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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에너지 센터, 쿤달리니 에너지, 일곱 개의 씰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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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 유리타/ 아이커넥 - ​

                                                                           

쿤달리니 에너지와 일곱 개의 씰

 

조 디스펜자의 책,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를 읽다보면, 우리 몸의 에너지 센터들이 작동하는 방식이 있다는 내용이 언급된 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센터들을 서로 개별적인 정보 센터들이라고 생각해 볼 때, 각 센터는 나름의 의식을 전달하는 특정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자기만의 매우 구체적인 정보가 담긴 빛을 방출하고, 특정 메시지가 담긴 자기만의 주파수를 지니고 있다. 각 센터는 또 자기만의 분비선(gland), 호르몬, 화학 물질, 신경총(叢)(plexus of neurons)도 갖고 있다. 이 신경 네트워크들의 덩어리 하나하나가 미니 뇌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만약 에너지 센터들이 각자 자기만의 뇌를 갖고 있다면 자기만의 마음도 갖고 있을 것이다.

 

 

 

일곱 개의 씰: 인간의 육체에 있는  7가지 의식 차원 ---> 우리 몸의 에너지 센터들은 모두 각각의 고유한 생물학적 구성을 갖고 있다. 각자 고유한 분비선, 호르몬, 화학물질, 미니 뇌(신경총)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각각의 마음도 갖고 있다.

 

 

 

 

 

 

 

 

 

 

 

 

 

 

의식이 신경 조직을 활성화할 때 마음이 생겨난다. 마음은 활동 중인 뇌(brain in a action)를 의미하므로, 이 각각의 에너지 센터가 신경총을 갖고 있다면 그 각각이 자신만의 마음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마음을 활성화하는 것은 지시와 의도, 즉 의식적인 의도(conscious intent)를 지닌 에너지이다. 이 각각의 에너지 센터가 활성화되면 이 에너지 센터들은 이제 호르몬, 조직, 화학 물질, 세포를 활성화한다. 그리고 에너지를 방출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첫 번째 에너지 센터(생식선이 있는 자리)가 에너지를 받고 활성화되었을 때 이 에너지 센터의 마음은 아주 구체적인 목적과 의도를 갖게 된다. 그때 당신이 의식을 지닌 존재로서 어떤 생각이나 상상(신경 조직에 영향을 주는 의식 활동)을 하면, 당신의 몸이 생리적으로 변화하고, 따라서 당신의 에너지도 바뀌게 된다. 당신 몸은 해당 분비선에서 호르몬과 화학 물질을 분비해서 당신이 감정적으로 성 행위를 준비하도록 돕는다. 이제 이 에너지 센터에 에너지가 늘어나면서, 이 에너지 센터는 의도(메시지)가 담긴 자신만의 특정 주파수를 방출한다.

 

의도를 담은 그 에너지가 바로 이 생식 센터를 활성화하고, 미니 뇌 안에 있는 마음은 자신의 신경총 차원에서 몸 안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몸의 이 부분에 있는 마음은 이 미니 뇌를 통해, 즉 자율신경계를 통해 잠재의식 수준에서 작동한다. 이 마음은 당신의 의식적 통제 밖에 있다. 이제 이 에너지 센터 내 미니 뇌가 과련 분비선을 활성화하고, 그 결과 관련 호르몬이 분비되며, 이로써 몸의 감정 상태와 생리를 바꿀 화학물질들이 분비된다. 이 점에서 당신 몸은 미니 뇌의 마음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이 에너지 센터의 구체적인 지시를 담은 아주 분명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에너지가 이 신경 조직 혹은 신경총을 통해 움직이면 바로 그 수준에서 마음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이 에너지 센터가 활성화될 때 이 에너지 센터는 자신만의 마음을 갖게 된다.

 

두 번째 에너지 센터도 자신만의 마음을 갖는다. 두 번째 센터의 미니 뇌, 그러니까 그 마음이 활성화될 때 우리는 자신의 직감(gut)을 믿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에너지 센터에서 조금 전 살펴보았던 일들이 두 번째 센터에서도 순서대로 일어난다. 물론 이때 보이는 호르몬과 화학 물질, 감정, 에너지, 정보, 신경 회로는 다르다. 사실 이 두 번째 에너지 센터는 ‘제2의 뇌’라고도 물린다. 이곳에 수억 개의 신경 세포들이 있으면서 서로 연결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척수나 말초신경계보다 더 많은 신경 세포들이 이곳에 있다. 실제로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도 그 95%가 뇌가 아닌 장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직감을 믿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의 본능을 믿는다는 뜻이다. 우리 몸과 이 센터의 미니 뇌가 분석적 ‧이성적 사고를 하는 뇌와 마음보다 더 중요해 보일 정도이다.

 

그렇다면 심장 센터는 어떨까? 심장(heart)을 따라가면(즉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가슴 정중앙에 위치한 이 네 번째 센터도, 처음의 두 센터처럼 자신만의 주파수와 호르몬, 화학물질, 감정을 갖고 자신만의 미니 뇌도 갖는다. 이 미니 뇌가 주변의 에너지 및 정보의 장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가슴을 따를 때 우리는 더 배려하고 친절하고 통찰력이 깊어지고 이타적이 되고 연민을 보내며 베풀고 감사하고 신뢰하고 인내심을 보인다. 이 같은 정보를 심장 에너지 센터의 미니 뇌가 받으면, 이 미니 뇌는 심장 쪽에 위치한 기관과 조직들에 지시와 메시지를 보내고, 그러면 우리는 이 특정 정보 센터로부터 사랑의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이제 이 각각의 에너지 센터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서로 기능이 조금씩 겹치는 센터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몸에 대해 약간의 상식만 갖고 있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센터 알아보기

 

첫 번째 에너지 센터는 생식기 부분, 즉 회음부, 골반 저, 여성의 질이나 남성의 음경과 연결된 분비선들, 남성의 경우 전립선, 방광, 배 아래쪽의 장, 항문을 포함하는 부분을 관장한다. 이 에너지 센터는 생식, 출산, 배설, 성 생활,성적 정체성에 관여한다. 여성의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호르몬,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호르몬도 이 센터와 관련된다. 이 센터는 또 하장간막(下腸間膜) 신경총과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에너지 센터는 막대한 창조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아기를 만들어낼 정도의 생명력이라면 그 에너지가 얼마나 클지 생각해 보라. 이 센터가 균형을 이루고 있으면 창조 에너지가 활발하고 성적 정체성도 탄탄해진다.

 

두 번째 에너지 센터는 배꼽 약간 아래 뒤쪽에 있다. 이 센터는 난소, 자궁, 결장, 췌장, 허리를 관장하고, 소화와 배설, 소모, 그리고 음식을 부숴서 에너지로 만드는 일(소화액과 소화 효소의 분비,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효소와 호르몬의 분비 포함)을 한다. 이 센터는 상장간막(上腸間膜) 신경총에 연결되어 있다.

 

이 두 번째 에너지 센터는 사회 조직과 구조, 관계, 지원 시스템, 가족, 문화, 대인 관계에 관여한다. 이 센터를 뭔가를 부여잡거나 보내주는(소비하거나 배출하는) 센터라고 생각해 보라. 이 센터가 균형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이 속한 환경이나 세계에서 안전하다고 느낀다.

 

세 번째 에너지 센터는 배 중간에 위치하며, 위장, 소장, 비장, 간, 담낭, 부신, 신장을 관장한다. 이 센터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의 분비, 위장의 펩신, 트립신, 키모트립신, 에리스로포이에틴 같은 호르몬의 분비, 위장의 펩신, 트립신, 키모트립신, 엽산 같은 효소 분비, 간의 온갖 효소 분비에 관여한다. 이 센터는 또한 복강 신경총이라고도 불리는 태양 신경총과 연결되어 있다.

 

이 세 번째 에너지 센터는 우리의 의지, 힘, 자존감, 통제력, 충동, 공격성, 지배력과 관계가 있다. 경쟁적인 행동, 개인적인 권력, 자부심, 뭔가 해보려는 의도와 관련된 센터이다. 이 센터가 균형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의지와 욕구를 이용해 삶의 환경이나 조건을 바꿀 수 있다. 두 번째 센터와 달리 이 세 번째 센터는 환경이 안전하지 않거나 예측이 안 된다고 느낄 때 자연스레 활성화되며, 우리는 곧장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부족을 보호하고 돌보게 된다. 이 센터는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을 때에도 활발해진다.

