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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존 비비어의 끈질김'을 함께 나누다...

by tat tvam asi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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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비비어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인생은 어떻게 시작하느냐보다 어떻게 끝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땅에서의 짧은 생의 끝은 바로 ‘영원한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끈질김’은 근근이 참고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강력한 ‘은혜의 능력’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하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다. 그런 의미에서 ‘끈질긴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역경이 닥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과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끈질김’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개발해야 하는 미덕이라고 밝힌다. 더불어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쉽게 포기하고 싫증내는 일이 다반사인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믿음의 싸움을 회피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신앙으로 승리할 것을 도전한다.

이 책은 모든 난관을 뚫고 전진할 수 있게 하는 7가지 영적 무기―끈질긴 믿음, 끈질긴 겸손, 끈질긴 내려놓음, 끈질긴 근신, 끈질긴 대적, 끈질긴 순종, 끈질긴 기도―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영적 무장으로 믿음의 전투에 지혜롭게 대비하도록 돕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하면 고난을 피할까’에 골몰하느라 고난을 통해 영혼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는 특권을 상실하고 있다. 끈질긴 태도와 믿음으로 역경에 잘 대처하면 점점 하나님의 통치권 안으로 들어가지만, 믿음의 노 젓기를 멈추면 금세 세상 물살에 떠내려간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질서이자 원리이다. 

 

Part 1 신앙은 끈질기게 전진하는 것이다

 

1.  왜 내 인생은 표류할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궁극적인 끝은 마지막에 우리 주님께서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해 주시는 때일 것이다. 이 땅에서의 생이 끝날 때 우리의 전부이신 주님께 칭찬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를 저어가는 환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강은 세상을, 배는 우리의 믿음의 태도, 노 젓는 배에 탄 남자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노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상징한다. 이 남자에게는 은혜의 노를 저어서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나아가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노 젓기를 그만 두면 배는 순전히 가속도 때문에 잠깐 앞으로(상류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배는 곧  멈춘다. 그 다음에는 하류로 떠내려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나중엔 물살을 따라 빠른 속도로 떠내려간다. 

이 환상에는 3종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신자, 비신자, 그리고 기만하는 사람이 나온다.
• 신자는 하나님나라의 발전을 위해 믿음의 싸움을 싸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 비신자는 자신의 바람들이 공허한 욕망임을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의 흐름을 따라간다.
• 기만하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을 말한다. 

끈질긴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역경이 닥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 순종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끈질김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기에, 당신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끈질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끝까지 잘할 수 있다. 당신은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사람이 될 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2. 나는 '다스리는 자'로 부름 받았다 

롬 5:17 /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여기서 하나님은 말 그대로 우리가 그분의 아들의 능력을 통해 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삶 속에서 왕 노릇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이 땅에서의 삶을 관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꼬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고 사탄의 거짓말을 믿게 만들자, 에덴동산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써 우리는 사탄이라는 새로운 주인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 주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이 이제는 하나님의 대적의 손 안에 들어간 것이다.  

인간이 잃어버렸으니 인간이 되찾아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야만 했다. 사탄에게 빼앗기 권세를 회복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며 사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추구하며, 의지적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피로 아담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살 수 있었다. 아담이 포기한 권위는 오로지 예수님의 것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명백하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문제는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은 하나다. 예수님은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 몸의 각 부분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나오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히 2:11)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라는 단어에 우리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권위와 능력의 수준에 대해 알아보자.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이 헤아릴 수 없고 무한하고 크고 위대함을”(엡 1:19) 깨닫게 되기를 열정적으로 기도했다.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당신은 그리스도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가지신 그 능력은 바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의 역사는 바뀌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죽었고,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고, 그분과 함께 부활했으며, 새로운 존재로서 그분처럼 산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다! 우리는 그분의 몸이다! 우리는 그분과 하나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셨다. 그분은 반대와 역경을 다스리셨다. 세상에 하늘나라를 가져다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할 수 있을까? 그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3. 매일 '은혜의 능력'으로 살라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해야 한다. 이 세상이 우리를 다스리면 안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나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가? 

