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시는 예수님
요 1:35-42
세례 요한은 오실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제자들은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과 제자들, 그리고 우리성도들의 소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먼저, 35-37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며 말하자,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세례 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다고 말씀합니다.
요 1:35-37 /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자기 스승의 뜻을 따라 예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는 세례 요한이 제자에게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 곧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에게 나를 떠나 예수님을 따르라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반응을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분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죄를 꿰뚫어보시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고 대적했습니다.
둘째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삶의 변화로의 결단을 내리지는 못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자 열심을 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삶의 열매로까지 맺지는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그를 구원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즉시 행동에 옮긴 사람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오늘 본문의 제자들인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어떤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그들이 결단하게 된 것은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신뢰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세례 요한의 두 제자에게 “무엇을 원하기에 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요 1:38 /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그런데 예수님의 질문에 두 제자는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는 다소 엉뚱한 답을 합니다. 이 말을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선생님께서 계시는 곳이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와 보라" 말씀하십니다.
요 1:39 /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와 보라" 하셨을 때,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라는 말씀에서도 이를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분, 아무 목적도 없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기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예수께서 두 제자의 속마음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두 제자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2. 이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경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 1:40-41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안드레'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41절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자기 형제 시몬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사적으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전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도 안드레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형제 시몬에게 가서 말하라고 가르치거나 명령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다급하게 이 사실을 전한 것은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복된 소식을 지체하지 않고 가장 사랑하는 그의 형제 시몬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들이 가장 고대하던 일이 일어났거나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가장 먼저 누구에게 전하고 싶습니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안드레도 이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형제 시몬에게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을 데리고 오자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2 /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게바는 본문에 해석된 것처럼 베드로, 곧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한낱 어부에 지나지 않았던 시몬에게 베드로, 곧 교회의 반석이 될 것임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로부터 시몬은 베드로로 불리게 됩니다.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과거는 물론, 현재와 미래까지 세세하게 아십니다.
성경은 이를 빗대어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택하셨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것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 구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더하여 주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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