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시 3:1-8
오늘 시편의 표제어는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시를 노래한 시인의 상황과 마음을 살펴보게 해 줍니다.
다윗에게는 10명 이상의 아내가 있었고, 자녀들도 20명 이상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내 가운데 공주였던 사람이 2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은 다윗이 처음 결혼한 사울왕의 딸 미갈(공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에 다윗은 기뻐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춤을 추었습니다. 하지만 미갈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업신여겼습니다. 그 일로 다윗은 미갈을 가까이 하지 않았고, 미갈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또 한 사람이 압살롬과 다말의 어머니였던 마아가였는데, 그녀는 그술왕 달매의 딸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어머니가 공주이었기 때문에 남다른 기품이 있었을 것입니다.
❚ 삼하 14:25 /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압살롬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외모가 떨어지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아버지 다윗을 향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급히 도망을 가야 했고, 감람산으로 향할 때에 머리를 풀어헤쳐 얼굴을 가리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울며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시편 3편의 배경입니다.
다윗의 탄원이 나옵니다.
❚ 시 3:1 /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다윗이 쿠데타를 당하고 나니 모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도 고통스러운데 이스라엘의 민심도 다윗에게서 떠나갑니다. 하루아침에 많은 친구들이 등을 돌립니다. 더구나 전장을 함께 다니며 동고동락한 당대 최고의 지략가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서서 적의 모사가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아히도벨은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에게 있어 제갈공명같은 존재였습니다. 다윗은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 삼하 15:12-13 /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압살롬의 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히도벨도 압살롬과 함께 했습니다. 본래 다윗의 신하 아히도벨은 제갈공명이나 정도전에 비견될 만한 최고의 전략가이자 책사였습니다. 그도 압살롬에게로 붙었습니다. 이처럼 압살롬은 다윗을 향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조금씩 훔치기를 4년 동안 계속했고, 백성들의 마음을 다 얻었다고 생각되자, 마침내 아버지 다윗의 목에 칼을 겨누었습니다.
❚ 시 3:2 /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그런데 다윗을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배신하여 압살롬에게 붙은 것도 있지만, 대적들이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조롱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끝났어. 하나님도 그를 버리신 게 틀림없어", "자식에게 쿠데타를 당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나봐", "이젠 다윗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도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아" 등등의 수군거림으로 인한 눌림이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자식과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음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음 같음이 다윗을 훨씬 더 많이 짓눌렀습니다.
다윗은 1-2절에서 '나의 대적이 많다', '나를 치는 자가 많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한다' 등 3번이나 대적이 많음을 하소연합니다. 그리고 대적들로부터 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조롱으로 인해 짓눌려 있습니다.
하지만 2절 말미에 '셀라' 뒤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아직까지 셀라라는 뜻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아마 "쉬어라", "올려라"의 의미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예배 시에 시편 찬송을 하다가 셀라가 중간에 나오면 찬송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뒤에 중요한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다윗은 잠시 숨을 고르고, 그때 다윗은 배신자들의 조롱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자신의 고통스런 상황을 솔직히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윗의 영의 눈이 열려 주님의 역사하심을 보았기에, 지금까지 자신의 대적이 많다고 하소연을 하던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 시 3:3-4 /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의 일이었습니다.
골리앗은 기골이 장대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무장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싸움을 돋우는 자'라고 했는데, 영어성경에서는 'champion(챔피언)'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싸움에 관한 한 일인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그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와 같이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을 그 누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 물매에 돌을 담아 돌려 날리니, 그의 기골이 장대함도, 갑옷도 소용이 없었고, 특히 방패를 들고 있는 병사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가 되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식에게도 쿠데타를 당하여 온갖 모욕을 다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을 믿으며, 더 나이가 지금은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럽지만, 머리를 들게 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이 참 크게 여겨지는 것은 지금 쫓겨 다니는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의 목소리'로 부르짖는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분이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셀라 이후, 다윗의 목소리가 더 높아집니다.
❚ 시 3:5-6 /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이 현실을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압살롬에 대한 분노, 다른 가족들에 대한 걱정, 왕국의 미래에 대한 눌림이 너무 커서 잠을 자는 것이 사치스럽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런데 '누워 자고 깨었으니'라고 합니다. "내가 평안히 자겠습니다"가 아니라 이미 잠을 자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어 주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을 '아침의 시편' 또는 '아침 찬송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길, 천만인에게 둘러싸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천만인 뒤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통해 다윗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밝히 보여 줍니다.
평정심을 찾은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 시 3:7-8 /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①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②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다윗을 보십시오. 지금 그렇게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도 총애했던 많은 신하들이 압살롬의 편이 되어, 다윗을 죽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자신을 왕으로 생각했던 수많은 백성들이 지금은 압살롬과 함께 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이 상황에서 인생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진짜 구원이 될 수 없구나!"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이 전심(全心)으로 믿고 의지하며 바라볼 대상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알았고, 그래서 절망 가운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다윗은 비록 자식에게 쿠데타를 당해서 머리를 풀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참 견고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하나님'이라며 의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있는 자리가 피난을 가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리일지라도, 다윗은 그곳이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자리, 자고 일어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자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시편에는 다윗의 인품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깨닫고 난 뒤에서도 다윗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하였던 그들을 향하여 복을 빌어 주고 있습니다.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자기를 힘들게 하였던 사람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 여선교회도 늘 모든 일마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주는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라 고백하며 늘 모든 문제를 넘어가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자리가 어디이든지, 그곳이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준 자리임을 알아,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가치관으로 살아 역설의 진리를 사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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