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비밀은 바로 상상의 비밀이기도 하다. 우선 소망을 가진 후에 상상의 꿈인 ‘존재 바깥의 빈 공간’에 들어가 그것을 둥글게 만들어 자궁, 즉 거주하는 공간이 되어 칠십 배나 비옥해진 정원이 될 때까지 소망이 성취된 느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의 형상과 하나가 되는 것은, 그것을 둥글게 만들어 ‘하나의 자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상태와 하나가 됨으로써 그 상태를 수태하고 그것은 그것 안에 품은 것을 창조하도록 만든다.
블레이크가 말하길, 이런 마음속 형상은 그것 안에서 살지 않는 자에게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고 단지 하나의 가능성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과 하나 되어 있는 자에게는 유일한 실상이 되더라‘고 말했다.
마음의 형상 안으로 들어가서 마음속 형상과 하나가 된다면, 그 형상에 실상의 질료를 불어넣어주게 된다. 그렇게 한다면 자동적으로 육신을 가지고 새로운 집에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의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묘사한다면, 그 모습은 전적으로,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좌우된다. 그리고 인간이 ‘오직 상상력’이라면, 상상 속에서 그가 있는 곳에 실제로 그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소망이 성취된 이미지, 자신의 인식 속에 들어있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의 상상력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 소망이 성취되었을 때의 이미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 블레이크가 말했던 “존재 바깥에 빈 공간,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자궁이 되는가?”라는 말과 닮아 있다. 여기서 ‘존재 바깥의 빈 공간’이란 말은, 우리가 통상 현실 3차원 시공간에서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환경과 물건 ‧ 물질들, 그 바깥의 또 다른 빈 공간, 즉 3차원 현실로 투영될 것들을 미리 준비시키는 여러분의 4차원적 의식의 세계, 의식의 공간을 뜻한다.
네빌은 말한다.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미 받은 것으로 느끼고 믿음으로써 그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꿈들도 반드시 현실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의식 안에서 자신의 소망이 이미 성취되었다고 느끼는 설레임 가득한 상상력은, 마음속에서 그려내는 소망의 형상 안으로 들어가 성취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기쁨과 하나가 되기 전까지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상력은 온 우주의 양자장을 움직일 수 있는 무한대의 의식 전체로서, 그 의식 시스템 내에서 무한한 소소망의 이미지 결과물들 안에 들어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권능이 있다.
인간은 그저 습관적으로 보여지는 외부 세상을 그대로 반응하며 본다. 자신이 진정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상상의 힘을 의지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것의 창조적인 과정에 맞추어 자신의 미래를 미리 준비시키고 만들어간다.
토마스 칼라일은 이렇게 말했다. “그 무엇도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오직 전력을 다해 마음이 있는 곳만이,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대의 마음을 오직 두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인간은 단지 상상력이다. 그렇기에 상상 속에서 내가 있는 곳에 나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상상력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활동하고, 그 인식하고 있는 상태를 통해 활동한다. 진지하게 의식의 이동을 실험해본다면 그곳에서 우리는 기존에 믿고 있던 것들을 넘어선 가능성을 보게 될 것이다.
의식의 초점을 바꾸고,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보자! 의식의 변화가 아주 조금이라도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 미세하게 변화된 시선에서 세상을 다시 인식하게 될 것이다.
통상의 경우에, 의식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그런 한계 속에 묶어버릴 필요는 없다. 우리의 인식 안에서, 변화를 일으켜 이동을 할 수 있다. 감히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상상의 힘을 우리 자신이 현실로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공간적인 한계도 여러분의 진정한 자아인 상상력을 가두어둘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다.
진정한 자아는 자신의 육체 한계를 벗어나 존재할 수 있다. 우리의 감각적인 인식은 물질적 방법을 넘어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감각에 새겨지는 정보들은 일반적인 인식의 과정에서 생기는 것과 동일하다. 이러한 과정 전체를 만들어냈던 불씨가 되는 생각은, 물리적인 관점이나 물질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블레이크는 말한다. “나는 보이는 것들에 관해서, 창문에게 묻지 않는 것처럼, 내 이 두 눈에도 묻지 않을지니 나는 단지 두 눈을 통해서 보는 것이지, 두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즉 진정 무언가 보아내는 주체는 우리 인간 안의 영적 눈, 인식의 눈, 즉 상상력이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우리가 두 눈에 비춰진 것을 넘어서 보는 것은 의식을 이 세상의 어떤 장소로 이동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세상으로도 우리 자신을 옮겨놓을 수 있다.
