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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속건제(레 11 : 44 - 45), 주일 예배 설교문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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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건제>

 11 : 44 - 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사람은 육체의 행복을 위해서 여행도 하고, 좋은 집에서 살고, 아름다운 사람과 결혼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실제의 행복은 영혼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돈이 많고 육체적으로 화려하다 할지라도 영혼이 떠나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병들면 정신병이 생기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속건제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탐욕으로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우리의 양심을 씼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나가서 기도하여 응답하고 축복받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열심도 아닙니다. 공로도 아닙니다. 깨끗한 양심입니다.

 

 4:18~19 /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우리가 지난 일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하여 주시는 속건제는 히브리어로는 ‘아샴’(אָשָׁם)이라고 합니다. ‘아샴’은 ‘죄에 대한 책임’(죄책)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속건제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 하나님앞에 드리는 예배입니다.

 

속건제(贖愆祭)는 한문으로 속죄할 속() 바꾼다라는 의미이고; 허물 건() "실수", "허물"을 뜻한다. 즉 있었던 허물을 없었던 것으로 바꾸는 제사가 "속건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허물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속건제의 핵심내용입니다. 누군가의 소유와 재산에 피해를 입혔을 경우 그 죄가 자꾸 마음에 밟히면 먼저 배상하고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세 경우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 그릇 범과한 경우

 

 5:15-16 /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양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첫째 일반적으로 성물은 여호와께 특별히 바쳐진 모든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성물은 하나님의 소유물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시작할 때, 첫 성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매일 성을 한 바퀴씩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일곱 번 돌고, 함성을 지르면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의 함성 소리에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6:17 /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이 성에 있는 어떤 것도 취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그 중 우상숭배에 사용되었던 은과 금, 그리고 시날 산의 외투 한 벌을 취해 자기 장막 밑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성 전투 후 아간은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성물을 도적질한 것에 대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아간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부지중에 저지른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반항하려는 의도로 저지른 죄였기 때문에 속건제로 용서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건제는 처음부터 도적질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도적질이었음을 깨닫는 경우 드리는 제사입니다.

 

둘째는 성물을 범하는 또 다른 예는 서원을 이행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27:2 /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레위기 27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원하여 하나님께 헌정하려 할 때 그 가치를 어떻게 가늠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사람이 어떤 기도제목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제가 저 자신을 (또는 저의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서원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것처럼, 사정이 급할 때는 아낌없는 약속을 하지만, 그 어려운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서원 지키는 것을 아까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원한 것보다 더 싼 것을 헌정한다 든지 또는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이것이 성물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이것이 마음에 느껴지면 속건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금령을 부지중에 범하여 양심상 꺼림칙한 경우

 

 5:17-19 /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이는 속건제니 그가 여호와 앞에 참으로 잘못을 저질렀음이니라

 

즉 어떤 죄를 범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깨달으면 속죄제를 드리면 되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기억도 나지 않고, 그러나 뭔가 찝찝하고, 양심의 거리낌이 있을 때, 그는 속죄제가 아닌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언젠가 성물에 대해서 범했는데,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러나 양심의 거리낌과 죄책감, 불안함이 있을 때, 숫양 한 마리로 속건제를 드림으로써 그 죄책에서 해방되어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분명한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제사장이나 이웃에게 어떤 금전적인 피해를 입혔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사장이나 이웃에 대한 배상이 생략됩니다.

 

3. 타인의 소유물을 부당하게 취하고도 거짓 맹세한 경우

 

 6:2-3 /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1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2 전당물을 속이거나 3 도둑질하거나 4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5 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성경은 다섯 가지 경우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 남의 물건을 맡은 뒤 부인하는 경우,

■ 남의 물건을 가로챈 경우,

 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은 경우,

 남의 물건을 협박하여 빼앗은 경우,

잃어버린 남의 물건을 줍고도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다.

 

이 다섯 가지 경우 모두 증인과 증거가 없는 이상 그 사람들이 잡아떼면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경우입니다. 피해자가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정에 고소해도 그 범죄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해서 ‘나 안했다’ 하면 끝입니다.

그런데 이러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는 죄입니다이것은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악하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나중에 자신의 악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속건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드립니까?

 

첫째는 자발적으로 드립니다.

 

속건제는 일반 재판의 결과에 따라 죄가 드러날 때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 그 죄를 고백하고 자발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악함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 속건제의 출발점이다.

 

둘째는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배상을 해야 합니다.

 

 6:5 /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속건제를 드리는 방법은 어떠합니까?

속건제는 속죄제와 달리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손해에 대하여 변상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변상합니까?

① 물건을 돌려 주고, 5분의 1을 즉 20%를 가산하여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물질에 대하여 배상 하라고 하십니까?

 죄란 아픈 대가를 지불하여야 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실감시키는 것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자기희생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성도의 삶은 항상 거룩하고 정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인 손해를 입혔을 때에도 배상부터 먼저 하여야 합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 이웃집의 물건을 실수로 깨거든 20% 더 얹어서 보상하면. 아마 그 이웃 사람은 두고두고 그 일을 잊지 못하고 고마워할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끝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용서 받았으니 나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반드시 이웃에게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십니다.

셋째는 예물로 숫양을 사용하는데 숫양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6:6 / 그는 또 그 속건제물을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곧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고 갈 것이요

 

속건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웃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건제가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53:5-6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10 /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구속자의 대속의 희생을 예언하면서 그분이 속건제물이 되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냥 희생제물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속건제물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에는 죄책이 있어서 하나님께 반드시 배상되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피해를 입혔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지은 죄는 무한한 죄입니다. 우리는 이 죄를 값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갚을 수 없어 비참하게 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고난 받는 종을 보내주셔서 우리 대신 죄값을 배상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셔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물어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속건제 되신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이 속건제 되시는 예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예수님의 은혜를 인해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 숫양되신 예수님이 속건 제물로 바친 결과가 무엇입니까?

 6:7 /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53:10 /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1 그가 씨를 보게 되며 2 그의 날은 길 것이요 3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 그가 씨를 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속건 제물로 드린 결과 한 알이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신부인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2) 그의 날은 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시기를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3)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최후 승리와 영광이 오직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20% 더 배상을 한다고 해서 속건제를 온전히 지키는 것은 아니다. 속건제의 정신은 사랑이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기를 버리고 끝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아낌없이 나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직접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십니까?

우리의 죄는 그 어떤 배상으로도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드리시렵니까?

여러분의 남은 생을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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