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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자신의 목소리가 지닌 순수한 힘을 활용하고 심오한 수준에서 울려 퍼지는 작품을 만들라 -

by tat tvam asi 2024.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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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Get Down to the Bone and Write It)"는 작문 연습에 대한 통찰력 있는 접근 방식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교사인 나탈리 골드버그(Natalie Goldberg)가 만든 문구이다. Goldberg의 철학은 가식을 없애고 글의 핵심에 도달한다는 아이디어에 중점을 두고 있다내면의 생생하고 진정한 목소리를 활용하고 이를 억제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다.

 

작가가 자기 검열이나 편집 없이 자신의 생각을 페이지에 흐르게 하는 '쓰기 연습' 또는 '자유 쓰기'  과정을 통해, 더 깊은 창의성과 통찰력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내 생각과 경험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 삶의 골수를 깊이 파고들어 진실이 있는 곳에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상적인 층위를 걷어내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의 본질을 정직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직함, 단순함, 깊이...

 

저자가  선불교에서 영감을 얻어 글쓰기에 영적인 통찰력을 엮었다면, 나 역시 기독교적인 베이스에 실용적이고 철학적이며, 창의적인 깊은 차원을 엮을 수 있지 않을까...

 

진정성을 수용하고, 경험의 깊이를 탐구하며, 흔들리지 않는 정직함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접근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 자신의 목소리가 지닌 순수한 힘을 활용하고 심오한 수준에서 울려 퍼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책 속으로 ☆

 

166p.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글쓰기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될 때, 조금만 더 자신을 밀고 나가 보라. 당신이 종점이라 생각하는 곳이 실은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끝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멈추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 나갔을 때, 당신은 제어할 수 없는 아주 강한 감정과 만나게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시간 제한을 무시하고 적오 내려가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자기통제를 포기해야만 하는 정말 두려운 요구가 뒤따른다. 하지만 분명히 약속하건데, 당신에게는 충분히 그 반대편을 뚫고 올라가 나중에는 노래를 부르며 빠져 나올 능력이 있다. 물론 노래를 부르기 전에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지만, 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저 당신의 느낌이 가는 대로 계속 글을 쓰는 것만은 잊지 말라.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나는 최고의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낀다.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날 수 없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심지어 당신이 자신을 충분히 밀고 나갔고 철저하게 자아가 깨졌다고 느낄 때조차도, 조금만 더 앞으로 밀고 나가라. 중간에서 멈추지 말라. 이 순간은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나중으로 미룬다면, 지금 작품을 끝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멀리,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 

 

169p. '삶을 사랑하라'

 

여기는 그리스의 어느 섬이다. 에게 해와 해변의 싸구려 여관들... 나는 서른 여섯 살이고, 나와 같이 온 친구는 서른아홉이다. 우리들 모두 이번이 첫 유럽 여행이다. ...

 

나는 결국 혼자 있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산책을 한 다음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이 하나씩 있다. 나의 두려움은 고독이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다. 작가는 많은 시간을 홀로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또한 사회라는 틀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아침이면 일터로 향하거나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분주하다. 예술가는 제도가 만들어낸 사회의 바깥에서 살고 있다. 

 

나는 언제나 나의 한계를 넘어 계속 밀어붙이고 싶다. 그래서 그날 하루를 혼자서 외롭게 보내기로 결정한다. 정오. 아주 뜨겁다. 이곳에서는 한낮이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나는 해변으로 나가지도 않는다. 갑자기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멍한 기분이 든다. 내가 방향을 잃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질 때마다 인생 전체가 의문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낀다. 이런 건 아주 고통스럽다. 

 

이런 기분을 잘라내기 위해,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나탈리, 너는 글을 쓸 계획이었어, 당장 써야 해. 멍청이라 해도 좋고, 외로워도 좋아."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한다. 나는 가까이 보이는 교회, 항구에 정박한 보트 또는 내가 앉아 있는 카페에 대해서 쓴다. 이것은 결코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친구가 언제 돌아올지도 걱정된다. 다섯 시가 되었는데도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어를 전혀 모른다. 나는 완벽한 외톨이며, 주변 환경에 대해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옆 식탁에는 네 사람의 노인이 식탁에 쌓아 둔 초록색 콩 껍질을 까고 있다.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노인 하나가 자기 왼편에 있는 노인에게 무어라 시비를 건다. 선창으로 고개를 돌리면 검은 옷을 입은 노파가 허리를 굽히고 긴 스타킹을 끌어 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해변으로 나가 어슬렁거리다가 백사장에 앉아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을 읽기 시작한다. 해가 지고 있다. 갓 잡은 싱싱한 참치를 팔고 있는 선술집이 모인다. 나는 내가 있는 환경과 접축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친구가 몹시 보고 싶지만, 이런 약하고 겁에 질린 마음을 모래와 하늘, 바다를 벗삼아 물리친다. 나는 해안가를 따라 다시 걷는다.

 

파리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내 친구는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로 말하면, 길 잃는 것 따위는 겁내지 않는 사람이다. 설령 길을 잃는다 해도,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아무 목적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쏘다니거나, 현재 위치가 어딘지 모른 채 여기저기 방황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들판 속을 헤매며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느 외로움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덤빈다 해도, 두려움에 갇혀 버리거나 존재론적 무의미로 회피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다만 지도를 꺼내 내가 가야 할 길을 확인할 뿐이다. "왜 나는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가?" 모든 것을 향해 이 질문을 던지며, 나는 나 자신을 심연 속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하얀 종이는 앞에 있는데, 마음은 불확실하고 사고는 연약하기만 하고 감각은 무디고 돈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조절력을 잃어버린 글쓰기, 결과물이 어디에서 나올지 확실치 않은 글쓰기는 무지와 암흑 속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 이러한 무지와 암흑의 장소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결국에는 우리를 깨우쳐 주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만든다. 이런 두려움의 회오리바람에서부터 진정한 천재의 목소리가 탄생되는 것이다. ......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예전에는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지게 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 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174p. 지금 세상에 나온 책들 가운데 출판조차 못했을 뻔한 책이 아마 수천 권도 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계속 가야만 한다는 진실이 있을 뿐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쓰라! 설령 그 글이 출판되자 않더라도 또 다른 글을 계속해서 쓰라. 훈련은 당신의 글을 점점 더 훌륭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

 

의심과 의혹은 고문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단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준다. 의심은 굽히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이다.