 

네 번째 에너지 센터는 가슴뼈 뒤에 위치하며, 심장, 폐, (면역 기능에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는 분비선으로 ‘청춘의 샘(fountain of youth)’이라고 불리는 흉선(thymus gland)을 관장한다. 이 센터는 성장 호르몬과 옥시토신의 분비뿐만 아니라 흉선을 통해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는 1,400개에 달하는 화학 물질(우리 몸의 성장, 치유, 재생에 쓰이는 물질들)의 분출에도 관여한다. 이 센터가 관여하는 신경총은 심장 신경총이다.

 

첫 세 개의 에너지 센터는 모두 생존에 관여하며, 우리의 본능 또는 인간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 네 번째 에너지 센터에서 우리는 이기적인(selfish) 데서 이타적인(selfless) 데로 옮겨간다. 이 네 번째 센터는 사랑, 보살핌, 양육, 자비, 감사, 감격, 감탄, 친절, 고무, 이타심, 온전함, 신뢰 같은 감정들에 관여한다. 이곳은 우리의 신성이 발현되고 우리의 영혼이 살아가는 자리이다. 네 번째 센터가 균형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한다.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온전하다고 느끼면 만족한다.

 

다섯 번째 에너지 센터는 목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갑상선, 부갑상선, 침샘 및 목 조직을 관장한다. 그리고 갑상선 호르몬 T3와 T4(티록신), 신진대사와 칼슘 수치를 조절하는 부갑상선 화학물질의 분비에 관여한다. 이 센터가 관여하는 신경총은 갑상선 신경총이다.

 

이 다섯 번째 에너지 센터는 네 번째 센터에서 느낀 사랑을 표현하고,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하며, 언어와 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현실에 개인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일에 관여한다. 다섯 번째 센터가 균형 상태에 있으면 우리는 자신의 진실을 소리 내어 말하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사실 스스로와 인생에 매우 만족하고 기뻐하는 상태이므로 그런 생각과 느낌을 나누지 않을 수 없다.

 

여섯 번째 에너지 센터는 목과 정수리 중간에 위치해 있다. 뇌의 정중앙에서 약간 뒤쪽에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센터는 신성한 분비선인 송과선을 관장한다. 사람들은 송과선을 제3의 눈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이것을 제1의 눈이라고 부른다. 이 센터는 더 높은 차원들과 연관되며, 인식을 전환해서 장막 너머를 보거나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보는 것과 관련된다.

 

이 센터가 열리면 우리는 마치 라디오 안테나를 맞추듯 오감 너머의 더 높은 주파수들에 우리의 안테나를 맞출 수 있다. 우리 안의 연금술사가 깨어나는 곳이 이곳이다. 이 송과선은 다른 여러 가지 경이로운 대사 물질들과 함께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같은 호르몬을 분비한다.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은 낮에는 빛에 반응해 깨어 있게 하고 밤에는 어둠에 반응해 자게 만드는, 생체 주기에 중요한 호르몬들이다. 실제로 송과선은 가시광선 외에도 모든 전자기 주파수에 민감하며, 멜라토닌의 화학적 파생 물질들을 생산해 현실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만들 수 있다. 이 여섯 번째 에너지 센터가 균형 상태에 있을 때 우리의 뇌는 물 흐르듯 작동한다. 그때 우리는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를 더 명료하게 의식하며, 날마다 훨씬 많은 것들을 보고 지각하게 된다.

 

일곱 번째 에너지 센터는 정수리에 위치하며 뇌하수체를 관장한다. 뇌하수체는 마스터 분비선(master gland)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뇌하수체가 그 아래로 송과선, 갑상선, 흉선, 부신, 췌장, 생식선에 이르는 모든 분비선들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 센터에서 우리는 신성(神性)의 위대한 발현을 경험한다. 우리의 신성, 우리의 최고 수준의 의식이 바로 이곳에서 비롯한다. 이 센터가 균형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룬다.

 

여덟 번째 에너지 센터는 유일하게 우리 몸 밖에 있는 센터로, 머리 위로 40cm 떨어진 곳에 있다. 이집트인들은 이 센터를 ‘카ka’라고 불렀다. 이 에너지 센터는 우리가 우주와, 전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 센터가 활성화될 때 우리는 자신이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느끼며, 통찰력과 직관, 깊은 이해에 자신을 열게 된다. 그리고 이때 우주, 통합장, 혹은 그 이름을 뭐라 부르든 우리의 개인적 자아보다 훨씬 큰 어떤 힘에서 나오는 – 우리의 신경 체계 속에 저장된 기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 정보와 주파수를 우리의 육체와 뇌에 받아들이게 된다. 이 센터를 통해서 우리는 양자장 속의 데이터와 메모리에 접근한다.

 

에너지의 전개

 

에너지 센터들의 역동적인 작동 방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는 이 모든 센터들의 에너지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우리의 에너지를 단지 생존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위해서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니까 자손을 낳고 음식을 소화하고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한 에너지 센터에서 다음 센터로 에너지의 일부를 계속 전개시키면서 그 주파수를 끌어올린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다시 말해 이런 뜻이다. 먼저 첫 번째 에너지 센터의 창조 에너지에 주파수를 맞추는(channeling) 것으로 시작한다. 이 센터의 창조 에너지를 다루기에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낄 때 그 창조 에너지는 발전해서 두 번째 에너지 센터로 상승해 흘러갈 것이다. 나아가 환경이 주는 제한이나 조건을 극복하고 이겨낸다면 우리는 그 창조 에너지를 좋은 곳에 쓸 수 있고, 그러면 그 에너지는 세 번째 센터, 즉 의지와 힘의 자리로 상승해 흘러들어 간다.

 

살면서 장애로 작용했던 인생의 문제들을 잘 넘어서면 우리는 좀 더 자유롭고 온전해지는 느낌, 삶이 만족스러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에너지가 올라가 네 번째 세너를 활성화할 때 우리는 자신과 남들을 향해 진실한 사랑을 느낀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자신의 현재의 진실 – 우리가 배운 것, 사랑, 우리가 느끼는 온전함 –을 표현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에너지를 더 위로 상승시켜 다섯 번째 센터의 불을 켠다. 그런 뒤 이 다섯 번째 센터에서 에너지가 더 올라가 여섯 번째 센터를 활성화하면 뇌의 잠자던 영역이 깨어나고 그 결과 환영(幻影)의 장막이 거둬지면서 우리는 이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으로 현실을 지각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고 느끼고, 몸은 더욱더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에너지가 상승해 일곱 번째 센터를 활성화하면 (주변의 자연 세상을 포함한) 외부 환경 또한 더욱 조화롭고 균형 있는 상태가 된다. 깨달았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진실로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고, 에너지는 상승하여 마침내 여덟 번째 센터를 깨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그 모든 노력이 결실을 얻는다. 즉 우리 안의 기억 회로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안과 주변의 더 큰 힘에서 나오는 앎, 통찰, 꿈, 비전, 현현(顯現) 등을 경험하게 된다.

아래 그림은 첫 번째 에너지 센터에서부터 여덟 번째 센터로 전개해 가는 에너지의 흐름을 설명한다. 

 

창조 에너지는 우리가 발전시킴에 따라 첫 번째 센터에서 뇌 및 그 너머까지 올라갈 수 있다.                                                                                          각각의 에너지 센터는 자신만의 의도를 담은 자신만의 주파수를 갖고 있다. ​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를 때 - 이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다 - 개인적인 진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인생의 사건들과 거기에 반응하는 우리의 왜곡된 방식들 때문에 에너지는 쉽게 정체되고, 따라서 방금 말한 것처럼 그렇게 멋지게 상승하며 올라가지 못한다. 당신이 지금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는 문제들에 관계하는 에너지 센터가 바로 당신의 에너지가 정체해 있는 곳이다.

다음에 나오는 그림은 에너지가 정체해 위쪽 센터로 흘러들어 가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에너지가 정체되면 상위 센터로 올라가지 못한다. 감정이 에너지이므로 다양한 에너지 센터에 감정들이 갇힌다.                                                           이때 에너지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

 

 

 

예를 들어 성적 학대를 받았거나 어릴 때부터 섹스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면, 성과 관련된 첫 번째 센터의 에너지가 그곳에 갇히게 되고, 그때 당신은 창조성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혹은 자신의 창조 에너지에 접근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 개인적으로 인간 관계에 실패했다고 느껴 자신의 창조 에너지를 안심하고 세상에 펼쳐 보일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거나 배신을 당한 경우에는 에너지가 두 번째 센터에 갇히게 된다. 이런 사람은 죄책감, 수치심, 괴로움, 낮은 자존감, 두려움 등을 과도하게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에너지를 세 번째 센터까지 올려 보낼 수는 있으나 에고로 인한 문제가 있거나 자기만 알고 자기 중심적이라거나 남을 지배하고 통제하려 들며 화를 잘 내고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억울해하는 면이 강하다면, 이런 사람은 에너지가 세 번째 센터에 갇히게 된다. 이들은 지나치게 통제하려 든다거나 부적절한 동기부여로 힘들 수 있다. 마음을 열지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하며 타인을 신뢰할 수 없다거나 자신이 느끼는 사랑이나 진정한 감정을 표현하기를 두려워한다면, 네 번째 에너지 센터와 다섯 번째 에너지 센터가 막혀 있을 수 있다.

