 움직임과 힘뿐만 아니라 생명의 호흡도 떠올리게 한다. 안이 신들 중의 왕이라면 엔릴은 수메르와 메소포타미아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왕,  많은 무리의 목자이다. 마지막으로 세신 중 셋째 구성원인 엔키의 성품은 더 미묘하고 좀 더 알려져 있다. 엔키 에아는 확실히 민물, 샘 흐르는 물의 주인이며, 그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중요한 신이다. 주요한 특징으로는 지성이 잇는데, 당시에는 이에 대해 귀가 크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표현은 지식이 구두로 전해지던 시대의 잔재인 듯하다. 그는 또한 기술, 과학, 예술의 발명가와 보호자이며 마술사의 수호신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수메르 문명의 핵심 단어로 보이는 메me가 있다. 메는 신들이 결정하며 운명을 할당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엔키는 탁월한 지성을 갖고 있어서 엔릴이 공표한 법을 운용하게 된다. 삶에 관해 복잡한 장문의 시를 보면 엔키는 세상을 질서 있게 만들고, 자비로운 축복을 수메르와 그곳에 있는 외양간, , 도시뿐만 아니라 멜루하와 딜문 및 시리아 사막에 사는 유목민 마르투에게까지 전한다.

 

이 남성 신들은 다양한 지위의 여성 신들과 짝을 이룬다. 그중 일부는 단순히 배우자이며 다른 이들은 특정한 임무를 띠고 있는데 그 우두머리에는 모신 난후르사그(닌마 도는 닌투로도 불린다)와 여신 이난나(셈족의 이슈타르)가 군림하고 있다. 이난나는 자신의 애인 두무지와 더불어 수메르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래된 신앙에서는 가축의 번식 및 식물과 과일의 재생은 매해 초 두무지를 상징하는 왕이 이난나를 상징하는 왕의 여 사제 중 한명과 결합하는 의식으로 보장된다고 믿었다. 가장 노골적인 성행위를 가장 부드러운 감정과 이어 주는 뛰어난 사랑의 시들은 신성한 결혼을 주제로 하고 있다. 땅 위에서 진행된 의식은 왕의 찬가로 전해지고 잇는데 그중 가장 명료한 것은 이신 왕조의 세 번째 왕인 이딘-다간의 찬가다.

 

3)수메르인들의 종교적 사고와 삶

 

