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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북 리뷰, 글 쓰는 방식을 알게 되다!

by tat tvam asi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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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하고, 글을 쓰게 하며,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이루어 내도록 도와주는 책을 만났다!

 

 

-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나탈리 골드버그가 나의 귀에 속삭이듯 말해 준 내용의 일부를 기록해두고 있다... 나를 위해...

 

오늘은 120p. 부터...

 

 책 속으로 ☆

 

120p.  '그냥 '꽃'이라고 말하지 말라'

 

고유성을 허락하라. 그냥 '과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사물에도 인간과 똑같이 이름이 있다. '창가의 꽃'이 아니라 '창가의 제라늄'으로 묘사하는 편이 훨씬 좋다. '제라늄'이라는 단어 하나가 훨씬 구체적이고 생생한 영상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그 꽃의 존재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도와준다. '창가의 제라늄'이라는 단어를 읽자마자 우리는 창문 옆의 정경을 눈에 보이듯 그리게 된다. 새빨간 꽃잎, 원형의 초록 잎사귀 햇빛을 향해 온 몸을 세우는 꽃...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는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을 쓰라'고 말했다. 

 

우리들 코 앞에 있는 것을 세상에 알려 주는 일,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그냥 '데이지 꽃'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쳐다 보고 있는 '그 데이지 꽃'을 말해야 한다. 

 

사물들 속으로 파고들라. 새, 꽃, 치즈, 트랙터, 자동차, 비행기... 이 모든 것의 이름을 배우라. 작가는 건축가이자 프랑스 요리사이며, 농부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작가는 이런 것 중 어느 것도 아니어야 한다. 

 

125p.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이 균형을 잡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130p. 카타기리 선사는 말했다. "찻잔 하나에도 아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이 찻잔 또는 바위 언덕, 하늘이나 개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그 대상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 대상들에게 선의의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두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글쓰기를 통ㅎ해 초월적인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된다. 

 

139p. '현상을 넘어 사물 속으로 파고들라'

 

자서전을 쓸 때도 엄연한 사실들만 열거해서는 안 된다. "나는 6학년이다. 나는 소년이다. 나는 오와토나에 살고 있다. 나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다." 이런 글이 아니라 진짜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해주라. "나는 창문에 낀 서리이며, 젊은 늑대의 울부짖음이며, 가느다란 플잎입니다." 이것이 훨싼 더 진실하게 들리지 않는가.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려라. 당신이 쳐다보고 있는 모든 사물들 안으로, 거리 속으로, 물 잔에 담긴 물 속으로, 옥소소 밭 속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라.

 

당신이 느끼는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다시 지상의 삶으로 돌아온다. 위대한 비전을 갖춘 작품만이 남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또 다시 책 속으로(물론 좋은 책 속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지 밝혀 주는 작품을 읽고 또 읽어라.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키우고 다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거듭 체험하게 된다. 

 

142p. 어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동물처럼 행동해 보자.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들을 하나씩비축해 두자. 어떤 방법이든지 상관 없다. 일상의 찌꺼기에서 발굴해내든지, 도서관을 찾아가든지, 정신의 정원으로 나가든지 마음대로 하라.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켜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 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켜라. 

 

자신이 만들어낸 질문에 스스로 대답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질문 하나를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잘된 일이다. 깊은 단계로 내려가 그 질문에 답을 해 주어야 한다.

 

"내가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건포도 빵 세 개를 먹고, 하늘색을 기억하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왜 어젯밤 그렇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을까?" 왜냐하면 저녁에 비둘기 요리를 먹고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불행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만든 질문에 답을 못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은 떨쳐 버려라.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문장을 훨씬 힘차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158p.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161p.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햅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 보라. 당신에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그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글의 형태와 장르에 상관 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을 단 한 번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 

 

163p.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아이들이 빈 시리얼 상자를 흔들어댄다. 당신 지갑 속에는 1달러 25센트만 남아 있다. 남편은 구두가 안 보인다고 불평이다.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고, 당신은 채워지지 않는 백일몽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세상은 원자폭탄의 위협을 받고, 환경오염으로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바깥은 영하 10도이고, 코는 자꾸 막혀 오는데 당신에게는 저녁 식탁에 올릴 음식을 살 돈도 없다. 발이 퉁퉁 붓고, 치과의사와 진료 약속을 해야 하고, 개는 바깥으로 나가자고 성화이고, 냉동실에 들어 있는 닭을 꺼내 해동시켜야 하고, 보수턴에 있는 사촌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백내장 수술을 받을 어머니도 걱정스럽고, 수퍼마켓에서는 참치 통조림을 세일하고 있고, 당신은 일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방금 구입한 컴퓨터를 풀고 설치도 해야 한다. 또, 당신은 오늘부터 도너츠를 끊어 버리고 양상추를 먹기 시작해야 한다. 제일 아끼던 만년필은 온데간데 없이 보이지 않고, 고양이 새끼는 최근에 쓴 습작노트를 발기발기 찢고 있다.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기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나무 둥치만 있는 숲속에서, 혼자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사박의 바위 위에 앉아서, 당신 집 앞 모퉁이에 서서, 현관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서재에서, 점심 먹는 계산대에서, 복도에서, 실업자 고용 사무실에서, 치과 대기길에서, 공항에서, 텍사스에서, 캔사스에서, 과테말라에서, 콜라를 홀짝이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중간중간에도 당신을 글을 써야 한다.

 

최근 뉴 오를렌스에 갔다가 우연히 그 근처의 공동묘지에 들르게 된 적이 있다. 태양은 아주 뜨거웠다. 나는 노트를 꺼냈고, 시멘트 묘비 그늘에 기대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벽해." 내가 말한 완벽함이란 물론 물리적 시설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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