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우리나라 경전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조만간 읽어야지...' 생각했었는데, 용호비결을 읽다가 자세한 설명을 보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정리해본다.
☞ 우선 '천부경'에 관한 위키백과의 설명을 보자.
《천부경(天符經)》은 대종교의 경전 중 하나로, 1975년 교무회의에서 채택되었다. 현재는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7년경 최초의 등장 시에는 단군교의 경전이었다. 실제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17년으로 단군교(檀君敎)에서 처음으로 언급, 유포하기 시작하여 1920년경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1921년 단군교의 기관지 《단탁》에 의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대종교에서는 한참 후인 1975년이 되어서야 기본 경전으로 정식 채택하였다. 대종교에서는 단군 시기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라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사학계에서는 위작이라 보고 있다는 관점이 있으나 이에 대한 드러난 합의는 없다.
전문 81자로, 난해한 숫자와 교리를 담고 있어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현대 한국의 불교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은 대체로 고대 한민족의 종교관, 우주관, 철학관을 담아 낸 것으로 고도의 종교성을 띄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
析三極無盡本
석삼극무진본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一積十 鉅無匱化
일적십 거무궤화
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
삼천이 삼지인 삼인이
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삼대삼합육 생칠팔구
運三四 成環五七 一妙衍
운삼사성환오 칠일묘연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 太陽昻明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앙명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천부경의 원문 풀이를 보도록 한다.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
'하나'가 시작되기를 '없음'에서 했고, 시작된 '하나'가 '셋'으로 나누어지나, '없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하늘의 '하나'는 '하나'이며, 땅의 '하나'는 '둘'이고, 사람의 '하나'는 '셋'이다
一積十 鉅無匱化
일적십 거무궤화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되는데, 이것은 전부 '없음'을 부풀려 그릇으로 만든 것이다.
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
삼천이 삼지인 삼인이
'세 하늘'은 '둘'이며, '세 땅'도 '둘'이며, '세 사람'도 '둘'이다.
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삼대삼합육 생칠팔구
'세 큰 것'이 '셋'으로 합하면 '여섯'이 된다. 여기서 '일곱'과 '여덟'과 '아홉'이 생겨난다.
運三四 成環五七 一妙衍
운삼사성환오 칠일묘연
'셋'이 움직이면 '넷'이 이루어지고 고리가 되어 '다섯'이 된다. '일곱'은 '하나'가 묘하게 불어난 것이다.
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 太陽昻明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앙명
수없이 오고 감에 '작용'은 변하나 그 '본체'는 움직이지 않으니, '본래의 마음'은 본해 '태양'처럼 광명하다.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
'사람' 가운데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
'하나'가 끝나고, '없음'이 끝나기를 모두 '하나'에서 한다.
☞ '용호비결 강의'를 저술한 윤홍식은 '천부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천부경(天符經)》은 예전 우리 백두산족의 시조이신 대황조님께서 전해주신 혼원일기(無)와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가르침이 담긴 우리 민족의 경전이다. 처음에는 원방각(◯□△, 이는 우리 한글의 창제 원리에도 이용됨) 등의 그림이나 상징으로 전해 오다가, 후에 고대 문자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고운(孤雲) 최치원(857 ~ ?) 선생께서 이를 지금 우리가 보는 한자로 번역하셨다고 한다.
다음은 전문 81자로 이루어진 천부경을, 한글로 알기 쉽게 풀어낸 저자의 글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한글 천부경>
1. 천지만물의 씨알이 되는 '하나'◉(태극)는 '텅 빔'◯(무극)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하나'와 '텅 빔'이 본래 둘인 것은 아니다. 본래 한 자리이나, 그 역할에 따라 2가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만물'의 뿌리가 되는 측면에서 보면 '텅 빔'은 '하나'라고 불리며, 만물을 낳되 만물에 물들지 않는 '하나'의 측면은 '텅 빔'이라고 불린다.