메소포타미아인은 자기 주변에 보이는 상을 따라 우주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 상은 광대한 하늘, 넓은 평야, 그리고 많은 물이었다. 그들에게 땅ki은 민물 abzu, apsu 위에 떠다니는 원반으로서 대양에 둘러싸여 있었고, 이 대양은 고리 모양으로 둘려 있는 산들에 접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구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구의 위쪽 절반은 주석 빛 단단한 둥근 천장으로 하늘an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위에서는 천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쪽 절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신비로운 지하 세계, 즉 저승 세계kur를 이루고 있었다. 이 구 전체가 영원하고 무한한 '원시바다'안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었다. 이들은 세계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장엄한 질문에 대해 지역적 전승이나 시대 혹은 대상으로 하는 대중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대답했다. 사실 우주 창조에 관해 기술하는 수메르 신화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저명한 수메르학 학자인 S. N. 크레이머에 따라 여러 문서에 산재한 자료들의 종합이 이루어졌고, 이 위대한 우주적 서사시는 에누마 엘리시라는 제목으로 불리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종교는 개인과 신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 그리고 개인의 일상적 삶에 초자연의 현상을 믿는다. 메소포타미아인의 이름 중 신의 이름이 포함된 것 (일리-웨다쿠 '나의 신이여, 나는 외롭습니다', 이레만니-일리 '나의 신이 나를 불쌍히 여기셨다', 아달랄- '나는 신을 찬양하겟습니다.') 등은 흔히 혼란, 요청, 인정, 혹은 기쁨을 표현하는 진실한 외침으로서, 이것만으로도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부모가 지닌 신앙심이 증명된다. 이런 민간 신앙에 대해서는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금석학적 혹은 고고학적 성격의 증거가 산재해 있다. 그러므로 귀족과 사제 계층이 종교적 사고를 독점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신들에 대한 메소포타미아인의 태도는 마치 선한 주인에 대한 종의 태도처럼 복종과 두려움뿐만 아니라 존경과 찬미와 신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신들에 대한 일상적인 봉사, 여러 복잡한 의식을 수행하는 것, 그리고 계절에 다라 혹은 연례행사로 이루어지는 대축제의 집전은 계속해서 사제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주부터 비천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은, 신들에게 복종하고 신들의 명령을 성실하게 다르며 하루 일과에 포함된 수많은 규율과 금기 사항을 준수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법을 어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죄였으며, 모든 죄는 의도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파괴, 질병, 또는 죽음의 벌을 받을 수 있다. 질병, 역경, 슬픔을 앞두고 때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공평하고 자비롭다고 하는 신들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악이 선을 이길 수 있을까? 물론, 고의로 저지른 것이 아닐 수도 잇는 모종의 '' 때문에 이런 불행이 오는 경우도 자주 있지만,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 분명한 이유 없이 벌을 받는다거나 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루들룰 벨 네메키 (나는 지혜의 주를 찬양하고 시다)]라는 표제가 붙어 있고 우리가 고난 당하는 의인라 부르는 바빌로니아의 장엄한 시는, 한때 귀족으로 부유하고 건강했다가 갑자기 파산한 후 모든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병에 걸린 한 사람의 스라린 감정을 비통한 어조로 그리고 있다. 결국 마르두크가 이 사람을 불쌍히 여겨 건강과 행복을 되찾아 주지만 우리의 바빌로니아 욥은 시의 지혜에 대해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4)수메르 신화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세상의 중심으로 보고 자신들을 첫 인류의 직계 후손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수메르) 나라를 뜻하는 칼람kalam “(수메르) 사람들을 뜻하는 우쿠uku를 같은 글자로 표현했다. 분명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남부 메솜포타미아의 가장 오래된 주민으로 생각했다.

 

수메르인이나 바빌로니아인은 셈족 유목민과 달리 계보에 관해 관심이 없다. 이러한 관심은 아랍의 전통에서도 발견되며, 구약성서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의 목록으로도 표현된다. 수메르인과 바빌로니아인은 자기 역사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았다. 신들은 자기들을 섬기게 하려고 인간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이 섬김의 세부사항을 결정하고 '의례'를 철저하게 규정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거대한 무리, 즉 군중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신들이 선택한 안내자, 목자, -사제가 있어서 신들의 법을 시행해야 한다. 이 우두머리들만이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아주 오랜 옛날 '높은 왕관과 왕위'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때부터 왕들이 신들의 이름으로, 그리고 신들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수메르의 운명을 이끌었다. 이렇게 하여 고대 이라크 역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세했던 왕권신수설이 정당화 되었다. “아담에서 대홍수에 이르기까지 수메르의 영웅시대라 불리는 시대를 특징짓는 몇몇 신화들은 신인동형론적 성격에 기반을 둔다.

 

4-1. 메소포타미아 대홍수 이야기

 

