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1878 러시아 모스크바 출생. 16세 때 학교 벽에 낙서를 했다가 퇴학 당한 후로 주로 독학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3년 가을, 동양으로 구도 여행을 떠났다. 전쟁 후 모스크바로 돌아와 거기서 영적 지도자 조지 구르지예프를 만나 1924년까지 함께 공부했다. 1947년 영국에서 타계했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심리학이 지금처럼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던 예가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심리학은 최초의 기원과 의미와는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심리학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조차 상당히 어렵게 되었다. 말하자면 심리학이란 것은 무엇이며, 이 학문이 연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과거 인류에 심리학 이론이나 심리학 관련 글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심리학의 수준이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심리학은, 이런 저런 이유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니면 도덕적으로 ‘틀렸거나 전복(顚覆)의 의도’를 지닌 것으로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가면을 써야 했다.
수천 년 동안, 심리학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인도에선 기본적으로 심리학이었던 모든 형태의 ‘요가’가 ‘6파 철학’의 하나로 묘사되고 있다. 또 주로 심리학적 내용을 담은 ‘수피교(이슬람 신비주의)의 가르침들’도 일부는 종교로, 또 일부는 형이상학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보인다. 19세기 말까지도 많은 심리학 저서들이 철학서로 통했다. 논리학과 인식론, 윤리학, 미학 등 철학의 모든 세부 학문들이 인간의 정신 또는 감각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은 철학보다 열등한 학문으로 여겨지며 인간 본성 중에서 오직 사소한 측면만을 다루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심리학이 철학의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종교와 연결된 상태로 더 오랫동안 존재했다. 그렇다고 종교와 심리학이 하나였다거나 똑같았다는 뜻은 아니다. 또 종교와 심리학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을 받았다는 뜻도 아니다. 알려진 거의 모든 종교가 특별한 의식을 통해 이런저런 심리학적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렇게 때문에 종교에 대한 공부 자체가 심리학 공부를 포함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에는 현대의 ‘거짓 종교’는 포함되지 않는다.
많은 국가에서 다야한 시기에 쓰인 종교적 문헌들을 보면 우수한 심리학 저술들이 많다. 예를 들어 초기 기독교엔 다양한 저자들이 '필로칼리아'(Philokalia -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라는 이름으로 쓴 책들의 컬렉션이 있다. '필로칼리아'는 우리 시대 동방 정교회에서 특별히 수도사들의 교육에 활용되었다.
철학과 종교와 연결되어 있던 동안, 심리학은 또한 예술의 형태로도 존재했다. 시와 연극, 조각, 춤, 심지어 건축도 심리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예를 들면, 고딕 성당들은 그 심오한 의미를 들여다보면 분명 심리학적 작품들이었다.
철학과 종교와 예술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로 분리되기 전인 고대에, 심리학은 이집트의 신비주의와 고대 그리스의 신비주의처럼 신비주의의 형태로 존재했다.
훗날, 신비주의가 사라진 뒤엔 심리학은 '상징 가르침'(symbolical teachings)의 형태로 존재했는데, 이 가르침들은 그 시대의 종교와 연결되기도 했고 연결되지 않기도 했다. 그런 가르침의 예를 든다면 점성학과 연금술, 마법, 그리고 더 훗날에는 프리메이슨, 비술(祕術), 신지학 (神智學) 등이 꼽힌다.
모든 심리학적 학설과 원칙들은, 공개적으로 존재했거나 비밀리에 존재했거나 불문하고,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첫째, 인간의 현재 모습을 ‘발견의 대상으로 보고’ 연구하는 심리학 체계가 있다. 현대의 ‘과학적’ 심리학이 이 카테고리에 속한다.
둘째, 인간을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장래 이룰 수 있는 모습을 바탕으로 파악하는 심리학 체계가 있다. 즉 ‘인간의 가능한 진화’라는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실 두 번째 체계가 원래의 심리학 체계이며 역사도 훨씬 다 깊다. 또 이 체계에서만 잊어버린 심리학의 기원과 그 망각에 따른 불평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인간을 ‘인간이 가능한 진화’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려는 노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심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답은 곧 ‘심리학은 인간의 가능한 진화의 원칙들과 규칙들과 사실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선 이 관점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그러면 우리가 던질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의 진화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그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진화에 필요한 특별한 조건들이 따로 있는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사상은, 인간은 하나의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또, 자연은 인간을 일정 단계까지만 발달시키고 그 다음에는 인간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인간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진화가 불가능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어도 역시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에서 공부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엔, 성장의 과정에 인간이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하고, 또한 어떤 의미에서 또 어떤 방향으로 인간이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다른 존재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다음에는 ‘모든 인간들’이 다 성숙하여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진화는 개인의 노력의 문제이다. 또 인간이 엄청나게 많은 데 비하면 진화는 극히 드문 예외에 속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진화의 예가 드물 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드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인간들이 다 성숙하여 다른 존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성숙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존재’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또 그들에게 ‘다른 존재’란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준비하며 그 의미를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 인간은 그 ‘다른 존재’를 간절히 또 오랫동안 열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외보 조건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일시적 욕망 즉 변덕스런 욕망은 ‘다른 존재’로 성숙하는 데 필요한 욕구를 충분히 일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과 그것을 위해 자신이 내놓아야 할 것들에 대한 이해에 크게 좌우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존재’가 되기를 원하지 않거나 충분히 강하게 원하지 않아서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성숙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엔 불공평한 측면이 전혀 없다. 인간이 원하지 않는 것을 꼭 가져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만일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에게 다른 존재가 되라고 강요한다면, 그게 오히려 불공평한 처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존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지금 갖지 않은 새로운 자질과 능력을 많이 얻게 되는 것을 내포한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적 성장 또는 내면의 성장을 인정하는 모든 심리학 체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확신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이론들에는 ‘잃어버린 고리’가 하나 있다. 잃어버린 고리란 바로, 지금 알지 못하거나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능력을 얻기 전에, 인간은 먼저 자신이 현재 갖고 있지 못하지만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부터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스스로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능력부터 갖춰놓고 그것을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그 ‘잃어버린 고리’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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