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
시 23:1-6
시편 23편은 다윗이 궁중에서 쓴 시가 아니라 거친 광야를 헤매고 다닐 때 지은 노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양을 치는 목동으로 성장했던 다윗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뒤를 잇는 차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에 눈이 먼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때문에 사울 왕의 광기 어린 행동으로 다윗의 풍성했던 궁중생활은 한순간에 끝이 나고, 다시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광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이 아니라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방황하게 된 광야는 결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부족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광야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 고백합니다. 이 상황만 보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리 풍족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은 빈곤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다윗은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에서 오히려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광야에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풍요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영적인 풍요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시 23:1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영적인 풍요함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다윗이 어려움 속에 있을 때,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다윗아, 내가 너의 목자가 되어 주겠다" 이 세미한 음성은 하나님 사랑의 음성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에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러하기에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가 되신 하나님은 다윗을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 시 23:2 /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다면 '나' 라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이 나를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푸른 풀밭'이란 먹을 것을 말하는 것이요, '쉴 만한 물가'란 마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과 '물가로 인도하셨다'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다윗에게 쉼과 안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양과 관련된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대부분의 사진은 양이 서 있는 모습입니다. 양이 누워있는 모습의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양은 기본적으로 잘 눕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겁이 많아서입니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지 않으면 절대로 눕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이 양을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고 표현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참된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쉴만한 물가'란 '물이 천천히 흘러가는 물가'입니다. 양은 천천히 흘러가는 물만 먹을 수 있답니다. 물이 빠르게 흘러가면 양이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자는 돌을 이용해 물을 잔잔하게 만들어 양에게 물을 먹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시면 양들은 썩은 물만 먹게 됩니다.
즉 좋은 목자가 양을 인도하지 않으면 이런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안식을 찾아다닙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쉴 수 있을까, 쉼을 누릴까?
결국 양이 참된 목자를 만날 때에라야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참된 목자와 함께할 때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목장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양식과 물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다윗에게 황무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힘들고 어려울 때 무조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목자이신 하나님 때문에 늘 만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 고백하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오늘에도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크신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참된 목자되신 하나님
❚ 시 23:3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소생시킨다'는 것은 '원래 있는 자리로 돌려놓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양은 시력이 나빠서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무리에서 이탈되어 다른 짐승들의 먹잇감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은 새끼를 배거나, 털이 많이 자라거나, 살이 쪄서 몸이 둔해지면, 쉽게 뒤집어지고, 뒤집어진 양은 잘 일어나지 못해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양을 빨리 되돌리지 못하면 배에 가스가 차서 죽거나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됩니다.
이와 같이 참된 목자는 넘어진 양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을 합니다.
이와 같이 양은 참된 목자가 없다면 양은 쉽게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참된 목자이시며, 우리를 양에 비유하는 것은 참 적절합니다.
우리를 보면 양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위험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 시 23:4-5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편을 쓸 때의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 있었고, 원수들이 그를 조롱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힘든 상황과 형편에 붙들려 절망하지 아니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것이 이 시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목자는 늘 양과 함께합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셨고 다윗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로 그는 잔잔한 물가의 푸른 풀밭과 같은 상황에 있었고, 때로는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느낄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가 확신 가운데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지금은 부족하지만, 결국은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지금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으나, 결국은 아무런 해도 받지 아니하고 벗어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지금은 비록 원수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고 있으나, 결국은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이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확신에 찬 믿음까지 나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여러분 안에 함께 계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세요! 성령님은 때론 여러분의 직관을 통해 이야기하십니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직관에 따라 행동하면 설사 자신의 일터 문화에 역행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뜻밖의 가능성과 기회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직관을 따르는 행동은 여러분을 여러분 안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로 데려가서 가슴 차원에 힘을 부여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여러분 가슴에 소망을 이루어 줄 장소와 사람들을 여러분에게로 끌어올 것입니다. 이래서 문제를 겪을 때 자신의 일터에서 적합한 자리에 있지 않다고 느낄 때는 혼자서 고요한 시간을 가져 보세요. 환경과 사회로부터 받아들인 모든 생각과 그에 수반하는 모든 두려움과 근심을 놓아 보낼 고요한 순간을 찾아보세요. 이 생각과 감정들을 가슴 한가운데 고요하고 그윽한 자리로부터 바라보도록 해보세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그것은 태양을 가리고 떠 있는 구름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가슴 속 그 태양의 한가운데로 가서 여러분 안에 함께하시는 성령님께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를 물어보세요. 여러분의 지혜로운 가슴 가장 높은 창조성의 근원이신 성령하나님께 접속하여, 여러분의 직관에게 이 순간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말해달라고 하세요. 외부의 견해나 특히 일터를 지배하는 사회적 행동 규범을 따라 행동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직업 세계의 사회적 집단적 의식은 두려움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실패에 대한 두려움, 궁핍에 대한 두려움 등등 이 모든 두려움이 여러분의 직관에 그늘을 드리우더라도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은 여전히 여러분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열쇠는 용기를 내어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이 떠올려주는 진정한 해결책을 발견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주인공인 다윗은 편안할 때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라고 시인하고 믿은 것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는 상황 가운데, 원수들이 흔드는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삶의 위기를 맡이 하고 계신 분 있습니까? 원수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물론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라는 고백만 할 수 있다면,
➀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➁그가 나를 원수의 목전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➂그가 나를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아무런 해 없이 통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 시 23:6 /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오늘 시편 23편의 핵심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영(靈)으로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께 귀기울이시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두려움이 없다는 고백을 하는 자에게, 분명히 주님은 약속하였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임을 믿는 사람은 문제가 해결되며, 운명을 바뀌게 되며, 마침내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로 만들어 주심을 약속하였습니다.
오늘 바로 이런 신뢰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여호와를 신뢰함으로 '나의 목자'로 삼아, 날마다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이 열어가시는 축복의 역사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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