어떤 에너지 센터에서건 에너지가 막혀 있을 수 있지만, 아래쪽의 세 센터에서 막히는 경향이 더 많다. 그리고 그렇게 막히면 에너지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자유롭게 흐르며 전개되지 못한다. 그러면 삶을 사랑하고 베풀고 싶어 하는 위쪽의 에너지 센터들의 불을 켤 수 없다. 에너지 센터 축복하기 명상의 목적이 바로 에너지를 원래 만들어진 대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 이 센터들 각각에 축복을 내림으로써 우리는정체되어 있는 에너지를 다시 흐르게 할 수 있다.

예수아 벤 조셉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맹인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는 하위 세 개의 에너지 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상위 네 개의 씰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기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상위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 마음을 개발하고 구현해야 했다. 즉 치유의 기적을 이루는 순간 예수의 모든 에너지가 상위 높은 차원의 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상위 4개의 씰을 열 수 있다면, 상위에 있는 4개의 높은 주파수 밴드도 열리는 것이며, 상위 4가지 의식 차원도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모든 현실을 바꾸고 재창조하기 위한 숭고한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장으로부터 에너지 끌어오기

에너지는 움직이는 의식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가 있다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의식이라 불리는 場이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원자와 원자의 궤도까지, 즉 원자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모든 원자 구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초월적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면 그것은 하나의 생각체가 되고 그 생각체는 에너지의 주군이 된다. 그리고 에너지는 변화하여 관계를 형성하고, 생각의 패턴을 채우기 위해 응결된다. 모든 나무, 모든 곤충, 모든 모래알들은 초월적 지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모든 모래는 입자라는 형태로 응결된 에너지이지만, 그것을 결속시키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원자장에서 입자들을 연결시킨다. 입자가 자신을 스스로 끌어당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성은 무엇인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성이란 인간의 두뇌 기능을 통해 응결된 의식과 에너지를 말한다. 그것이 왜 중요할까? 만약 우리가 이러한 의식과 에너지 – 우리는 확실히 이러한 엉키거나 풀리거나 혹은 조여지는 의식과 에너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것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 에 둘러싸여 있다면, 이 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다. 그것은 관찰자라 불린다. 그렇다면 관찰자는 어디에 있을까? 관찰자는 우리 머릿속에 있다.

 

우리가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장은 바로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밴드에 있다. 그러면 이 장이란 무엇인가? 제로 포인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단계에 있는 7개 차원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관찰자이고 우리가 전두엽에서 생각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場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질량을 갖는 모든 물질들은 아원자 입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자는 원자핵을 가지고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neutron)는 더 작은 입자인 쿼크(quark)로 이루어 있다. 6차원이 바로 쿼크 場이다. 그리고 5차원이 양성자 場이다. 4차원이 원자핵에 해당된다. 4차원 아래의 모든 차원(1, 2, 3차원)은 전자와 양전자라 불리는, 물질과 반물질이 오가는 곳이다. 이렇게 모든 차원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원자는 에너지 입자로서 펼쳐질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원자핵 단계에서 원자를 펼치면 그것은 원자 폭탄이 된다, 원자 폭탄의 위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이렇듯 에너지가 ‘숨겨진(hidden)’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입자가 작으면 작을수록 에너지는 더욱더 강력해진다.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왔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원자핵이 분열되어 펼쳐지는 에너지는 시간이 느려짐에 따라 조여져, 휘감겨 있던 에너지를 반드시 분열시킨다.

 

모든 것은 입자 안에서 7가지 다른 차원의 현실로 숨겨진 채 존재한다.

원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면, 그렇게 된 원리는 무엇일까?

모든 원자는 다른 차원들이 응결되고 닫힌 상태로 존재한다.

원자핵을 살펴보면 핵의 바깥 껍질과 궤도를 돌고 있는 전자들, 양전자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원자핵 주위에 있는 모든 전자가 핵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자로 하여금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했을까?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당신이 관찰자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특정한 입자인 원자에 집중한다면,

당신은 원자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의 회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당신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당신의 신성한 본성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화하고 미지의 것을 깨닫기로 되어 있다면,

당신의 어떤 능력이 그 일을 담당하는 것일까?

그것은 집중된 의식(Focused Consciousness)이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원자에 전자를 더하거나 빼면서 집중한다면,

당신은 그 에너지의 특성을 바꿀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당신은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場을 보지 못하지만, 이것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항상 운동량을 갖는 움직임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우리 몸은 보이지 않는 전자기 에너지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 전자기 에너지는 항상 의식적인 의도나 지시를 담고 있다. 우리 몸속의 일곱 개 에너지 센터가 활성화될 때 이 센터들에서 바로 그 전자기 에너지가 나온다. 간단히 말해 의식적 존재인 우리가 각 센터 내의 에너지를 활성화할 때 관련 신경총이 자극되어 특정 수준의 마음이 만들어지고, 그 마음은 다시 각 센터 내의 해당 분비선, 조직, 호르몬, 화학 물질들을 활성화한다. 그렇게 각각의 센터들이 하나씩 깨어나면 몸은 그 센터들에서 에너지를 방출해 특정 정보나 의도를 내보낸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 생존 모드에 머무르면서 아래쪽 세 센터의 에너지를 지나친 섹스나 지나친 소비를 하는 데 또는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는 데 쓰면서 살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우리 몸 주변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으로부터 계속 에너지를 끌어오고 그 에너지를 부단히 우리가 필요로 하는 화학 물질로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과정을 오랫동안 반복하다 보면 몸을 둘러싼 에너지장이 쪼그라든다. 그 결과 우리를 둘러싼 빛이 줄어들어 더 이상 에너지 센터들로 끌어올 의식 혹은 의도를 가진 에너지가 없게 되며, 따라서 각 에너지 센터에 연관된 마음을 만들어낼 수 없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에너지장이라는 원천을 다 써먹은 것이다. 각 에너지 센터의 약한 에너지로 만든 약한 마음은 약한 신호를 주변의 세포, 조직, 기관, 체계에 보낼 수밖에 없다. 약한 신호, 낮은 주파수의 에너지가 우리 몸에 중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낮은 주파수의 신호들이 질병을 야기한다. 에너지 차원에서 보면 모든 질병은 에너지의 주파수가 낮아진, 따라서 주파수에 담긴 메시지가 일관성을 잃은 결과이다.

 

앞서 말했듯이 아래쪽의 세 에너지 센터들은 생존에 관여하며, 따라서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을 나타낸다. 이 센터들은 권력, 공격성, 힘, 경쟁 당의 방법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살아남고자 한다. 잘 먹어서 영양을 보충하고 자손을 만들어 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이 에너지 센터들이 하는 일이다. 반대로 위쪽 다섯 개 센터들은 우리의 이타적인 본성을 나타내며, 훨씬 이타적인 사고와 감정에 관여한다. 자연은 이 아래쪽 세 에너지 센터들이 매우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그래야 우리가 이 센터들이 관여하는 행위들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를 하고(첫 번째 센터) 음식을 먹는(두 번째 센터) 일은 즐거운 일이다. 타인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것(두 번째 센터) 역시 즐겁다. 장애를 극복하는 것, 원하는 것을 얻는 것, 타인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 특정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 몸을 움직여 성취하는 것 등 개인적 힘의 발휘(세 번째 센터)도 달콤하다.

 

이제 왜 사람들이 아래쪽 세 에너지 센터들을 과용하는지, 그래서 우리 몸을 둘러싸고 있는 중요한 에너지와 정보를 더 많이 소비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가 희생자라고 느끼고 과거의 감정을 붙들고 있으면서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사람은 두 번째 센터 주변의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고 있고, 따라서 그 센터의 에너지를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다. 지나치게 통제적이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세 번째 센터 주변의 에너지를 더 많이 끌어 써야 한다. 우리의 의식이 진화하지 않으면 우리의 에너지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아원자 영역

 

이 모든 일은 아원자 혹은 양자 영역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아래 그림을 보도록 하자.

