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 9:23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느님과 인간이 분리된 상태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대원리 즉 하나의 대 원칙 즉 나와 아버지(하느님)는 하나이기에, 아버지의 전지전능함과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나의 것이며, 하느님과 온 인류는 하나로 연결된 전능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온 우주만물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하나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 내면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성이 우리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현실이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출애굽기 3장 14절, 하나님은 I AM THAT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나의 내면의 깊은 참자아임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전능한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만물에게 쏟아부어지도록 나 자신을 준비하면 아무것도 나를 두렵게 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고 신과 합일하여 신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접착제라는 것을 알면,
그 다음은 '신아(God I am)는 지혜이기 때문에 성공에 이르는 올바르고 유익한 길로 인도'하고, '신아(God I am)는 신의 지혜요 영지'이기 때문에 나를 완전한 성공으로 이끕니다.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른 것이지, 신이 인간의 형상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신은 일체의 원자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충만해 있는 지고한 지성의 힘입니다. 우리가 이 지고한 지성의 힘이 자신 속에 있음을 깨달을 때 그 힘이 활동하게 되고 우리 자신은 그 힘과 하나가 됩니다. 모든 인간에게 그러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이 내 안에 있다'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 힘과 하나가 됩니다!!!
신과 나는 분리되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신이 있고 신은 거대한 힘입니다.
신을 어떤 위대한 존재가 하늘에 앉아서 온 우주에 복을 주고 벌을 주고 다스리고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신성한 지고의 힘, 원천'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 신성한 지고의 힘,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신의 마음, 신성한 마음(Divíne Mínd=신)을 추구하다 보면, '신의 마음이 모든 마음 작용의 근본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든 현인들이 깨달았던 진리라고 하지요.
내 안에 신의 마음, 신성한 마음이 있고 이것은 모든 마음의 근원입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최고의 사랑, 최고의 지혜, 최고의 능력뿐만 아니라 최고의 풍요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있는 그대로 완전한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속에 있는 쓰레기가 신의 존재가 발현되는 일을 막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말로서 잠재의식에 축적된 모든 쓰레기를 내다버리십시오. 그러면 전(全) 우주에 걸친 하나의 신성한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여러분이 신성한 목적이요, 여러분 자신이 우주적인 존재입니다.
결국 내 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내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필요한 돈이 1억이라고 할 때, 그 돈은 내면에서 어떻게 찾을까요?
신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고요 속으로 들어가서 기도나 명상 중에 요청하면 답을 얻게 됩니다. 모자라고 필요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위험하지 않은 바른 방법을 알게 됩니다.
신은 모든 것입다. 모든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선한 것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선한 것은 저장고 속에 있습니다. 그 저장고의 문을 여는 유일한 방법은 일체가 신이라는 것을 알고 신처럼 행하여 모든 선한 것을 불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은 각자 자기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이 저장고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 요 10:34-35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과감한 결심을 하고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더 이상 받을 여지가 없을 만큼 엄청난 축복이 쏟아질 것입니다. 하늘 문이 그 저장고의 문입니다. 그 문을 연 사람에게는 엄청난 축복이 쏟아질 것입니다.
사랑, 배려, 감사, 헌신, 기쁨, 축복, 자비로움 같은 선한 것을 불러내야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함을 불러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신성이 있음을 깨닫고 존중해야 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기준에서 잣대를 재지 말고, '모두에게 신이 있다'라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알고 선한 마음을 불러내면 저장고의 문이 열리는데, 이 문은 하늘의 문이고 엄청난 축복이 쏟아집니다. 더 이상 받을 여지가 없을 만큼 엄청난 축복이 쏟아집니다.
우리는 지고하며 끝이 없는 전체요 신이라 불리는 무한한 영입니다. 이것이 신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신이요 목적이요 결단코 무한한 전체입니다. 나는 무한하고 신과 하나요, 신의 기쁨, 신의 행복입니다.
왜 그렇게 즐거워하는가? 왜냐하면 모든 인간이 바로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각자는 전능한 신이 임재한 존재이다.
필요한 말은 이것입니다.
"신아(God I am), 지고(至高)한 불멸의 생명, 지고(至高)한 불멸의 지성, 나는 지고(至高)한 불멸의 지혜다. 나는 지고(至高)한 불멸의 풍요다. 나는 신이다. 다른 사람도 신이다. 모든 아이, 모든 사람은 신이다."
신과의 분리란 있을 수가 없고 결국 내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근원은 내 안에 있고, 내 안에 아주 큰 힘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라면, '하나님은 삶의 모든 영역에 관계하고 계시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삶이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실재, 곧 성령의 현존하는 능력 안에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고, 존재 자체가 사랑인 내가 삶속에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확장되어 가는 것'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구요.
☞ Christian The Greek word Χριστιανός (Christianos), meaning "follower of Christ", comes from Χριστός (Christos), meaning "anointed one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Christian life)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생활철학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삶의 영역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이렇게 살기를 원하시며 창조하셨습니다.
❚ 창 1:26-28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의 창조력도 이양 받은 것이겠지요. 다시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케이시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적인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영적으로 성장하여 궁극적으로 신(神)의 공동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요즈음 깊이 깨달아 가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신의 공동 창조자이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면서 '육체'라는 옷을 입은 나와 협업하시는 것이라는 것을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신성의 권능을 내리시고, 그것을 표현하도록 계속해서 자기의식적 노력을 기울이게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은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신의 근원을 인식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인 것이지요.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누구라고 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배워야 하고,
자기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성을 발견해야 하며,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는 자라는 것을 베워야 하며,
자신이 신과 함께 창조한 것들의 마스터(Master)임을 배워야 합니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은 완전성과 권능이십니다.
내면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현존'이자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선한 것과 완전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 내면에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아, '살아계신 가장 높은 하나님', 하늘과 땅의 통치자이신 그분의 성전이 바로 자신의 '몸'이라는 것을 우리들이 깨달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은 그 전능한 자아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테고, 그 신성과 소통할 것이며, 만물 안에 있는 그 신성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우리들이 다른 이들을 실체로 느끼는 것만큼이나 그 현존의 실체를 너무나 확실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현존이 가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실재'를 잠시라도 깊이 '느낄' 수만 있다면 다시는 그 둘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낄 수 없을 것이며 예수님처럼, 전능하고 지고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빛의 사자들입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현존이, 그 현존의 지혜와 힘이 '지금' 우리의 존재 전체를 강력한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가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얼마나 빨리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십시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내가 하는 일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예수는 이 땅에 있는 동안 모든 인간이 의식적인 통치와 마스터리를 성취하고 표현할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는 통치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적 자아를 부름으로써 인간적인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인류에게 '증명'하셨습니다.