에베소서 2장 8-9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그 후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도 슬픈 일이다. ... 여러분이 종교 활동에 기대어 살려고 하는 순간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이며,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함을 주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해 준다고 말했다(벧후 1:2-4 참조). 성품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이나 성격을 나타낸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 자신의 본질적 특성과 성격을 온전히 값없이 우리에게 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할 능력과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정확히 예수님처럼 재창조했다. 우리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는 그의 몸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래서 요한이 그토록 담대하게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한다. 이것은 성경의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다! 

예수님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려면 먼저 예수님은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예수님은 놀라울 만큼 경건하고 순결하게 사셨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하나님이 너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이다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해주시며, 그것이 구속의 은혜이다.  

하지만 여기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성화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삶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기도할 때 주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들아, 거룩함은 네 육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은 내 은혜의 선물이다."

인간의 모든 필요를 채우는 은혜의 능력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그런데 이 구절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다. 예수님이 인간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는 사실은 복음서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해 주시고, 속박된 사람을 구원해주시고, 배고픈 무리를 먹이시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다.  

 

 

4. 현재의 안일한 상태를 깨고 나오라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영접한 우리 각 사람은 모든 삶의 영역을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저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역경을 이길 권능을 부여받는다. 이 땅에서의 삶이 우리를 다스리면 안 된다. 우리가 삶을 다스려야 한다. 예수님이 사회를 변화 시키신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통해 우리도 사회를 변화 시켜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는 은혜로 삶을 다스려야 한다. 다니엘이 그랬으므로 믿지 않는 사람보다 10배 이상의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큰 그릇을 준비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우리 지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고 성취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값없는 은혜에 들어가는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는 오로지 당신이 믿고, 의지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용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그리스도인들이 관여하면 창의성, 생산성, 평온함, 세심함, 독창성이 넘쳐야 한다. 우리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해 우리 자신이 어둔 세상 가운데 빛이 되어야 한다. 다니엘에 대한 말씀을 읽어 보자.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단 6:3). 여기 보면 “하나님이 다니엘을 뛰어나게 하셨다” 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이는 다니엘이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이는 다니엘이 창조주 하나님과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요, 오늘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 그러해야한다.  

성경에 의하면 다니엘의 마음이나 몸이 특별했던 게 아니라 그의 영이 특별했다. 영이 특별하면, 마음과 몸, 창의성, 독창성, 지혜, 지식 등 삶의 모든 면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우리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영이다. 우리에게 은혜가 주어졌다는 것을 진정으로 안다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기”(막 9:23) 때문에 우리에게 한계가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맺은 언약 때문에 다니엘은 자기가 환경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눅7:28) 라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니엘보다 요한 보다 작은 자가 더 큰 이유가 무엇일까? 다니엘이 어두운 문화 속에서 빛을 발했던 것은 그가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그릇은 무엇인가? 
엡 3:20절을 보면 그것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안에 있는 나의 은혜(능력)는 네가 어느 그릇을 가지고 오더라도 넘치도록 채워 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그릇이 우리가 그 무한한 공급을 얼마나 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결국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요 6:28) 그들은 좌절하였다. 자신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곤경에 처한 인류를 돕고 싶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자신을 본을 따르라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흥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당신이 하시는 일을 합니까?"   
그때 예수님의 대답은 믿으라(요 6:30)였다. 바로 그것이다. 믿음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으며 그 은혜에 동참할 수 있다. 이처럼 바울은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라는 말로 에베소 교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었다.  

이 장의 요점은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값없는 은혜에 들어가는데 결정적인 요소는 오로지 당신이 믿고, 의지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용하는 것이다.  

 

 

Part 2  끈질기게 싸우기로 결단하라

 

1.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라

왜 모든 그리스도인이 왕 노릇하며 살지 못하는 것일까?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 받는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성령이 신약 성경을 쓴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해 주기 전까지 감춰진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믿는 것이다. 

보는 삶에서 들어가는 삶으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말씀하신다. 그리고 잠시 후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말씀하신다. 여기서 ‘보는 것’과 ‘들어가는 것’을 대조적으로 구별하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절에서 보다는 의미는 지각하다, 인식하다, 알고 있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은 거듭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지각하고, 인식하고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들어가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이는 일어나 들어가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두 구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아는 것에서 들어가는 것으로 옮겨 가신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 받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많이 사용되는 헬라어는 "바실레이아 투 데오스" 이다. 하나님 나라라는 문구가 나오는 곳에서 "하나님의 최고로 강력한 통치" 라는 말을 넣어보라.