원자들이 결합해서 에너지와 정보를 공유하면 분자가 만들어진다. 분자는 그 주변으로 에너지와 정보로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빛의 장을 갖고 있고, 이 빛의 장이 분자에 물리적 속성을 부여하며 분자가 물질 상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이 분자에 더 많은 원자들이 결합할수록 분자는 더 복잡해져 화학 물질을 형성하게 된다. 이 화학 물질도 그 주변으로 에너지와 정보로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빛의 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 빛의 장이 있기에 화학 물질도 물리적 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 화학 물질에 더 많은 원자들이 결합하면 훨씬 복잡한 세포가 만들어진다. 세포도 에너지와 정보로 되어 있는 자신만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 에너지장이 세포에게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를 지시한다. 세포들이 모이면 조직(tissue)이 되고, 그 조직을 둘러싼 에너지와 정보의 장이 조직 안의 세포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조직들이 합쳐지면 기관(organ)이 되는데, 그 기관을 둘러싼 에너지와 정보의 장이 있기에 그 기관이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다. 기관들이 모여서 체계(system)가 되며, 이 체계 주변에도 보이지 않는 빛의 장이 있어 체계가 물리적 속성을 갖고 온전히 기능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체계들이 모여 몸을 형성한다. 이 몸 주변에도 에너지와 정보로 이루어진 빛의 장이 있어 우리 몸이 물리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생명 활동에 필요한 방법을 지시한다.

 

 

각기 자신만의 핵을 가진 원자가 두 개 있고, 이 원자들이 만나서 분자를 하나 만든다. 이 두 원자들이 만날 때 겹치는 부분이 바로 두 원자가 빛과 정보를 공유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은 이 두 원자가 특정 주파수를 띠는 비슷한 에너지를 공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두 원자를 하나의 분자로 묶어주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이다. 서로 만나 분자를 이루고 정보를 교환하면 이 원자들은 이제 다른 물리적 특성과 성격을 갖게 된다. 둘이 따로따로 있을 때와 비교해 원자의 밀도도 달라지고 끓는점도 달라지고 무게도 달라지며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이 분자에게 그런 구체적인 특성들을 부여하고 물질로서 형태와 구조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주변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와 에너지의 교환 없이는 분자가 만들어질 수 없다.

 

원자가 추가될 때 새로운 물리적 속성과 성격, 구조를 가진 분자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더 많은 원자들이 추가되면 화학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 화학 물질 주변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이 있어서 이 화학 물질이 물리적 형태를 유지하고 생명력을 갖게 한다. 이런 원자의 힘은 실제로 존재하고 측정도 가능하다.

 

화학 물질들이 충분히 모여서 합쳐지면 마침내 세포가 만들어진다. 이 세포를 둘러싸고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이 있고 그것이 세포에게 생명력을 준다. 세포는 실제로 빛의 주파수들을 먹고 산다. 세포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것은 분자도 아니고 그 분자의 양전하나 음전하도 아니다. 양자정보생물학(quantum information biology) 이라 불리는 새로운 생물학에 따르면, 세포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세포들이 방출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생체 광자들과 이것들의 빛/주파수 패턴이다. 세포가 건강할수록 더 일관성 있는 생체 광자를 방출한다. 일관성이란 주파수가 질서정연하게 표현된 것을 말한다. 세포와 그 세포를 둘러싼 에너지장 사이의 (빛의 전자기 주파수를 통한) 정보 교환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일어나는데, 이것은 그것이 양자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나아가 일련의 세포들이 모이면 하나의 조직이 형성되고, 이 조직도 단일하고 일관된 주파수와 에너지의 보이지 않는 장에 둘러싸여 있다. 바로 이 에너지장이 조직 내 모든 세포들이 하나의 공동체처럼 기능하면서 서로 조화롭게 작용하게 만든다. 이 조직이 더 특화된 기능으로 발전되면 기관이 만들어지는데, 이 기관도 보이지 않는 전자기 에너지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관 역시 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으로부터 말 그대로 정보를 받는다. 실제로 그 기관의 기억은 에너지장 속에 존재한다. 특정 정보를 갖고 있는 에너지는 물질에 영향을 끼친다.

 

그 다음으로, 기관들이 모이면 근골격계, 심혈관계, 소화계, 생식계, 내분비계, 림프계, 신경계, 면역계 등의 체계가 만들어진다. 이 체계들도 주변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의식의 장으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기능한다. 또 이 모든 체계들이 모여서 몸을 이루고 이 몸도 그것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자기 에너지장을 갖는다. 그리고 진짜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핵심적인 빛의 전자기장이다.

 

스트레스 호르몬 이야기를 잠시 해 보자. 생존 모드에 있으면서 몸속에 화학 물질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그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으로부터 너무 많은 에너지를 끌어들일 때 – 예를 들어 성에 지나치게 탐닉하거나, 음식을 과도하게 먹거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거나, 혹은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때 – 우리 몸을 둘러싸고 있는 에너지장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고 성장하고 회복하도록 지시하는 데 쓸 에너지나 빛이 에너지장에 충분히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각각의 에너지 센터들은 더 이상 에너지를 받아들이지도 처리하지도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또한 건강한 신경 마음(neurological mind)을 만들어내, 신경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몸의 관련 부분들에 필요한 신호를 보낼 수도 없다. 의식적 의도를 가진 에너지가 신경 조직들을 지나거나 활성화시킬 때 신경 마음이 생겨나는데, 이제는 에너지 센터들로 들어오는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세포, 조직, 기관, 체계를 적절히 조절할 마음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한다. 적절하고 일관성 있는, 빛과 정보의 에너지를 받지 못하는 몸은 이제 한갓 물질 덩어리처럼 움직인다. 우리 뇌가 일관성 없이 되는 것과 똑같이 미니 뇌들도 일관성 없이 작동하게 된다.

 

게다가 스트레스 호르몬 때문에 뇌 속 각 부분 사이의 경계가 강해지면서 그 각각이 제멋대로 작동하면, 이 일관성을 잃은 뇌는 중추신경계를 비롯해 우리 몸 구석구석과 소통하는 모든 미니 뇌 신경총들에 비일관적인 메시지 – 마치 라디오 전파의 잡음 같은 –를 내보낸다. 그리고 비일관적인 메시지를 받은 미니 뇌들은 각 에너지 센터들과 연결되어 있는 몸의 부분들, 즉 각각의 기관, 조직, 세포에 비일관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이는 차례로 우리 몸속 각각의 기관, 조직, 세포로 가는 호르몬 분비와 신경 전도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비일관성이 마침내 몸의 불균형 혹은 질병을 부르기 시작한다. 미니 뇌들이 일관성을 잃으면 몸속의 해당 부분들도 일관성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쿤달리니 에너지

 

쿤달리니란 아주 오래된 용어이다. 고대의 율법에서는 모든 인간의 몸 안에 잠자고 있는 뱀 혹은 잠자고 있는 용이 있다고 말하며, 그것을 생명의 용 혹은 뱀 에너지라고 한다. 그것은 척추 맨 밑에 코일처럼 감겨 있다. 또한 고대의 가르침에서 말하기를 이 뱀이 깨어나면 아주 놀랄만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1, 2, 3번째 씰에서 나오는 에너지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거대한 양자 다발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숨겨져 있는 아주 특별한 것을 위해, 그리고 인간의 진화를 위해 보존된 것이다. 뱀이 깨어나면 스스로 갈라진다고 한다. 척추와 두개골을 그려보면, 이 뱀은 척추의 맨 밑에 앉아 있다. 척추는 모든 신경계로부터 온몸으로 전기적인 정보를 보낸다는 것을 알라. 그래서 척추와 이 에너지는 이러한 특정 통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통로란, 척추의 맨 밑에서부터 고요한 장소라고 하는 신피질 정면까지의 길을 일컬으며, 이것을 여정 그리고 깨달음의 여정이라 부른다. 이 뱀이 깨어나면, 스스로 갈라져 척추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 이것은 아주 강력한 에너지로서 이 통로를 향해 갈 땐, 척수액을 이용해 척추의 위아래로 움직이며 실제로 척수액을 이온화시키고 분자구조를 변형시킨다. 그래서 이 뱀이 척추에서 춤을 추며 올라가면, 몸 전체의 기본적인 DNA 패턴을 바꾼다. 더 나아가 그 뱀 에너지가 소뇌까지 도달하면 그 여정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파충류의 뇌는 망상체(뇌간(腦幹)부 신경 세포의 조직)가 있는 뇌간의 윗부분을 감싸고 있다. 그것은 마치 거미줄 망처럼 생겼다. 잠재의식은 중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파충류 뇌인, 소뇌 하부에 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이 망상체는 실질적으로 어떤 정보들이 신피질로 흐를 수 있게 하는 스위치들의 본선이다. 이것은 컴퓨터이다. 이 컴퓨터로 프로그램된 것은 무엇이든 이곳으로 흘러 현실이 되며, 이것은 특히 인체에 큰 영향을 준다.

