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전공하고 신학의 길을 걷고 있는 하원정전도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책의 저자인 장하준의 약력부터 살펴보았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한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임용되어 경제학 교수로 근무, 2022년부터 런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졍제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을,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책 소개의 윤곽을 먼저 훑어 보았다.
☞ 팍팍한 살림살이와 불안한 경제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세계적 석학 장하준, 더 공정하고 다 함께 잘사는 길을 제시하다!
“자유 시장의 자유에 맡겨 두면 경제가 저절로 발전할까?” “사람들이 가난한 건 게으르기 때문일까?” “기회의 평등만 보장하면 공정한 세상이 만들어질까?” “복지 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혜택을 베푸는 제도일까?” “기업은 과연 주주들의 것일까?” “정부의 개입은 정말로 경제 발전에 불필요할까?” “자유 무역은 정말로 자유로운 무역일까?” “뛰어난 기업가 개인의 역량이 기업과 산업 발전을 좌우할까?” “자동화가 우리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아 갈까?” “이제 제조업은 끝났고 서비스업이 대세라는 주장은 옳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18가지 재료와 음식으로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 자유와 보호, 공정과 불평등, 제조업과 서비스업, 민영화와 국영화, 규제 철폐와 제한, 금융 자유화와 금융 감독, 복지 확대와 복지 축소 등 우리에게 밀접한 경제 현안들을 흥미로우면서도 영양가 만점인 지식과 통찰로 풀어내고 있다. 경제와 관련한 우리의 고정 관념, 편견, 오해를 깨뜨리고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통해, 팍팍한 살림살이와 불안한 경제 앞에 길을 잃은 이들이이 어려움을 뚫고 성장해 나갈 힘과 희망을 전달 받을 것이다.
책의 목차가 독특하다!
머리말: 마늘
냄새가 지독한 이 식재료가 지금의 한국을 낳고, 영국인을 공포에 떨게 하고, 이 책을 읽고 싶어지게 만든다
1부 편견 넘어서기
1장 도토리
도토리를 먹고 자라는 스페인 남부의 돼지들과 도토리를 즐겨 먹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 문화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2장 오크라
‘레이디스 핑거스’라고도 부르는 이 채소를 통해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시야가 좁고 쉽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지 깨닫는다
3장 코코넛
이 갈색 열매가 ‘갈색’ 피부를 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가난한 것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가르쳐 준다
2부 생산성 높이기
4장 멸치
음식의 맛을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기도 했던 이 작은 물고기가 산업화의 홍보 대사라는 것이 밝혀진다
5장 새우
이 작은 갑각류가 실은 변장한 곤충임이 밝혀지고 개발도상국들이 우월한 외국 라이벌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보호주의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6장 국수
국수에 미친 두 나라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통해 기업가 정신과 성공하는 기업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재점검한다
7장 당근
한때 당치않은 개념이라고 생각됐던 ‘주황색 당근’ 이야기를 통해 특허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이해한다
3부 전 세계가 더 잘살기
8장 소고기
육류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소고기를 통해 자유 무역이 모든 사람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9장 바나나
세상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이 과일은 다국적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적절히 관리해야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10장 코카콜라
나이 든 로큰롤 밴드와 비슷한 데가 있는 이 음료가 왜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현재의 주류 경제학 이데올로기에 불만을 품게 되었는지를 알려 준다
4부 함께 살아가기
11장 호밀
북유럽의 대표적 곡물로 꼽히는 호밀 덕분에 우리는 복지 국가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게 된다
12장 닭고기
모두가 사랑하지만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 육류는 우리에게 경제적 평등과 공평성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13장 고추
우리를 곧잘 속여 넘기는 사기꾼 같은 이 베리를 통해 돌봄 노동이 우리 경제와 사회의 기초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무시되고 저평가되는지 이해한다.
5부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14장 라임
영국 해군과 브라질의 국민 음료가 힘을 합쳐 기후 변화의 도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15장 향신료
후추, 계피, 육두구, 정향을 통해 현대적 기업이 탄생한 경위와 이런 기업이 자본주의를 크게 성공시켰지만 이제는 자본주의의 목을 조이는 역할을 하게 된 이야기를 듣는다
16장 딸기
베리가 아니지만 베리라고 부르는 이 열매가 로봇의 발달과 일자리의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17장 초콜릿
밀크 초콜릿 바를 통해 스위스 경제 번영의 비밀을 엿보고, 그것이 비밀 은행이나 고급 관광 상품과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배운다
☞ 교보문고가 제공한 책의 서평과 목차를 보고, 신선함을 느꼈다.
ㆍ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 최연소 수상
ㆍ 《프로스펙트》 올해의 사상가 TOP 10
ㆍ 국내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저자
ㆍ 《뉴스테이츠먼》 《가디언》 《선데이타임스》 추천
ㆍ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이후 10년 만의 신작
극보수의 대명사 비스마르크가 복지 국가를 처음 만들었다고?
“핀란드식 호밀 크리스프브레드, 특히 소나무 껍질을 갈아 넣은 (…) 크리스프브레드를 먹으면 마치 약간 쌀쌀한 북구의 숲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든다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저자가 소개하는 호밀은 북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의 주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호밀과 관련해 더 중요하지만 덜 알려진 역사적 사건은 이른바 “철과 호밀의 결혼”이다. 통일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호밀 생산자들(지주)과 철 생산자들(신흥 자본가)의 연합을 중재해 중공업을 적극 보호, 육성함으로써 전례 없는 독일의 경제 성장을 일구어 내는 데 성공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모르는 훨씬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바로 비스마르크가 복지 국가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복지 제도가 진보 세력의 산물일 거라는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은 극보수의 대명사인 비스마르크가 공공 의료 보험, 산업 재해 보험, 실업 보험을 잇달아 도입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의 복지 국가를 확립했다.
또 하나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복지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혜택을 주는 제도라는 오해다. 그러나 복지 혜택은 전혀 공짜가 아니다. 모두가 비용을 부담하는 노령, 실업 같은 ‘사회 보장 분담금’에 더해 대부분의 사람이 내는 소득세와 간접세가 복지 제도의 재원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복지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또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일반 시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보장해 주는 것이 정치적 안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다 함께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경제 이야기의 진수성찬!
세계적 석학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장하준 교수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음식과 경제 이야기의 환상적인 컬레버레이션이다. 여기에 음식만이 아니라 역사, 정치, 사회, 과학 등 풍성한 재료를 한껏 버무려 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를 소재 삼아 경제와 관련한 각종 고정 관념과 편견, 오해를 깨뜨리면서 다 함께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과 비전을 제시한다.
예컨대 천혜의 풍부한 자원과 게으름을 동시에 상징하는 코코넛 이야기로는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진짜 원인과 해결책을 알려 준다. 똑같이 징그러운 곤충인데 새우만은 유독 즐기는 음식 취향을 통해서는 한때 경제적 새우였던 영국,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이 어떻게 세계 경제의 고래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모든 재료를 잘 융합시키는 오크라 이야기로는 자유 시장, 자유 무역의 “자유”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 알려 주면서 자본주의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다. 모두가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육류인 닭고기 이야기로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뿐 아니라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해야 함을 깨우쳐 준다. 캘리포니아의 거대한 딸기 농장과 딸기 수확 이야기로는 이민 노동자 문제와 로봇, 인공 지능 등으로 인한 일자리 불안을 불식시키고 희망찬 비전을 제시한다. 밀크 초콜릿 개발 이야기로는 스위스가 비밀 은행이나 관광 산업으로 번영을 누린다는 편견을 깨고 제조업 강국임을 밝히면서 이제는 서비스업이 대세인 경제가 도래했다는 탈산업 사회 담론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앞으로도 산업화와 제조업이 경제 성장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거기다 흔한 도토리에서 최고급 햄이 탄생한다는 이야기부터 미국인은 멸치 소스가 들어간 칵테일을 즐기고, 당근은 원래 주황색이 아니었으며, 콘비프 통조림에는 옥수수가 안 들어 있고, 바나나는 원래 노예선과 노예 플랜테이션의 주식이었고, 패션 브랜드 ‘바나나 리퍼블릭’에는 대학살 사건의 어두운 역사가 숨어 있으며, 처음 출시된 초콜릿 바는 밀크 초콜릿이 아니라 다크 초콜릿이었다는 이야기까지 흥미로운 음식, 역사, 경제 상식을 맛난 소스로 곁들여 준다.