홍수신화는 이미 창세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는 구약 성경 뿐 아니라, 수메르 신화 또 그리스 신화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그 내용에도 강한 유사점을 보인다. 1872년 대영박물관에서 일하던 젊은 앗시리아 학자인 조지 스미스는 앗시리아 제국의 왕인 아수르바니팔의 도서관 토판문서에 적힌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노아의 홍수 사건과 유사한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문서의 내용은 성서의 이야기와 너무도 비슷하다. 오래 전 신들이 슈루파크에 살고 있을 때 그들은 죄 많은 인간들을 어마어마한 홍수로 익사시켜 멸망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에아는 우트-나피쉬티를 가엾이 여겨 갈대로 엮어 만든 얇은 벽을 통해 홍수에 대해 알려준다. 에아는 그에게 집을 허물고, 재산을 버리고, 배를 만들어 모든 생물의 씨를 가지고 승선하라고 명한다. 그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하여 우트-나피쉬티는 커다란 7층의 방주를 만들고 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역청을 안팎으로 칠한 후 금, , 동물, 우트-나피쉬티의 가족, 친척, 그리고 일꾼들과 함께 승선한다. 여섯 날, 일곱 밤 동안 바람이 불고 홍수와 폭풍이 땅을 덮었다. 방주가 니무쉬 산에 안착한 후, 일곱째 날에 우트-나피쉬티는 비둘기, 참새, 까마귀를 차례로 날려 보내 마른 땅이 있나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보낸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그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홍수설화 이외도 다른 메소포타미아 홍수 이야기들이 발견되었다. 그중 <아트라하시스>는 긴 이야기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길가메쉬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대홍수 문제에 대한 정보를 수렴한다. 여기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대홍수는 수메르 도시국가 전체에 대한 슈루파크의 우선권이 끝나는 시점을 나타낸다.


2.메소포타미아 대홍수 이야기의 세 판본에 나오는 영웅은 슈루파크의 왕이나 왕자이다.


3.슈루파크에서 고대 왕조 시대 초기에 있었던 중요한 홍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4.마지막으로, 슈루파크는 기원전 제3천년기에 문화적 중심지였다.

 

이렇듯 아트라하시스는 대홍수 사건과 대홍수 신화를 서로 결합하여, 신화와 그 영웅을 영속화 하였다. 이는 수메르 신화의 신인동형론적인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4-3. 길가메시 서사시 요약

 

초기 길가메시 서사시는 2가지 판으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수메르나 아카드어로 구전되거나 기록된 파편들이고, 두 번째는 고대 바벨론 판본이다. 비록 고대 바벨론 길가메시 서사시는 파편들로 남아 있지만, 이 서사시는 독창적인 이야기들이 남겨져있다.

 

고대 바벨론 판본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 길가메시를 백성들을 압제하는 독재자로 소개한다. 백성들은 이런 힘든 환경속에서 신들에게 기도를 하고, 신들은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준다. 신들은 길가메시의 힘과 필적한 인물을 창조한다. 이 인물은 바로 엔키두이다. 이 엔키두는 동물들과 같이 살고, 털이 많은 야만인이다. 이 창조된 야만인 길가메시와 싸우지만, 나중에 친구가 되고 만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서로 친구가 되면서, 여러 모험을 떠났다. 그들은 모험을 떠나면서 쿠와와라는 삼나무 숲(Cedar Forest)에 사는 후와와와 대결을 펼치고, 그 괴물과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인안나와 하늘의 황소 대결에서도 승리를 하였다. 먼저 인안나가 길가메시를 유혹하였지만, 그는 인안나의 유혹을 물리치고 그녀를 모욕하였다. 그의 모욕을 참지못한 인안나는 길가메시를 죽이기 위해 황금 황소를 보냈지만, 그 황소도 길가메시와 엔키두에게 패배하여 죽임을 당했다. 이 때문에 인안나는 길가메시에게 저주를 내렸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그 저주를 무시하고, 하늘 황소의 다리를 인안나 얼굴에 던졌다. 그리고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이 승리에 축하하였다.

 

그러나 후와와, 하늘의 황소를 죽인 대가는 너무나 컸다. 이들의 죽음으로, 엔릴을 비롯한 많은 신들이 분노를 하였다. 그래서 신들은 회의를 열고, 엔키두를 죽이기로 결정을 하였다. 결국 이 때문에 엔키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면서, 그 자신은 죽음이란 문제에 큰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영생, 불멸에 대해 고민을 하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의 끝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우트나피스팀에게 갔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위해 우프나프스팀을 만나러 가던 중, 시두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안주인(alewife)이다. 길가메시는 시두리에게 친구의 죽음을 통해 영생을 위한 여정의 길에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우프나프스팀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하지만 시두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시두리의 권면

 

죽은 이에게는

사랑도 의무도 야망도 없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이라도 끼어들 자리 하나 없으니