인간의 생각, 감정, 말은 대기 속으로 퍼져나가 그것과 비슷한 유형의 것들을 더 끌어모은 다음, 그에게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이 모습을 인간이 명백하게 볼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이 무엇을 낳았는지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이로부터의 해방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창조물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완전한 결의로 자기 자신의 신성과 마주하고 그 신성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생각'과 '느낌'은 '살아서 고동치는 것들'이며, 이를 아는 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혜를 사용해 자기 자신이 만드는 상념과 감정들을 통제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위대한 신적 자아가 개인적 자아 혹은 외적 자아를 통해 지구상에서 경험을 얻고 성장하듯이, 인류는 이 땅에서 경험을 쌓아가며 예수처럼 될 것입니다.
인간적 의식으로써 스스로를 고치고 내면의 힘들을 통제하는 것은 단기간에 성취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쉬운 길도, 게으른 이가 갈 수 있는 길도, 자기 만족적인 길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이 스스로를 교정하려 하면 그의 내면에서는 큰 저항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낮은 본성을 다스리려는 그 마음에 미친 듯이 대항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내면의 힘들을 적절히 다스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낮은 본성들을 다스려야 하는데, 특히 감정의 영역에 속한 것들(분노, 질투,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 자만심, 오기 등)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내면의 힘들은 오직 그 사람이 지닌 신적 마음의 의식적 권능아래서만 활동하고, 또 쓰이게 될 것입니다.
"부름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자는 적으니라"는 말은 진실로 맞는 말입니다. 모든 이가 끊임없이 부름을 받고 있지만 내면의 신적 자아에 있는 황홀한 기쁨과 완전성을 자각할 정도로, 그리고 신적 자아의 빛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깨어 있는 자는 아주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 목소리는 모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라며 영원히 영원히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상의 모든 이들은 매 순간 "일어나, 아버지(자신의 신적 자아)께 가라"는 그 목소리를 따를 자유를 가지고 있고, 이 목소리를 진실로 따르려는 자는 인간적 감각의 창조물을 외면하고 평화, 행복, 풍요, 완전성의 원천인 우주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께만 자신의 온 마음과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온 우주에 아니계신 곳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권능의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 방법이란 바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부름에 사랑의 현존으로 답을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부르는 동기는 하나의 근원에 대한 사랑, 빛에 대한 사랑, 완전성에 대한 사랑이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두뇌 중심과 가슴에 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존에 감사해 하고,
그 현존을 받아들이고,
이 진리를 하루에도 여러 번 깊이 느껴보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무언가가 더 들어올 공간이 없을 정도로 가득하게 빛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존은 한 인간의 생명과 일들의 대단히 조화로운 활동입니다.
만일 어떤 이가 결의를 가지고 자신의 의식을 이 영원한 진리에 흔들림 없이 집중시킨다면, 그가 이루지 못할 성취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을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생명의 원칙과 근원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내면에 있는 신적 자아입니다. 우리의 소재가 바로 하나님의 영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고,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의 코에 불어넣어진 존재입니다.
개인적 자아는 마음이 어떤 외적 활동을 하고 있든 상관없이, 위대한 조화를 이룬 자아를 항상 의식적으로 인식해야 하고
그것과 지속적으로 내적 교감을 해야 합니다.
이 위대한 신적 자아는 모든 인간의 몸에 매 순간 흐르고 있는 생명 에너지입니다.
인간은 이로써 물리적 형태의 세계 속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신적 자아는 마음에 흐르는 지혜, 모든 건설적인 활동들을 지시하는 의지, 모든 이를 지탱하는 힘과 용기이며 신성한 사랑의 느낌인데, 이 느낌이 인간에게 흐르게 되면 그는 모든 힘에 그 자신의 속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선한 일도 모두 이룰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힘이 바로 이 신성한 사랑의의 느낌입니다. 신적 자아가 저항 또는 방해 없이 개인적인 자아를 통해 표출되었을 때는 그것이 모든 인간적 활동의 조건들을 뛰어넘는 무조건적인 승리, 의식적 권능이 됩니다.
인간 안에 있는 이 전능하신 신적 자아는 모든 창조물의 지고하신 통치자이자 영원한 도움의 원천입니다. 신적 자아는 신뢰할 수 있는, 영속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오직 신적 자아의 사랑, 지혜, 힘을 통해서만 상승하여 마스터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신적 자아와의 계속적이고 의식적인 교감이 곧 모든 인간적 창조물에 대한 자유와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간적 창조물이라는 것은 완벽에 미치지 못하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든 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를 두려움 – 우리로 하여금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두려움 – 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 갑자기 예측 불가능했던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합니다
항상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심상화하는 하나님 영(靈)이자, 지휘하는 하나님의 지성이자,
추진하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성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고, 이 사실의 충만함을 자주 사색한다면 우주의 모든 것은 우리의 열망, 명령, 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바삐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의 열망, 명령, 심상은 모두 건설적인 것들이므로 자의식을 지닌 생명을 위한 본래의 신성한 계획과도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인간적 측면이 진실로 신성한 계획에 동의하고, 그 계획을 받아들인다면 그 어떤 지연이나 실패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그 안에 선천적인 완전성의 자질이 들어 있으며, 그 자신의 창조자를 섬기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완전성만이 정해진 운명입니다.
우리의 열망 혹은 심상이 건설적일 때, 우리는 자신의 계획을 바라보는 창조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지금 즉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선언 또는 명령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와 세계의 시스템을 창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나타났습니다. 빛을 창조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걸리자 않았습니다. 이와 똑같은 장대하신 하나님의 영이 '지금'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시각과 언어 능력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통해 무언가를 보거나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속성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활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는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분의 완전한 능력과 통치권을 가지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생명 의식(Life Consciousness)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생명 의식만이 건설적이고 완벽한 계획을 명령하고, 심상화하고, 열망하는 우리 생명의 자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건설적인 계획은 그분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식대로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방식대로 되는 것을 경험할 때, 우리가 神임을 점점 알아가게 되고, 우리가 창조자의 위치에서 협업하고 있음이 우리의 유일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치유할 힘이 있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자가 되고 싶다고 아무리 말한들 소용없습니다.
만약 부자가 되고 싶다면, 엄청난 부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 현실로 이루어질 때까지 매일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그 그림에 집중해 보십시오!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그 부요함이 확실히 자신의 것이라고 믿어질 때 우리의 내면의 확신이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루기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이것을 또 다른 방식의 집중인 것입니다. 이 집중이 이루어질 때 이것이 우리 자신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거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알아가고 깨달아가는 것을 통해 여러분에게 맞는 것만을 선택하여 결정하십시오!