지금 우리에게는 더 공정하고 더 자유롭고 더 잘사는 길을 알려 주는 진짜 경제 이야기, 희망의 경제학이 더없이 절실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경제학을 “눈이 돌아가게 어려운 전문 용어와 기술적인 논쟁, 복잡한 수학 공식과 통계가 난무하는 학문”에서 “부드럽고, 편안하고, 심장을 녹일 듯” 맛있는 경제 지식으로 요리해 내놓는다. 더불어 경제를 전문가와 권력자가 자기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그들만의 경제가 아닌, 모든 시민이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 참여하고 운영하고 성과를 누리는 경제로 탈바꿈시킨다. 그래서 입맛에 잘 맞을 뿐 아니라 영양가도 만점인 지식과 통찰로 가득하다. 이 책은 팍팍한 살림살이와 불안한 경제 상황으로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대안과 비전을 선물하는 필수 경제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이제 좀더 촘촘히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경제학은 단지 소득, 일자리, 연금 등에 관한 것을 규정하는 학문이 아니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다양한 면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학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방식에 만족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면 경제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경제학 이론을, 여러 음식 이야기와 맛깔나게 섞은 내용이 담겨있다.
1장 / 도토리
문화가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따라서 그 나라의 경제가 조직되고 발전하는 양상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문화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흔히 통용되는 단순한 고정관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모든 문화는 복합적이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다양한 부면을 지니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인의 경제적 행동과 국가의 경제적 성과를 결정하는 데서 문화는 정책에 비해 그 영향력이 훨씬 약하다는 점이다. 그 점은 도토리를 먹는 한국인에게나 도토리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에게나 마찬가지다.
이 책을 보다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을 벗게 되었다.
햄은 스페인 문화의 심장이다. 햄을 뜻하는 스페인어 를 보통 한국에서는 '하몽'이라고 발음하지만, 사실은 '하몬'이 맞는 발음이라고 한다. 기독교가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다스리던 이슬람 세력과 전쟁을 벌여 기독교도의 스페인을 세우는 과정에서 햄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돼지고기를 먹는지 안 먹는지는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를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였고, 돼지고기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스페인에 살면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유대인도 기독교가 다시 세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 1391년 성난 폭도로 변한 기독교인의 위협에서 목숨을 건지기 위해 많은 수의 유대교인이 기독교로 강제 개종했다. 교회는 이들이 진심으로 개종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도록 했다. '콘베르소'라고 부르는 이 유대교인 출신 개종자 중 일부는 비밀리에 유대 교리를 계속 따르면서, 돼지고기와 조개류를 조리하지 않고 유제품과 고기를 섞지 않는 등 유대교의 의식과 명절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을 지켜나갔다.
1478년 설립된 스페인 이단심문소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거짓으로 개종을 한 유대인을 색출하는 일이었다. 가장 널리 쓰인 방법 중 하나는 의심이 가는 사람의 굴뚝을 토요일에 감시하는 것이었다. 유대 교리를 준수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조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날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으면 유대교인일 확률이 높았다. 이에 더해 이단심문관들은 토요일에 골목길을 누비면서 음식 조리 냄새가 나지 않는 집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1492년 1월 레콩키스타(국토 회복)가 이루어졌다. 기독교도가 이슬람교도를 이베리아반도에서 완전히 축출한 것이다. 같은 해 말, 이제 기독교 땅이 된 이베리아반도에서 유대교인을 추방한다는 왕의 칙령이 내려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당한 유대교인의 많은 수가 당시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었던 오스만 제국으로 도망갔다.
요즘 관점으로 보면 박해 받는 유대교인이 이슬람 국가로 피하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 오스만 제국은 유대교인을 비롯한 종교적 소수 집단에 관용적이었다. 술탄 베야지드 2세는 유대교인을 두 팔 벌려 환영했고, 가톨릭 왕들의 손실은 자신의 이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스만제국에서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인도 세금만 더 내면 종교의 자유를 누렸고, 원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는 자율권이 주어졌다. 유대교인은 제국의 거의 모든 직종에 종사했다. 궁정 고문, 외교관, 상인, 제조업자, 짐꾼, 석공 등 종교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종교적 편협성은 이슬람교의 본질과 전혀 관련이 없다.
이슬람 문화에 관한 다른 부정적인 고정 관념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군국주의적 종교라 생각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그런 견해를 부추켜 왔다. '지하드'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널리 퍼진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교도와 벌이는 전쟁이란 의미로 알려진 지하드는 원해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지난한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이슬람 교리 중에는 군국주의적인 해석을 가능케하는 부분도 있고,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리도 있다. 후자는 "순교자의 피보다 학자의 먹물이 더 숭고하다"라고 강조한 선지자 마호메트(무함마드)의 말에 그대로 담겨 있다. 사실 이슬람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고전을 아랍어로 번역해서 보존하지 않았으면 후에 이를 유럽어로 번역하면서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이전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인 문헌을 이교도적이라 선언하고 방치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파괴해버렸다.
이슬람이 과학적 진보나 경제 발전 같은 실용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속세에서 먼 종교라는 고정 관념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교리는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문화적 가치와 궤를 같이한다. 중세에는 이슬람 문화권(특히 10세기부터 11세기 사이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법학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도 유럽보다 훨씬 더 앞서 있었다. 과학 용어 중 얼마나 많은 수가 아랍어에서 온 것인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알코올, 알칼리, 알지브라(대수학), 알고리즘(인공지능의 핵심요소!) 등이 그 예다('알'은 아랍어의 정관사다). 상업도 고도로 발달해서 아랍 상인들은 지중해 연안은 말할 것도 없고 동쪽으로는 한반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과 교역을 했다. 특히 선지자 마호메트가 상인이었기 때문인지 이슬람교는 계약법을 매우 중요시했다. 이슬람 국가들에는 기독교 국가들보다 몇백 년이나 앞선 때부터 제대로 훈련 받은 전문직 판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19세기까지도 법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판사가 될 수 있었다.
이슬람교가 다른 문화보다 경제 개발에 더 적절한 잠재력을 지녔다고 할 만한 중요한 특징들이 또 있다. 남아시아의 힌두교나 동아시아의 유교와 달리 이슬람 문화에는 태어난 배경에 따라 직업 선택을 제한해서 계층 이동을 막는 카스트 또는 신분 제도가 없다.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가 얼마나 복잡하고 엄격한지, 그리고 계층 이동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이슬람 문화가 본질적으로 개발에 방해가 된다는 고정 관념은 없어졌을 것이다. 배움을 강조하고, 과학적 사고의 전통이 있으며, 사회적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고, 상업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법치와 관용의 전통이 강한 이슬람 문화는 경제 발달에 유리한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두바이는 모두 이슬람 문화가 경제발전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우리는 무지 때문에, 그리고 어떨 때는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낯선' 문화에 부정적인 문화적 고정관념을 적용할 때가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골라내서 그 문화권의 나라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문화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놓치는 오류로 이어진다.
2장 / 오크라
오크라는 목화, 카카오, 히비스커스, 두리안 등이 함께 속한 아욱과라는 걸출한 집안(^^)의 출신이다.
오크라는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왔다.