 

두뇌

 

 

뱀 에너지 혹은 용 에너지인 쿤달리니 에너지가 척추로 올라가면서, 양극화된 에너지에 의해 척수액 전체가 이온화되어 척추 위아래로 흐른다. 그것이 망상체에 닿으면 모든 스위치들이 켜진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잠재의식의 모든 문들이 활짝 열린다는 것이다. 그 에너지는 용맹한 정복자처럼 더욱더 힘차게 행진하면서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쳐부수고 불에 태워버리는데, 이것이 바로 쿤달리니의 행진이다.

 

이것이 중뇌 부위로 오면 시상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고대인들은 이를 수문장이라고 하였다. 신화나 구전에선 모든 사람들이 수문장을 성 베드로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성 탈라무스(Thalamus, 시상(視床:간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백질부로, 많은 신경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이다. 쿤달리니 에너지가 이 문을 열어 활성화시킨다. 그리고 시상은 중뇌에서 송과선을 보호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시상은 신경 종말과 망상체에서 나오는 모든 섬유질이 만나는 집합소와 같은 장소이며, 그것은 전환점이다. 쿤달리니가 이 에너지를 연다고 하는 실질적인 의미는 잠재의식으로 숨겨진 있던 모든 것들이 두뇌의 특정한 지점인, 바로 전두엽으로 자유롭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놀라운 일인가? 쿤달리니 에너지가 스위치를 켜 문이 열리면, 고대의 지식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여 실질적으로 당신의 의식적인 마음이 잠재의식과 완전히 만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쿤달리니는 완전한 깨달음에 대한 찬사의 말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깨달음이란 당신이 베일 너머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경험하게 되며, 그리고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알게 된다. 눈부신 섬광 안에서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생과 앞으로 펼쳐질 모든 것들을 즉각적으로 알게 된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쿤달리니 에너지 또는 근동(아리비아 ‧ 북동아프리카 ‧ 동남아시아 ‧ 발칸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서 말하는 용의 힘은 바로 이곳(척추 맨 아랫부분)에 있으며, 암호화 되어 있다. 그곳에 깨달음을 향한 로켓 연료가 들어 있다. 이 에너지를 트라이어드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쿤달리니는 트라이어드의 어느 부분에 속할까?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당신은 보이드에 의해 창조되어 제로 포인트가 되었고, 제로 포인트는 스스로 숙고하여 첫 번째 차원을 창조했다. 우리는 계속 하강하여 맨 아래인 1차원, 즉 3차원적인 세계로 바로 당신이 있는 곳이다 – 에 존재하고 있고 인간의 두뇌를 움직이는 의식은 시

계추처럼 움직인다고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RAMTHA,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 <Ⅱ> 참고) 꿈을 꾸기 위해, 그것은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 볼 것들이 있다. 우리는 앞서 보았던 글(『RAMTHA,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 <Ⅱ> 참고)에서, 보이드가 있고 보이드로부터, 보이드 안에서, 의식과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비밀을 훑어보았었다. 우리가 내면으로 들어가 숙고할 때, 우리는 확장한다는 것을 배웠었다. 신의 의식을 항상 반영하는 거울 의식, 건물을 지어 올릴 사다리가 생긴 것을 보았었다. 두 개의 의식 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생명의 가능성이라고 불리며 7차원은 6차원과는 다른 현실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이 7차원보다 6차원이, 6차원보다 5차원이 더 느리다는 것을 배웠었다.

 

양손을 사용한 시간의 표현

 
 

다음의 트라이어드가 기억날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창조되었던 신성한 기하학 중 가장 성스러운 형상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트라이어드는 모든 것들이 발생하는 본질적인 시점에서부터 창조의 생각이 펼쳐진 지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에 그리는 삼각형, 즉 트라이어드는 그 차원에서의 의식과 에너지로써 생명의 주요한 구성요소이다. 차원이 하강할수록 그려진 모든 선은 앞선 것보다 길이가 조금씩 길어진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이 선들은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타임라인을 가리킨다. 이 선은 차원을 기반으로 하는 타임라인이다. 오늘날 우리들 모두는 1차원에 내려와 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 가장 느린 타임라인에 살고 있다.

 

 

제로 포인트로부터 의식과 에너지의 하강

 

 

알아 둘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 차원이 다른 생명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에너지 진동 주파수가 우리들의 진동 주파수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다. 지구가 8헤르츠의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 또한 8헤르츠 주파수로 진동한다. 하지만 우리들 사이에 있는 영적 존재들은 320헤르츠로 진동할 수도 있다.

당신이 제로 포인트에서 태어났을 때, 즉 당신의 신이 바로 제로 포인트에서 당신을 창조했을 때, 숙고를 통해서 당신은 하강의 여정을 시작했으며, 그러는 동안 당신은 보이드(허공, Void: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에서 더욱더 깊이 그리고 더 깊이 성장하고 있었다.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선택에 의해 1차원까지 하강을 한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육체와 1차원의 타임라인을 선택한 것이다.

 

당신은 진동하면서 지금 1차원에 앉아 있다. 당신은 1차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진동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 육체의 주파수가 1차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아 둘 것이 있다. 바로 당신이 있는 1차원 지금 여기에 모든 것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제로 포인트 그늘 밑에서 일어나고 있다. 모든 것들이 당신이 지금 앉아 있는 바로 그 시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타임라인은 환영(幻影)이다. 피라미드의 중간으로 내려오는 선, 그것을 지금(Now)이라 부른다. 당신이 앉아 있는 바로 그곳에 놀랄만한 지성이 당신과 함께 있다. 그 지성이 놀랄만한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차원이 존재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당신이 어느 차원에 있는가를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당신들 모두는 하나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미지의 것을 깨닫는 것이다. 미지의 것을 깨닫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법칙이다. 보이드(Void)는 자신의 창조물에게, “나를 이용하여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만들어라. 창조자가 되라. 네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건 주겠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단지 진화만 있을 뿐이다. 단지 창조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세상은 우리가 미지의 것을 깨달아야 하는 법칙을 실현할 수 있는 놀이터이다. 육신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당신과 나, 우리는 이 시간의 흐름 속에 전생에서 얻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첫 번째 생이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며, 단지 우리는 주위의 환경과 그 환경으로 인한 역경 그리고 물리적 형상에 갇혀 있는 존재로서, 육체를 갖고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자신에게 가르쳐야 했을 것이다.

 

첫 번째 생을 산 후, 우리는 배우기 시작했다.

이 삶의 연속선상에서 우리가 기여했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생각을 기여했다.

우리는 의식의 흐름을 취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부여받았다.

의식과 두뇌 그리고 마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의식은 신으로부터의 흐름이다.

두뇌는 수신기이다.

왜냐하면 두뇌는 의식을 취해 기억 가능한 신경학적인 생각을 만들어,

그것을 기억의 형태로 응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개념에서 볼 때 기억이라는 집을 지을 때 벽돌을 쌓는 것과 같다.

지식의 형태로 수집된 두뇌에 있는 생각들은,

당신이 생각의 형태를 다시 창조할 수 있게 한다.

만약 그러한 생각들이 두뇌의 신피질 앞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에너지를 붕괴시켜 어떤 형태로 만들어버리는 법제가가 될 것이다.

그렇게 두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진화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는가? 우리가 육체적인 역경을 겪으면서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면 그것은 하나의 배움이자, 창조이다. 단지 역경을 통해 좀 더 나은 것이 되려는 욕구가 좀 더 진화된 육체를 만드는 바탕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험은 당신의 영적 자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것은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렇게 1,500만 년을 살아온 것이다.

이번 생에서 당신은 “영적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어떻게 하면 육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당신의 유전자 속에 신들이 있다. 당신은 진보한 지성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당신을 창조했던 그 지성만큼 위대하며, 그 지성은 모든 것들의 시작이었던 꿈꾸는 자, 신에게로 돌아간다.