이는 바울이 사도행전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행 14:21-22 /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바울이 남긴 것은 젊은 신자들이 끈질기게 살며 끝까지 소명을 완수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말씀이었다. 바울의 목표는 그의 통치권에 들어가도록 준비시킨 것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했다.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또한 그 통치 안으로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격게 된다. 시련을 이길 때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3. 영적 무장으로 전투에 대비하라 


베드로사도는 첫 번째 편지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우리에게 충고하기를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 받기 위해 무장하라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완전히 대조적이고 적대적이기까지 한 세상에 산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환난과 고통과 박해를 당할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베드로의 말처럼 준비해야 한다.  

무장하기 위해 우리가 ①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환난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예수님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강조하신 말씀이다.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살전 3:3)에서 지적한다.  

전쟁을 위하여 무장하는 것에 대해 두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②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이 당한 시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고전 10:13, 현대인의 성경)  

당신이 만나는 시련은 이미 다른 누군가가 직면하여 이겨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나 박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신다. 그리고 바울은 "지금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내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골 1:24,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은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말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의 말은 하나님 나라를 세상 끝까지 확장해 가는데 필요한 일을 완성하는 우리의 특권을 지적하는 것이다.  

무장의 세 번째 중요한 핵심은 ③ 당신이 결코 패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눅 10:19, 새번역) 

예수님은 원수의 모든 능력을 막을 권세가 당신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지지해 주는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 그들을 이기었기에 우리는 이미 그들을 이기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④ 우리가 고난에 대해 확고하게 낙관적인 생각과 마음을 가질 때, 시련과 시험을 더 이상 장애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긍적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기회로 여길 수 있게 된다.  

 

 

Part 3  '끈질김'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하라 

 

1. 끈질긴 믿음_ '은혜의 능력'은 오직 믿음을 통해 임한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14:22) 라고 충고한다. 인간이 사탄에게 굴복하게 만든 그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원수와 싸우게 하셨고 승리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세상 끝까지 확장해 가는 것을 완성하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은혜를 전혀 소유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바울은 자신의 무능함을 자랑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은혜가 모자란 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는 것이다. 믿음이 약해지면 결국 은혜(능력)가 차단된다. 그러면 우리 자신의 힘으로 싸워야만 한다. 당신의 집으로 물을 보내 주는 수로관을 생각해 보라. 만일 그 관이 파열되면 물의 흐름이 끊길 것이다. 수원에서 물이 무한정 공급되더라도 관이 파열되었기 때문에 물이 더 이상 당신의 집까지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믿음은 관이며, 물은 은혜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믿음 안에서 바로 서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분의 은혜에 감사드려야 한다. 또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세우기 위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믿음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세상을 다스리지 못하고 반대로 세상이 우리를 다스리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베드로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권면한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능력 안에서 자라야 할 책임이 있다. 자라는 방법은 우리가 믿음을 세우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에 있다.  

 

2. 끈질긴 겸손_ 겸손은 하나님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추론하고, 느끼고, 바라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고, 의지하고, 복종한다. 특별히 겸손의 옷을 입으려면, 우리의 옷이 아닌 하나님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5-6). 그럼으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다윗의 형들을 버리셨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다윗의 형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싸울 때 예상되는 결과를 머릿 속으로 계산하였다. 반면 다윗은 하나님의 힘과 능하신 손으로 싸우는 것을 마음에 그렸다. 다윗은 겸손의 옷을 입었다. 사울 왕이 갑옷을 주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갑옷을 의지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겸손의 참된 의미를 잊었다. 오직 우리의 무능함과 비참한 모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겸손은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격 특성이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의존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서 첫째가 하나님, 둘째는 다른 사람들, 셋째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다. 겸손은 상냥한 말투나 자신을 비하하는 태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선물인 능력 안에서 담대하고 끈질기게 사는 것과 관련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건강하고 지혜롭고 능력있고 안전한 삶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4. 끈질긴 근신_ 세상 가치관에 취하게 하는 습관을 정리하라


나의 요지는 이 세상이 감각을 현혹하여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가 근신하려면 하나님의 자녀가 주기적으로 점검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충고하고 있다. 
 