그런 후 책임감을 가지고 "보라, 정말 내가 이것을 간절하게 원한다면, 나는 반드시 이룰 것이다."라고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그러면 일어납니다. 완벽한 믿음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완전한 치료, 치유 그리고 회복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대부분 이러한 것을 이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심과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을 순식간에 이룰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끌어올린다면 원하는 것들을 순식간에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재를 묶어주고 유지하는 끈끈이는, 에너지와 당신의 집중력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는 순간, 모든 에너지가 모아집니다. 여러분의 삶이 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보는 순간, 여러분이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순간, 원하는 것들이 삶속에 초대되고 그에 따른 에너지가 형성될 것입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바꾸십시오! 그동안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졌다면 태도를 바꾸십시오~ 파괴적인 에너지에 대해 집중했던 자신의 초점을 옮기고 마음을 바꾸면 나쁘고 해롭던 에너지는 흩어지고 찬란하고 건강한 에너지가 다시 모이게 됩다.
영원히 변치 않는 생명의 법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 이 세계에 형태로 나타난다.
당신이 생각하는 곳이 당신이 존재하는 곳이다.
당신과 당신의 의식이 진실로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명상하는 대상의 형태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생명의 감정적 활동은 인간의 의식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감정 에너지의 축적에 의해 생각이 물질의 원자를 구성하는 창조계에 투사되고, 결국 상념은 물질화되어 나타난다.
의식과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느낌의 통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생명의 활동에 있어, 마음의 균형과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어, 그리고 마침내는 이 세계에서의 일의 성공과 성취를 이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감정의 옷을 입기 전에는 결코 사물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생명이신 하나님의 감정적인 부분이고 신성한 사랑의 활동이며 하나님의 모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에 대한 죄가 크나큰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감정 안에 나타나는 어떤 형태의 부조화도 사랑의 법칙, 즉 균형, 조화, 완전성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에서 이 사랑의 법칙을 거스르는 가장 큰 죄악은 인류가 매 순간 내보내고 있는, 파괴적이고 흥분된 감정입니다.
인간은 내면의 하나님을 간곡히 찾고, 그 '내적 자아'와 영구적이고 의식적인 접촉을 해야 합니다. 외적 삶의 '모든 상황'을 직면하면서 그것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건설적인 열망은 생명이 확장하는 활동입니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갈수록 더 큰 아이디어, 활동, 성취를 물질과 형태로 이루어진 외적 세계에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올바른 열망' 안에는 그 열망을 충족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인간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받은 생명에너지를 어떻게 쓸 것인지 선택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가 소망하는 특성과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스스로의 의지로 표현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인간은 '반드시' 이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자유의지'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열망의 건설적인 사용은 지혜에 의한 이 무한한 하나님 에너지의 '의식적 명령'입니다.
지혜가 이끄는 모든 열망은 다른 창조물들에게 일종의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내면의 하나님께서 이끄는 모든 열망은 언제나 사랑과 축복의 감정으로 이어집니다.
감각 의식이 스스로를 하나님, 즉 완전성으로부터 분리된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면 정말로 그런 상황이 나타나게 됩니다. 감각 의식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그 세계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불완전성에 관한 생각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생각이 자신의 주의와 마음을 사로잡게 내버려두면 그에 상응하는 상황이 자신의 몸과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여 사람은 스스로를 그 자신의 근원과 외떨어진 독립체라고 느끼지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생명과 지성, 그리고 힘에 시작과 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 무엇도 진정으로 생명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정신적, 물질적 세계 속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형태가 해체되거나 일시적으로 무너질 수는 있지만 개인의 의식은 영원합니다.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창조물 속의 모든 선한 것을 '주시는 이, 아시는 이, 행하시는 이'로 인정할 때, 개인의 의식은 모든 현상계의 모든 물질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선한 것의 원천은 오직 하나, 즉 하나님이라는 진실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외적 자아의 외적 활동 안에서 인간이 이 진실을 하루 두세 번이 아닌 모든 순간마다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외적 자아가 무엇을 하든 상관 없이 이를 유지한다면, 누구나 그 자신이 지닌 인간전 한계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와 권능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것이 어려운 일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매 순간 모든 상념과 생동에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물질, 하나님의 활동, 하나님의 에너지를 써왔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이 하나님과 외떨어진 존재라는 믿음 속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을 살아왔으니까 말입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에너지를 인지하고 의식적으로 지도하며, 그것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완전성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곧 자기완성의 길이자 '모든' 자연적 힘의 의식적인 통제, 즉 지구상의 모든 것에 대한 통치권을 얻는 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지느냐는 우리가 자신의 신적 자아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얼마나 끈질기게, 얼마나 깊이 느끼고 연결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시시각각 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지닌 일상 속의 초능력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의식이 뇌라는 물질의 세포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자신의 뇌를 스스로 변화시키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품는 낱낱의 생각을 따라 주의가 움직이는 대로, 여러분은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어내도록 뇌에다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들이 제멋대로 마음을 지나다니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이 힘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신경조직의 형성을 의식적으로 지시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몇 주만 지나면 여러분의 뇌는 변화합니다. 이것을 몇 년만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사랑과 평화와 행복의 신호를 습관처럼 능숙하게 처리하는 뇌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기기의 전원 코드 속 구리선에 전류가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뇌 속의 신경세포를 통해서도 미세한 전류가 흐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뇌는 전기활동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이것은 뇌 주위에 에너지장을 만들어냅니다.
빛과 전기와 자기는 생물이 신호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에너지장을 만들어냅니다. 생물학자 제임스 오쉬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너지는 자연계의 모든 거래를 매개하는 화폐다."
뇌의 신경세포는 자석처럼 행동하고 장(場)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자석이 쇳가루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장들도 주위의 물질을 형상 짓습니다.
지구의 중력장처럼 신체 밖의 더 큰 장을 더 큰 자석처럼 작용합니다. 이들은 신체 장의 패턴을 변화시킵니다. 이것들은 여러분의 뇌와 세포에 작용하고, 여러분의 신체 또한 더 큰 장들에 작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의 신체는 이 큰 장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동시에 이것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신체의 전자기장은 신체로부터 5미터 정도까지 뻗쳐나갑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에너지장을 통해,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합니다. 여러분의 의식은 두뇌와 마음과 세포를 통해 주위의 장 속으로 신호를 방출합니다.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는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고 싶다면 에너지, 주파수, 그리고 진동의 관점에서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의식 속에서 하나의 생각을 떠올릴 때, 우리는 우주적 장 속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신호를 전송하려면 마음이라는 형태의 소프트웨어와 뇌라는 형태의 하드웨어가 필요합니다. 신경회로를 통해 이동하는 신호는 에너지장을 만들어내는데, 이 장은 의식의 내용에 따라 변화합니다. 국소적인 것이든 원격적인 것이든 간에 치유에는 場 효과가 개입됩니다.