 

현재 당신이 불행한 이유는 현실을 꿈꿀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현실에서 모든 것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둔다. 영화관에 가서 당신은 다른 누군가가 모험하는 것을 본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노래를 부르지만 당신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황홀해한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며 감탄한다.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이용한다. 따분함을 느끼고 연예 오락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것들이 당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신 – 당신은 분명 신이다 – 이라면, 그리고 의시고가 에너지가 현실의 본질을 창조한다면, 우리가 가진 문제는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로 일치해야 할 신과 함께 꿈을 창조하고, 그 꿈을 신에게 내어준 후, 그 꿈으로부터 벗어날 때 그것이 에너지 – 상상력이 에너지를 응결시킴으로써,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 로 구현된다. 그러나 당신은 신이 여기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막혀버린 것이다. 지난 4만 년 동안 당신들은 매 생애마다 이러한 일을 반복하였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학교에 다니면서 이 문화가 당신에게 주는 모든 것을 배워 지루해졌으며, 당신이 꿈을 꾸고, 그것을 일차 의식과 일치시킨 후, 시간을 붕괴하고, 그것을 다시 가져와, 에너지를 시각적 형상으로 구현하여, 그것을 경험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여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이것을 멈춰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 타임라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죽으면, 3차원으로 가서, 그들이 했던 것을 바라본 후, 다시 이 타임라인으로 돌아온다. 당신은 그렇게 막혀 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고 이곳을 벗어나 4차원으로 올라간다. 그들은 이러한 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여기를 벗어나 영적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절대 근원의 깊숙한 곳에 도달하고, 1차원에서 그것을 구현한다. 그리스도란 누구인가? 여기 이 타임라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자를 말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에너지를 뱀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에너지의 파동이 마치 뱀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체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만, 그것은 생각과 함께 시작하여 생각의 흐름 안에서 끝난다. 에너지는 두 개의 의식 차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른다. 에너지가 이렇게 움직이면서 파동을 만든다. 어떤 의식 차원에서 에너지가 나오느냐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종류의 에너지를 얻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고도의 지성 혹은 고차원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폭발하는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물질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이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러나 느리고 게으른 사람들이나 삶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느리고 긴 파동의 에너지가 나오며, 그들의 생각과 결론은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린다.

 

여기에서 말하는 에너지 그 자체는 순수하지만, 에너지가 흐를 때는 생각의 파동을 실어 나른다. 즉 에너지는 움직이고 있는 생각을 의미하며, 어떤 사람이 해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식이 두뇌로 흘러 이 장(field)에서 마음의 형태로 발산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을 머리 뒤쪽에 있는 소뇌로 포착하면, 두뇌는 그것을 집합적 생각의 장에서 해독한다. 즉 두뇌는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를 평가한다. 좋고 나쁜 것?!?!?! 에너지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에너지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둘 다이다. 영원한 빛의 세계에서 좋고 나쁘게 보이는 것은 없다. 당신이 神이라면, 당신이 창조자 혹은 신이 되기 위해 신성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 무엇이 반드시 당신의 내면에 있어야 한다. 당신의 내면에 신성한 본질과 버금가는, 오장육부보다 더 위대한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제대로 사용되지 않으면서 자주 오용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숨겨진(hidden)’이라는 말이며, 말 그대로 그것은 숨겨진 것이다. 숨겨진 것은 신성한 지식이다. 그렇다면 신성한 지식이란 무엇인가? 신성한 지식이란 숨겨진 것을 열기 전까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숨겨진(hidden)’ 것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에너지 파장 안에 그것을 운반하는 마음의 場이 있으며, 그리고 에너지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이다. 에너지, 즉 인간의 활동의 근원이 되는 힘이 시작될 때, 그것은 하나의 아이디어 혹은 생각으로 시작한다. 에너지가 나와서 場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현실로 완성된다.

 

당신과 옆에 앉은 사람과의 사이에 있는 공간을 바라보라. 둘 사이의 간격이 어느 정도인가? 당신 둘 사이에 있는 공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옆 사람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가? 당신과 옆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이 공간은 무엇인가? 이 공간을 ‘숨겨진(hidden)’ 것이라 부른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은 당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이며,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 대기는, 이렇게 생긴 에너지 場이며, 우리는 에너지 場 안에 에너지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옆에 앉은 사람의 어깨를 만져보라. 7차원까지의 거리는 당신 옆 사람의 어깨를 만질 수 있는 거리만큼 아주 가깝다. 삶에서 당신이 원하는 것들 – 엄청난 부, 눈부신 젊음, 건강, 유능함, 아름다운 관계, 행복, 평안, 기쁨 – 을 얻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당신이 옆 사람의 어깨를 만지는 것보다 더 적게 든다. 자, 다시 한 번 옆 사람의 어깨를 만지면서 방금 내가 한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 그것이 바로 ‘숨겨진’ 것이다. 여기 시간대에 존재하는 대기, 이 방 안의 대기, 지구와 태양계 그리고 은하계의 원소들을 구성하는 장(場, field)들은, 진화의 차원이 다를 뿐 모두 같은 에너지 場이다. 즉 그것들은 다른 차원에 있어도 동일한 장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바로 여기(1차원)에 있는 이 모든 것(7개의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관찰자는 에너지 場을 붕괴시킨다

 

당신 안에 존재하는 신성은 무엇인가? 당신 안에 존재하는 신성이란 인간의 두뇌 기능을 통해 응결된 의식과 에너지를 말한다. 그것이 왜 중요할까? 만약 당신이 이러한 의식과 에너지 – 당신은 확실히 이러한 엉키거나 풀리거나 혹은 조여지는 의식과 에너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것은 당신 주변에 널려 있다 – 에 둘러싸여 있다면, 이 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다. 그것은 관찰자라 불린다. 그렇다면 관찰자는 어디에 있을까? 관찰자는 당신 머릿속에 있다.

 

당신이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이 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場은 바로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밴드에 있다. 그러면 이 場이란 무엇인가? 제로 포인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단계에 있는 7개 차원을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 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관찰자이고 당신이 전두엽에서 생각을 품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場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까? 질량을 갖는 모든 물질들 –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 입고 있는 옷 그리고 당신 육체를 이루고 있는 것들 – 은 모두 아원자 입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자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Adam(아담)’과 ‘atom(원자)’, 즉 최초의 인간과 물질을 이루는 최초 입자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원자는 원자핵을 가지고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neutron)는 더 작은 입자인 쿼크(quark)로 이루어 있다. 6차원이 바로 쿼크 場이다. 그리고 5차원이 양성자 場이다. 4차원이 원자핵에 해당된다. 4차원 아래의 모든 차원(1, 2, 3차원)은 전자와 양전자라 불리는, 물질과 반물질이 오가는 곳이다. 이렇게 모든 차원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원자는 에너지 입자로서 펼쳐질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원자핵 단계에서 원자를 펼치면 그것은 원자 폭탄이 된다, 원자 폭탄의 위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이렇듯 에너지가 ‘숨겨진(hidden)’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입자가 작으면 작을수록 에너지는 더욱더 강력해진다.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왔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원자핵이 분열되어 펼쳐지는 에너지는 시간이 느려짐에 따라 조여져, 휘감겨 있던 에너지를 반드시 분열시킨다.

 

모든 것은 입자 안에서 7가지 다른 차원의 현실로 숨겨진 채 존재한다. 원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면, 그렇게 된 원리는 무엇일까? 모든 원자는 다른 차원들이 응결되고 닫힌 상태로 존재한다. 원자핵을 살펴보면 핵의 바깥 껍질과 궤도를 돌고 있는 전자들, 양전자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원자핵 주위에 있는 모든 전자가 핵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전자로 하여금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했을까?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당신이 관찰자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특정한 입자인 원자에 집중한다면, 당신은 원자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의 회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당신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당신의 신성한 본성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화하고 미지의 것을 깨닫기로 되어 있다면, 당신의 어떤 능력이 그 일을 담당하는 것일까? 그것은 집중된 의식(Focused Consciousness)이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원자에 전자를 더하거나 빼면서 집중한다면, 당신은 그 에너지의 특성을 바꿀 것이다.

 

반복을 마치고 이제 다시, 인간의 두뇌를 움직이는 의식이 시계추처럼 움직인다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꿈을 꾸기 위해 의식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시계추가 움직이는 것처럼 인간의 의식이 스윙(swing)할 때 과학에서도 인정하는 매직과 같은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스윙을 멈추는 순간이다.

 

자, 아래 그림처럼, 이렇게 해보자. 잠시 손을 시계추처럼 부정/긍정, 아니오/네, 낮음/높음, 어둠/빛으로 움직여보자. 이제 천천히 손을 움직이도록 한다.

꿈꾸는 것

 

그런 식으로 손을 앞뒤로 움직이다가 중간에 멈춰진 순간(손이 한 곳에 정지된 순간)이 있다. 그것은 양손이 일치된 순간이다. 두 개의 의식 차원이 이렇게 일치 상태가 될 때, 우리는 이것을 ‘영원한 지금’이라 부른다. 영원한 지금, 그것은 자석의 중앙이다. 바로 그 순간에 거울에서 신에게로 반사되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다. 그것은 마치 터널 속에 있는 것과 같으며, 그 터널 에너지가 바로 쿤달리니 에너지이다.

'일치된 현재'(Now Alignment) ​

 

인간의 의식 안에 있는 이 에너지는 잠에서 깨어난 적이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닫아놓고 계속 스윙하기 때문이다. .

