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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희망을 노래하라, 장로부부 헌신예배, 행 3:6-8

by tat tvam asi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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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 앞에 나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인류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붙들고 날마다 힘있게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찾아오는 무력감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겁니다. 의욕이 자꾸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합리화하려합니다. 환경 때문에, 건강 때문에, 나이 때문에, 병이 들어서….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임하 자 그들 속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무력감을 벗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리로, 골목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랬더니 3천 명, 5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위대한 믿음의 역사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사탄에게 잡힌 사람들은 무기력해집니다. 무기력해지면 의욕을 상실하고, 의욕상실은 우울증을 낳습니다. 우울증은 좌절을 낳고, 좌절은 절망을 낳습니다. 절망은 패배를 낳고, 패배는 파멸을 낳습니다. 그리고 파멸은 결국 사망을 낳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공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기력함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이 시간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돕는다고 하는 선언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기에 내가 여기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언을 해버리십시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도 믿는 사람에게 계속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그가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 선언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믿음의 선언을 하기 원합니다.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붙잡고 믿음의 선언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넘치는 의욕이 있습니다. 그의 삶에는 열정이 있습니다. 원래 삶의 열정이나 의욕이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신이 임하셨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의욕이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그의 삶에 열정이 있습니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그분들은 정말로 정열적으로 뜨겁게 주 앞에서 살다가 간 분들이었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가리켜서 '브랜드의 시대'라고 말합니다즉 남들과 똑같은 생각으로는 시대에 앞서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성경을 보십시오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믿음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모세가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믿음의 소유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믿음을 가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반응하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먼저 온유하고 겸손하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5:5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겸손하십시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약 4:6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결국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세상을 정복합니다. 잠언 25장에 보면, 부드러운 눈과 부드러운 혀가 뼈를 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보다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만이 하늘의 꿈을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그냥 주는 기적이 아닙니다. 주의 제단에서 나오는 말씀 한마디에 생명을 걸고 변화하고자 몸부림치는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겁니다. 10, 20, 일평생을 교회에 다녀도 종교놀이만 하는 사람은 단순한 종교꾼입니다. 그 사람 속에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와의 영이 임한 믿음의 사람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언제나 모험심으로 불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앞장서서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내일의 교회를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은 모험심을 가지고 나가는 믿음의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을 공급하심으로 끝없이 격려하시고 칭찬하여 주십니다. 이처럼 격려와 칭찬의 사람은 생명을 살립니다. 오늘 우리를 통해 만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만 보면 신바람이 납니다" 이런 말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나에게 주신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마십시오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을 포기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저 사명을 내가 감당하리라!' 그렇게 자신에게 선언하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면, 기구한 한 사람의 인생을 보게 됩니다. 그는 평생동안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야만 했던 인생이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삶에 대한 희망도 잃어버린 인생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 22절에 보면, 이 사람의 나이가 40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40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베드로가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희망을 선포합니다.

 

행 3:6-8 /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이 희망의 메시지에 그는 40년 동안 주저앉아 있던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 앉은뱅이는 평생을 성전 문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하나님을 만나 본 일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평생을 교회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성전 문 앞에 앉아있는 앉은뱅이와 같지는 않았는지요. 세상 일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깨닫고 하나되는 삶에는 그리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결국 영적인 앉은뱅이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도 앉은뱅이 신앙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앉은뱅이에게 희망을 선포했던 베드로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땅에 희망을 선포하십시오.

 

사실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 어쩌면 그는 역사에 제일 부끄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했다고 하는 고통 때문에, 그 아픔 때문에 정말 가슴 아프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전에 올라가다가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5천 명을 회개시키는 그런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일으켰던 주인공이 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낙심에 주저앉아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영혼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희망을 선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앉은뱅이에게 있어서 희망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 땅에 희망이 무엇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의 희망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땅의 희망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들어가면 눈먼 자가 보게 될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날 것입니다. 영혼이 어두운 세력에 포로가 된 자들이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희망의 복음을 듣게 될 때 기쁨의 탄성을 지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음을 믿습니다그것은 초대교회에만 나타난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 지치고 쓰러질 때그래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앉은뱅이 상태가 되었을 때에,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의 이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더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지친 많은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꿈과 희망을 안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어 주의 이름으로 가는 모든 곳에 희망의 꽃이 피어나야 합니다. 앉은뱅이 같은 모습으로 살았다면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땅에 희망을 선포하고 그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낮은 울타리'라는 잡지에 실렸던 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29세의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응급실과 수술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그는 입원 당시부터 혼수상태였습니다.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숨쉬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혼수상태에서 만 일 년 정도를 보낸 그에게 의사들은 회복불능이라는 선고를 내렸고, 가족들도 조금씩 지쳐 갔습니다. 간호사들 또한 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김수정이라는 새로운 간호사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의 귀에 대고 항상 뭐라고 속삭였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손을 잡아주곤 했지요. 하지만 다른 간호사들은 그녀의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정말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 후 급격한 호전을 보였던 그는 일반 병실로 옮긴 후 한 달쯤 뒤 퇴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가 입원해 있던 병동에 웬 잘 생긴 남자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그 남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통사고 후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저는 항상 죽음에 대한 불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뭐라고 질문하고 이야기를 건네는데, 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눈조차 뜰 수가 없었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하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일 뿐이었습니다."

 

비록 의식은 없었지만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어머니의 울음소리친척들의 수군거림의사와 간호사들이 때때로 내뱉던 농담들그리고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던 의사의 목소리까지… 말입니다그런데어느 순간부터인가 낮은 목소리와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가 죽음의 긴 터널로 빨려들어 가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던 그 목소리 때문에 그는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식사시간입니다. 미음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너무 놀라지 마세요."

"약 먹고 빨리 일어나도록 해요."

"욕창 생기지 않게 몸을 반대방향으로 돌려 드릴게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그녀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큰 용기와 힘을 주는 메시지까지…. 늘 그에게 말을 건넸던 것입니다. 비록 의식이 없어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걸때마다 그 청년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꼭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퇴원하면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라고… 그는 그녀와 마음속으로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약속대로 건강을 회복해 그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간호사가 혼수상태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40여 년을 앉은뱅이로 살아왔던 한 영혼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희망의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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