치유의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에너지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손이 뜨거워지는 듯했다고 말했습니다.
무한한 마음에서 물질이 창조됩니다.
에너지가 물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의 자기장으로부터 옆 사람의 심장이 일으키는 자기장에 이르기까지, 에너지장들 속에 잠겨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 기관도 장을 지니고 있고, 세포도 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장(場)들은 치유가의 의도와 활동에 반응합니다. 그리고 그 치유가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으로 어떤 종류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 속에 부와 행복과 건강과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는 훌륭한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뇌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마음은 행동하는 뇌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뇌가 바뀌고 결국 삶이 바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 주위에 무한한 가능성의 장이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장은 여러분이 들이쉬는 공기만큼이나 실제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3차원적 현실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하염없이 반복되는 부정적 생각의 쳇바퀴 속에 갇혀 있는 분 계십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그럴 것입니다. 마음속의 잔소리꾼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유감스럽지만, 내가 무엇을 택하든 간에, 내 안의 잔소리꾼은 그저 나를 자근자근 씹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 생각의 95%는 반복적이고, 80%는 부정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빠져나갈 방법을 모르는 부정적 사고의 쳇바퀴 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조건에 매인 케케묵은 사고방식 속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과거의 진부한 경험을 가지고 판에 박힌 현재의 현실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틀 밖에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국소적인 마음속에 갇혀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가능성을 봅니다. 우리는 비국소적인 마음의 확장된 의식 속에서 발견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우리는 동조되자 않은 개인적 현실의 장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던, 세상이 바뀔 가능성을 봅니다. 관찰자 효과는, 현실은 말랑말랑해서 쉽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경험 속에 동조된 마음의 힘을 가져오면 우리의 의식은 놀랄 만한 일들을 창조해냅니다.
의도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의식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사용하여 생각이 현실에 휘둘리지 않도록 운전해가십시오. 의도를 발휘하여 마음을 의심과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과 큰 목적으로 채워 마음의 주인이 되면, 역경조차도 우리를 위대한 존재가 되도록 밀어줄 수 있습니다.
동조된 마음은 레이저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서 깅철도 뚫을 수 있습니다. 높은 현실을 품은 의식은 우리의 신경경로를 조직합니다. 그것은 뇌파를 동조시키고, 심장과 신체의 다른 모든 장기들도 동조시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경망을 재배선합니다. 이 같은 상태에서는 알려진 물리학의 법칙을 넘어선 경지에서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긍정적 진동으로 공명하는 더 넓은 사회의 에너지장과 어우러져서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하게 됩니다. 기적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됩니다.
다가오는 매 순간, 다가오는 날과 달과 해 들, 아니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어떤 종류의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가요?
과거 수 세가 동안 우리는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 공포와 분노, 비탄, 경쟁, 수치, 죄악, 적대와 온갖 형태의 갈등을 일으켜왔습니다. 우리 인간은 무수한 세대에 걸쳐 그런 종류의 생각이 초래한 물질적 상황들을 경험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일으킨 고통을 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그려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세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나면, 우리는 그것을 창조하도록 도와줄 생각과 느낌과 경험과 신념을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현실을 창조해 내는 마음의 엄청난 잠재력을 깨닫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기를 택하고 그것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체할 때, 우리는 자신의 현실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현실을 바꿔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행과 고통의 힘, 곧 자신이 두려워한 그 어두운 세계를 다름 아닌 자신이 스스로 창조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생존의 요구에 쫓겨 다니는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엄청난 상황을 이끌어왔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달리 선택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먼저 자신의 개인적 현실을 모양 짓는 데 사용하고, 그다음에는 집단적으로 지구의 현실을 창조해 내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주와 우리가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책이 있습니다. 도슨 처치가 쓴 <깨어 있는 마음의 과학>입니다. 그 책에 나온 내용을 조금 소개해 보겠습니다.
☞ 다른 사람이 같은 방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기타나 바이올린을 무릎에 놓는다면 그 음악이 일으키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아무도 무릎에 놓인 악기의 현을 건드리지 않는데도 그 악기의 현과 울림통이 옆에서 연주되고 있는 악기와 조화를 이루어 진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명이다. 공명은 물체를 먼 거리에서도 비슷한 주파수에 동조되게 한다.
지구 자기장 역선의 특정 주파수는 사람의 뇌와 심장에서 일어나는 동일한 주파수와 공명한다. 지구가 자신의 화음을 연주하면 우리의 뇌와 신체는 함께 따라서 울린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생물학적 작용을 조절하는 데 그 끊임없는 음악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구 플라스마 덮개의 주요 공명 주파수와 그 배음들이 인간의 주요 뇌파와 같은 주파수 창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의 뇌가 정보를 처리할 때 만드는 장에 의해 생성되는 우리의 정신 상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주파수와 공명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치유가 일어날 때 세타파가 급증하듯이, 우리가 특정한 파동을 증가시키면 우리는 지구의 정보 신호와의 공명 상태를 키우는 것이다. 지구와 치유자는 강력한 에너지 합일 상태 속에서 서로 동조된다.
이뿐 아니라, 하트매스 연구소의 책임자인 롤린 맥크레이티는, "우리는 지구라는 커다란 뇌의 작은 세포와도 같아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등의 모든 살아 있는 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하고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정보를 서로 나누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 정보는 이 '지구라는 뇌'의 살아 있는 매트릭스 속을 흐르면서, 세포와 분자 수준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의 활동을 동조시킨다.
신경의 연결망을 통해 자극과 함께 박동하는 전자기적 기관인 인간의 뇌는 전자기장에 지극히 민감하다. "지자기장의 변화는 인간의 심박동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왔고, 뇌와 신경계 활동의 변화, 운동능력, 기억과 그 밖의 기능들, 영양분 합성, 심근경색과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 우울증과 자살의 발생률 등과 관련되어 있다.
