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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천부경', 한글로 이해하기 쉽게 풀이 된 '천부경'을 발견하다...

by tat tvam asi 202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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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비결'을 읽다가 '천부경'을 깊게 듣다...

 

 

작년부터 우리나라 경전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조만간 읽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용호비결을 읽다가 자세한 설명을 보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정리해본다. 

 

 우선 '천부경'에 관한 위키백과의 설명을 보자.

 

천부경(天符經)은 대종교의 경전 중 하나로, 1975년 교무회의에서 채택되었다. 현재는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7년경 최초의 등장 시에는 단군교의 경전이었다. 실제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17년으로 단군교(檀君敎)에서 처음으로 언급, 유포하기 시작하여 1920년경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1921년 단군교의 기관지 단탁에 의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대종교에서는 한참 후인 1975년이 되어서야 기본 경전으로 정식 채택하였다. 대종교에서는 단군 시기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라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위작이라 보고 있다는 관점이 있으나 이에 대한 드러난 합의는 없다.

 

전문 81자로, 난해한 숫자와 교리를 담고 있어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현대 한국의 불교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은 대체로 고대 한민족의 종교관, 우주관, 철학관을 담아 낸 것으로 고도의 종교성을 띄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

 

析三極無盡本

석삼극무진본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一積十 鉅無匱化

일적십 거무궤화

 

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

삼천이 삼지인 삼인이

 

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삼대삼합육 생칠팔구

 

運三四 成環五七 一妙衍

운삼사성환오 칠일묘연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 太陽昻明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앙명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천부경의 원문 풀이를 보도록 한다.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

'하나'가 시작되기를 '없음'에서 했고, 시작된 '하나'가 '셋'으로 나누어지나, '없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하늘의 '하나'는 '하나'이며, 땅의 '하나'는 '둘'이고, 사람의 '하나'는 '셋'이다

 

 

一積十 鉅無匱化

일적십 거무궤화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되는데, 이것은 전부 '없음'을 부풀려 그릇으로 만든 것이다. 

 

 

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

삼천이 삼지인 삼인이

'세 하늘'은 '둘'이며, '세 땅'도 '둘'이며, '세 사람'도 '둘'이다. 

 

 

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삼대삼합육 생칠팔구

'세 큰 것'이 '셋'으로 합하면 '여섯'이 된다. 여기서 '일곱'과 '여덟'과 '아홉'이 생겨난다. 

 

 

 

運三四 成環五七 一妙衍

운삼사성환오 칠일묘연

'셋'이 움직이면 '넷'이 이루어지고 고리가 되어 '다섯'이 된다. '일곱'은 '하나'가 묘하게 불어난 것이다.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 太陽昻明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앙명

수없이 오고 감에 '작용'은 변하나 그 '본체'는 움직이지 않으니, '본래의 마음'은 본해 '태양'처럼 광명하다.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

'사람' 가운데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

'하나'가 끝나고, '없음'이 끝나기를 모두 '하나'에서 한다. 

 

 

 

 '용호비결 강의'를 저술한 윤홍식은 '천부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천부경(天符經)》은 예전 우리 백두산족의 시조이신 대황조님께서 전해주신 혼원일기(無)와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가르침이 담긴 우리 민족의 경전이다. 처음에는 원방각(△, 이는 우리 한글의 창제 원리에도 이용됨) 등의 그림이나 상징으로 전해 오다가, 후에 고대 문자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고운(孤雲) 최치원(857 ~ ?) 선생께서 이를 지금 우리가 보는 한자로 번역하셨다고 한다. 

 

다음은 전문 81자로 이루어진 천부경을,  한글로 알기 쉽게 풀어낸 저자의 글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한글 천부경>

 

 

 

1. 천지만물의 씨알이 되는 '하나'◉(태극)는 '텅 빔'◯(무극)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하나'와 '텅 빔'이 본래 둘인 것은 아니다. 본래 한 자리이나, 그 역할에 따라 2가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만물'의 뿌리가 되는 측면에서 보면 '텅 빔'은 '하나'라고 불리며, 만물을 낳되 만물에 물들지 않는 '하나'의 측면은 '텅 빔'이라고 불린다. 

