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 150:1-6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 찬송과 기도가 없다면 그것은 영적 호흡이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찬송생활과 기도생활을 계속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결국은 영적인 전쟁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며 풍성한 영적인 기적과 부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의 말씀을 보면 모압과 암몬, 에돔 세 나라의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내쫓아 버리고 그들이 그 곳에서 살 계획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유다를 쳐들어 왔습니다. 이에 침공을 받은 유다왕 여호사밧이 유다 온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레위 사람 야하시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십니다.
대하 20:15-17 /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야하시엘의 대언의 말씀은 큰 위기를 당하여 걱정하고 염려하던 온 유다와 여호사밧 왕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침략해 오는 암몬과 모압, 에돔의 연합군으로 말미암아 한 순간에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나 신이 나겠습니까?
대하 20:18-19 /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그리고 다음날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데 제일 앞장 선 사람들은 군대의 군인이 아니라 성가대를 먼저 앞세우고 나아갑니다.
대하 20:21 /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여호사밧이 칼이나 창이나 방패로 무장한 군대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찬양대를 앞세운 까닭은 이 전쟁은 온전히 하나님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민족의 무기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와 찬양으로 전쟁터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찬양대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에 찬양을 드릴뿐 아니라, 정성 다하여 찬양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찬양이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찬양을 통해 은혜가 넘치는 예배가 되게 하며, 살아있는 예배가 되게 합니다.
실제로 예배가 은혜로울 수 있는 것은 먼저 찬양대가 찬양을 통해 성도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고, 그리고 다음 목사의 설교가 아름답게 파트너 쉽을 이룰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휘자, 반주자, 찬양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양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강권적인 구원의 기적, 승리의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이스라엘은 전쟁을 해보지도 않고, 구원을 받도록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가대의 찬양과 성도들의 찬양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가장 아름답게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찬양대는 항상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시 22:3 /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권능을 베푸시면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그럼으로 사랑하는 찬양대원 여러분, 성령의 역사가 넘치는 찬양대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구약성서에 보면 다른 성도들을 축복으로 인도하는 노래하는 자들은 레위인들만 감당할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만 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미가엘 찬양대원 모두가 교회와 성도들을 은혜로 인도하는 파숫군이 되었음을 선포하며 기도합니다.
놀라운 것은 찬양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그들을 이겼고, 나중에는 적군끼리 죽이고 죽는 대 살육전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대하 20:22-23 /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전쟁터에서 유다 백성들이 큰 소리로 찬양을 부르며 나아갑니다. 비록 전쟁의 한가운데라 걱정도 근심도 많았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최후 승리와 영광을 찬송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열심히 찬송하자 적군이 패합니다.
세상 살다보면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둔다고 해서 먼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군사력이나 전략적인 면에서 유다 나라가 연합군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하는 유다 나라가 이겼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이 그들 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찬송하는 성도가 걷는 인생길이 멀고 어두워도 하나님께서 생각지 못했던 기적과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승리하는 교회의 특징이 있다면 찬송이 넘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0편은 거대한 폭포수와 같습니다. 10개의 명령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낸 다음, 마지막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라고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고 있습니다. 이를 4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찬양의 장소
시 150:1 /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장소를 ‘성소’와 ‘궁창’이라 합니다. ‘성소’는 ‘성전 안의 구별된 곳’입니다. 그리고 ‘궁창’은 ‘하늘(우주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전과 궁창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요 우리와 만나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깊이 알았던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곳은 칠흑같이 어두운 곳입니다. 횃불이나 등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드린 찬송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옥문은 흔들어 열어 주시고, 그 일로 그 감옥의 간수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2. 찬양의 이유
시 150:2 /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노래를 ‘찬양’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경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찬양’이 ‘하나님을 높여서 노래하는 것’이라면, ‘경배’는 ‘자신을 낮추어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경배하다’의 문자적인 뜻이 ‘엎드리다’, ‘절하다’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절의 전반절인 ‘그의 능하신 행동을 노래하는 것’이 ‘찬양’이라 할 수 있고, 후반절인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노래하는 것’은 ‘경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내용 참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최고, 최대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 같이 형편없고, 허물투성이, 죄인을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길에서 진창 속에 빠진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의 고집으로 엉뚱한 곳으로 가던 우리 인생의 길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3. 찬양의 악기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시 150:3-5 /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나팔’은 야생 염소의 뿔로 만들었는데 제상들이 제사드릴 때에 사용하던 악기였습니다. ‘비파와 수금’은 둘 다 현악기인데 ‘비파’는 고대의 기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고’는 전형적인 타악기인 드럼인데 서민들이 축제나 절기 때에 기뻐 환호성을 지를 때에 주로 사용을 했습니다.
퉁소(플루트)는 소고와 반대로 격한 슬픔을 억누를 수 없을 때 사용했던 악기입니다.
‘큰 소리 나는 제금’과 ‘높은 소리 나는 제금’은 심벌즈(cymbals)와 같은 악기입니다.
여기에 관악기는 물론이고, 현악기, 심지어 타악기가 동원이 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악기는 문제가 안 된다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찬양은 누가하는가?
시 150:6 /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찬양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악기의 우열이나 악기의 귀천이 없듯이, 찬양은 목소리의 기능이나 기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믿음의 태도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미가엘 찬양대 여러분!
성령님이 역사하므로 승리를 만들어내고, 기적을 만들어 내고, 운명을 바꾸는 성가대와 성가대원이 되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 얻어 구원과 승리로 인도하는 왕 같은 제사장인 성가대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님은 누구신가? 행 2:17 (1) | 2024.05.24 |
---|---|
네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라, 호 9:10-14, 호세아 시리즈 설교(19) (0) | 2024.05.24 |
수요 예배 대표 기도문(8) (0) | 2024.05.24 |
주일 설교문,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0) | 2024.05.24 |
수요 대표 기도문 (9) (0) | 2024.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