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해진 사도들
행 4:13-22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옥에 갇힌 상태에서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태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도들의 모습은 전혀 위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해 본다면 바로 '담대함'일 것입니다.
심문을 받고 있지만, 오히려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행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사도들의 거침없는 유창한 설교, 물러서지 않는 담대한 용기, 접근할 수 없는 영적인 권위... 이런 담대함이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요? 물론 직접적인 동기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은 것일까요?
권능의 성령님께서 함께하실 때, 성령님의 임재 안에서 하는 사람의 말은, 보통의 인간 자아에서의 말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선포되는 말들의 권위와 능력과 깊이가 듣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셨을 때 바로 그 차이가 공회원들에게도 느껴진 것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 제일 높은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 예수를 죽인 사람들에게조차 그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할 때 이 '범인'은 '평범한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여기서 학문 없는 평범한 사람이란, 정통 랍비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말씀이 선포되니 거기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공회원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어디서 많이 듣던 말씀인데?' 하는 느낌이 확 들면서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이 두 달여 전에 죽인 예수님의 향기가 이들에게서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했던 베드로와 제자들 그리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숨길 수 없는 예수님의 향기가 났고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전문적인 교육도 못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말하고, 능력이 나타나는지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생 자기들은 성전에서 교육 받고 훈련 받은 전문가인데, 자기들도 못하는 일을 시골 어부 출신 베드로와 요한이 능력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날 때부터 다리를 못 쓰던 사람이, 누가 시켜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자기 발로 찾아와, 자신이 걷게 된 것을 사람들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행 4:14 /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종교지도자들의 방해와 위협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찾아온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정말 확실하게 체험한 사람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여기 있었기 때문에 이 재판은 처음부터 명분을 잃어버린 재판입니다. 할 말이 없는 재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이 낫고, 그것도 평생 다리를 못 쓰던 사람이 나아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더 능력 있는 증거였습니다. 예수님의 살아 계심이, 이론이 아닌 삶으로 확실한 증거 되어 나타났는데, 누가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 행 4:15-16 /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지금 부인할 수 없는 증인이 이 자리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정말이구나' 하고 신뢰하는 자리로 나오지 않고 오히려 사도들을 잡아넣을 명분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가 있으라"고 한 다음, 자기들끼리 의논합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렇게 똑똑하다고 자부하고 권력이 있으며 종교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이 사람들에게도 이 상황은 아주 곤혹스러웠던 것입니다.
당연히 자기들 마음대로 하면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쳐 넣고 사형을 시키고 싶었겠지만, 온 백성이 지켜보고 있고 확실한 증인까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풀어주자니 자기들을 계속 위협할 것 같아서 두렵고,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잡아넣자니 백성들이 다 들고 일어날 것 같고, 굉장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부인할 수 없는 증거로 병 나은 사람이 거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이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중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들은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지도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예수를 전하는 말을 하지 말라고 위협합니다.
❚ 행 4:17-18 /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이들은 이 기적의 메시지가 퍼져 나갈수록 자기들의 입지가 흔들린다 생각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소식이 퍼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던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최고 관심사는 '진리인데 막아야 한다. 진리가 못 퍼지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고작 생각해낸 해결책이 사도들을 위협해서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전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것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타조가 사냥꾼이 쫓아오면 모래에 머리를 박고서 안 보이니까 '이제 위험이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어떻게 하면 자기들이 유리한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기들을 인정할까'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능의 성령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하셨습니다.
1. 성령님께서는 두 사도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19절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지금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예수님을 부인하고 숨고 도망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는 자신의 목숨이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담대해졌습니다.
불과 두 달여 전에 작은 여자아이가 와서 "당신도 저 사람과 같이 있었죠?"라고 했을 때, 베드로가 벌벌 떨면서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두 번째 또 부인했고,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아니라고 부인했던 베드로가, 바로 예수님을 잡아 죽였던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합니까?
❚ 행 4:19 /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모든 삶을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자신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 곧 자기들을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2. 성령님께서 진리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 행 4:18-19 /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18절에서 공회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공회원들의 경고에 대하여 사도들은 공회원들에게 되묻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우리가 누구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까? 당신들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 합니까? 판단해 보세요!"
사도들은 공회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공회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공회원들에게 "너희들이 영적 지도자가 아니냐? 그러면 잘 판단하라.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자꾸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판단을 해보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정치 논리로 판단하는 게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정치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게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결단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3.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만을 말하겠다고 선포합니다.
❚ 행 4:20-21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사도들의 보고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3년 동안 예수님께 진리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분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것과 부활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전에 제자들은, 보고 들었으나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신 후, 그들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힘 있게 전파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담대한 증인이 됩니다.
4. 마침내 성령님께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보여 주십니다.
❚ 행 4:22 /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사도들은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았던 걸인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사도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충만히 임하셨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병 나은 사람이 사도들과 함께 증인으로 옆에 서 있었습니다. 이는 대단한 용기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만류했을지도 모릅니다. "가면 너도 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자진해서 나갔습니다. 엄청난 용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40이라는 늦은 나이에 체험한 이 사람은, 증인의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용기가 있었기에 공회원들이 시비를 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치유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권능을 주셨을 뿐 아니라, 권능의 성령님께서 사도들 안에 함께하고 계시며, 담대히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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