 

 

⸙ '텅 빔'에서 '하나'가 나왔다는 것은, 텅 빔의 허공이 없이는 만물의 뿌리인 태극의 '하나'가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존재 자체'가 없이는 '존재의 작용'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태극과 황극이 작용하고 불어나도 무극은 조금도 손상받지 않는다. 무극은 존재, 생명 그 자체이다. 태극과 황극은 존재의 작용, 생명의 나타냄일 뿐이다. 본래 둘이 아니다.

 

 

무극이 '존재의 바다'라면 태극은 '바다의 미묘한 움직임'이며 황극은 '바다의 파도'이다. 바다와 움직임과 파도는 본래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스스로 완벽한 존재인 '텅 빔'과 그것의 움직임인 '하나'는 본래 하나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완벽한 존재인 이 '텅 빔' 안에 존재하며, '텅 빔'은 모든 만물의 존재 근거가 된다. '텅 빔'은 언제나 '하나'(한 생명)로 작용하여 '만물'을 창조해 낸다.

 

 

'창조'는 '텅 빔'의 본성이라 창조가 멈추는 법은 없다. 오직 낳고 또 낳는 것이 하느님의 본성이다. '텅 빔'(시공을 초월한 있음 그 자체, 0⟶1의 뿌리, 1의 텅 빈 모습)은 '한 생명'(텅 빔의 신령한 작용, 1⟶현상계의 뿌리, 0의 작용하는 모습)이며, 이 '한 생명'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시공간 안에 있음)의 공통된 뿌리(태극)가 된다. 시간과 공간 안에 표현된 모든 생명은 이 한 생명의 다양한 변주에 불과하다.

 

 

이 우주는 그야말로 '생명의 향연'일 뿐이다. 일체의 개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나 '한 생명'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으니, 그것이 바로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명인 한에 있어서 소멸하는 법이 없다. 한 개체의 탄생과 죽음은 존재할지라도 생명 그 자체는 소멸하는 법이 없으며, 한 생명이 소멸하지 않는 한 시공간은 늘 다양한 새영들로 약동할 것이다. 그래서 '텅 빔' 즉 '한  생명'은 늘 '하나'인 '생명'의 적극적 표현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 안에서 개체적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 자리하는 것이다. 

 

 

결국 탄생과 소멸도 '생의 표현'일 뿐이다. 시공을 초월한 자리에 존재하는 근본 생명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이 '텅 빔'은 생명 그 자체, '있음' 그 자체이며, '하나'는 '내가 있음' 즉 시공간의 뿌리이자 생명 현상의 뿌리이다. 그리고 이 '하나'가 자라서 '다섯'과 '일곱'이 되면 '황극'이 이루어져 '나는 생각함, 나는 감정을 지님, 나는 오감을 지님'의 시공간 내의 생명 현상이 일어지는 것이다. 

 

 

'있음'은 언제나 '내가 있음'으로 집중되며, '내가 있음'은 언제나 '생각 ⸳ 감정 ⸳ 오감'을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0에서 1이 나오고, 1은 7로 불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 ⸳ 감정 ⸳ 오감은 모두 '내가 있음'에 근거하며, 일체 수가 1에 근거하듯이, '내가 있음'은 오직 '있음'에 근거한다. 1은 0에서 나온다. 그래서 '텅 빔'은 모든 것의 근본인 것이다. 

 

 

2. '텅 빔'에서 시작한 '하나'는 동등한 자격을 지닌 '셋'으로 쪼개진다. 먼저 '하나'는 '둘'로 분열되며 '셋'으로 다시 통합된다. 홀수는 양의 수이니 '통합'과 '발산'을 나타내며, 짝수는 음의 수이니 '분열'과 '수렴'을 나타낸다. 

 

 

3. 그런데 이 동등한 하나들인 '셋'은 '하나'가 본래 그러했듯이 모두 '텅 빔'을 근본으로 삼는다. 