하느님은 지금

그대가 하는 일을 좋게 보시니

기쁨 맘으로 밥을 드시라

즐거운 맘으로 술을 마시라

옷은 언제나 깨끗이 입으시라

머리에는 기름을 바르시라

그대가 숨쉬며 살아가는 나날

숨쉬며 살아가라고

하느님이 허락하신 그 나날

그대가 아끼는 짝과 함께

즐겁게 사시라

그대가 사는 나날

세상에서 수고했다고 주시는

그분의 선물이니

무슨 일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

그대가 드러갈 무덤은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으니

 

그녀는 죽음에 고민을 하는 길가메시에게, 지금 현재에 살라고 권면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우트나피스팀을 만나는 여정이 굉장히 힘들다고 말을 한다. 이렇게 설명을 한다음 그녀는 우트나피스팀의 뱃사공, 우르샤나비에게 이끌었다. 그녀를 통해 길가메시는 우리샤나비를 만나게 되고, 이 우르샤나비의 인도를 통해 우트나피스팀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트나피스팀는 길가메시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우프나피스팀은 자기가 오래 살 수 있는 이유를 이야기 하기 위해, 길가메시에게 신들에 의한 홍수 심판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홍수 때 엔키의 도움으로 살아남고, 그 신의 에 의해서 신이되어 오래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길가메시에게 7일 동안 깨어 있으라고 도전한다. 그는 그 도전을 받아들였지만, 금방 졸음이 오고 7일 동안 잠들었다. 우트나피시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을 못 이기면서 어찌 죽음을 이기려 하는가."

 

길가메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뻔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길가메시를 불쌍히 여긴 우트나피쉬팀 아내의 권고로, 우프나피쉬팀은 길가메쉬에게 불로초의 행방을 알려주게 되었다. 그 덕분에 길가메시는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 불로초를 얻었다. 그러나 그가 목욕하는 동안 불로초를 뱀에게 뺏기고 말았다. 그는 불로초를 잃어버리고, 더 이상 오래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불로초를 잃어버린 길가메시는 매우 슬퍼하고, 죽음에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길가메시는 다시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 죽음을 받아들였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변화이다. 첫 번째 변화는 바로 인간이 아닌자가 (non-human) 인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엔키두에게 해당된다. 엔키두는 야만인 상태로 창조 되었다. 여기서 야만인 엔키두는 원시주의(primitivism)을 나타낸다. 원시주의 사람들은 짐승들과 다를바가 없다. 바벨론 판본의 엔키두는 원시적인 인간에서 문명된 인간으로 다시 되살아(redivivus)난다. 그는 몸을 씻고, 옷을 입으면서 사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 인간화된 엔키두는 길가메시를 왕으로 인정하게 된다. 두 번째는 길가메시가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변화이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으로 씻지도 않고, 옷을 입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 사회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길가메시는 영웅의 모습을 버리고, 반인간 (anti-man)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이 이러한 변화는 너무 급진적이었다. 마지막 변화는 길가메시가 다시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그는 죽음을 넘는 것에 실패했지만, 그의 내면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다시 목욕을 하고, 가죽옷을 벗고, 다시 그의 인간성을 되찾았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지혜의 문서라고 한다. 길가메시는 영생을 얻기 위해, 바다의 심연으로 들어가 불로초를 보았다.  심연으로 들어가 불로초를 본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 아카드어에서는 이 바다의 심연을 naqba라고 한다. naqba는 심연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지식의 총체를 라는 뜻을 지니기도 한다. 지혜를 찾기 위한 길가메시의 여정은 매우 험난하였다.

 

길가메시는 깊은 바다속으로 들어가 불로초를 얻었지만, 뱀에게 빼앗겼다. 불로초를 찾는 여정의 피로로 인해, 그는 깊은 잠에 빠지고, 뱀은 그가 잠든 틈을 타 귀중한 풀을 빼앗을 것이다. 결국 길가메시는 뱀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더 큰 지혜를 얻게 되었다. 1토판 구행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urha ruqta illikam-ma anih u supsuh

그는 먼 길을 떠나 지쳤지만, 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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