아프리카인을 대규모로 노예화한 것은 유럽인이 신대륙을 점거하면서 시작되었다. 유럽인은 신대륙에 원래 거주하던 사람들을 거의 전멸시킨 후(대량 학살뿐 아니라 원주민이 면역성을 보유하지 않은 병원균을 들여가서) 최저 비용으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을 확충하는 일이 절실했다. 노예 상인들이 납치한 아프리카인의 수는 1,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 중 적어도 200만 명이 노예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에서 잡혀 억류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중간 항로'라는 이름이 붙은 험난한 대서양 횡단 길에서, 그리고 미 대륙에 도착한 후 노예 시장에 내놓기 전 아프리카인 포로들의 기를 꺾어 복종하게 만드는 '훈련장'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과 그들의 후손이 아니었으면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공장과 은행을 운영하고 노동자를 먹여 살릴 금, 은, 목화, 설탕, 쪽빛 염료, 고무 등의 온갖 자원을 값싸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없었다면 미국은 현재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의 플랜테이션에서 노예로 일하던 아프리카인이 목화와 담배를 생산하기 위해 채찍을 맞아 가며 일하고 고문당했던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작물들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헸는지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미국은 목화와 담배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아니었으면 당시 경제적으로 우월했던 유럽, 특히 영국에서 자국의 경제 발전에 필요한 기계와 기술을 수입할 자금이 없었을 것이고, 영국도 산업혁명 기간 동안 방직 공장을 돌릴 엄청난 앵의 값싼 목화를 수입할 수 없었을 테니 상부상조한 셈이었다.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은 (무보수) 노동만을 제공한 데서 그치지 않았다. 노예는 매우 중요한 자본 동원 수단이었다. 노예가 된 인간들은 주택 담보 대출이 시작되기 몇 백 년 전부터 대출의 담보로 사용되었다. 땅값이 별로 나가지 않던 미국 독립 전 대부분의 대출은 인간이라는 자본을 담보로 이루어졌다. 현대 금융계에서 수천 건의 주택 담보 대출과 학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상품들을 묶어서 판매하는 자산 유동화 증권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이 채권들을 영국과 유럽 금융업자들에게 판매해 국제 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미국 금융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킬 기회를 얻었다. 노예들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훨씬 더 오랫동안 초보적인 금융 부문을 가진 전근대적 경제 국가에 머물렀을 것이다.
3장 / 코코넛
코코넛은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열대 지방의 천혜의 풍부한 자원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 기후대에 존재하는 지역 사회의 빈곤을 '설명'하는 데도 자주 등장하는 소품이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인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흔히들 추정하곤 한다. 그리고 다는 아니지만 가난한 나라 중 많은 수가 열대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근로 윤리가 부족한 이유가 열대 지방에는 천헤의 자원이 풍부해서 쉽게 먹고 살 수 있어서일 것이라 상상하거나 추측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상의 세계에 등장하는 열대 지방에서는 음식(바나나, 코코넛, 망고 등)이 사방에서 자라고, 춥지 않기 때문에 튼튼한 집을 지을 필요도, 옷을 을껴입을 필요도 없다. 따라서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고, 그 결과 덜 부지런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이런 이야기에는 코코넛이 주로 등장한다. '열대 지방 사람들은 근로 윤리가 약하다'라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열대 지방에서는 '원주민'이 농작물을 적극적으로 키우거나,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야자나무 아래에 누워 코코넛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말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 분별에 조금이나마 있는 열대 지방 사람이라면 야자나무 아래에 누워서 공짜 코코넛이 떨어지길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떨어지는 코코넛 열매에 맞아 머리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열대지방에 많이 모여 있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근로 윤리가 부족하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하다. 사실 그들은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열심히 일한다. 그럼에도 가난한 이유는 생산성의 문제에 있는 것이다. 이들이 부자 나라 국민보다 인생의 훨씬 더 긴 기간, 훨씬 더 오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만큼 많이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이 그만큼 높지 않아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성이 낮은 것은 교육 수준, 건강 등 노동자 개인의 능력이나 조건과 크게 상관이 없다. 노동력의 질은 전문직이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는 생산성의 차이를 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직종에서 가난한 나라 노동자와 부자 나라 노동자의 개인적인 생산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부자 나라의 생산성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더 양질의 사회 기반 시설(전기, 교통, 인터넷 등)과 더 잘 기능하는 사회적 체제(경제 정책, 법률 체계 등)를 기반으로 해서 더 잘 운영되는 생산 시설(공장, 사무실, 가게, 농장 등)에서 더 나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가난한 나라 이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역사적, 정치적, 테키놀로지적 문제 때문이고, 이는 그들이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들이 열심히 일할 마음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4장 / 멸치
멸치는 잔챙이 생선의 상징으로 작은 몸집을 가졌다. 하지만 알고 보면 멸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다. 음식 문화에 끼친 영향 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인도,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모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렇게나 많은 양이 소비되는 생선이 또 어디에 있겠나 싶을 정도이다.
심지어 미국의 대표적인 칵테일인 블러디 메리(헨리 8세의 딸이고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 언니인 영국 여왕 메리의 이름을 부인 칵테일)에는 발효 멸치 소스가 들어 있다. 다만 우스터 소스(식초, 당밀, 타마린드, 향신료, 설탕, 소금, 발효 멸치 소스)에 숨어 있을 뿐이다. 영국인도 구운 치즈 토스트에 우스터 소스를 양껏 뿌려 먹는 걸 좋아하니 '변장한'발효 멸치 소스의 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멸치는 풍부한 맛뿐 아니라 한 때 풍부한 부를 가져다 주는 고마운 생선이기도 했다. 이 작은 생선은 19세기 중반 페루가 누린 경제적 번영의 원인이었다. 페루가 멸치를 수출해서 돈을 번 건 아니고, 바닷새의 구아노(마른 새똥)을 수출해서 국가적 번영을 누렸다.
질산칼륨이 들어 있는 구아노(비료와 화약 제조에 사용된)가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는 페루뿐 만이 아니었고, 천연자원 질산나트륨(초석) 매장지가 칠레에서 발견되면서 초석 전쟁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가, 볼리비아 해안 지역 전부와 페루남부 해안 지역의 절반 가량을 점령하어 그 지역에 대량 매장되어 있는 초석과 그 지역에 쌓인 구아노로 인해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아, 1909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에서 질소를 분리하는 기술을 발명하여, 인공 비료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개발하는 바람에 , 그 부요함이 오래가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은 독일의 과학자 가 개발한 인공 비료의 대량 생산으로 말미암아 비료계의 황제 자리에 있던 구아노와 구아노보다 더 중요한 질산염의 공급원인 초석 또한 가치가 없어졌다.
또한 고도의 기술력이 천연자원의 한계를 극복한 여러 사례가 있다. 영국과 독일에서 인공염료를 발명함으로 천연염료사업이 완전히 파괴되어 과테말라의 염료 사업과 인도의 인디고 산업이 완전히 망했다.
한참 후인 1970년대에는 독일, 러시아, 미국의 과학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인공고무를 개발해 천연고무와의 경쟁이 점점 심해지면서 당시 전 세계 고무의 절반을 생산하던 말레이시아가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1차 상품(농업, 광업 제품)의 생산지를 위협하는 것은 인공적인 대체품만이 아니다. 1차 상품은 생산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생산자가 짧은 시일 내에 등장해서 기존 생산자를 위협할 위험 또한 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1980년대 중반까지도 커피를 거의 수출하지 않았지만 그 후 매우 빠른 속도로 거피 수출량을 늘려, 2천 년대 초 이후에는 브라질 다음으로 큰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하면서 다른 커피 생산국가들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다시 말해 1차 상품의 주요 생산국이라는 위치는 쉽게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화학 산업이 페루, 칠레, 과테말라, 인도 등 1차 상품에 주로 의존하던 나라들에 끼친 타격은 베트남이 브라질, 콜롬비아를 비롯한 커피 생산국들에 끼친 타격과 비교할 수 없다. 천연자원을 대체할 인공 물질 제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제 체제는 기존 시장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과 다름없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면 자연의 한게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넢은 생활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하게 하는 벙법은 오직 산업화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시 말해 혁신과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주된 근원인 제조업 분야를 발달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산업화를 통해 생산 능력을 더 높이면 더 높이면 자연이 우리에게 가하는 제약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초석과 같은 재생 불가능한 광물 천연자원, 또는 멸치를 먹고 사는 새들의 분비물로 만들어진 페루의 구아노처럼 재생 가능하지만 과잉 채취로 결국 늘 '바닥이 나고야 마는' 천연자원과는 달리 한번 습득한 기술이나 능력은 고갈되지 않기 때문이다.