 

 

4. '하늘'의 씨알이 되는 '하나'가 첫째이고, '땅'□의 씨알이 되는 '하나'는 둘째이고, '사람'△(만물의 대표)의 씨알이 되는 '하나'는 셋째가 된다. 이것이 동등한 자격을 지닌 '셋' 사이에 존재하는 위상이다. 

 

 

5.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된다. 이 '열'은 모든 존재의 완성이자 종식이 되니, 일체 만물의  '영원한 목표'가 된다. 모든 존재는 탄생부터 그 완성을 지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공통된 원리이다. 

 

 

'하나'는자연히 존재의 완성인 '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완벽한 완성의 실현은 일체 만물의 종식과 통하게 되니 '텅 빔'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열'은 곧 '텅 빔'인 것이다. 

 

 

6. 모든 존재의 뿌리인 '하나'가 그러하듯이, 모든 존재의 완성인 '열'에 이르는 존재들 또한 결국 '텅 빔'을 다듬어 만든 것이다. 

 

 

7. 태초의 '하나'가 '셋'으로 나뉘었듯이, '하늘'의 '하나'도 동일한 원리로 ' 양        △'의 '셋'으로 나누어진다. '하늘'과 '땅'의 가운데에 '사람'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땅'의 '하나'와 '사람'의 '하나'도 동일한 원리에 따라'셋'으로 나누어진다. 

 

 

이 셋이 셋으로 모이면 '아홉'이 되는데, 이는 발산의 수인 양수 '셋'의 합이나, 하늘    사람의 모든 변화를 총괄한다. 반대로 그러한 변화의 토대가 되는 모든 변화가 잠재되어 있는 유형의 '씨알'은, 수렴의 수인 음수 '둘'을 취한다. 하늘의 '셋' 중'둘'을 취하고, 땅의 '셋' 중 '둘'을 취하고, 사람의 '셋' 중 '둘'을 취하여, 하늘    사람의 알짬을 함축한 유형 만물의 씨알이 이루어진다. 

 

 

8. 위대한 '셋'인 하늘과 땅과 사람의 알짬이 되는 '둘'을 셋으로 합하면 '여섯'이 된다. 이 '여섯'은 장차 그 잠재력을 최대한 나타내어 '아홉'에 이르도록 성장할 씨알이다. '여섯'은 상하    전후    좌우의 입체물이니, 하늘과 땅과 사람의 정수인 양극의 '둘'이 모여 유형의 씨알을 이룬 것이다. '하나'가 무형    유형 모든 천지만물의 씨알이듯이, '여섯'은 유형의 존재의 씨알이 되니, 계절로는 '겨울'에 해당한다. 여섯은 형이하학적인 하나             다섯을 그 안에 품고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의 수를 둘로 나누어보면, ' 하나            다섯'은 선천의 수인 '낳는 수'(생수)이며, '여섯 ⸳ 일곱 ⸳여덟  ⸳ 아홉   열'은 후천의 수인 '결실의 수'(성수)이다. 무형의 수인 생수가 '중앙의 흙'을 의미하는 '다섯'을 만나면 형체를 갖추게 되어 성수가 된다.   그래서 성수는 생수보다 다섯이 많다. 여기서 '열'은 후천적인 열을 말하니, 우주의 완성수인 열이 아니다.

 

 

'여섯'에서 '일곱'과 '여덟', '아홉'(완성이자 종식의 수인 '열'을 제외. 열은 현실의 영원한 목표로서 의미를 지님. 10은 1의 모든 변화 작용의 궁극적인 본체이자 목표로서의 0을 말한)이 나오는 과정은 성수의 완성 과정이니, 유형의 후천적 변화이다. 유형의 만물은 모두가 여섯에서 아홉에 이르는 탄생 ⸳ 자람 ⸳ 수렴  저장의 과정을 수없이 거치며 변화한다. 

