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모범적 신앙
행 10:1-8
의사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 개인의 기록들에 대해 상당 부분 서술하고 있는데 사도행전 8장에서 에디오피아 내시가, 9장에는 소아시아 사람 가말리엘 문하생 사울이, 10장에는 로마 고급 장교 고넬료가 각각 구원 받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초대교회는 심각한 고민 중에 빠지게 되었으며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더욱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의 마음 속에는 기독교를 유대주의로써 유대 안에만 머물게 하는 회당 중심으로 끌고 나갈 것인가 또는 신앙과 세례에 의한 이방주의이면서 탈회당적 복음전파를 시도하여 기독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시켜 계속 진행해 나갈 것 인가하는 심각한 고민과 번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는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에게는 선민사상이라는 우월감을 포기해야 할 심각한 문제요,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선교의 대과제였던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베드로에게 고넬료의 기도와 간구를 통해서 해답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즉 고넬료는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있었고 베드로는 복음을 전해야 할 입장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간구와 응답이라는 동일한 일치점을 서로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선민의 기독교는 유대 안에 갇히지 않게 되었고 복음이 이방세계로 향하는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뜻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2. 고넬료의 모습
☆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 로마 사람이며 백부장입니다.
❚ 행 10:1 /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군대의 백부장이라
백부장은 백인을 통솔하는 대장을 말합니다. 가이사랴는 예루살렘 북방 백 이십 리에 있는 항구입니다. 천연 항구가 없는 유대나라에서 주전 십 삼 년에 헤롯왕이 이 항구를 건설하였고, 팔레스타인의 행정적 수도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고넬료는 이곳의 백부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라는 이름의 뜻은 경건입니다. 그는 그의 이름대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 행 10:2 /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로마인들의 식민지에 대한 우월감은 강했습니다. 그 위대한 문화와 정치적 배경을 볼 때 그들은 뽐낼 만도 했습니다. 로마인은 물론이요, 로마 시민권만 가지면 치외법권을 행사하였습니다. 하물며 로마 백부장이야 그 권세가 얼마나 당당하겠습니까! 그러나 고넬료는 그 특권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포기하고 가장 겸손하게 봉사하였던 것입니다.
☆ 구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행 10:2 / ...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
고넬료가 백성을 많이 구제한 것이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 된 축복 중에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관리의 학정에 신음했고 로마 상인의 착취에 여위었고 로마 군병의 채찍에 상하였으니, 로마의 군인인 고넬료가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는 일은 실로 귀한 일입니다.
☆ 항상 기도한 사람입니다
❚ 행10:2 /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신앙과 구제에 탁월했을 뿐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종이었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일은 하나님이 고넬료를 기억하시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입니다. 유대인은 하루에 세 차례 기도하는데, 오전 9시와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6시에 기도합니다. 행 3:1에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유대 시계로는 9시)에 기도하려고 성전에 간 것도 이 규례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규례의 시간에 고넬료는 기도하던 중 천사의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군관생활을 하면서도 정규 시간에 기도함은 그의 열열한 신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구제를 더하고 구제에 열심히 기도를 한 고넬료의 신앙 생활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신앙의 호흡인 만큼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개인에게나 힘써 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불타는 기도가 쉬고 더구나 교인 가정의 기도소리는 거의 정지 상태에 떨어져 있습니다. 인간의 의무 중에 제일 큰 의무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사람은 하늘의 모든 비밀과 축복을 가져올 만한 능력을 소유한 까닭입니다.
이런 고넬료를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 행 10:3-4 /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그런데 베드로도 그 시간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 행 10:11-15 /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3.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유대인은 모든 이방인을 짐승으로 취급하였고 선민이란 우월감과 자기 만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복음은 자기들만의 유일한 전유물과 같았고 이방인에게는 이 복음을 전해서는 안되는 줄로만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고넬료를 예비하고 계셨으며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선교를 위해 고넬료에게 복음 전할 것을 명령하셨으며 이에 순종한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에도 복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초대교회에 깨닫게 하셨고 선교의 문을 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들을 향한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그리고 이방인에게도 이방인의 뜰에 앉아서만 예배를 드리도록 하지 않고 성전 안에 들어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므로, 복음이 천하만민의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기도의 문을 열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4. 구원을 받기 위해서나 구원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라도 천사의 명령을 즉시 시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뵙는 존재입니다.
❚ 마 18:10 /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천사는 하나님의 메시지나 명령을 인간에게 전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영적인 세계와 인간 세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5. 경건한 사람을 택한 고넬료의 신앙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 행 10:7-8 /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천사의 명령을 지킨 고넬료는 심부름시키기 위하여 주인의 의사를 분명하고 똑똑하게 전달할 용감한 종을 택한 것이 아니라 경건한 사람 곧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정도의 하나님 경외심을 가진 하인과 부하를 선택해 심부름을 시켰다는 신앙자세와 그의 태도를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군대에는 상관의 종교에 따라 부하의 종교가 같을 수 있는 특수체질이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면, 고넬료를 통하여 구원 받은 백성은 성경에 기록한 인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복음의 현장에서 기도하다가 응답 받은 고넬료의 구제 · 기도 · 경건의 아름다운 신앙정신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인 베드로의 순종을 되새기면서,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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