5장 / 새우
경제적으로 뒤처진 나라에서 미성숙한 제조업체들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유치산업론'이라 부른다, 경제발달과 아동의 성장 발달을 비슷하게 보는 관점에서 나온 용어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어른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랄 때까지 그들을 보호한다. 유치산업론에서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의 정부가 자국의 신생산업업체들이 생산능력을 길러 우월한 외국 기업들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고 양성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는 미국, 그것도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발명한 것이다. 10달러 지폐에 찍힌 얼굴의 주인공이다. 해밀턴은 미국 정부가 '유아기에 있는 산업'(해밀턴이 사용한 표현이다) 또는 '유치 산업'을 우월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보호해야 하면, 그러지 않으면 미국은 절대 산업화할 수 없을 것이라 일갈했다.
자유 무역의 본고장이라는 현재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영국과 미국은 경제발전 초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보호주의 국가였다. 그들은 산업적 주도권을 획득한 후에야 자유무역으로 선회했다. 대부분의 다른 부자 나라들도 같은 경로를 거쳤다. 네덜란드와 스위스(1차 세계대전 전까지)를 제외하고 19세기 말 벨기에, 스웨덴, 독일부터 20세기 말 프랑스, 일분, 한국 대만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국의 산업화와 경저발전을 위해 상당 기간 동안 유치 산업 보호정책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유치 산업 보호 정책이 반드시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유치 산업 또한 잘못 키우면 '숭숙'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과도한 보호정책을 쓰는 바람에 국내 기업들이 태만해졌고, 시간이 흐른 후에도 보호정책을 줄이지 않아 생산성을 향상시킬 동기 부여를 실패하고 말았다.
유치 산업 정책을 가장 기술적으로 운용한 일본과 한국 같은 나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호 정책을 단계적으로 줄여서 그런 위험을 피했다. 자녀가 성장해감에 따라 보호의 손길을 차차 거두고 더 많은 책임을 자녀에게 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유치 산업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한때 경제적 새우였던 나라들- 18세기의 영국와 19세기의 미국, 독일 , 스웨데느20세기의 일분 핀란드, 한국 - 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고래로 성장ㅇ하지 못했을 것이다.
6장 / 국수
대부분의 사람은 국수 집착증이 있는 이탈리아라는 나라 출신의 일류 다자이너가 초기에 디자인한 차 가운데 하나가 '포니'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포니는 또 다른 국수 집착증의 나라 한국의(^^), 그리고 그 때까지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한 현대자동차라는 회사에서 1975년 출시한 소형 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1940년대에 전설적인 한국의기업가 정주영이 설립한 현대그룹의 일부였다. 현대그룹의 주력 사업은 원래 건설이었지만 1960년대에 고생산성 산업 부문으로 확장을 시작했고, 자동차는 그런 노력의 시작점이었다. 현대자동차는 포드와 합작 투자로 설립되었다가 1973년 포드와 결별하고 국내에서 설계한 자동차를 독자적으로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바로 포니였다.
현대는 그 후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여, 1986년에는 엑셀 모델(포니를 업그레이드한 버전)로 미국 시장에 눈부신 데뷔를 해서 비즈니스 잡지 ≪포춘≫ 선정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10대 상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놀라운 이야기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설립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동차 회사 - 사실 좀 시설이 괜찮은 자동차 정비소와 별 차이가 없던 회사 - 가 30여 년이 지난 후 포드보다 더 커지고, 40년 만에 GM보다 더 많은 차를 생산해 냈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현대에도 있었다. 현대 그룹의 설립자 정주영과 현대차를 1967년부터 1997년까지 이끈 그의 동생 정세영이 바로 그들이다. 정세영은 포니를 출범시키는 데 너무나 핵심적인 역할을 해서 '포니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기업을 이끄는 기업가도 중요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성공스토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긴 근로 시간을 견디면서 생산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한 노동자, 엔지니어, 연구원 그리고 전문 경영인이 모두 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의 선진 테크놀로지를 익히고, 그렇게 익힌 테크놀로지를 조금씩 개선해서 결국 고유의 생산 시스템과 테크놀로지를 개발해 세계 유수의 자동차 제조업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과정을 이끈 주된 동력은 바로 그들이었다. 헌신적이고 유능한 직원들이 없으면 기업의 비전은, 그것이 아무리 원대하고 좋은 것이라 해도 그냥 비전으로 그치고 만다.
또 다른 주인공은 정부다. 한국 정부는 1988년까지 외제자동차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고, 일본산 차는 1998년까지 수입을 금지하는 정책을 운용해 현대를 비롯한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클 때까지'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수 십 년 동안 한국 소비자들이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 차를 견뎌내야 했다는 의미지만, 이런 식으로 보호받지 못했다면 한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성장은커녕 살아남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1990졎댜 초까지도 한국 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하이테크 기업들, 특히 수출지향적 기업들이 특별 저리 융자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해 주었다. 이는 생산적 기업에 대한 대출에 우선 순위를 주도록 하는 엄격한 은행 규제와 은행 부문의 국유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정부 정책이 항상 '도와주는' 성격을 띤 것은 아니었다. 현대자동차가 고유 모델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한 것ㅇ ㄴ 사실 한국 정부가 자동차 부문을 '국산화'하는 프로그램에 착수했기 때문이었다. 1973년 정부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고유 모델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자동차 제조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위협했다. 규제 정책과 금융을 이용해 자동차 업체들에 '국내 생산 부품' 비율을 높이라는 노골적인 압력과 암묵적인 압력을 동시에 넣어서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 발전을 꾀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성공스토리가 영웅적인 기업가 세계의 몇 안 되는 예외 사례가 아닌가 하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가 그 대답이다.
현대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성공을 거둥 한국 기업들이 많다. 설탕 정제와 의류 사업으로 시작한 삼성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와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되었고, 화장품과 치약 사업으로 출발한 LG응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했다. 이 모든 기업은 뛰어난 개인의 능력, 기업적 노력, '기업 내 교차 보조'. 정부지원, 그리고 소비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런 변신을 할 수 있었다.
개인의 비전으로 성공적인 기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신화는 현재 경제학계의 담론을 장악하고 있는 자유 시장 경계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을 수도 있는 시나리오다. 생산 규모가 작고 테크놀로지가 단순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뛰어난 개인 기업이 성공하려면 그냥 뛰어난 개인만으로는 부족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생산, 복잡한 테크놀로지, 국제 규모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19세기 말 이후의 환경에서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 - 개인의 노력보다 - 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기업의 리더뿐 아니라 노동자, 엔지니어, 과학자, 전문 경경인, 정부의 정책 입안자, 그리고 심지어 소비자의 노력까지 모두 포함된다.
현대 경제에서 기업은 더 이상 개임의 비전이나 노려간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적인 기업을 집단적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7장 / 당근
당근은 원래 주황색이 아니었다. 중앙아시아(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거의 확실하다)가 원산지인 당근은 원래 하얀색이었다. 그후로 보라색 당근과 노란색 당근이 개발되었다. 현재 주종을 이루는 주황색 당근은 17세기에 들어선 이후에야 네덜란드에서 개발되었다.
당근을 주황색으로 보이게 하는 베타카로틴은 몸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된다. 비타민 A는 피부, 면역 체계와 눈 건강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하얀색 당근에 비해 주황색 당근은 영양학적으로 훨씬 유익하다.
베타카로틴의 유익성을 아는 과학자들이 베타카로틴을 생합성할 수 있는 유전자 2개(옥수수와 흙 박테리아에서 각각 하나씩)를 쌀에 이식했다. 그 결과 '황금쌀'을 탄생시켰다. 베타카로틴 덕분에 황금색으로 보이는 이 쌀은 보통 쌀과는 달리 비타민 A의 풍부한 공급원이 될 수 있다. 이 황금쌀은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장애를 겪는 질병에 걸리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황금쌀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 황금쌀을 직접 상용화하려면 70가지가 넘는 특허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32개 특허권자와 모두 협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허는 정부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개발자에게 일정 기간 동안 그 기술에 대한 독점권을 허용하는 대신 그 기슬을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식 향상의 효과만을 따지면 특허 제도는 양날의 칼이다. 충분히 새로운 지식이라고 인정되는 지식을 창출해 낸 사람에게 그 지식을 일정 기간 동안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새 지식의 창조를 촉진하고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기간 동안 그 새 지식의 개발자는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장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용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특허 제도는 독점 기간 동안 다른 사람이 그 새 지식을 이용해 또 다른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내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새 지식의 창조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된다.