 

거울 의식의 스윙 운동

 

 

즉 완전히 알고, 완전히 몰입하고,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두 개의 의식 차원, 즉 관찰자와 행위자가 일치될 때만 이러한 순간이 일어난다. 만약 우리가 쿤달리니 에너지를 깨워 위로 올려 집중한다면, 이 두 개의 의식 포인트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장은 강력한 자력과 같다.

 

이것에 대해 단순한 설명을 덧붙여 보자면, 매번 꿈을 꿀 때마다, 당신의 의식은 앞쪽으로 스윙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그것은 꿈을 꾸고 있다. 꿈을 다 꾸면, 그것은 일치 상태가 될 것이다. 즉 그것은 거울이다. 우리는 우리가 집중하고 구현하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이제 자연스럽게 탄력을 받아 두 손이 하나가 된다. 피라미드가 제로 포인트를 향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 영향을 주기 위해 그림을 신에게 가져가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써 모든 시간은 닫히고 우리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게 된다. 잠시 동안 우리는 사라져 버린다.

 

두 개의 의식이 분리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우리는 피라미드를 닫았었다. 이제 우리는 이 공간과 에너지를 다시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렇게 끌어당기는 것이 왜 중요할까? 그것이 중요한 점은 우리의 꿈이 새로운 창조를 위해 쓰일 에너지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되었으며, 그리고 우리는 생각으로 그것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꿈에 따라 우리의 모든 육체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이 다시 배열되고 재(再)프로그램 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꿈을 꾸고, ‘지금 이 순간(Now)’에 집중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루어졌을 때, 에너지가 몸 위로 이동하며 환희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용이 깨어나는 순간이며, 두 개의 의식이 하나로 일치되는 순간이다. 가까워졌다 다시 벌어지는 것이, 창조의 운명이다. 이것이 일치되었다가, 다시 벗어나면(거울 의식의 스윙 운동 그림 참조), 뱀은 전체 세포 구조를 프로그램하고 다시 1차원으로 내려와 쿤달리니 에너지 형태로 붕괴된다. 거울 의식이 일치 상태에서 벗어나는 순간 현실이 재(再)형성된다.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쿤달리니는 두 개의 의식이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있을 때만 존재한다. 오직 그때에만 그 에너지가 존재한다.

 

다음 그림은 건강을 상징하는 ‘카두시어스’(Caduceus)이다. 지팡이는 척추처럼 보인다. 지팡이 위에 있는 구는 두뇌를 나타낸다. 두 마리의 뱀이 서로 휘감아 오르며 구를 향해 가는 것이 쿤달리니와 흡사하다. 구에 날개가 달린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바로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카두시어스가 지닌 실질적인 의미를 잊어버렸다 해도, 절대적 건강과 행복을 나타내는 카두시어스가 의학을 상징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고대 상징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눈부신 건강에 집중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순간을 유지할 수 있다면. 치유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카두시어스(Caduceus) ​

이 에너지가 척추를 휘감으며 머리까지 올라가는 여정에서 만들어내는 자기장을 이온화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치유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핵의 회전을 바꾸고 DNA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으로 자신의 병을 치료한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어떻게 치유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인간의 두뇌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을 살펴보려고 한다. 지금 시대의 인간 모습과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던 455,000년 전(파충류 시대라고 불리던 때)의 유인원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두개골과 소뇌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육체를 가졌을 때 모든 차원의 에너지와 접촉했던 두뇌가 바로 소뇌이다. 면도날로 소뇌에서 아주 미세한 부위를 떼어내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그것이 신피질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세포와 원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거칠고 어두운 색깔을 지닌 이 장기는 모든 차원(7개의 모든 차원)과 교신하는 송신기와 수신기 역할을 한다. 사실상, 최초 인류의 조상인 우리는 6개 육체의 지성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를 통해 우리는 의식의 흐름을 펼친다. 옐로 브레인, 즉 신피질에는 의식의 흐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은 오직 두뇌 뒤쪽에 있는 소뇌로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신피질이 아니라, 두뇌의 뒷문으로부터 얻는 것이다.

 

이 파충류 뇌 – 파충류의 두뇌와 혼동하지 말라. 기원이 파충류 시대라 불리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 는 우리가 떠나온 여러 가지 높은 차원과 교신하는 송신기와 수신기 역할을 – 455, 000년 전까지 – 했다. 또한, 455,000년 이전의 송과선은 오늘날의 것보다 훨씬 거대했었으며 중뇌는 완전했었다. 파충류의 뇌가 잠재의식이 자리하는 곳이라면, 중뇌는 모든 심령활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두뇌는 그렇게 창조되었다. 중뇌는 수신기로서 적외선에 민감하다. 중뇌는 두뇌에서 유일하게 적외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부위이다. 당신이 8헤르츠 차원인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두 번째 차원인 적외선은 당신이 죽을 때 가게 되는 곳이다. 그것을 적외선 영역이라 한다. 하나의 밴드인 적외선은 낮은 파장과 높은 파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2차원의 현실이라고 하며, 우리가 태초에 왔던 곳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밴드의 파동이 1차원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 밴드를 심령 영역이라 부른다. 455,000년 이전의 유인원에게는 텔레파시 능력이 있어 오늘날의 동물처럼 의사소통을 하였다. 오늘날에도 동물은 아주 높은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두뇌는 적외선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적외선은 심령 밴드이다. 유인원들은 육체를 둘러싼 밴드를 통해 생각을 알아채고 받아들였다. 그들의 두뇌는 완벽한 수신기였다. 그들은 바로 이 부위로 소통하였다. 송과선은 종종 인간의 혼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의식과 동등한 두 개의 신경전달 물질을 옐로 브레인에서 생산하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을 줄여서 ‘사라’라고 부르는데, 사라는 낮의 여자이다. 송과선은 빛이 있을 때 세로토닌을 생산한다. 세로토닌을 하나의 열쇠라고 생각하라. 똑같은 세포를 가지고 있는 눈의 망막 – 망막은 송과선에 있는 세포와 동일한 세포를 가지고 있다 –에서 빛이 줄어들어 어두워지는 순간, 망막은 사라의 생산을 멈추고 멜라토닌을 생산하라고 송과선에 신호를 보낸다. 멜라토닌은 두 번째 신경전달 물질이며, 그것은 육체를 잠들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인간의 활동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머리 안에 있음을 발견하고, 결국 그것이 바로 송과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아, 그것이 마스터 스위치구나.”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6번째 씰의 분비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마스터 스위치와 동등하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빛이 눈꺼풀에 들어가 – 이것이 눈꺼풀이 얇은 이유이며, 눈을 감아도 빛이 비치면 여전히 눈에 빛이 들어오는 이유이다 – 망막에 닿는 순간, 이 작은 분비선이 세로토닌의 생산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감각을 깨워서 움직이게 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모든 것을 열고 작동하게 한다. 송과선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이 감소하고 있음을 감지하면, 그것은 전환되어 멜라토닌을 생산한다. 당신을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하고 잠이 오게 하는 것은 멜라토닌이다. 송과선은 이렇게 굉장히 중요한 신경전달 물질을 생산하는 작은 공장이기도 하며, 또 다른 놀라운 일을 한다. 그것은 멜라토닌으로부터 피노라인(pinoline)이라 불리는 환각제를 합성하는 일이다.

 

송과선은 멜라토닌으로부터 피노라인이라 불리는 환각제를 합성한다.

 

이처럼 송과선은 두뇌에서 마술사 역할을 한다. 자정을 지나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가장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는데, 이때 사람들은 자각몽을 꾸게 된다. 단, 송과선이 충분한 시간을 통해 멜라토닌을 피노라인으로 바꿀 수 있을 때만 자각몽을 꾸게 된다. 왜 피노라인인가? 피노라인은 잠재의식이 사용하는 환각제로서 두뇌가 더 깊은 영역들과 교신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늦게까지 자지 않는 사람들은 피노라인을 만들 수 없기에 교신할 기회를 박탈 당한다. 교신한다는 말은 수면 상태에 있는 신피질 전체에 분포된 피노라인이 뉴런을 역점화시켜서 거울의식이 제로 포인트와 대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피노라인은 잠재의식의 문을 여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유체이탈이 일어난다. 게다가 그것은 이 타임라인에서 예언적인 통찰력을 얻게 한다. 그리고 피노라인은 당신으로 하여금 높은 의식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한다. 당신이 육체로 돌아오기 전, 신피질에서 짧게 터졌던 피노라인이 흡수되기 시작한다. 생산된 모든 피노라인이 흡수되어, 더 이상 공급할 수 없으면 피노라인의 문은 닫히고 당신은 육체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송과선이 피노라인을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라! 자정을 넘기고 늦게까지 자지 않는 사람들은 피노라인을 만들 수 없기에 두뇌가 더 깊은 잠재의식 영역들과 교신할 기회를 박탈 당한다는 것도 기억하라! 신데렐라 이야기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은가?^^

 

쿤달리니가 깨어나 송과선에 닿으면, 그것은 순간적으로 – 순간적으로 두 개의 의식 포인트와 에너지 일치에 의해 –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을 회전시켜 이온화한다.