기도는 우리의 육신을 잠잠케 하며 우리의 속사람을 세워 준다. 우리의 육신은 약하다. 육신은 언제나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택하려 할 것이다. 그것은 대개 잘못된 길이다. 우리 육신은 세상의 강한 흐름을 거슬러 싸울 마음이 없다. 그에 반해 기도는 육신의 욕망을 이길 내적인 힘을 길러 준다. 기도는 우리가 낙심하지 않게 해 준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눅 18:1) 한다고 하신다. 다른 말로 하면, 특히 슬픔(고뇌)이 우리에게 닥칠 때 기도하지 않으면 낙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겪은 일이 바로 낙심이었다. 이들은 기도해야 할 때에 잠을 자고 있었다. 주위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경계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태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수단을 이용해 성령님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억누른다. 텔레비전을 켜고, 웹 서핑을 하고, 항상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으로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바쁘기만 하고 별로 쓸모없는 일을 하고, 또는 냉장고를 열고 배불리 먹는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와 경고에는 점점 더 둔감해진다. 그 결과 고난을 통해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5. 끈질긴 대적_ 직접, 말씀으로 공격하면 승리한다 


베드로는 마귀를 가리켜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와 같다고 말하였다. 원수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삼킬 것이다. 이와 같이 원수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패배하였지만,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래서 베드로는 마귀를 향하여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벧전 5:8-9). 대적하라 강하게 권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눅 10:19)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의 강한 은혜 안에서 행할 때 아무도 당신을 해칠 수 없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은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야기할 내용은 정말 중요하다. 당신이 믿고 굳건하게 사탄에게 저항한다면 항상 승리할 것이다. 이 약속을 굳게 붙잡고 선포하고 담대하게 행동으로 옮기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여기서 피하리라는 단어는 사라지다. 도망치다. 달아나다. 안전한 곳으로 찾아 도주하다는 뜻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 건강한 삶의 기초는 항상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마귀나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방해하면 공격하라! 당신이 대적하면 원수는 달아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예수님께 주의를 집중하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며, 그 믿음 안에서 우리를 온전케 해 주시는 분이다. 

 

6. 끈질긴 순종_ 말씀대로 사는 것이 순종이다


적군이 우리 앞에 요새를 세웠다고 상상해 보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요새를 제거 하여 나가야 한다. 감춰진 지뢰, 벙커, 장애물 등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에 심겨진 왜곡된 악한 사고 방식이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이 있다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후 10:3-6 /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마귀의 견고한 진은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반대되는 생각의 과정, 사고방식, 추론 등등 하지만, 바울의 말처럼 우리의 순종은 이런 불순종을 짓밟을 수 있는 능력을 준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 성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이 구절은 예수님 세상에 오셨을 때 저절로 순종하게 되신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예수님은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셔야만 했고, 완벽하게 해 내셨다. 즉 영적성장은 시련 가운데 계속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성장한다.  

요셉은 감옥에서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지만, 여전히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억울해 하며, 분개하였는가? 요셉은 자기 영혼에 밀려오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끈질기게 저항하여 나갔다. 시련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며, 당신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사람만 없었다면 얼마나 더 잘됐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는 쉽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런 생각이 우리의 저항력을 약화시킬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진짜 위협적인 것은 우리의 불행한 환경이 아니라 고난 중에 살짝 들어오려고 하는 잘못된 신념과 생각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논리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물리쳐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 진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굳건히 심겨야 한다. 어떤 사람도, 또는 마귀도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운명을 붙잡고 계신다. 