황금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쌀 한 톨에 70가지가 넘는 특허가 들어 있다는), 맞물린 특허의 문제는 최근 들어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는 과학자가 중요한 기술적 진보를 일구어 내려면 변호사 부대가 선봉대로 나서서 특허 덤불을 헤쳐 나가며 길을 터 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한때 기술 혁신의 강력한 촉매가 되었던 특허 제도가 이제는 큰 방해물이 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의 특허 제도를 개선하는 방법 중 하나는 모든 특허에 대한 특허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현재 특허 보호 기간은 20년이고, 제약부문은 임상 실험에 필요한 기간과 시험에 사용된 데이터 보호를 이유로 8년을 추가로 보호받는다. 특허 보호 기간을 줄여서 지식이 더 빨리 공공 영역으로 나오게 되면 특허라는 양날의 칼 중 혁신을 방해하는 쪽의 날을 좀 더 무디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허 제도가 지식 발전을 막는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포상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기술을 개발한 사람에게 추정되는 효용에 비례하는 일회성 보상을 주어서 새로운 기술이 나오자마자 공공 재산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기술 발전이 매우 빨리 이루어지는 분야에서는 현실적으로 포상 제도가 혁신가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혁신을 위한 동기 부여가 더 커질 수 있다. 자기 기술보다 더 나은 기술이 금방 나와서 자기 기술을 따라잡고, 기술을 팔 시장을 파괴해 버릴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은 기술이 나온 후에도 특허권으로 독점권을 보장 받기는 하겠지만 아무 가치도 없는 기술에 대한 독점은 아무 가치가 없다.
또는 그 기술이 공공 목적의 기술 개발에 필요하다고 간주되면 국제 협정을 통해 특허권 보유자들이 가격을 인하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모든 제도와 마찬가지로 특허 제도 또한 그 제도로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많기 때문에 사용해 왔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더 이상 많지 않게 되면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 옳다. 수정한 형태가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결국 우리가 주황색 당근을 먹을 수 있는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누군가가 당근이 주황색이 될 수도 있다는 낯설고 이상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덕분이니까 말이다.
3부 전 세계가 더 잘살기
8장 소고기
소고기에 대한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식욕과 보존 기술(추출, 통조림, 냉장) 덕분에 소고기는 지난 한 세기 반에 걸쳐 전 세계를 정복했다.
솔직한 논평으로 이름난 환경학자 바츨라프 스밀은 이토록 대단한 소고기의 위력 덕분에 지구는 '소를 위한 행성'이 되었다고 말한다. 소고기 산업은 온실가스, 삼림 파괴, 엄청난 물 사용 등으로 막대한 환경 부담이 되고 있고, 소고기는 인간 식생활에서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류 사회와 경제에서 육류가 차지하는 역할을 이야기할 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소고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그와 함께 등장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경제학 이데올로기가 힘을 얻으면서 '자유'는 우리가 사회와 경제를 생각하는 방법의 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개념이 되었다.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생각은 모두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 자유 무역, 자유 시장,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자유 투사 등 모두. 그리고 이것들에 반하는 건 무엇이든 원시적이고 억압적이며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양한 개념의 자유가 존재하는데, 그 모든 자유가 논란의 여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인양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자유 무역에서 '자유'라는 개념은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거래가 해당 정부의 규제(예를 들어 수입 금지 조치)나 세금(예를 들어 관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자유 무역 1기(19세기와 20세기 초)에 '자유' 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자유롭지 못한'나라들, 다시 말해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 등으로 자국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한 나라들에서만 행해졌다. 국가들 사이에 형식적인 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인 현재의 자유 무역 2기에서조차 자유 무역은 모든 당사자에게 평등하게 혜택을 주지 못한다. 국제 무역의 규칙이 강한 나라들에 의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지고 시행되기 때문이다.
국제 무역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이해하고, '자유'라는 휘황찬란한 단어에 눈이 멀지 않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자유 무역처럼 논란의 여지 없이 모든 이에게 좋은 거라고 여겨지는 것을 두고 왜 그토록 많은 논쟁과 갈등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9장 / 바나나
바나나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식물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높은 생산성이 그릇된 방향으로 쓰이면 극도로 부정적인 결실을 맺기도 한다. 처음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화된 사람들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먹여 살리기 위해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이 활용했고, 후에는 다수의 카리브해 연얀 국가에서 노동 착취, 정치적 부패, 국제적 무력 침공의 원인이 되었다.
다국적 기업도 그렇다, 바나나와 마찬가지로 매우 생산성이 높은 다국적 기업이 많다. 그러나 그릇된 방향으로 쓰이면 다국적 기업이 진출하는 나라에 '바나나공화국 (부자 나라의 거대 기업들이 가난한 개발도상국을 거의 완전히 장악했던 어두운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엔클레이브(지역 기업들에는 거의 하청을 주지 않고 대부분 수입된 부품을 완제품으로 조립하기 위해 그 지역의 값싼 노동력만을 이용하는 것) 경제'가 형성될 수 있다. 엔클레이브 경제의 경우, 얼마간의 단기적 혜택이 있을 수 있지만(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 지역 기업에서 구입한 낮은 기술 수준의 부품 등), 다국적 기업의 진출로 인해 거둘 수 있는 진짜 혜택(고급 기술의 이전, 선진적 경영 관행, 더 나은 기술과 테크놀로지를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습득하고 훈련받을 기회)의 대부분은 현실화되지 않는다. 기술 이전을 최대한으로 유도하고 노동자를 훈련하고 선진 경영 관행을 학습하는 등 혜택을 실현하기 위한 공공 정책 없이는 다국적 기업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힘들 것이다.
10장 / 코카콜라
영국의 저널리스트 톰 스탠디지가 2천년대 중반에 쓴 책에 따르면 "코카콜라가 진출한 영토는 200개가 넘어 유엔 회원국 수를 능가한다. 이 기업의 음료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제품이고 '코카콜라'는 '오케이' 다음으로 널리 이해되는 단어다."
미국을 제일 잘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제품인 코카콜라는 미국 자본주의의 명암을 상징하게 되었다. 구소련 체제에 항거한 젊은이들처럼 일부 사람들에게 코카콜라는 개인적 · 정치적 자유의 심벌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인도 좌파처럼 그릇된 미국 자본주의의 완벽한 본보기라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 소비지상주의, 더 나아가 소비자의 취행을 상업적으로 조작하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코카콜라만큼 세계적 차원에서 정치적 상징성을 가진 식료품도 없을 것이다. 코카콜라에 얽힌 다양한 상징성을 기술적으로 잘 피해간 사람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세에 큰 영향을 미쳤던 레닌그라드전퉁와 스탈린그라드전토에서 나치를 물리치고 구소련의 승리를 이끌어 낸 게오르기 주코프다. 그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이 전쟁 중에 건넨 코카콜라를 처음 맛본 후 그 맛에 반해 버렸다. 그는 유럽 지역의 소련 점령군 지휘관으로 지내는 동안(1945년 5월~1946년 6월) 코카콜라사에 투명한 색의 콜라를 만들어 달라고 특별히 요청했다. 미국 자본주의의 정수를 좋아한다는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캐러멜 색소를 빼고 만든 투명한 콜라는 브뤼셀에서 제조되어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병에 담겨 장군의 유렵 사령부로 배달되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사 전략가에 걸맞는 대단한 묘책이었다.
