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후 최선을 다하는 에스더
에 5:1-8
만일 어린아이가 스스로 결정하여 일을 하는 것보다 먼저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면, 이렇게 성장한 아이는 ‘결정 장애’에 부딪히게 됩니다. 작은 것 하나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자기 일을 결정하며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때로는 드러나지 않고 머물러 계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을 해 나갈 때 바로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기를 지나며 이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에스라 ˙ 느헤미야 ˙ 에스더 같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시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는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포로기를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달은 것은 인생은 철저히 인간의 몫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인간이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철저히 책임을 다할 때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5장은 이런 신앙을 너무 잘 보여주는 장입니다.
이제, 에스더가 기도한 후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거기에 응답을 주시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계기를 마련하시는 하나님
에스더는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강한 권고를 받고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서 민족의 문제를 아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에 5:1-2 /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사촌오빠 모르드개에게는 수산성 안의 유다인들을 모아서 삼일 간 금식하며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자기도 시녀들과 삼일 금식하며 기도한 후 나가겠다고 합니다. 이제 삼일이 지났습니다. 삼일 금식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삼일 금식하면 일어서서 걷기도 힘이 듭니다. 삼일 금식한 사람이 얼마나 초췌했겠습니까? 그런데 왕의 눈에 매우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금식기도만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짧은 찰나와 같은 기도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오늘 교회에 점점 기도가 사라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잠시라도 시간이 되시면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2. 조급함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에스더를 향해 사랑의 감정이 한껏 동한 왕은 소원을 말하라고 합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합니다. 이때 에스더는 소원을 곧바로 아뢰지 않고 뜸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에스더가 서두르지 않고 있는 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왕이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오면 당장 하만을 고발하면 될 것 같은데 에스더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에 5:3 /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아직은 시기상조(時機尙早)이기 때문입니다. 왕과 하만의 관계는 보통관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볼 때 하만은 악인이지만 왕에게는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최측근입니다. 만일 결정적인 단서 없이 하만을 처단해 달라고 말했다가는 오히려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에스더는 조급함에 붙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면서도 자주 실수하는 점이 조급함에 빠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자식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오해하여 조급함에 붙들려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조급함이 얼마나 많은 문제가 됩니까? 그래서 에스더는 기도하며 결정적 기회가 기다립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조급함을 이기게 해달라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에스더가 하는 것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되는 어떤 지혜의 번득임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같이 한 번 살펴보는데 잘 따라 오셔야 합니다.
에 5:4 /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이 말씀은 이런 분위기입니다.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임금님만 괜찮으시다면 하만을 데리고 오십시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녀 사이에 아가씨가 남자에게 말합니다. 만일 남자 이름이 철수씨라고 한다면 “철수씨를 위하여 잔치를 준비하였는데, 친구 홍길동씨와 같이 오세요.” 그러면 철수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안 좋습니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 길동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은 에스더를 향항 사랑의 마음이 가득하여 단 둘이 있고 싶은데 에스더가 하만을 부르니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에 5:5-6 / 왕이 이르되 에스더가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가니라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하니
왕은 식사는 뒷전이고 조급증이 생겨 에스더에게 또 소원을 말해 보라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에스더는 바로 말하지 않고 뜸을 한 번 더 들입니다.
에 5:7-8 /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내일 다시 잔치를 베풀 테니 또 하만을 데리고 오라는 겁니다. 왕으로서는 계속 기분이 언짢은 겁니다. 도대체 선물 하나 주겠다고 하는데 왜 하만을 자꾸 끼우는 건지? 여러분 이것이 에스더가 의도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에스더의 지혜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지금 이런 미묘한 삼각관계 분위기를 일부러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왕이 하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만은 왕에게 덕이 될 사람이 아닙니다. 하만은 죽도록 충성할 위인이 아니라 만일 기회가 된다면 왕의 자리까지도 차지할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더가 이런 계획을 언제 세웠을까요? 도대체 지혜가 어디서 왔을까요? 삼일 간 금식하며 기도할 때 세웠을 겁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깊이 고민하면서 기도하다보면 처음에는 마음도 머리도 복잡합니다.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시간을 이겨내고 계속 기도하다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기 시작합니다.
‘주님, 주님 뜻대로 하세요! 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됐습니다!’ 이 기도가 되면 그때서야 마음이 평안해 지는 단계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기 시작해요. '아하,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조급하면 일을 서둘게 되고 그렇다 보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평안한 상태에서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죽어야 길이 열립니다. 내가 펄펄 살아있어서는 주님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나를 내려 놓기 시작할 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때로 침묵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사라지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그분은 일의 계기를 만드시고, 조급함을 이기게 하시고,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혜와 계획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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