이 주파수의 파동이 온 지구에 꽉 차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수억 년의 세월 동안 진화해온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의 신체와 마음, 심장과 세포들이 그 주파수에 동조되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네덜란드의 한 연구팀은 생체장에 관한 175편의 연구 문헌을 연구하여, 동조된 양자 주파수의 파동이 생명체들의 생물학적 작용을 조절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들은 전자기의 장들이 신경계와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관찰된 생명 유지 효과의 배후를 이루며, 또한 최초의 생명과 양자의식 속에 생물학적 질서가 창조되게 한 도구 역할을 했을 수 있는 우주의 전자기 법칙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닐스 보어, 그리고 유진 위그너를 위시한 많은 선구자들에 의해 양자역학과 생물계, 그리고 의식 사이의 상응성이 발견됐다. 이 선구자들은 에너지, 공간, 시간, 의식, 물질이 제각기 분리된 실체들이 아니라 거대한 동시성의 춤사위 속에서 상호 작용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헤싱크와 메이어르는 인간의 전자기장이 "파동의 공명을 통해서 지구의 전자기장과 양방향으로 소통하고, 우주의 모든 의식 있는 존재의 감각, 지각,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는 우주적 의식을 이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처럼 모든 과학적 발견들 사이의 점들을 연결해보면 갑자기 동시성 현상이 전혀 신비롭지 않아 보인다.
주파수는 미시적, 거시적 사건들을 동시성 현상 속에서 동조시키는 공명기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보이지는 않아도, 이 주파수들은 마음과 물질, 양쪽에 모두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의식과 물질 세계의 모든 것을 형성하는 근원적 장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주파수 속을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동시성 현상은 처음 대할 때는 아주 신비로워 보이지만, 곧 그 배후에 탄탄한 과학적 이치가 존재함이 드러난다. 자발적 질서는 원자로부터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계에서 생겨난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동일한 주파수에 동조되어 있다. 우리는 꿈, 무아경, 명상, 최면, 깨달음 같은 변성된 의식 상테에서 국소적인 감각 저 너머에 있는 비국소적 정보의 장에 접속하기를 즐긴다.
장(fields)은 지구와 우리의 몸을 포함하여 온 우주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다. 슈만 공명과 뇌파처럼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에 공명이 일어나면 큰 것과 작은 것이 동시에 발화할 수 있다. 신체가 장에 동조되면 둘 사이에 쌍방향 소통이 일어난다. 정보가 마음과 물질을 포함한 모든 차원의 현실을 관통하여 이모스피어(감정권)과 사이코스피어(정신권)와 마그네토스피어(자기권)에 스며든다. 이것이 신비로워 보이는 동시성 현상의 모든 조각들이 둥시에 퍼즐처럼 맞추어질 수 있는 이치다.
20세기 초, 양자 시대 초창기의 위대한 과학자들은우리 인간의 국소적인 마음이 그 안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장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의 길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모든 사람은 인간보다 엄청나게 우월한 어떤 정신이 우주의 법칙 속에 현현해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양자물리학의 창시자인 막스 플랑크는, "모든 물질은 오로지, 원자 입자들을 진동하게 하고, 원자라는 이 가장 미세한 태양계가 한데 뭉쳐 있게 만드는 힘으로부터 비롯하고 존재한다. ... 우리는 이 힘의 배후에 의식과 지능을 지닌 마음의 존재를 상정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아원자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물질의 작용을 깊이 탐구해 들어갈수록, 과학자들은 그 전체를 동시에 안무하고 있는 힘의 존재를 감지하게 된다. ☜
논의할 중요한 것이 남았습니다.
의식이 뇌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
마음은 뇌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두개골 속에 갇혀 있는 국소적 마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비국소적 의식의 경험 사례가 무수히 많다는 것...
변성된 상태에서 우리의 의식은 감각의 경계 저 너머로 갈 수도 있고, 국소적 마음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과 같은 변성된 상태에 대한 과학논문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유체이탈이나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물리적 신체를 실제로 떠났던 감각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움직였고,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수술실 캐비닛 위의 물건이나 근처 건물의 옥상, 또는 그 자리에 없었던 가족들 같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술실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도 있었고, 자신이 전신마취 중일 대 사람들이 나눴던 대화의 자세한 내용을 정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로부토 돌아오면 그들은 변화합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자비롭고 사랑에 찬 우주를 믿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것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각 개인의 의식은 무한한 인식의 전지한 상태 속에 존재하는 것도 경험합니다.
1,300년 전에 쓰여진 ≪티베트 사자의 서≫는 비국소적인 의식 상태를 묘사합니다. 바르도 상태라 불리는, 삶과 죽음 사이의 세계에서 중음체(中陰體)는 감각기관의 매개 없이 세계를 지각할 수 있다. 중음체는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을 한 사람들이 묘사했던 의식과 마찬가지로, 견고한 물체를 통과하여 지나갈 수도 있고 일순간에 우주의 어떤 곳으로도 여행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베다 철학은 위대한 비국소적 우주의식이 우리 각자의 내면에 반영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비유하자면 양동이의 물속에 태양이 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 다른 양동이가 많이 있어도 그 모든 양동이 속에는 동일한 태양이 떠 있습니다.
비국소적 의식은 '초자연적' 또는 '심령적'이어서 이런 현상들에 대한 연구는 전통과학의 범위 밖이라는 신념은 최근에 와서야 생긴 것입니다.
의식은 뇌 속에 들어 있지 않고, 의식은 국소적 자아 너머 멀리까지 확장해나갑니다. 그리고 뇌는 그것을 일상적 경험으로 번역해주는 수신기와 같습니다.
일상의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의식은 국소적 현실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차를 몰고 출근할 때, 아이가 출전하는 야구게임을 보거나 강아지와 산책하거나 소득세 신고서를 작성할 때, 당신의 마음은 국소적 현실에 집중한다. 당신이 '나'로 인식하는 그것이 차를 몰고, 신호등을 보고, 주위의 자동차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비국소적 장은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당신의 마음은 그것에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꿈, 무아경, 명상, 신비적 황홀경, 또는 최면과 같은 초상적 상태에서 우리의 의식은 더 이상 국소적 현실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몸이나 국소적인 자아의 느낌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를 잊어버립니다. 바르도 상태에 있는 영혼처럼, 우리는 국소적 현실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우주의 먼 곳으로도 즉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밤에 꾸는 꿈과 같은 일부 초상적 상태들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경험입니다. 그밖에도 깊은 숲속에서, 혹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물을 튀길 때 마음이 선명히 깨어낫서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 등도 초월적인 경험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국소적 자아의 느낌은 문득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하나임을 느낀다. 신비적인 상태에서는 국소적 자아의 경계가 없어지고 우주와 하나가 됩니다.
