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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믿음으로 사는 삶, 시 9:1-20, 시편 시리즈 설교(9)

by tat tvam asi 2025.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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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삶

시 9:1-20

 

다윗은 왕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높은 하나님이 있음을 의식하고 늘 그분을 찬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의지적인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시 9:1-2 /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다윗은 전심(全心)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결심합니다. 

첫째는 '주님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둘째는 '지존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찬양과 경배'라고 말할 때 찬양은 하나님의 역사(행하심)를 노래하는 것이고, 경배는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하는 것이기에, 1-2절은 다윗의 찬양과 경배가 되는 셈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이유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시 9:3-6 /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다윗이 드리는 감사와 기쁨의 이유는, 원수들이 도망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와 송사를 변호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의롭게 심판하여 주셨다고 신앙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와 송사를 변호해 주시며, 의로운 심판을 행하여 주셨다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다윗의 삶이 그만큼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 가운데 다윗을 가장 힘들게 하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 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울이 다윗을 좋아했지만, 백성들이 자신보다 다윗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사울은 다윗을 질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2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사울을 해치지 않고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삼상 24:12 /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삼상26:10 /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다윗은 결국 하나님께서 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믿었기에 스스로 보복하기보다 하나님의 손에 의탁한 것입니다.

시 9:7-8 /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원수들이 영원히 멸망하는 이유는 여호와는 의로우시므로 그분의 심판도 의롭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재판관이신 하나님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라는 것은 악인들에게는 재앙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자신 있게 하나님께로 나가서 심판을 구하는 것입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가면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내가 지금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압제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요새가 되신다고 합니다.

 

시 9:9-10 /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을 다닐 때에 하나님께서 요새가 되심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옛날에는 높은 곳의 요새는 전쟁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이처럼 다윗에게 있어 참된 요새는 자연 지형에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참된 요새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를 이루실 것이라는 마음의 확신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포하라고 말합니다.

 

 9:11-12 /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시온에 계신 여호와"에서 "시온"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멀리 어딘가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계시고, 그 안에서 자신의 뜻과 공의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피 흘림을 심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다윗은 자신이 대적자들로 인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지만하나님의 이끌어주심과 건져주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며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시 9:13-14 /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귀신 들려 점을 치던 소녀를 고쳐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와 박수가 아니라 심한 매질과 감옥에 갇힘이었습니다. 그 때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무엇을 했는지 아시지요?

 

 16:25 /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참 억울합니다. 바울 일행은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감옥 안에 갇힌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깊은 감옥이었습니다. 그 때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였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찬송을 드렸다는 것은 빨리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찬송은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 상황에서 찬송을 드렸다고 하는 것은, 그 상황을 진심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 상황으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진심으로 수용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어주셨고, 간수의 마음의 문도 열어, 그 집안에도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심판을 행하시는 것은, 공의를 드러내심과 동시에 자비를 나타내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심판을 보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이고 구원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시 9:15-16 /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 셀라)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영원하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고, 하나님의 속성에 반한 일은 행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 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두 부류 사람들의 결말이 나옵니다.

 

첫째는 주님을 멀리하는 자들입니다.

 

시 9:17 /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악인들'이란,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예비된 것은 영원한 심판입니다.

스올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원래 자리였던 것처럼 말합니다.

 

둘째는 주를 찾는 자들입니다.

 

 9:18 /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궁핍한 자", "가난한 자", 압제를 당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의 이름을 아는 자, 주를 찾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은 이런 사람들이 손해보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그들을 잊으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언약을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강성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은 악인의 심판을 기원하며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9:19-20 /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셀라)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은 악인으로 인해서 그만큼 처절하고 고달프고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쿠데타를 당하여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신발도 신지 못하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물을 삼키며 감람산으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기도하기를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아룁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적잖이 일어납니다. 또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으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살고 계십니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이 땅에 나타내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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