코카콜라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존 펨버턴이 발명했다. 1885년 그는 코카나무잎, 콜라나무 열매, 포도주를 주재료로한 펨버턴스 프렌치 와인 코카를 출시했다. 이 음료 말고도 코카잎과 알코올을 섞은 음료가 이미 여럿 나와 있었다. 그중 특히 인가를 끈 음료는 뱅 마리아니였는데, 코카 잎을 포도주에 6개월 동안 담갔다가 마시는 이 움료의 팬으로는 빅토리아 여왕과 토마스 에디슨 등이 있었다. 뱅 마리아니에 콜라 열매를 첨가하는 것이 펨버ㅓㄴ이 생각해 낸 혁신이었다. 펨버턴의 발명품은 '신경 토닉'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1886년 펨버턴의 음료가 가장 많이 팔리던 지역에 금주령이 내려지자, 펨버턴은 프렌치 와인 코카에서 알코올을 빼고 설탕(포도주 맛이 없어지면 이 믕료의 주원료인 코카 잎과 콜라 열매의 쓴 맛이 너무 도드라지기 때문에 그것을 상쇄하기 위해서였다)과 시트러스 오일을 첨가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무알코올 음료에 코카콜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코카콜라는 탄산수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통념이 있었던 시기에, 원래 약국에 설치된 소다수 공급기를 통해 판매되다가, 1894년부터 병에 담아 팔기 시작하면서 장거리 운송이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잠재 시장이 크게 확장되었다. 1920년대부터 해외 수출이 시작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코카콜라는 미국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1938년에는 '미국의 본질이 승화된 음료'라는 칭송을 받았다.
코카콜라라는 이름은 펨버턴의 동업자였던 프랭크 로빈슨이 이음료의 2가지 주재료인 코카 잎과 콜라 열매에서 각각 한 요소씩 따서 만들었다.
코카콜라에 사용되던 콜라 열매는 2016년부터 인공 화합물로 대체되었다. 코카콜라의 또 다른 역할을 맡았던 커카 잎은 그보다 100여 년 전인 20세기 초에 이미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코카인의 중독성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코카콜라에 코카인을 사영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코카콜라사는 코카인을 완전히 추출하고 난 '무코카인' 코카 잎을 사용해서 맛만 냈다.
코카콜라의 지속적인 성공담은 한 제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객 만족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4부 함께 살아가기
11장 호밀
'호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북쪽 오랑캐'의 '밀'이다. 한국에서는 뭔가가 대체로 유라시아 대륙의 중부와 북부에서 온 것 같으면 무조건 '호胡'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습관이 있다. 이 '호'라는 접두어가 상징하는지역은 만주에서 몽골과 티베트를 거쳐 우즈베키스탄과 튀르키예까지 펼쳐진 넓은 지역을 말한다.
호밀은 원래 현재의 튀르키예가 자리한 지역에서 유래했지만 북유럽국가들의 식생활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힌다. 사촌인데 더 섬약한 작물인 밀은 자릴 수 없는 척박한 북쪽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곡물이기 때문이다. 호밀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러시아이고, 폴란드는 1인당 호밀 소비량면에서 1위인 동시에 이 곡물의 세계 1위 수출국이다. 하지만 호밀 부문의 명실상부 세계 챔피언은 독일이다. 호밀 생산량 1위인 독일은 2위 폴란드보다 33퍼센트나 더 많은 호밀을 매년 길러 낸다. 독일 문회에서 호밀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에서도 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독일 역사에 등장하는 '철과 호밀의 결혼'은 통일 독일의 첫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주로 프로이센을 기반으로 하는 융커라 부르는 귀족 지주들과 서쪽 라인 지방에서 새롭게 부상한 '증공업' 자본가들 사이에 맺은 정치적 동맹을 가리키는 별칭이디ㅏ.
비스카르크는 독일이 통일되기까지(1871년) 그 과정을 지지했던 국민자유당과의 오랜 협력관계를 1879년에 단절했다. 자유 무역을 지지했던 국민자유당을 버린 비스마르크는 호밀을 생산하면서 정치 권력을 쥐고 있던 융커들을 설득해 그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새로운 보호주의적 정치세력을 형성했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중재하에 호밀 생산자들과 철 생산자들 사이의 연합으로 독일 경제는 전례 없는 발전을 거듭했다. 철강, 기계, 화학 등의 새로운 중공업 산업이 보호벽에 의지해 성장했고, 결국 당시 세계 1위였던 영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의 유산은 독일 중공업의 발전에만 그치지 않고 독일을 훨씬 넘어서는 영향을 끼친 업적을 이루었다. 복지 국가의 확립이 바로 그것이다.
1871년 이전까지 스십 개의 정치체로 갈라져 있던 독일을 통일한 직후 비스마르크는 노동자를 산업 재해에서 보호하는 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비록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는 보편적인 보험이 아니라 일부 노동자만 보호하는 것이었지만 이 보험은 노동자를 위한 세계 최초의 공공 보험이었다.
일단 1879년 '철과 호밀의 결혼'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한 비스마르크는 복지 정책의 도입에 속도를 내서 1883년에는 공공 희료 보험을, 1889년에는 공공 연금을 제정했다. 두 제도 모두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1884년 그는 이전에 확립했던 산업 재해 보험을 확장해서 모든 노동자가 혜택을 보도록 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복지 국가를 확립한 주인공은 비스마르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복지 국가에 대한 흔한 오해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 제도가 소득 지원, 연금, 주택 보조금, 의료 보험, 실업 급여 등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혜택을 베푸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이런 '무료' 혜택이 더 잘사는 사람들이 낸 세금에서 나가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노력에 무임승차를 한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난 복지 혜택은 무료가 아니다. 모두가 비용을 부담한다. 사람들이 받는 복지 혜택의 많은 수가 '사회 보장 분담금'에서 지출된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납세자가 부담하는 노령이나 실업과 같은 특정 분담금과 연결된 지급이라는 의미다. 이에 더해 대부분의 사람은 소득세를 낸다. 그리고 소득세가 면제되는 극빈층에 속하는 사람들마저 물건을 살 때, 부가가치세, 일반 판매세, 수입 관세 등의 '간접세'를 낸다. 사실 비율로 따지면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간접세 부담이 훨씬 크다. 예를 들어 2018년 영국에서는 소득 최하위 20퍼센트 가구가 낸 간접세는 소득의 27퍼센트인데 반해 최상위 20퍼센트가 부담한 간접세는 소득의 14퍼센트에 불과했다. 노동자에게 생계 급여 이하의 임금을 지급해 그들이 생존을 위해 복지국가에 의존하도록 만들면서 정작 기업 등록을 조세 도피처에 해서 탈세를 하는 기업이야말로 '무료로' 혜택을 입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면 복지 국가를 통해 '무료로' 혜택을 입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뭔가가 '무료'인 것처럼 보이면 그것은 '받는 순간 무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복지 국가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대비해 시민 모두가 공동 구매하는 사회 보장 상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복지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가 경제적 역동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개인들의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부상했다. 거기에 더해 잘 설계된 복지 국가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새로운 노동 관행에 대한 사람들의 저항을 줄여서 자본주의 경제를 더 역동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중명하는 가장 좋은 예는 북유럽 국가들일 것이다.
현재 부자 나라 사람들이 누리는 안전 - 그리고 번영 - 은 더 유명한 사촌 곡물인 밀보다 훨씬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수수하고 강인한 곡물 호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센의 지주들이 생산하던 호밀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으면, 제 아무리 비스마르크라 한들 세계 최초의 복지국가 건설을 가능케 한 정치적 동맹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장 닭고기
보편적으로 모두가 먹는 육류인 닭고기를 항공사들이 애용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다양한 음식 취향과 금기 사항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영 항공사인 아에로 플로트는 소련이 붕괴하기 전 이 원칙에 극도로 충실했던 듯하다. 이 항공사는 락고기 요리가 유일한 기내 식사였다고 한다. 한번은 한 인도인 승객이 자기가 채식주의자라면서 승무원에게 닭고기 말고 다른 식사를 줄 수 없는지 묻자, 승무원이 이렇게 곧바로 쏘아붙였단다. " 안 되요, 손님! 아에로플로트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요. 사회주의 항공사잖아요. 특별 우대한 건 없습니다."^^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너무나 오래도록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개인의 필요와 역량은 무시한 채 결과와 기회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이다. 좌파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마다 다른 필요와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반면에 우파는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개인 간의 역량이 어느 정도는 균등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것은 부모 세대가 상당한 소득을 (하향) 재분배하고,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
채식주의자에게 닭고기 기내식을 주는 것이 공평한 일이리 생각하는 항공사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승객들의 여러 가지 취향과 필요를 모두 맞추어 주는 다양한 기내식(아마 닭고기 요리만 해도 한 가지만 있지 않을 것이다)을 제공하지만 표가 너무 비싸서 극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항공사 또한 원치 않는다.