⸙ '텅 빔'에서 '하나'가 나왔다는 것은, 텅 빔의 허공이 없이는 만물의 뿌리인 태극의 '하나'가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존재 자체'가 없이는 '존재의 작용'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태극과 황극이 작용하고 불어나도 무극은 조금도 손상받지 않는다. 무극은 존재, 생명 그 자체이다. 태극과 황극은 존재의 작용, 생명의 나타냄일 뿐이다. 본래 둘이 아니다.
무극이 '존재의 바다'라면 태극은 '바다의 미묘한 움직임'이며 황극은 '바다의 파도'이다. 바다와 움직임과 파도는 본래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스스로 완벽한 존재인 '텅 빔'과 그것의 움직임인 '하나'는 본래 하나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완벽한 존재인 이 '텅 빔' 안에 존재하며, '텅 빔'은 모든 만물의 존재 근거가 된다. '텅 빔'은 언제나 '하나'(한 생명)로 작용하여 '만물'을 창조해 낸다.
'창조'는 '텅 빔'의 본성이라 창조가 멈추는 법은 없다. 오직 낳고 또 낳는 것이 하느님의 본성이다. '텅 빔'(시공을 초월한 있음 그 자체, 0⟶1의 뿌리, 1의 텅 빈 모습)은 '한 생명'(텅 빔의 신령한 작용, 1⟶현상계의 뿌리, 0의 작용하는 모습)이며, 이 '한 생명'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시공간 안에 있음)의 공통된 뿌리(태극)가 된다. 시간과 공간 안에 표현된 모든 생명은 이 한 생명의 다양한 변주에 불과하다.
이 우주는 그야말로 '생명의 향연'일 뿐이다. 일체의 개체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나 '한 생명'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으니, 그것이 바로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명인 한에 있어서 소멸하는 법이 없다. 한 개체의 탄생과 죽음은 존재할지라도 생명 그 자체는 소멸하는 법이 없으며, 한 생명이 소멸하지 않는 한 시공간은 늘 다양한 새영들로 약동할 것이다. 그래서 '텅 빔' 즉 '한 생명'은 늘 '하나'인 '생명'의 적극적 표현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 안에서 개체적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 자리하는 것이다.
결국 탄생과 소멸도 '생의 표현'일 뿐이다. 시공을 초월한 자리에 존재하는 근본 생명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이 '텅 빔'은 생명 그 자체, '있음' 그 자체이며, '하나'는 '내가 있음' 즉 시공간의 뿌리이자 생명 현상의 뿌리이다. 그리고 이 '하나'가 자라서 '다섯'과 '일곱'이 되면 '황극'이 이루어져 '나는 생각함, 나는 감정을 지님, 나는 오감을 지님'의 시공간 내의 생명 현상이 일어지는 것이다.
'있음'은 언제나 '내가 있음'으로 집중되며, '내가 있음'은 언제나 '생각 ⸳ 감정 ⸳ 오감'을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0에서 1이 나오고, 1은 7로 불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 ⸳ 감정 ⸳ 오감은 모두 '내가 있음'에 근거하며, 일체 수가 1에 근거하듯이, '내가 있음'은 오직 '있음'에 근거한다. 1은 0에서 나온다. 그래서 '텅 빔'은 모든 것의 근본인 것이다.
2. '텅 빔'에서 시작한 '하나'는 동등한 자격을 지닌 '셋'으로 쪼개진다. 먼저 '하나'는 '둘'로 분열되며 '셋'으로 다시 통합된다. 홀수는 양의 수이니 '통합'과 '발산'을 나타내며, 짝수는 음의 수이니 '분열'과 '수렴'을 나타낸다.
3. 그런데 이 동등한 하나들인 '셋'은 '하나'가 본래 그러했듯이 모두 '텅 빔'을 근본으로 삼는다.
4. '하늘'◯의 씨알이 되는 '하나'가 첫째이고, '땅'□의 씨알이 되는 '하나'는 둘째이고, '사람'△(만물의 대표)의 씨알이 되는 '하나'는 셋째가 된다. 이것이 동등한 자격을 지닌 '셋' 사이에 존재하는 위상이다.