사람은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의식,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 ‘존재의 의식’, 그 상상력의 화신이 되어서 지금 이 순간 과거의 자아관념, 현실 팩트, 에고와 기존 패러다임을 무시한 채, 지금 이 순간을 Present, 즉 선물로 받아들여서, 이미 소망이 성취되었음을 지금 이 순간 믿어내고 그 황홀감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선물, 즉 우리의 느낌 ‧ 분위기 ‧ 무드를 최상으로 선택해 머금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원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일에 대한 결과로서만, 즉 현실에 반응하는 감정으로서만 감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감정은 상상의 활동이고, 감정이란 것이 없다면 어떠한 창조도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통상 단순히 어떤 목적이 현실에 결과로 나타났을 때라야,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그런 과정이 반대의 방향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다시 만하자면, 소원이 성취된 행복한 감정을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여러분이 현실에서 그것을 결과로서 보일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것을 가역성의 법칙, The Law of Reversibility라고도 하고 기정 사실의 원칙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감정은 삶의 환경들이 빚어낸 결과일 뿐 아니라, 환경의 원인이 된다.
‘감정의 심리학’에서 리벗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단지 생각 그 자체만으로는 무엇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생각을 현실처럼 느낄 수 있다면 즉 생각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상태와 동반된다면, 다시 말해 생각이 발동요소인 성향을 일깨운다면 그때에는 활동한다.” 비로소 온 우주의 양자장이, 요술램프의 지니가 일을 할 때가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업은 자신의 관념을 위대함으로 채우는 일 뿐이다! - 네빌
우리는 나 자신을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조금도 먼 미래의 주장이 되어서는 안 되고, “지금 이곳”의 나에 대한 주장이 되어야만 한다.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 10년 후여서도 안 되고, 10분 후여서도 안 되고, 10초 후여서도 안 된다. 바로 지금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의식에 매여 있는 마음은 그 주장을 막는다. 그래서 마음은 계속해서 소망이 이루어진 것을 미래의 것으로만 받아들이려고 한다. 왜냐하면 현재의식은 이성과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아무리 봐도 소망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지금 현재는 그저 부족한 모습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래의 것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지금 이미 얻었다는 평온한 마음을 얻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곳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은 계속해서 소망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이 노력하는 것과 상반된 결과가 일어나는 법칙, 역노력의 법칙이다. 마음을 다룰 때 가장 조심해서 살펴야 하는 법칙이다. 이 세상에 성공한 사람이 드문 이유는 역노력의 법칙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성공하게 된다. - 네빌
삶은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생명을 표현하며 숨겨진 재능을 온 세상에 마음껏 펼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권위적으로 잠재의식이 내가 명하는 내용이나 소망을 실현하리라고 확신하는 태도로 명령해야 한다. “아마도”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라고 말하지 말라. 애매한 단어를 사용하면 내가 원하는 게 아닌 부족한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걸 받았다는 느낌을 점점 더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느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부자라고 ‘상상’하고 부자라고 ‘느껴야’ 한다. 느낌은 의식에서 하는 경험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이 2가지 있다.
1.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
* 주어진 현실에 굴복하거나 세상의 외적인 모습에 기초해서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 현실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상상의 활동에 최고의 가치를 선언하고 세상 모든 것들을 상상력에 굴복시키라!
* 여러분의 이상을 상상 속에서 꽉 잡으라!
* 여러분이 이상을 놓쳐버릴 때를 제외하면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여러분에게서 이상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 오직 가치 있고 희망적인 결과를 상상하라!
2. 이론을 넘어 실천으로
*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 다른사람의 경험으로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법칙'의 진실 여부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할 뿐이다.
* 여러분이 직접 '상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법칙'을 자신의 삶 속에서 건설적으로 사용하라!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타고 온, '청변의 영상'을 보다가 참고하며 작성해 보았다.
- 글을 쓰는 동안 불현듯 떠오르는 성경 구절들이 있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장 1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편 4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를 신뢰하면 그가 이루실 것이다” (시편 37편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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