 

 

선천적으로 보면 '하나'에서 '열'이 모두 '선천적 원상'이며, 후천적으로 보면 '하나'에서 '열'이 모두 '후천적 형상'이다. 그러나 이 둘을 하나로 종합해서 말하면, '하나'에서 '다섯'은 선천적 원상을 대표하며, '여섯'에서 '아홉'은 후천적 형상을 대표하며, '열'은 '하나'의 모든 변화 작용의 궁극의 목표가 되는 '텅 빔'을 의미한다. 

 

 

9. 큰 음의 수인 '여섯'은 작은 양의 수인 '일곱'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일곱'은 계절 중 '봄'에 해당한다. 또한 '일곱'은 같은 양의 수 중 가장 큰 수인 '아홉'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아홉'은 계절로 보면 꽃이 피고 잎사귀가 무성해지는 '여름'에 해당한다. 

 

 

또한 '아홉'은 작은 음의 수인 '여덟'으로 수렴되니, '여덟'은 열매를 맺는 계절인 '가을'에 해당한다. '여덟'은 다시 큰 음의 수인 '여섯'으로 수렴되니, 가을은 겨울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한 생명의 순환을 끝낸 씨알은 내년의 봄을 기약하게 된다. 이렇게 만물의 탄생과 자람, 수렴과 저장이 쉼 없이 오고 가면서, 우주는 그 생명을 이어간다.  양의 수는 더 큰 양의 수로 발산하며, 음의 수는 더 큰 음의 수로 수렴되는 것, 양은 발산하고 음은 수렴하는 것이 생명 순환의 원리이다. 

 

 

이러한 발산과 수렴의 과정과는 별도로 음양의 통합과 분열만으로 고찰해 보면, 전후  좌우 ⸳ 상하   중심(정신)을 두루 갖춘 '일곱'으로 나아가며, '일곱'은 양의 수이니 다시 동서남북 팔방인 '여덟'으로 나누어지며 그 작용을 넓혀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여덟'은 음의 수이니 다시 '아홉'으로 통합되며 팔방을 주재하게 된다. 이렇게 '아홉'은 모든 변화의 극치를 이루게 된다. 

 

 

10. 이러한 후천   유형 만물의 수없는 오고 감은 '하늘    사람'의 '셋'이 '넷'과 '다섯'으로 변화하는 선천 무형의 원리에 의해서 예정되고 인도된다. 셋에서 넷, 다섯으로 분화하는 과정은 생수의 완성 과정이니, 무형의 선천적 수의 분화이다.  

 

 

유형의 만물은 모두 이와 같이 하나에서 셋에 이르고 셋에서 다섯에 이르는 원리를 그 안에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다. '셋'은 양의 수이니 '넷'으로 분열되며, '넷'은 음의 수이니 '다섯'(사방을 주재하는 정신)으로 다시 통합된다. 

 

 

'하늘'의 맑고 가벼운 기운과 '땅'의 탁하고 무거운 기운, '사람'의 중간적인 기운, 이 '셋'이 함께 움직이면서 자연히 '넷'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사람'에 해당하는 중간적인 기운이 둘로 나누어진다. 이 중 '하늘'에 가까운 기운은 뜨겁고 승하는 '불'이 되며, '땅'에 가까운 기운은 차갑고 하강하는 '물'이 되니, 하늘과 땅 그리고 물과 불의 4가지 형상이 갖추어진다. 이것이 만물의 원형이 되는 '4상'이다. 

 

 

11. 이 4가지 형상은 가운데 중심축이 있어야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되니, 중심에 주재자가 생기면서 움직여 '다섯'이 된다. 이 '다섯'은 하늘에서 '봄   늦여름 ⸳ 가을 겨울'이 되며, 땅에서는 '쇠  나무  ⸳물 불 흙'이, 사람에서    사랑  정의  예절  지혜  성실이 된다. 이상으로 유형의 만물을 굴리는 무형의 원상  순수한 형상들은 충분히 갖추어진 셈이다.