5. '하나'가 쌓여서 '열'이 된다. 이 '열'은 모든 존재의 완성이자 종식이 되니, 일체 만물의 '영원한 목표'가 된다. 모든 존재는 탄생부터 그 완성을 지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공통된 원리이다.
'하나'는자연히 존재의 완성인 '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완벽한 완성의 실현은 일체 만물의 종식과 통하게 되니 '텅 빔'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열'은 곧 '텅 빔'인 것이다.
6. 모든 존재의 뿌리인 '하나'가 그러하듯이, 모든 존재의 완성인 '열'에 이르는 존재들 또한 결국 '텅 빔'을 다듬어 만든 것이다.
7. 태초의 '하나'가 '셋'으로 나뉘었듯이, '하늘'의 '하나'도 동일한 원리로 ' 양◯ ⸳ 음□ ⸳ 중△'의 '셋'으로 나누어진다. '하늘'과 '땅'의 가운데에 '사람'이 존재하듯이 말이다. '땅'의 '하나'와 '사람'의 '하나'도 동일한 원리에 따라'셋'으로 나누어진다.
이 셋이 셋으로 모이면 '아홉'이 되는데, 이는 발산의 수인 양수 '셋'의 합이나, 하늘 ⸳ 땅 ⸳ 사람의 모든 변화를 총괄한다. 반대로 그러한 변화의 토대가 되는 모든 변화가 잠재되어 있는 유형의 '씨알'은, 수렴의 수인 음수 '둘'을 취한다. 하늘의 '셋' 중'둘'을 취하고, 땅의 '셋' 중 '둘'을 취하고, 사람의 '셋' 중 '둘'을 취하여, 하늘 ⸳ 땅 ⸳ 사람의 알짬을 함축한 유형 만물의 씨알이 이루어진다.
8. 위대한 '셋'인 하늘과 땅과 사람의 알짬이 되는 '둘'을 셋으로 합하면 '여섯'이 된다. 이 '여섯'은 장차 그 잠재력을 최대한 나타내어 '아홉'에 이르도록 성장할 씨알이다. '여섯'은 상하 ⸳ 전후 ⸳ 좌우의 입체물이니, 하늘과 땅과 사람의 정수인 양극의 '둘'이 모여 유형의 씨알을 이룬 것이다. '하나'가 무형 ⸳ 유형 모든 천지만물의 씨알이듯이, '여섯'은 유형의 존재의 씨알이 되니, 계절로는 '겨울'에 해당한다. 여섯은 형이하학적인 하나 ⸳ 둘 ⸳ 셋 ⸳ 넷 ⸳ 다섯을 그 안에 품고 있다.
하나에서 열까지의 수를 둘로 나누어보면, ' 하나 ⸳ 둘 ⸳ 셋 ⸳ 넷 ⸳ 다섯'은 선천의 수인 '낳는 수'(생수)이며, '여섯 ⸳ 일곱 ⸳여덟 ⸳ 아홉 ⸳ 열'은 후천의 수인 '결실의 수'(성수)이다. 무형의 수인 생수가 '중앙의 흙'을 의미하는 '다섯'을 만나면 형체를 갖추게 되어 성수가 된다. 그래서 성수는 생수보다 다섯이 많다. 여기서 '열'은 후천적인 열을 말하니, 우주의 완성수인 열이 아니다.
'여섯'에서 '일곱'과 '여덟', '아홉'(완성이자 종식의 수인 '열'을 제외. 열은 현실의 영원한 목표로서 의미를 지님. 10은 1의 모든 변화 작용의 궁극적인 본체이자 목표로서의 0을 말한)이 나오는 과정은 성수의 완성 과정이니, 유형의 후천적 변화이다. 유형의 만물은 모두가 여섯에서 아홉에 이르는 탄생 ⸳ 자람 ⸳ 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