뇌는 또한 국소적 현실과 비국소적 현실 사이를 이어줄 수 있습니다. 뇌는 우리가 비국소적 마음에 참여하도록 생물학적인 닻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주위로부터 오는 정보를 끊임없이 처리합니다.
이 정보의 흐름은 양방향이다. 백일몽에 빠져서 의식이 몸을 멀리 떠나 있을 때도 창문 밖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나면 놀라서 주의가 얼른 현재로 돌아온다. 밤중에 깨어 있는 의식의 울타리 너머 먼 곳으로 여행하는 꿈을 꾸다가도, 타는 냄새가 나면 뇌는 위험을 경고하여 우리를 서둘러 지상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의 뇌는 바깥 세계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마음에게 전달합니다.
외부 세계에 관여하고 해석하는 뇌의 능력은 인간인 우리의 기능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모든 주의를 바깥 세계와, 머릿속을 맴도는 국소적인 생각에만 쏟고 있으면 비국소적인 마음과 연결되어 황홀경을 맛보는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국소적인 의식과 현상에만 몰두한 인간의 경험은 주어진 의식의 한 귀퉁이밖에 맛보지 못하는 궁색한 경험입니다.
최근의 연구는 대규모의 장이 지구 주위에 존재해서 그것이 인간의 의식을 동조시키고, 동시에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뇌는 이같은 대규모의 비국소적 장들과 개인의 의식 사이의 믿을 만한 생물학적 매개체여서, 국소적 존재와 우주적 존재 사이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동조시킬 주파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백만 개의 음악 방송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처럼, 언제든지 고를 수 있는 수백만의 비국소적 신호가 넘쳐납니다.
어떤 신호의 일부는 두려움의 신호이고, 또 어떤 것은 사랑의 신호입니다. 우리는 무한히 다양한 신호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우리의 국소적 마음의 수신기를 거기에 동조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을 의식적으로 동조시킴으로써 멋진 경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쩌다 요행수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본 설정이 됩니다. 하루를 우주와 조화된 느낌으로 살지 말지를 우연에 맡기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명사을 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몇몇 방법을 통해 흐트러진 감정의 균형을 회복시킴으로써 더 넓은 시야를 회복하는 힘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에서 좋아하는 장소를 가거나 마음을 황홀하게 고양시켜주는 음악을 듣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뉴스를 끄고, 그 대신 영감을 주는 강사의 말과 에너지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방송 채널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국소적 현실로부터 우주심(宇宙心)의 고아한 비국소적 신호로 주의를 돌리도록 의식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초월적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초월적 상태는 우연히 마주친 행복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의도적으로 설저한, 업그레이드된 생활습관입니다.
우주의 흐름에 자신을 조율하는 것은 동시성과, 아름답고 고아한 품격과 우주의 지혜에 조율되게끔 마음을 여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 인간, 국소적 마음인 당신이 모든 마음의 배후에 있는 마음, 모든 의식이 일어나게 하는 위대한 비국소적 마음과 조율된 상태로 들어서면, 그 마음과 당신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면, 당신 개인의 국소적 마음은 더 이상 분리라는 환영에 의해 전체로부터 차단되어 고립된, 외로운 조각배처럼 행동하지 않게 된다.
대신 이제 당신의 내면에는 비국소적 마음이 흐르고, 당신은 흐름 안에 있다. 더 이상 당신은 국소적인 의식이 아니다. 이제 당신은 우주적 의식이다. 당신은 이제 영향을 받는 위치로부터 영향을 미치는 위치로 들어섰다.
창조의 지평이 당신에게 활짝 열려 있다. 가능성으로 넘치는 전망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당신은 자신이 우주의 지혜와 우주의 힘과 우주의 지성과 우주의 사랑과 하나임을 알고 있다. 의식의 그 자리로부터 당신은 지혜와 지성과 사랑의 삶을 산다. 당신은 사랑이므로 더 이상 사랑을 요구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갈망하지도 않는다. 더 이상 지혜를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당신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당신의 본성이 평화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당신은 우주의 모든 지혜와 평화와 사랑에 접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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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 시대를 걸쳐 신비주의자들이 경험하고 말해온 초월적인 경지요,
바로 이것이 정예의 운동선수들이 극치의 순간에 경험하는 몰입의 상태요,
바로 이것이 예술가들이 가장 영감 넘치는 작품을 창조할 때 들어 있는 상태요,
바로 이것이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자신을 잊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들어 있게 되는 상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항상 그 안에서 살도록 되어 있는 상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날마다 그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게끔 되어 있는 상태다.
어떻게 하면 이 상태로 들어가 삶을 가능성의 즐거운 놀이터로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그저 의식을 당신에게 가능한 최고의 주파수에 조율하십시오.
♣ 고요히 앉아서 가장 깊은 영감을 주는 글들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생각하거나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전에 자신을 조율하십시오
♣ 당신이 알고 있고 당신에게 가능한 최고의 진동 주파수에 자신을 조율하십시오.
♣ 당신이 의식하는 가장 고양된 에너지장에 자신을 조율하십시오.
날마다 하루를 시작할 때, 가능한 최상의 에너지장에 자신이 늘 늘 조율되어 있게 하는 데에 의식을 사용할 때 당신은 몸 안에서 뭔가가 전환된 느낌을 느낄 것입니다.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가는 듯한, 변성된 상태로 들어서는 듯한 몸의 감각을 느낄 것이다.
아침마다 우주와 하나인 자신을 스스로 창조하는 그 공간 속에서, 당신이 하는 생각은 달라집니다. 취하는 행동도 품는 열과 기대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삶과 창조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은 드넓어집니다. 당신이 인식하는 가능성의 장은 무한해집니다. 인간인 당신의 정체, 곧 자아의 느낌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자신을 우주와 하나로 여기는 당신은 평정심과 권능과 평화와 기쁨과 사랑, 그리고 풍요의 느낌을 안고 하루를 엽다. 당신은 청재적 창조성에 자신을 동조시켜 우주심의 현실장으로부터 가져온 높은 감각으로써 자신의 외부 세계를 빚어냅니다.
우주와 하나인 당신은 우주와 하나인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됩니다.
우주와 하나인 당신은 또한 우주와 하나인 모든 힘과 자연 속의 현상과 하나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전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내릴 시간입니다. 조율할 것인가, 조율하지 않을 것인가? 바로 지금 조율을 선택하십시오!
여러분 몸속의 물질이, 여러분의 국소적인 마음이 아니라 여러분의 비국소적 마음을 위해 일하는 도구가 되게 하십시오!