13장 고추추
전 세계 수십억 명의사람에게 '고추'가 없는 음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무보수든 유급이든 상관 없이 돌봄 노동이 없는 삶은 인류 모두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꼭 필요해서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래서 점점 보이지 않게 된 쓰촨 요리(쓰촨 요리는 고추 표시가 없어도 고추가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전문점의 고추와 마찬가지로 돌봄 행위도 필수적이어서 도리어 당연시되고 그에 따라 저평가되거나 심지어 가치가 전혀 부여되지 않게 되었다.
돌봄 노동이 저평가되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못 받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물질적인 불이익을 가져오기까지 한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부터 병들고 나이 든 가족과 친척을 돌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돌봄 노동을 더 많이 감당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보수를 받는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 국민 기초 연금 수준을 넘어선 연금을 평생 받은 보수와 연동되기 때문에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여성은 남성보다 받을 수 있는 염금액이 적은 경우가 많다.
무보수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 중에는 여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돌봄 노동을 경제활동으로 계산하지 않으면 여성이 우리 경제 - 그리고 사회 - 에 하는 공헌이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다.
무보수 돌봄 노동뿐 아니라 보수를 받고 하는 돌봄 노동도 사회에 하는 공헌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는 동안 우리 모두는 이 점을 매우 명확하고도 비극적인 방식으로 목격했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는 동안 많은 나라에서 가정, 공동체, 그리고 사회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중에는 무보수 돌봄 노동을 맡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의사, 간호사, 구급차 운전사 등을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 탁아 시설 종사자, 양로 시설 종사자, 교사 등이 그들이다. 또 돌봄 노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가 생존하고 회복하는 데 어뵤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 다시말해 식료품과 필수품을 생산하고 운송하고 유통하는 사름들(마트, 택배업 종사자 등), 대중 교통 관련 종사자들, 건물과 사회 기반 시설을 청소하고 보수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한 뒤 우리가 깨달은 것은 최고 수준의 의사들을 제외하고는 보수가 형편없다는 사실이었다. 상당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더 균형 잡히고, 더 공평하며, 서로 더 잘 보살피는 사회, 한 마디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과 관행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5부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14장 라임
라임이 괴혈병 치료와 예방에 효과적이란 사실은 비밀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 중 하나였던 영국 해군이 단호한 결정을 내려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선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국 해군은 항해를 떠나가 전에 선원들이 개인적으로 라임을 챙기도록 맡겨 두는 대신 배급품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키고, 선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료(럼)에 이를 섞어서 모두가 반드시 비타민 C를 섭취하게 조취했다.
기후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해결책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영국 해군과 라임 사례에서 보았듯이 그 해결책의 실천 과정을 시장에서 각 개인이 내리는 선택에 맡겨둘 수 없다. 범사회적 행동을 가능케 하는 모든 메커니즘, 즉 지방 정부, 중앙 정부, 국제적 협력, 국제 협약 등을 총동원해서 해결책들 - 식품에 대한 규제, 대중교통 확충, 도시 계획 정책의 개선, 주택 단열 향상을 위한 정부 보조금,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에 대한 공적 자금 지원, 그리고 개발도상국들로의 그린 테크놀로지 이전 등 - 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개인 행동의 변화가 단호한 대규모 공적 조치와 함께 이루어질 때 사회 변화는 가장 효과적으로 발현된다.
15장 / 향신료
유럽에서 가장 귀하게 여겼던 향신료 - 후추, 정향, 계피, 육두구 -는 유럽인이 '동인도'라고 부르던 지역, 다시 말해 남아시아(특히 스리랑카, 인도 남부)와 동남아시아(특히 인도네시아)에서만 자랐다.
향신료를 구하겠다는 열망이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항로를 개척하는 데 중요한 동기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 과정이 자본주의 발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제도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주식회사 또는 유한 책임 회사가 바로 그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동인도'와 향신료 무역을 하는 것은 유럽인에게 엄청나게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2개 또는 3개의 대양(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가려면 태평양까지)을 범선에 의지해서 건너는 것은 약간 과장을 하면 요즘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다가 성공적으로 지구로 다시 귀환시키는 것과 맞먹는 어려운 일이었다.
몰론 성공하기만 하면 대가는 엄청났다. 그러나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 높아서 투자자들은 향신료 수입 경쟁에 돈을 처박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업이 실패하면 투자자들은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사업에 트자한 돈뿐 아니라 재산(집, 가구, 심지어 가재도구까지)을 모두 압수당했다. 빌린 돈을 모두 갚는 것을 당연시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다 실패한 사업가는 개인적인 자유까지 박탈당할 수 있었다. 소유한 모든 것을 팔아도 진 빚을 다 갚지 못하면 빚을 진 사업가는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었다.
투자할 돈이 있는 사람도 당연히 향신료 무역처럼 위험 부담이 높은 사업에는 투자하기를 꺼려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유한 책임제였다. 투자자는 투자를 하더라도 소유한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한 금액, 즉 '지분(주식)'만큼만 책임을 진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엄청나게 줄었고, 따라서 리스크가 높은 사업을 벌이는 사업가가 다수의 투자자에게 큰 액수의 투자금을 모으는 것이 가능해졌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1600년)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1602년)가 이렇게 해서 세워졌다. 이 두 회사는 유한 책임 회사는 아니었지만 동인도에서 성공적으로 향료를 수입해 오고, 결국 각각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식민지를 경영하면서(초기에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식민통치를 했다) 유한 책임이라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유한 책임제 덕분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할 때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자본을 모으는 것이 가능해졌다. 바로 이점 때문에 자본주의의 패망을 예상했던 카를 마르크스가 유한 책임 회사야말로 '자본주의의 발달이 정점을 찍어서 나온 제도'라고 칭송했던 것이다. 몰론 이 발언에는 자본주의가 더 빨리 발전할수록 사회주의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저의가 깔려 있었다(그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완전히 발달한 다음에야 사회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마르크스가 이런 선언을 한 직후, 대규모 투자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한 '중화학 공업' - 제철 및 철강, 기계, 화학 공업, 제약 등 - 이 출현하면서 유한 책임 회사가 더욱 절실해졌다. 19세기 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유한 책임 회사 설립이 특혜가 아닌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시키면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인정 받게 되었다. 그때 이후 유한 책임 회사(또는 법인)는 자본주의 발달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때 경제 성장의 강력한 도구였던 이 제도가 최근에는 성장의 장애물로 변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친 금융 규제 완화로 인해 주주들은 자기네가 법적으로 소유한 기업에 장기 투자할 필요가 없어졌다. 다른 방식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창출할 기회가 너무나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유한 책임제라는 제도를 개선해서 해로운 부작용은 제한하면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때기 되었다. 무엇보다 우한 책임 제도는 장기간 주식 보유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장기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주주들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 대신 기업의 운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 부품 조달 업체, 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지방 정부 등이 모두 해당한다. 주주들의 문제는 장기 투자라 할지라도 언제든 주식을 팔고 기업을 떠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투기 성향이 강한 일부 금융 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서 '치고 빠지는 식의 투자' 기회를 줄이고 장기 투자를 할 동기 부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유한 책임제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금융 규제 철폐와 참을성 없는 주주들이 판치는 환경에서는 이 제도가 경제 발전에 동력이 되기보다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유한 책임 제도 자체, 그리고 금융 규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메커니즘 등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향신료지만 넣는 음식에 따라 요리를 놀라울 정도로 향상시키기도 하고, 완전히 망치기도 하는 것처럼 같은 제도라도 맥락에 따라 매우 유용할 수도 있고,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16장 / 딸기
딸기는 영어로 스트로베리라고 부르지만 과학적 기준에 따르면 베리가 아니다. 블랙베리도 라즈베리(산딸기)도 베리가 아니다. 식물학적으로는 포도, 블랙커런트, 바나나, 오이, 토마토, 가지, 수박, 고추가 베리에 속한다.
