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오늘날의 과학자와 종교인은 상대방 서로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서 인정하면서 협력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대하기 전에, 내가 공부한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양자물리학의 발견을 철학적인 사색과 맞물려 공부하게 되면서, 그 모든 재료가 가능태 공간으로부터 영혼을 통해서 마음으로 전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관적인 ‘앎’조차도 말이다. 가능태 공간은 우리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의 원천이 되는 구조체라고 할 수 있다. 마음 또는 두뇌는 영혼을 통해서 가능태 공간에 존재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고 한다. 반면 우리의 육안(肉眼)은 물질적 현실을 관찰한다.
현실이 양면(兩面), 즉 물질적인 면과 비물질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분명해진다. 이중성(二重性)은 우리 현실의 나누어질 수 없는 한 부분으로서 나타난다. 영혼은 가능태 공간과 연결되고 마음은 물질세계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의도적으로 창조해 갈 수 있을까? 인간의 사념(思念) 에너지는 특별한 조건 하에서 가능태 공간의 특정 섹터(sector)를 물질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 현대과학이 밝혀놓은 사실이다. 우리 사념의 방향성과 특성에 따라 자신의 현실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할 일은 지나간 과거를 안타까워하고 다가올 미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의도적으로 창조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데는 바라고 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혼과 마음을 일치시킬 때 인간의 마음에 예속되어 있지 않은 강력한 힘에 접속될 수 있다고 한다. 이 힘에 자신의 의지를 복종시킬 때 놀라운 것들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
또 하나, 진공 속에서 소립자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현상은 현실이 물질적인 형태와 비물질적인 형이상학적 형태 사이에서 요동칠 때 나타나는 경계(border) 상태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예는 자기 안에서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는 살아 있는 존재인 우리 자신이다.
스탠퍼드 대학의 양자물리학자인 윌리엄 틸러 박사의 말이다. "인간의 99.9999%는 빈 공간이다."
양자물리학자인 프레드 울프 박사의말이다. "영혼의 0.0001%만 육신 속에 들어 있고 나머지 99.9999%는 육신 밖의 우주에 퍼져 있다." 즉 우주가 곧 영혼이며, 육신 속에는 육신의 부피에 해당하는 만큼의 영혼만 들어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우리가 어마어마한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우주에 퍼져 있는 영혼이기에 가능하다. 영혼이 우리의 두뇌 밖의 우주에 퍼져 있기 때문에 무한한 상상력이 가능하다. 그 영혼의 존재를 확인했던 것이 영점공간zero-point field이다.
1920년 대에 하버드 대학의 윌리엄 맥두걸 교수는, '집단적 정보가 영점공간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옛 선조들의 정보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대인들에게까지 전해져 오는 것을 학자들이 실험했고 그 유산이 수세대가 지나도 지속되는 것을 발견했다.
양자물리학자들은 영점공간에 저장된 선조들의 문화적 정보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후손들에게 대대로 대물림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지금 이 순간, 내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야를 ‘나’를 넘어, 우주로 확장해보라! 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우주 안의 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 한 가지만으로도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두려움이라는 말 자체가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가짜의 개념'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기만 한다면 그 어떤 것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설령 잠시 고통의 순간에 있더라도 그것은 내 삶을 위한 계획이 있기 때문임을 믿어야 한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내가 꼭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것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내가 진실로 누구인지 알면 알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내가 나의 내면의 빛과 닿아 있다는 것을 알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리고 신적 현존이 나와 늘 함께 있기에, 내가 동의한 신성한 계획의 일부가 아닌 것들은 반드시 겪을 필요가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그 실재에 확신이 생긴다. 그 실재가 바로 나 자신의 정체이다. 그 누구도 그것을 나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
어떤 일을 만나든 내 삶에 대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전부이다. 나는 신성한 계획의 일부로서 이곳에 온 신적 존재이다. 나는 꼭 알맞은 때에 꼭 알맞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펼쳐진다. 그래서 명상을 하면 할수록 나는 자신의 신성한 현존에 더욱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그 계획에 더욱 믿음을 가지면 가질수록 말이다.
그 현존이 가슴 바로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명상해 보라. 마치 바다 위에서 내가 입고 있는 구명조끼와 같다. 그것이 항상 함께 나 자신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 내가 그리스도 의식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내 안의 빛의 안내를 받을 수 있고, 그러면 어떤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삶은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 결과들은 아주 오랫동안 알려져 왔었다. 그리고 빛, 특히 내면의 빛에 집중하는 것도 말이다. 나는 알맞은 때에 알맞은 곳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하며, 보여지는 것들의 환상에 자신이 머물지 않도록 살펴봐야 한다. 뉴스에 너무 집중하지 말라.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예 모르고 살라는 말이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분노를 터뜨리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내면의 현존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실재하신다는 것을 알고서, 그 신적 현존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I Am'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현존을 내 앞에 불러오는 것이다.
나의 의식을 집중하는 곳에 내가 존재하게 된다. 나의 의식은 자신의 에너지와 존재 자체를 조절하는 큰 렌즈와 같다. 내가 의식적으로든지 무의식적으로든지 상관없이 항상 집중의 힘을 투입하는 곳에 이 모든 것이 나타나게 된다. 내가 순간순간 경험하는 모든 것은 내가 집중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결과물인 것이다. 내가 만약 나의 육체적 감각에만 집중한다면 육체적 감각이라는 세계 안에 갇혀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내 가슴의 중심에 있는 이 빛의 중심에 집중하고 살아간다면 나는 일체의 굴레를 벗어난 자유를 찾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나의 존재 가장 중심에 위대한 지도자, 즉 진정한 나의 의식이 있다. 그리고 이 실재하는 의식은 내가 자신의 외적인 의식을 존재의 중심인 빛에 집중할 때 나를 매순간 올바른 길과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을 자신을 더 성장하도록 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성냄이나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것을 내려놓고 바로 그 순간 우리 자신의 의식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심상화와 내적 선언이 실제로 작용한다! 생각(심상화)이 있고, 감정이 있으며 말과 거기에 따라오는 행위도 있을 수 있다.
치유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 손을 들고 치유의 상념을 일으키면서 사랑의 파동을 보낸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지금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이런 것을 경험하고 나면 내적인 신성에서 발출된 선언이 실제로 작용한다는 증거가 된다.
어떤 일을 하든 내재하신 신성께 먼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사랑과 자비의 파동을 이 세계로 내보내는 것이다.
조건 없는 사랑과 자비심, 치유의 빛을 이 세상으로 방출하자!
자, 이제 책을 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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