당신의 뇌와 신체의 신경회로를 제어하는 비국소적 마음은 새로운 뇌와 신체를 창조해낼 것입니다. 그것은 세포를 만들어내고 DNA를 재생할 것입니다. 연결의 장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의 동조 상태를 만들어낼 것이며 당신의 영향권 속의 가능성의 문을 열어젖힐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에 있으면 그 두려움이 두려움을 낳습니다. 두려움의 사고장은 두렵게 만드는 외부의 자극을 찾습니다. 두려운 마음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가능성의 파동으로부터 두려운 현실을 응결시킵니다. 당신은 문제가 다른 사람들이나 기업, 정부, 또는 임의의 사건으로 인해 생겨나서 '저 밖의' 환경 속에 있다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당신은 당신 주변의 물질 공간을 형성시키는 사고장(思考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긍정적인 방식으로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식으로도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지닌 창조력은 깊고도 깊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절하게 됩니다. 마음의 기능을 가장 높은 가능성에 동조되어 있게 하는 데 필요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창조력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내부에 어떤 전기적, 자기적인 힘을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생각이 지닌 창조력을 이해하면 사랑과 친절과 창조성의 사고장에 주파수를 맞추어 그 창조력을현명하게,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생각이라는 원천에서 말이 흐르고 그 말에서 당신의 운명을 만드는 행동이 태어납니다. 오늘 이 순간 당신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매 순간의 결정 생각 의식적인 선택 하나하나가 새로운 현실로 향하는 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대 과학은 신비주의자들이 수천 년 동안 알고 있던 사실 즉 우리는 근본적으로 양자적 존재라는 것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단지 우리의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 우주의 구조 자체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양자장과 동조할 수 있게 해주는 내면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에 도전하는 심오한 내면의 여정을 준비하십시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볼 때 당신은 진정 무엇을 봅니까? 당신의 눈은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물리적인 몸을 봅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과학에서 당신 몸의 99%가 빈 공간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원자 수준에서 당신은 사실상 텅 비어 있으며 순수한 에너지장 무한한 가능성의 장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 감정 의식은 단지 당신 뇌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광대한 양자 가능성의 바다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에너지장입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과학자들이 양자 입자를 관찰할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입자는 관찰될 때 특정 지점에만 물질화됩니다. 그 전에는 중첩 상태 즉 동시에 가능한 모든 곳에 존재하는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이제껏 살펴보았습니다. 관찰자인 당신이 현실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당신은 의식적인 관찰자, 현실의 능동적인 창조자가 되고 있습니다.
양자장에서는 당신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그것은 미래가 당신의 과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그곳은 당신의 생각과 고양된 감정이 가능성의 파동을 유형의 경험으로 붕괴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입니다.
힘을 가진 것은 당신의 존재 상태입니다. 생각과 감정의 일관성입니다. 외부 세계가 아직 당신의 새로운 선택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고양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입니다. 진정으로 영감을 받았을 때 깊은 감사나 무조건적인 사랑의 상태에 있을 때 주변 세상이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더 잘 받아들이고 기회가 더 자주 나타나며 심지어 육체도 더 가볍고 활기차게 느껴집니다. 이는 고양된 감정이 더 높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당신의 에너지장을 확장하여 더 높은 의식 상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첫 번째 양자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당신의 모든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자동적으로 어제와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똑같은 생각 똑같은 감정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뇌는 계속해서 똑같은 신경회로를 작동시켜 똑같은 신경전달 물질을 생성하고 이는 똑같은 감정을 생성하며 이는 다시 똑같은 생각을 강화합니다. 무한 반복입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 자동 루프를 멈추게 됩니다. 이전의 성격이라는 자동 조종 장치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진화를 주도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장 강력한 환경은 무엇일까요? 당신의 생각과 감정입니다.
당신 안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존재합니다. 모든 자질이 이미 당신의 양자장 안에 존재합니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은 이러한 존재 상태에 접근할 수 있는 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새로운 존재 상태가 물리적 현실에 나타나기 전에 그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부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다르게 느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양자장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자신감이라는 감정을 생성해야 합니다.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면, 지금 풍요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사랑받고 싶다면 지금 사랑을 발산해야 합니다.
당신의 감정은 양자 가능성의 파동을 유형의 경험으로 붕괴시키는 연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의식해야 합니다.
아침에 마음을 지배하는 자동적인 생각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정체성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는 감정은 무엇입니까?
이제 광대한 가능성의 바다 가장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 앞에는 당신의 모든 가능한 버전이 있습니다.
더 현명하고 더 사랑스럽고 더 강력한 버전입니다.
당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한계를 이미 초월한 버전입니다. 이러한 버전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그 버전에 당신이 어떻게 호흡하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도전에 대응하고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창조하고 어떻게 세상에 봉사하는지 느껴보십시오.
당신 몸의 모든 세포가 이 새로운 선택의 에너지로 진동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소수의 스승만이 공유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외부 세계가 아직 변하지 않았더라도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 인내심을 갖기는 쉽습니다.
진정한 힘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때 인내심의 에너지를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이 새로운 존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순간 당신은 새로운 타임라인을 만들게 됩니다.
새로운 현실이 당신 주변에 물질화되기 시작합니다.
마법이 아니라 양자우주의 기본 법칙에 의해서입니다.
당신은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인지를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하루에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의식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선택하는 힘을 이해했으니 두 번째 양자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나는 어떤 현실을 만들고 싶은가?' 이 질문은 무한한 가능성의 장으로 직접 연결되는 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근본적인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현재 당신의 현실은 과거의 모든 생각 감정 선택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당신이 갖는 모든 생각을 우주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붓이라고 생각해보면 당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그 그림의 다른 색과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대부분은 똑같은 색 즉 과거의 똑같은 감정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매일 똑같은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현실을 만들고 싶은가?' 라고 질문할 때 당신은 새로운 붓, 전에 사용해 본 적 없는 색을 집어 들고 있는 것입니다. 양자장에 완전히 다른 것을 그릴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 창조에 대한 당신의 이해를 완전히 바꿔줄 사실이 있습니다.
