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울과 바나바와의 만남
행 9:23-30
사울이 세례를 받고 변화되자, 그의 메시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각 회당에 돌아다니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사울이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몇 일 전만해도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울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계획합니다.
❚ 행 9:23 /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오늘 말씀을 보면 사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이 사울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오늘 사도행전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한 사건이 있습니다.
❚ 갈 1:17 /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예수를 만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로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다메섹에 돌아와서 핍박을 받게 되는 일입니다.
사울에게 있어서는 아라비아로 가는 시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왜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으며, 그곳에 가서 무엇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지요? 성경에는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사울이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훈련 받기 위하여 아라비아로 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사역에 앞서, 40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가서 금식하며 사단의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인간으로서의 시험과 승리: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셨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인간이 겪는 유혹과 고난을 예수님도 똑같이 겪으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심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2. 사탄의 본질과 전략 드러냄: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함으로써 자신의 본질과 전략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조차 유혹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 역시 끊임없이 유혹에 노출되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써 마귀의 권세가 제한적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3. 인류의 대표자로서의 시험: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으로서 인류의 대표성을 가지고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첫 번째 아담의 실패를 바로잡고, 인류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인류가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4. 공생애 사역을 위한 준비:
40일간의 광야 생활은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사역에 필요한 영적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겨냄으로써 예수님은 앞으로 닥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준비를 하셨습니다.
5.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예수님의 시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유혹이 존재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40일 광야 시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기다림의 시간, 관문을 통과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사울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하기 위하여 이런 시간들이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아라비아에 변화의 시간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시간을 끝내고 사울을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러 날이라고 한 것은 계산할 수 없는 날이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여러 날이 지나서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 왔을 때 사울을 죽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행 9:24 /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밤낮으로 사울을 잡기 위해서 성문을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분명히 다메섹에서 예수 믿고 변화된 뒤 몇 일 후에 된 일은 아닙니다. 굉장히 많은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의 제자들과 사울은 성문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광주리를 타고 밤에 성에서 탈출합니다.
❚ 행 9:25 /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여기 보면 사울의 제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울이 언제 제자를 만들었겠습니까? 이것은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했던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다메섹의 왕 아레다의 방백들이였습니다.
❚ 고후 11:32 /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사울이 준비되지 않은 채 이런 핍박을 받았더라면 그는 자기가 받은 구원에 의심을 했을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믿고 갈등을 느끼는 것은, '분명 성령 체험을 했고 예수를 믿었는데...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되야 될 텐데... 예수님이 도와주신다는데 왜 고난이 오지?' 하며 시험이 드는 경우였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자기가 믿은 예수에 대해서 회의가 생기고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울이 연단의 과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다메섹의 고난인데,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 헬라파 유대인들 같은 이들에게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사울을 인정하지 않고 의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행 9:26 /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예루살렘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용조용히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접근했습니다. 여기서 '사귄다'는 단어는 '교제(헬라어, 코이노니아)'의 뜻이 아니라, '회(會)에 가입한다(헬라어, 콜라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정식 등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교인들의 반응은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못 믿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은 사울이 지난 날 교회를 핍박했던 것들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일 때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예루살렘교회 교인들 중에는 사울의 고소로 감옥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악명 높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와서, "나도 예수 믿는 사람이오!" 라고 하니 그 말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우리를 잡아 죽이려고 몰래 들어온 사람이야!'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만일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곧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 것입니다.
이때 굉장히 고마운 분이 나타납니다. 아무도 사울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할 때 오직 한 사람, 바나바는 달랐습니다. 사울의 진심을 알았습니다. 사울의 눈빛도 보았고, 사울의 마음도 읽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를 믿었습니다. 그를 믿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행 9:27 /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데리고' 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붙잡다' 라는 뜻입니다.
사울이 바나바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바나바가 사울을 붙잡았습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난생 처음 교회에 왔습니다. 사귀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들 경계합니다. 다들 눈총을 보냅니다. 사울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런 때에 바나바는 그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손 내밀어 붙잡아 주는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바나바 같은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둘째, '~편에 선다'는 뜻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갔다는 것은 바나바가 사울 편에 섰다는 것을 뜻합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사람들에게 갑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사울의 지난날을 알기에 이렇게 항의합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소개하느냐? 우리가 저 사람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않느냐?’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끝까지 사울 편에 섰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이야기입니다. 성 프랜시스가 제자들과 함께 며칠 동안 금식하기로 정하고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시장 쪽으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제자가 너무 배가 고파서 죽 한 그릇을 몰래 먹었습니다. 옛날에는 수도승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음식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가 다른 제자들에게 들켰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비난합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너만 배고픈 줄 아느냐? 이 못된 놈 같으니..." 그리고 그를 왕따시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프랜시스는 얼른 자기도 죽 한 그릇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제자들아, 이 죽 정말 맛있구나!"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이제는 동료 제자를 정죄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드셨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그 제자를 돕기 위하여, 스스로 규율을 어겼습니다. 그 제자 편에 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를 비난과 정죄에서 건져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스승도 이 사람을 비난했더라면 이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바나바가 얼마나 고마운 분이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의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인데 이 바나바가 뛰어 들어서 사울을 변호해주고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바나바는 참 따뜻한 사람입니다.
또한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전해 준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는, 예수님과 사울에 대한 이야기만 합니다. '사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이고,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증거했는지'를 말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나바는 사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다 긍정적인 말, 좋은 말만 했다는 점입니다. 사울도 사람인 고로 분명히 부정적인 모습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주님을 만난 것이 분명했기에, 회심이 분명했기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울은 바나바의 도움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격려하고 인정해주고 도와 줄 때 꽃이 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가 힘 있는 메세지를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제 자기가 받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 행 9:29 /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헬라파 유대인들과 사도 사울과 변론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헬라파 유대인들이 사도 사울을 죽이려 합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습니까?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할 때 헬라파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을 때, 돌로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던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은 사울이 스데반의 자리에 들어 서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스데반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이 29절에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 했다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사도행전 6장 9절에서 스데반이 어떤 사람들과 논쟁했다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 행 6:9 /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사울처럼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 행 9:30 / 제자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다소에서 출생한 사울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갖습니다. 그는 헬러니즘을 경험했고 유다이즘을 경험했고 로마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이전의 모든 것을 다 버립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훈련 없이 영적인 일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사울은 성령 체험을 했습니다.
아라비아에 가서 그는 3년 동안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정말 말씀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그가 3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아무 기록도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훈련은 성품이 변하는 훈련입니다. 여러분의 인격이 변하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하여 영광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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