딸기가 '베리'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자동화도 일자리를 파괴하는 가장 큰 적으로 여겨져 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동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자동화는 일자리를 파괴하는 장본인이 아니다. 자동화는 지난 250년간 계속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우려하고 위협 받는 것처럼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진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자동화로 인해 기존의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 일자리 창출이 자동화 과정 자체에서 직접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자동화로 인한 간접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행사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지만(사람들이 대개 온라인드로 직접 예약하기 때문에) 여행 산업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겼다. 예약 사이트 운영, 에어비앤비와 같은 서비스를 통한 숙소 대여, 인터넷에 광고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서 생겨난 특화된 소규모 투어 가이드 등이 그 예이다.
여기에 더해 기술이 홀로 일자리 숫자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재정 정책, 노동 시장 정책, 특정 산업 부문에 대한 규제 등을 통해 원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동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과학 기술 공포증('자동화는 무조건 나쁘다')과 젊은 세대의 절망감('우리는 필요 없게 될 거야')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7장 / 초콜릿
초콜릿은 카카오나무의 씨로 만든다. 메소아메리카가 원산지지만 요즘은 코트디부아르, 가나, 인도네시아가 최대 생산국으로 꼽힌다. 카카오나무가 처음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현재의 에콰도르, 페루 지역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후 현재 멕시코가 자리한 지역의 여러 민족 - 올메크, 마야, 아스텍 - 이 뜨겁게 환영하고 제 것으로 만들었다. 마야와 아스텍에서는 카카오콩을 화폐의 한 형태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스페인은 16세기에 아스텍제국을 점령한 후 초콜릿을 자국으로 들여왔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초콜릿이라는 이름도 아스텍의 쇼콜라틀에서 유래했다.
처음 유럽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초콜릿은 원래 아스텍 사람들이 그랬듯 음료로 소비되었다. 초콜릿은 17세기에 유럽 전역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다가 초콜릿이 고체 형태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1847년의 일이다. 영국 퀘이커 교도들이 세운 제과업계의 하나인 브리스톨의 프라이스가 최초로 고체 형태의 초콜릿 바를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초콜릿 음료에 우유를 타는 것은 200여 년 전부터 있어 온 관습이었지만 처음 출시된 초콜릿 바는 밀크 초콜릿이 아니라 다크 초콜릿이었다. 초콜릿 바에 우유를 첨가하려는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끄났기 때문이다. 우유를 넣으면 수분 함량이 너무 높아져서 곰팡이가 피곤했다.
이 문제를 1875년 두 명의 스위스인이 해결했다. 유제품 관련 기술계의 천재 앙리 네슬레가 발명한 분유를 사용해서 다니엘 페터가 최초로 밀크 초콜릿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879년 또 다른 스위스 초콜릿 제작사가 초콜릿 제작 기법에 다시 한 번 도약을 가져와, 이들이 발명한 '콘칭'기법으로 재료를 기계에 넣고 오래 반죽해서 초콜릿의 식감과 맛을 향상시켰다. 이로써 스위스와 고급 초콜릿은 동의어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스위스를 탈산업시대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즉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고급 관광 상품 같은 서비스 산업을 통해 번영을 이룬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산업 국가로 부상하면서 탈산업사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제조업은 중국과 같은 저기술, 저임금 국가가 담당하는 산업인 반면 금융, IT 서비스, 경영 컨설팅 같은 고급 시비스에 미래가 있고, 특히 부자 나라들은 이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논의에서 스위스는 가끔 함께 등장하는 싱가포르와 더불어 서비스 부문을 특화해서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증거로 제시되곤 한다. 이런 논리에 설득당하고 스스로 스위스나 싱가포르에서 영감을 얻은 인도, 르완다와 같은 일부 개발도상국은 산업화과정을 아예 건너뛰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에 특화해서 이를 수출하는 방법으로 경제를 개발하겠다는 시도를 해 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실제로 스위스와 싱가포르는 제조업 최강국이다.
탈산업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근래에 일어나는 경제 변화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탈산업화의 신화와는 달리 공산품을 경쟁적인 가격과 품질로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한 나라의 생활 수준을 결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금융, 운소으 경영 서비스(경영 컨설팅, 공학, 디자인 등)처럼 제조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고생산성 서비스 중 많은 부문은 제조업 부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서비스의 주 고객이 제조업 부문이기 때문이다. 이런 서비스가 '새로워'보이는 건 이전에는 주로 제조업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서비스(따라서 제조업 부문의 생산량으로 계산되었다)였지만 이제는 이런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이 공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서비스 부문의 생산량으로 계산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강한 제조업 부문을 갖춘 스위스,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의 서비스 부문 또한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탈산업 사회 경제 체제에 살고 있다는 믿음은 미국과 영국에 특히 해를 끼쳐 왔다. 1980년대 이후 이 두 나라, 특히 영국은 제조업 부문을 방치해 왔다. 제조업의 위축이 산업 경제에서 탈산업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착각했기 때문인데, 이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제조업 부문의 쇠퇴에 대한 대착을 전혀 세우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핑계가 되어 주었다.
지난 몇십 년 사이 영국과 미국의 경제는 과도하게 발달한 금융 부문이 주도하는 경제 체제로 변신했지만, 금융 경제는 결국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붕괴하고 말았다. 그 이후 이 도 나라가 일구어 낸 미약한 회복은(경제학자들은 '장기 침체' 가능성을 거론해 왔다) 또 다른 금융 거품(과 부동산 거품)에 기반을 두고 있다 - 중앙은행 주도로 역사상 가장 낮은 이자율과 이른바 '양적 완화'프로그램이 이 회복을 떠받치고 있는 실정이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19 팬테믹을 치러 내면서 미국과 영국이 보유한 금융 시장은 이제 실물 경제와는 아무 상관이 어뵤어졌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는 동안 실물 경제는 바닥을 치고 보통 사람들은 실업과 소득 하락으로 고통을 겪었지만 주식 시장은 사상 최고의 고점을 찍었다. 미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도시의 가장 변화가. 보통 쇼핑 센터와 소매점이 늘어선 거리를 말한다)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게 된 것이다.
경제학을 더 잘 먹는 법
음식 이야기를 타고 경제학에 도착하는 과정이 어떨 때는 예측 가능한 것이기도 했지만, 어떤 경제학 주제에 도달하는 과정은 솔직히 괴상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를 읽었다. 경제학에 대해 배우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그 지식을 사용하는 데 다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이 모든 것을 해낼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40여 년간 경제학을 연구한 사람으로써 장하준이 경제학 섭취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첫째,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학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을 이 책 안에 소개해 주었다.
둘째,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는 열린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경제학 이론의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경제학 이론에 대해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음식을 먹거나 조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을 '요리'할 때 사용하는 '재료'의 출처와 기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학 분석은 잘못된 믿음 또는 기술적으로는 맞지만 왜곡된 방법으로 취합된 사실 또는 의문의 여지가 있거나 노골적으로 옳지 않은데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이라는 것이 어떤 이론적 근거로 수집되고 제시되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우리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요리의 명인들이 잊힌 재료를 부활시키기도 하고, 잘 알려진 재료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며, 어떤 음식에 대한 열풍이 불어닥칠 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만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거기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아는 것처럼, 좋은 경제학자는 '상상력이 풍부한' 요리의 원리를 경제학의 이해에도 적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최고의 경제학자는 최고의 요리사와 마찬가지로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시장의 위력과 한계 둘 다를 이해하는 동시에 기업가들이 정부의 지원과 규제를 적절히 받을 때 가장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개인주의적 이론과 사회주의적 이론을 조합할 용의가 있으며, 그것을 인간 역량 접근법에 관한 이론으로 보강해서 불평등, 돌봄 노동, 복지 국가 등의 이슈에 대해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출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 더 나은 식생활을 하기 위한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돈도 아끼고, 건강도 생각하고, 음식을 생산하는 사름들도 고려하고,
충분히 먹지 못하는 사람들 또는 영양 균형을 제대로 맞춰 먹지 못하는 사람들과 상생하고,
동시에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그런 식생활 말이다.이와 마찬가지로우리 모두 주체적으로 경제를,
더 나아가 세상을 이해할(그리고 변화시킬)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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