단지 원하는 것을 시각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미 그 새로운 현실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야 합니다. 양자장에는 '~~~이 될 것이다'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다'만 존재합니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생각과 그에 상응하는 고양된 감정을 결합하면 양자장에 매우 구체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으며 양자장은 그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반응합니다. 실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삶의 풍요로움을 만들고 싶다면 단순히 돈이나 성공을 시각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미 완전한 풍요로움 속에서 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떻게 호흡하고 어떻게 걷고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세상에 봉사할까?' 라고 자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부분은 새로운 정상 상태가 될 때까지 그 주파수를 충분히 오랫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몸은 말 그대로 이 새로운 현실이 이미 존재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아십니까? 당신의 몸은 실제 경험과 감정을 담아 생생하게 상상한 경험의 차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현실의 감정을 생성하고 유지할 수 있게 되면 몸은 마치 그 현실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단백질 호르몬 화학 물질을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어떤 현실을 만들고 싶은가?' 라고 질문할 때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세부사항을 보고 느끼고 그 새로운 현실의 모든 측면을 에너지장에 통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새로운 현실이 물리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그 현실에 대해 더 많은 감사를 느낄수록 현실이 나타날 조건을 더 빨리 끌어당깁니다. 예상되는 감사는 구현 과정을 가속화하는 양자 자석과 같습니다.
하지만 흔히 저지르는 함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새로운 현실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만들고 싶은 특정 현실을 정의할 때 당신은 양자장의 특정 주파수에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주파수가 당신의 삶에 나타날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합니다.
한 잔의 커피를 주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커피를 원한다는 것은 알지만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무수히 많습니다. 친구가 커피를 마시자고 초대할 수도 있고 커피숍 상품권을 받을 수도 있고 출근길에 새롭고 멋진 커피숍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만들고 싶은 현실을 명확하게 정의할 때 그 현실이 어떻게 나타날지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에 열린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당신의 유일한 임무는 그 새로운 현실에 상응하는 생각과 감정이라는 주파수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가장 심오하고 변화를 가져올 세 번째 양자 질문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무엇을 놓아주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우리 스스로에게 에너지 수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양자메스와 같습니다. 새로운 현실을 바라거나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새로움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며 이는 낡은 것을 놓아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에너지장을 물 한 컵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컵이 탁한 물, 즉 당신의 낡은 감정, 제한적인 신념,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맑은 물로 채울 수 있을까요? 먼저 컵을 비워야 합니다.
신경과학이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은 특정 감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신의 과거의 모든 경험은 당신의 몸에 화학적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마치 100그라운드에서 끊임없이 실행되는 프로그램처럼 당신의 선택 반응 인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부분은 저장된 이러한 감정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실제 화학적 중독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몸은 말 그대로 당신이 규칙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변화하기로 결심하더라도 몸이 우리의 노력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나는 무엇을 놓아주어야 하는가?'라고 질문할 때, 당신은 심오한 감정 해독 과정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몸에 더 이상 이 낡은 화학 물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놓아준다는 것은 억누르거나 부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면 에너지 장에 더 깊이 묻어버릴 뿐입니다.
놓아준다는 것은 연민으로 바라보고, 교훈에 감사하고, 의식적으로 놓아주기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강력한 비밀이 있습니다. 당신이 품고 있는 모든 감정에는 메시지, 당신을 위한 선물이 담겨 있습니다. 두려움은 당신에게 용기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어 하고, 분노는 한계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어 하며, 슬픔은 자기애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어 합니다. 메시지를 존중하면 감정을 놓아주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제가 명상할 때 사용하는 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한적인 모든 감정을 에너지장의 구름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판단하지 말고 그 구름을 관찰하십시오. 무슨 색이고 얼마나 밀도가 높고 온도는 어떻습니까?
이제 당신의 모든 날숨이 그 구름을 서서히 녹이는 부드러운 바람과 같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지만 감정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나는 어떤 신념을 놓아주어야 하는가?' 라고 자문하십시오. 모든 감정은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 인생은 투쟁이다, 성공에는 고통이 따른다' 와 같은 말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설치된 프로그램이며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깊이 파고들어 '나는 어떤 정체성을 놓아주어야 하는가?' 라고 자문하십시오.
우리는 종종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과거의 자아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피해자인 나',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하는 나', ' 결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나' 말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은 어느 시점에서는 유용했지만, 이제는 당신의 진화를 가로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한계뿐만 아니라 조상의 패턴도 놓아줄 수 있습니다. 당신의 DNA에는 여러 세대의 감정 신념 트라우마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패턴을 의식적으로 놓아주기로 선택할 때 당신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혈통을 치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놓아준다는 것은 한 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집을 청소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청소하고 영원히 깨끗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진화에 대한 메일의 약속입니다. 그것은 변화의 신성한 순환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칠 때마다 새로운 의식 수준 새로운 가능성의 단계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제 변화시키는 힘을 이해했으니, 일상생활에 어떻게 통합할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적용하지 않는 지식은 단순한 정보일 뿐이며 우리는 단순한 정보를 위해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해 여기 있습니다.
이 질문들을 활용하기에 가장 강력한 순간은 바로 깨어난 직후입니다. 그 이유는, 아침에 첫 몇 시간 동안 뇌는 여전히 세타파 즉 깊은 명상 중에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상태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식과 잠재의식 사이의 장벽이 가장 투과성이 높은 때입니다. 따라서 휴대전화를 집어들거나 외부 세계와 연결하기 전에 양자장과 연결하십시오. 조용히 앉아 심호흡을 하고 이 세 가지 변화시키는 질문으로 신성한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공유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질문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먼저 고양된 감정 상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명확한 의도와 고양된 감정을 결합하면 제가 에너지 시그니처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양자장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고양된 상태를 만들 수 있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십시오. 원하는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살아있다는 단순한 기적에 대한 감사 숨 쉴 수 있는 공기에 대한 감사 혈관을 흐르는 피에 대한 감사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의식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 감사가 당신의 마음을 확장하고 이 에너지가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낄 때,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첫 번째 질문을 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고양된 버전의 자질을 느껴보십시오.
단지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 자질을 구현하십시오. 그런 다음 이 고양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는 어떤 현실을 만들고 싶은가?' 라고 질문하십시오. 그 현실을 보고 느끼고 모든 세부사항을 음미하십시오. 마치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당신의 몸이 그 새로운 현실의 감정을 경험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전히 이 확장된 상태에서, '나는 무엇을 놓아주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하십시오. 판단하지 않고 무엇이 떠오르는지 관찰하십시오. 지금까지 도움이 된 것에 감사하고 의식적으로 놓아주기로 선택하십시오.
아침 명상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하루 종일 이 질문들을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도전에 직면했을 때 잠시 멈추고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고 자문하십시오.
중요한 회의 전에는, '여기서 나는 어떤 현실을 만들고 싶은가?' 라고 자문하고,
무거운 감정이 솟구칠 때는, '이 순간 나는 무엇을 놓아줄 수 있는가?' 라고 자문하십시오.
❚ 살전 5:16-18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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