 

당신은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신 글의 문제점만 집어 내는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다.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 갉아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176p.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글쓰기 과정은 인생과 생명력의 끊임없는 자원이다. 때때로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지리멸렬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면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탈리, 넌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거야. 너는 글을 써야 해."

 

만약 내가 제대로 머리가 돌아간다면, 그 말을 듣는다. 만약 자기파괴적이거나 게으름뱅이라면, 그 말을 듣지 않고 우울증에다 계속 힘을 키워갈 것이다. 내가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인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언제나 나를 유연하게 해주었고,  참된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던 순간들과 만난다. 심지어 내가 이른 아침 자동차로 붐비는 고속도로를 묘사하고 있을 때도, 나는 그 혼잡한 도로에 대한 글 속에서 평화로움과 나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이다. 아침이면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고속도고 위를 달린다."

 

고어 비달(Gore Vidal)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 

 

178p.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카타기리 선사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백 미터 장대 위에서 발을 떼라."

 

정말 겁나는 말이 아닌가? 장대 꼭대가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태로운데, 이제 거기에서 발을 떼라니. 하지만 더 나가기 원한다면 그 끄트머리에서 발을 떼야만 한다. 성공적인 글을 썼다고 해서 결코 쉴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실패한 글을 썼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말 좋은 글을 써냈어."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새로운 시간이다. 다른 것을 써야 한다.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또는 실패를 맛보았다고 해서, 글을 쓰지 않고 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떤 항솽에서건 당신은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만이 당신을 건강하게 또 살아 있게 지탱해준다. 사실, 백 미터짜리 장대에서 발을 뗀다고 해서 꼭 떨어진다는 법은 없다. 어쩌면 당신은 하늘을 날게 될지도 모른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은 없다. 그러니 계속해서 글을 쓰라. ......

 

만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져간다. 이거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는 기가 막힌 기회다. 당신은 언제라도 다시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 이전의 실패는 모두 놓아 버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무언가 위대한 글을 쓰라. 아니면 실패한 후에 느끼는,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에 대해서라도 쓰라. ......

 

모든 순간이 새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쓰고 싶다면, 당신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에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순간이니까.

 

181p.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질문 안에 모든 대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왜냐하면 나는 얼간이니까.

 왜냐하면 나는 어린 소년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으니까.

● 내가 글을 쓰면 어머니가 좋아할 테니까.

 아버지가 나를 싫어하게 만드는 방법이니까.

 내가 하는 말을 아무도 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내 진화와 발전의 시작이므로.

 위대한 소설을 써서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서.

● 왜냐하면 나는 신경증이 있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천재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무언가 할 말이 있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할 말이 전혀 없기 때문에.

 

글쓰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하는가?"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그 대답은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분명하게, 단정적인 진술로 하라. 모든 진술이 100퍼센트 진실일 필요는 없으며, 하나의 문장이 나머지 문장들과 모순되어도 상관없다. 아니, 거깃발로 꾸며서라도 계속 끌고 가보라. 설령 왜 글을 쓰려는 것인지 모른다 해도 글을 쓰는 이유를 아는 것처럼 대답해 보라. ......

 

우리의 글 속에는, 그것이 쓰여지던 순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의 환경이 모두 용해되어 있다. 

 

'글은 뭐하러 쓰는 거야?' 식의 닳아빠진 잔소리가 다시 들려오면, 당장 종이를 꺼내 대답을 가득 적어 보라. 하지만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대답은 안 된다.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유가 가능하다. 당신은 문체를 향상시키기 위해, 당신은 얼간이이기 때문에, 당신은 종이 냄세에 미쳤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189p. "나탈리, 너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있는 거야. 저 계단, 너의 집 현관, 자동차, 옥수수밭, 그리고 구름하고도 관계를 맺어야 해."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글쓰기에 들어가기 전에 10분 간 "나는 ......의 친구다. 내 친구는 ......다" 식으로 간단한 마음풀기를 한다. 내 친구로 무생물들의 이름을 적어 보는 것이다. 토스터, 책상, 자동차, 고속도로, 산, ... 이 모두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연습을 하거나 친구와 같이 공동 글쓰기를 시도하다 보면 자기 안에만 처박혀 있는 자기 자신을 바깥으로 한걸음 내딛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191p.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서, 그리고 작가로서는 강하고 용감하지만 한 인간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무기력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사실이 우리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세상에 대해 우리가 품은 위대한 사랑과, 생활인으로서 우리 등에 달라 붙은 불명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헤밍웨이를 생각하면 감탄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아내와 실랑이 끝에 술이 떡이 되도록 만취했으면서도 자신의 주인공인 산티에고 노인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항해를 계속하도록 했다. 

 

우리는 작품 속과 작품 바깥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비공격의 실천이다.  우리는 작품 속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도 이 기술대로 살아야만 한다. 

 

카타기리는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매순간 모든 존재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대하고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또는 남에게 인정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두 가지 모두 근사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다. 

 

204p. 자신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워라!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라!

 

215p. 글쓰기가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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