 

회전시켜 이온화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 분자라면, 그것은 원자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로토닌 분자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은 서로 협조하기로 합의했으며, 그러한 관계 안에서 각각 회전하면서 상호작용을 한다. 그들은 서로 전자들을 주고받으면서, 질량이 변화하고, 그 때문에 화학 성질이 변하게 된다. 그래서 만약 이것이 세로토닌의 분자구조라면 그 쿤달리니 에너지 – 뜨거운 바람의 쿤달리니 에너지가 일어나, 분자구조를 통과하는 강력한 자기장을 가진다 – 는 그 분자구조를 역회전 시켜 그것의 성질을 변하게 한다. 그 분자는 부서져 재구성되는데, 재구성이 일어나는 곳은 가장 높은 차원의 육체 – 낮은 차원의 육체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에서 일어난다. 세로토닌에서 가장 높은 잠재력을 가진 분자구조는 피노라인이다.

 

이제 쿤달리니 에너지는 중뇌로 움직여, 성 탈라무스의 문을 연다. 에너지가 움직이는 동시에 대뇌 좌/우반구에서 일제히 점화가 일어난다. 모든 뉴런들이 점화하기 시작한다. 피노라인으로 인하여, 두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하게 변하면, 두뇌는 영원한 지점까지 돌아갈 수 있는 타임라인을 기록할 수 있게 된다.

 

뇌하수체는 일곱 번째 씰이다. 이것은 제왕이다. 그 이유는 뇌하수체가 옐로 브레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비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에 있는 다른 모든 샘선의 스위치를 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뇌하수체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특정 호르몬들을 분비하고, 그 호르몬들은 송과선의 스위치를 켠다. 그러면 송과선에서 호르몬과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하고, 그것들은 인체 안에 있는 나머지 분비샘의 스위치를 켠다. 만약 바로 뇌하수체를 없앤다면, 인간의 체구는 작아지고 수명도 짧아질 것이다. 태초에, 455,000년 그 이전에, 이 특정한 뇌하수체에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즉, 그 당시의 뇌하수체는 지금과 같은 기능이 없었다. 그러한 기능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창기의 호모 에렉투스의 두뇌를 홀로그램으로 본다면, 7번째 씰이 없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7번째 씰은 에너지를 사용함에 따라 진화한 것이다.

 

이것은 두뇌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옐로 브레인이 탄생한 시점은 신들(gods)이 내려와 원시적 존재였던 당신과 그들의 유전자를 섞었을 때였다. 455,000년 전부터 40,000년 전까지는 당신에게 육체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준 형제와 자매들의 DNA가 당신의 DNA에 심어지는 기간이었다. 이 돌연변이 교배에 의해 태어난 첫 번째 그룹은 몽골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올리브색의 피부와 까만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그중에는 몸에 털이 많은 사람도 있었다. 당신의 시간으로 말하자면, 크로마뇽인의 두뇌가 완전히 자리 잡힌 시기인 40,000년 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다양한 피부와 머리색 그리고 다양한 색의 눈동자가 나왔다. 이 거대한 신피질은 그 당시 신들이 가졌던 신피질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중에는 크로마뇽인보다 더큰 신피질을 가지고 있던 신들도 있었으나, 그들이 인간에게 준 것은 크로마뇽인과 똑같은 신피질이었다.

 

당신은 육체를 통해 반사적으로 그리고 유전학적으로 사용하거나, 말을 하거나 균형을 이루거나 혹은 기억하는 것 이외에는 두뇌를 별로 사용한 적이 없다. 당신은 두뇌를 아주 조금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신피질의 대부분은 여전히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그것들은 무엇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즉, 그것들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것들이 깨어날 수 있을까?

 

오늘날 두뇌가 사용되는 방식은 눈과 눈썹 위에 있는 전두엽에 무엇이 있건, 그것은 현실로 된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이곳을, 고요한 장소라고 부른다. 명상하는 사람들이 집중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 정신을 모은다. 관찰자가 모든 에너지 장에 영향을 주어, 그것을 현상 유지하거나 혹은 그것은 바꾸기에, 이 두뇌가 여기에 무엇을 심건 그것은 법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뇌가 그런 일을 할까? 옐로 브레인은 홀로그램 이미지를 점화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 점화장치는 바로 생각이다. 두뇌의 모든 뉴런은 다른 뉴런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생각으로 노란 색깔을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두뇌는 이미지를 만들고 창조하고 상상하는 데 사용된다. 두뇌는 상상하는 기계라 할 수 있다. 신피질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신피질에 있는 이미지들은 현실을 무시한다. 그것이 현실을 만들고 현실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을 지속하거나 변화시킨다. 과학은 그것을 ‘관찰자’라고 한다.

 

한 과학자가 슬릿을 통해 빛의 간섭이 일어나는 실험을 할 때, 그는 이미 그러한 결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생각하면서 그 실험을 하였다. 그것이 그의 실험 계획이었다. 그의 신경망은 이미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하고 있었다. 빛이 보드를 통과할 때, 그는 그것에 슬릿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그의 두뇌는 전체 계획을 동시에 점화하였다. 그것을 생각이라 부른다. 생각의 흐름이 발생하면서, 계획에 대한 이러한 생각이 빛에 영향을 주어 빛이 슬릿을 통해 원래대로라면 나타나지 않았을 벽면 쪽으로 움직이도록 한 것이다. 전두엽에 무엇이 있건 그것은 현실이 된다. 그래서 옐로 브레인은 위대한 설계자이며, 전두엽은 원형을 설계하고 일관성 있는 생각을 하는 역할을 한다. 이미지가 없이는 파동을 입자 형태로 붕괴할 수 없기 때문에, 전두엽은 가능한 많은 이미지를 당신, 영(靈)에게 제공한다.

 

만약 당신 눈 앞에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 당신이 원하는 것 3가지를 말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할 것인가? 아마 처음 5분 동안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원하는 어떤 것이건 가질 수 있는데도,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룬 후에야 다른 모든 것을 원할 것이다. 그것만이 이 순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야.”라고 항상 말할 것이다.

 

두뇌는 당신에게 이미지를 제공한다. 원하는 것을 정했을 때, 당신은 옐로 브레인이 당신과 협조할 수 있도록 좀 더 창조적으로 원하는 것을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면 그것이 당신에게 이미지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아는가? 당신은 그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그 외에 당신은 또 무엇을 했는지 아는가? 그 이미지를 판단하였다. “아니야. 그런 일은 나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 그것은 나에게 너무 과분해. 정신 차려.” 당신은 이미지를 올려놓고 그것을 분석하였다. 만약 어떤 것을 창조하고 싶다면 그것에 대해 어떠한 분석이나 판단도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이야!”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이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홀로그램에 대해서 분석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신은 그것을 얻을 수 없다. 왜일까? 그것이 분석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그림이 여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분석되고 비판되기 때문에 어떤 것을 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당신은 한 번도 그것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것은 분석 하에 있으면, 절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옐로 브레인을 원형 즉 이미지를 제공하는 자라고 생각하며 그 이미지를 전두엽에 두도록 한다. 전두엽에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제로 포인트와 일치 상태가 된다. 쿤달리니를 통해 에너지가 나오는 것처럼 두뇌 뒷문인 소뇌로부터 에너지가 나와 전두엽에 완전한 힘을 실어준다. 이것은 에너지가 없으면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전두엽에 그 이미지가 일어나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에게 가장 큰 에너지를 주는 것이며, 그 이미지를 전두엽에서 빼버리면 그것으로부터 에너지를 거두어버리는 것이다. 즉 그것의 에너지를 제한하는 것이다.

 

당신은 모든 것을 창조한다. 이 과학을 배우고 훈련한다면, 당신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이 원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게으르다.

 

이것은 정말 효과가 있음을 깨달으라! 만약 당신이 한 개의 깃털을 구현할 수 있다면, 모든 것들이 같은 에너지이기에, 당신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구현할 수 있다!!!

 

허기진 아이들이 음식을 먹어치우듯, 지금 이 내용을 먹어 치워라! 태도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당신이 심키는 작은 과자 하나에도 행복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이 원하는 세 가지를 각각 한 단어로 요약하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당신은 원하는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정말이다~~~ 그것뿐이다!!!!!!!!!!!!!!!!!

 

"나의 사랑하는 하느님!

 

나는 선언합니다. 내가 집중하는 그것을 나는 확고히 원합니다. 그것은 곧바로 구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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