 

 

12. ‘다섯 상하를 갖추어 전후  좌우  중심을 이룬 일곱, 하늘    사람이 다섯 하나로 모여 이룬 입체물이다. 이는 또한 하늘    사람의 이 모여 이루어진 입체물이 되니, 각각의 이 모여 이루어진 입체물인 여섯과는 달리, 중심점(사방을 주재하는 정신)을 갖추고 작용하는 입체물인 일곱이 된다. 사물은 일곱이 되어야 온전한 작용을 할 수가 있다. 비로소 만 가지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형의 한 점인 하나에서 출발한 존재는 일곱이 되어야 현상계에서 온전히 작용하는 전후  좌우  상하 중심을 두루 갖춘 유형의 물건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일곱 하나가 묘하게 불어난 것이다. 이것이 사물이 씨알에서 불어나 입체물이 되어 상하  동서남북으로 작용하는 원리이다.

 

 

13. 유형의 만물은 무형의 원리들에 의해 인도되며, ‘여섯에서 아홉에 이르는 발산 아홉에서 여섯에 이르는 수렴의 음양의 변화를 반복하며 끝이 없이 생명을 펼쳐낸다. ‘이라는 존재의 완성을 목표로 하면서 쉼 없이 변화를 거듭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우주 안의 모든 개체들도 그러하고 우주 자체도 그러하다.

 

 

14. 이렇게 수없이 오고 가는 중에, 그 작용은 탄생으로, ‘자람으로, ‘수렴으로, ‘저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니, 그러한 변화의 바탕이 되는 텅 빈 하나는 움직이는 법이 없다. 오직 불변하는 자만이 만변하는 만물을 굴릴 수 있는 법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아가는 이 하나야말로, 항상 그대로인 우리의 본래 자리이자, 우주 마눌의 뿌리가 되는 자리이다.

 

 

 만변하는 음양의 뿌리는 불변하는 하나’(태극)이며, 하나의 뿌리는 불변하는 텅 빔(무극)이다. 고로 만변하는 음양은 불변하는 하나 텅 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본심이 되는 텅 빈 하나는 무극  태극  황극이라는 3극의 원리를 모두 갖춘 하나이다.

 

 

15. 생각  감정  오감은 끊임없이 변화하나, 그러한 변화의 바탕이 되는 본심은 움직이는 법이 없다. 인간에 내재한 텅 빈 하나 본심은 본래 태양의 광명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 ‘태양은 신의 모습을 상징한다. 신은 알이니, 태양은 알의 중심이 되며, 태양의 빛이 미치는 범위는 알의 주변이 된다.

 

태양은 만물을 꿰뚫어 보는 광명한 지혜와 만물을 살리는 자비’, 만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처럼 지혜롭고, 자비롭고, 강력한 능력을 지닌 태양과 같은 하느님이 우리 인간의 참 마음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본래 마음 또한 지혜롭고, 자비롭고,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부동하는 광명한 본심에 뿌리를 두되, 만변하는 음양의 현상계에 생각  감정  오감으로 작용을 나타내니, 그 진화와 성장에는 다함이 없다. 한없이 궁극의 완성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16. 우리가 머릿골에 내려와 계신 하느님인 이 본심을 온전히 되찾고, 이 본심의 공덕을 생각  감정  오감 차원에서 온전히 구현하게 되면, 사람의 광명한 하나 안에서 하늘과 땅은 하나로 합해지게 된다. 이는 억지가 아니요, 본래 하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본심은 본래 하늘에 속하는 것이니, 본심이 회복될수록 우리 내부의 하늘은 점점 밝아지며, 우리의 생각  감정  오감은 본래 에 속하는 것이니, 공덕이 원만해질수록 우리 내부의 도 점점 밝아진다.

 

 

인간은 본래 하늘과 땅의 중심이 되니, 본성에 통하고 공덕을 원만하게 닦을수록, 인간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며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하나는 사실 일곱으로 묘하게 불어난 하나이며, 천지인이 각각 으로 극치에 이른 아홉으로 모든 변화의 극치를 이루는 하나이다.

 

 

하늘과 땅을 인간 안에서 하나로 합하여 온전한 하나를 이루게 되면, 불변하는 하늘과 하나로 합하게 되어, 영원히 변치 않는 본심을 온전히 되찾게 되며, 만변하는 과 하나로 합하여 변화하는 시공간 안에서 생각  감정  오감으로 지혜    능력  장소 관계에 맞게 부리게 된다.