요셉은 처음에는 고자질쟁이에 허풍쟁이였고 조금 거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계속 그런 상태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역경을 통해 순종했고, 결국 능력 있는 통치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성품을 개발했다. 그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만일 그가 원망과 악의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형제들을 향한 미움을 품고 있었다면 쉽게 보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형들은 전 세계적인 가뭄이 들자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왔다. 이때 요셉은 그들을 평생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있었고,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와 정반대로 행했다. 공짜로 곡식을 주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애굽의 가장 좋은 땅에 살게 해 주었다. 형제들은 나라에서 주는 가장 좋은 음식을 먹었다. 요컨대 자격이 없는 형들에게 애굽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내어 준 것이다. 요셉의 마음속에는 성숙한 성품이 형성되고, 강해지고, 자리를 잡았다. 이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었다. 자신을 저주한 형들을 축복하고 자신을 미워한 형들에게 좋은 일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마 5:44-45 참조). 

베드로의 권면의 결론이 무엇일까? 

벧전 5:9-10 /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는 하나님이 요셉을 통치자로 준비시키시는 동안 요셉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 견고하게 저의 성품과 인품이 만들어져 나간 것이다.  

 

 

7. 끈질긴 기도_ 구하면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신다

 

우주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오라 다정히 초대하신다. 담대하라라는 말은 확신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요. 이에 반대되는 말은 소심하다 주저하다 등이 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 확신과 굳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라 초대하시는 것이다. 

만일 행동이 따르지 않는 기도와 믿음이라면, 이는 종교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은 당신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과 몸이 응답받기 위해 단호하게 기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영적인 영역에서 먼저 확고히 세워지기 전에는 자연적인 영역에서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  말하였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붙잡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공급하시는 것을 꼭 붙잡는 것이고, 그것은 마음을 다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Part 4  끈질기게 완주하라, 영광의 상을 받으리라!

 

1. 하나님의 비전을 함께 품으면 완주할 수 있다 


고전 9:24 /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우리는 인생의 경주를 하고 있다. 이 경주는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쟁 상대는 우리가 끝까지 달리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고 있다. 사도바울이 이와 같이 라고 말한 것에 주목하라. 우리는 어떻게 달려야 하는가? 끈질기게 달려야 한다. 출발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끝내는지가 휠씬 더 중요하다. 잘 끝내서 상을 받으려면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며, 둘 다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상 받기를 위해 노력하는가?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상은 무엇인가? 

첫 번째 상은 우리 삶의 길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집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시온이라는 집을 건축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집에 우리는 ‘산 돌’이며, 예수님을 주춧돌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영원히 거하실 집을 구성하는 건축재료이다.  

또한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다. 그렇다면 동역자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엡 2:10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심을 받은자라는 사실에 주목하라. 다른 말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하여 지음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 지음 받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매우 강조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는지를 도외시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것'(doing)보다 '되는 것'(being)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하는 것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할 때가 있다.  

 

 

2. 천국을 품으면 완주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은 첫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당신이 기여 했다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을 받는 것이다. 둘째 상은 좀 더 명확하다. 우리가 영원히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똑같은 권위와 책임과 명예를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즉 우리의 행함이나 공적에 근거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상급은 우리가 어떻게 순종하고 인내하고 그의 말씀을 잘 지켰는지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끝까지 마친데 대한 가장 큰 상은 영원히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을 것이다. 땅에 있는 그 무엇도 하늘나라의 광채에 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천국에서 지위가 있을 것이다. 즉 더 명예로운 자리와 그보다 못한 자리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서는 어떤 지위도 이 땅의 모든 지위보다 훨씬 더 좋다. 다윗도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요점을 놓치면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최선에 미치지 못할 때 경험할 수 있는 슬픔을 미리 알려 주신다. 즉 영원히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친밀하게 지내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3.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하라


아무도 당신에게 포기하라 강요할 수 없다.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당신 뿐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많은 경우에 포기하는 이유는 끈질김과 반대인 타협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순교하기 직전에 말세의 힘든 현실을 예견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딤후 3:1)라고 디모데에게 말했다. 바울은 가장 큰 어려움은 진리를 타협하는 신자들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노 젓기를 멈춘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말세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2-13)라고 경고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핵심단어는 ‘견디는’ 이다. 견디는 것은 진리를 지키는데 있어 반대와 저항과 고난이 있을 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딤후 4:1-4 /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음으로 받는 상은 무엇일까?
계 2:26 / 이기는 사람, 곧 내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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