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를 위함이라
에 4:1-17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두 가지가 맞물려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攝理)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노력과 책임(責任)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만 믿고 내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신앙이요, 내 노력만으로 하려드는 것은 아예 불신앙에 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해 주셔야 하고, 또 내가 할 바를 최선을 다해 해야 합니다. 이 둘이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1.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장에서 살핀 것처럼 모르드개가 페르시아의 2인자인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인해 모르드개는 물론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몰살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유대인을 모두 죽이라는 왕의 조서가 내려지자 자신의 옷을 찢으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통곡하며 성문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만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국 안에 살아가던 무수히 많은 유대인들이 모르드개처럼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 4:1-3 /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 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은 크게 애통하는 마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금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마음이 꺾이면 안 됩니다. 그러면 더 무너져 내립니다.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어요. 마음이 꺾이고 밑바닥으로 내려앉으면 그것이 몸을 상하게 하는 중병이 됩니다. 부르짖는 것이 극복의 첫 관문입니다.
그런데 왕후 에스더는 당시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에 4:4-7 /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매
하닥이 대궐 문 앞 성 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을 전합니다.
에 4:8-9 /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2.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울며 부르짖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길을 모색합니다. 왕후로 있는 사촌동생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현실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하수에로 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왕후인 에스더가 왕에게 유대민족을 학살하려는 하만의 계획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알리고, 유대인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가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에 4:10-11 /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왕이 자신을 언제 부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왕이 부르기 전에 왕에게 나아갈 경우 폐위 이상의 심각한 상황까지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바사의 예법(禮法)을 이유로 왕 앞에 나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단 임의로 왕 앞에 나갔을 때 왕이 금 규를 내밀어주면 벌을 받지 않는 예외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왕이 자기를 부르지 않은지 이미 삼십일이나 되었으니 이것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더 강하게 다그칩니다.
에 4:12-13 /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나만 안전하면 된다고 생각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이 바뀌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도록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내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내가 댓가를 치를 때 그것과 하나님의 섭리가 맞물려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딸 같은 에스더에게 대가를 치르는 신앙을 요구하였습니다.
3.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이제 이 믿음을 가져야 할 사람이 바로 에스더이고, 이제 에스더만 결단하고 움직이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때를 위해” 하나님이 에스더를 왕후의 자리에 앉히신 것임을 깨닫게 하여 준 것입니다.
에 4:14 /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우리는 어떤 일을 이루고 나서 그 자리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 오르고 나면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뜻을 헤아려 실행에 옮기는 사람, 그에 따른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행하는 사람이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히 해드리는 사람이 됩니다. 모르드게의 말을 듣고 힘을 얻은 에스더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에 4:15-17 /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3년 반 동안 따라다니며 함께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팔고, 버리고, 도망치고, 배반한 사람들이 바로 제자들 아니었습니까? 예수님을 가장 잘 믿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실상은 예수님을 가장 잘 못 믿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를 수 있었던 사람들이 실상은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르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모습도, 누구의 문제도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나만 잘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그 누구의 믿음이 이렇다 저렇다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나 한 사람만 예수님 잘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이 고백은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결단인 것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지금 이때야 말로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이 믿음의 결단으로 나아갈 때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로 반드시 승리의 결과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인의 옹졸함을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 에 5:9-14, 에스더 시리즈 설교(6) (0) | 2024.05.25 |
---|---|
기도 후 최선을 다하는 에스더, 에 5:1-8, 에스더 시리즈 설교(5) (0) | 2024.05.25 |
위기에 한가운데서, 에 3:1-15, 에스더 시리즈 설교(3) (0) | 2024.05.25 |
은혜로 높아지는 에스더, 에 2:1-23, 에스더 시리즈 설교(2) (0) | 2024.05.25 |
앞서가시는 하나님, 에 1:1-22, 에스더 시리즈 설교 (1) (0) | 2024.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