 

 

하늘  땅과 하나 된 사람은, 자신을 닦고 남을 돕기 위해 만 번 오고 만 번 가면서도, 늘 오고 감이 없는 그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늘    사람  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가장 균형 잡힌 최고의 선을 실현하니, 이것이 하늘과 땅에 참으로 합하는 인간의 길이다. 우리가 이러한 인간의 길을 걸을 때, 시공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의 진정한 화신인, ‘지금    이렇게의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17. 하늘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묘하게 불어난 하나’(일곱)는 결국 본질상에서 텅 빔일 뿐이며, ‘텅 빔은 다시 이 묘하게 불어난 하나로 자신을 표현해 낸다. 따라서 만물의 근본인 하나 텅 빔도 모두 이 묘하게 불어난 하나 일곱에서 온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아홉으로 대표되는 현상계의 모든 변화는 본래 하나이며, ‘하나는 본래 텅 빔이다. 그러니 을 궁극의 이상으로 삼고 아홉으로 무한하게 변화하는 현상계 또한, ‘하나 텅 빔처럼 영원한 것이다. ’텅 빔 하나 아홉의 변화를 낳고, ’아홉의 변화는 텅 빔 하나의 무한한 변화와 다양성을 매순간 현상계에 실현한다.

 

 

따라서 참된 인간의 길은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텅 빔 하나와 그 표현이 되는 일곱을 조화롭게 다스려, ‘매 순간 성장해 가는 중에 이루어진다.

 

 우리는 한 편으로는 텅 빈 하나를 지키며 한 편으로는 생각  감정  오감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시공간 안에 표현하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7이 되어야 1은 온전해진다. 우리가 수련을 하는 목적은 무극  태극의 자각 황극의 성취에 있다. 생각  감정  오감을 씀은 1이 부풀려진 7의 모습이며, 1의 완성이다. 그러니 1도 끝나기를 이 온전해진 1 7에서 하는 것이며, 0도 끝나기를 온전해진 1 7에서 하는 것이다.

 

성통공완’, ‘도덕합일’, ‘중용을 이루어야 하니, 자신 안에 천지를 품어 하나로 합일시켜 큰 덕  큰 지혜  큰 능력을 지닌 생각  감정  오감의 성취를 이룬 이라야 진정한 하느님의 분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0 있음이요, 1 내가 있음으로 모든 현상계의 다양한 있음의 직접적인 뿌리가 된다. 고로 1은 창조자이다. 창조자는 창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바 , 1은 결코 그 창조 행위를 멈추는 법이 없다. 창조하지 않는 1은 이미 1이 아니다.

 

 

1이 존재하는 한 3은 자동으로 생겨나며, 5 7로 불어나게 된다. 그리고 보다 더 온전해지기 위한 유형 만물의 생장수장(6  7  8  9)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이것이 지고의 신성한 하느님의 계획이다. 모든 존재의 뿌리이자 모든 존재를 그 안[ 품고 있는 텅 빔’(0)이 천지만물의 창조를 위해 움직임(1)’에 그 품은 신성한 계획이 1차적으로 시공을 초월한 무형의 원상으로 표현되며, 이러한 원상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시공 내에 유형의 사물로 표현된다(57).

 

 

0 존재하는 것이 본성이요, 1 창조하는 것이 본성이며, 5는 중심을 잡고 다스려 경영하는 것이본성이다. ‘중심 잡음  균형 잡음이 상하사방전후의 입체를 이룰 때 온전한 1 7이 나오며, 그 균형이 정밀해질 때 9가 이루어진다. 각각의 본성이 제대로 작동될 때 우주는 그 기능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이 천지의 변화에 발맞추어 황극을 잡지 못하면 우주는 그 기능이 어그러지게 된다. 천지는 자리를 잃게 되고, 만물은 제대로 길러지지 못한다. 인간이 본심을 각성하여 천지를 품을 수 있게 되면, 천지는 제자리를 찾고, 만물은 조화롭게 길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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