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2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제가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여러분이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덕이 아버지에게는 다섯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일남이 둘째는 이남이 셋째는 삼남이 넷째는 사남이 이다. 그러면 다섯째의 이름은 무엇일까?
답은 오남이가 아니라, 오덕이 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앞에 보이는 대로 살아가다보면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덕이의 형에 이름이 일남 이남 삼남 사남이라 할지라도 오덕이의 이름은 오덕이 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제목 가운데 '주도'라는 말은 어떤 외부 자극에 대하여 휩쓸리지 않고, 내가 외부 자극 가운데도 내가 선택 하는 것을 주도해 나간다 말합니다. 즉 ‘어떤 반응이 나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인가를 선택해 나가는 것이 주도해 나가는 삶입니다.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은 선택이라 말합니다.
선택이란 이것이냐 저것이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에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여러분 살아가면 내가 늘 선택하는 방향에 대하여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공과 실패, 평안과 절망,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용서와 분노,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 중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십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삶을 살면서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분분 상처의 원인은 채워지지 못한 나의 삶으로부터 옵니다. 예를 들자면, 부모로 인하여, 혹은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일로 인하여 상처를 받기가 쉽습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그 상처로 인하여 성공과 평안과 행복과 기쁨과 용서와 할 수 있다를 원하지만, 그 상처로 말미암아 어깃장을 놓고 실패를 절망을 불행을 슬픔을 분노를 할수 없다를 선택하여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들고, 절망하게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사람들이 자꾸 상처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를 오래 하면서 보니까, 믿음의 힘은 그 어떤 힘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을 붙든 사람들을 보면 길이 열려요. 문이 열려요. 오늘 저와 여러분도 믿음을 붙들기를 축복을 합니다. 여러분! 살아가다 보면 실패하기도 해요. 어려움을 격기도 해요.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실패는 한 사건일 뿐입니다. 실패하였다고 하여서 내가 실패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다시 믿음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뽕나무를 뽑아서 바다에 심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산다는 믿음을 붙드세요. 나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만 함께 하면 이 산이 들리리라는 믿음을 붙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사람하고 함께 있으면 하루도 1시간처럼 느껴지고, 불편한 사람하고 함께 있으면 1시간도 100날 느껴진다는 것 아닙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하고 함께 있으면 내 믿음이 자라요. 반대로 믿음 없는 사람하고 있으면 내게 있던 믿음도 다 잃어 버려요.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외쳐지는 이곳에서 잃어 버렸던 믿음을 붙들어 다시 일어나는 축복이 우리의 삶에 가득넘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게 바울은 이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나를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세워 주셨음을 믿고 이 믿음 위에 반응해 나가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라 말씀하십니다.
롬 12:2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삶에 전쟁터가 많이 있지만, 최고의 격전지는 우리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 있다면 마음에 새로운 변화라고 지적하여 주십니다. 즉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유가 있다면 오늘 나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예배하다가, 찬양을 드리다가 내 속에 새로운 소망이 생기면 소망을 꽉 붙잡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않될 것이라 생각하였던 일들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 확신하고, 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 인생이 그때부터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몇 년전에 중환자실에 심방을 간적이 있었습니다.
원인 불명으로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보통 환자가 의식을 잃고 있다면 가족들이 많이 불안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의식이 없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가족들이 의식이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분이 있다면 제일 먼저하는 말이 있어요. 환자를 찾아가 먼저 귀에다 “제 말을 꼭 마음에 담아 두세요” 라고 말문을 엽니다. 그리고 환자가 의식이 없다 할지라도 그 분의 무의식 속에 예수님의 권세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무게 성도님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그리고 “아무게 성도님 예수님께서 당신을 반드시 치유하십니다.”
환자가 이 사실을 꼭 귀담아 듣고 확신하라 선포하여 줍니다.
여러분 외부의 모든 자극은 일단 우리 뇌의 편도체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편도체는 즉각적인 반응을 하는 본능의 뇌입니다. 그래서 이 편도체는 상처와 기질에 반응을 하여 불안과 절망과 낙심과 염려로 우리의 삶을 끌어갑니다.
그런데 3~5초를 기다리면 편도체의 자극이 아니라 전두엽에서 나오는 자극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전두엽의 자극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은 나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여 나타내 줍니다. 많은 뇌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5초 가량을 인내하면, 후회할 일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지혜로운 반응을 하려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3~5초 동안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건강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환자분이 어떻게 되었을 까요?
병원에서도 원인 불명으로 혼수상태에 빠지니 담당 의사가 많이 힘들어 하였고, 가족들도 모두 힘들어 하였는데, 심방 이후에 환자분이 믿음을 붙들어 의식이 회복되고,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하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나를 치유하여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하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는 자리에 능력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 하실 때 귀신은 물러갑니다. 주님이 말씀 하시니 바다가 잔잔해 집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병든 자가 건강해 집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더 이상 죽음이 주장하지 못하고 죽었던 자가 살아납니다.
왜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까? 예수님에게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능력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마 28:18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다고 하였는데,
정작 나는 예수님의 하늘과 땅의 권세를 조금도 누리지 못하고, 늘 절망과 염려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가 사탄이예요.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해든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입에 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예수 이름을 드러내는 것에 확신이 없어요. 그러나 예수 이름을 선포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막 16:17 /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➀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➁새 방언을 말하며, ➂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➃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의 이름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우리에게 잘 보여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 입구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하나 있었어요. 그는 성전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따라 성령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감동 했습니다. '너 저 사람을 고쳐주라.' 성령의 음성이 들렸어요. 가다가 그 앉은뱅이 앞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쳐다보았습니다. 앉은뱅이는 자기에게 뭔가 동전이라도 줄줄 알고 쳐다봅니다. 그 때 베드로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행 3:6 /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쉽게 말하면 나는 돈이 없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을 내가 너에게 주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예수 그 이름의 권세이다. 너 일어서지 못하는 자야 내가 말하노니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랬더니 40년 동안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다리를 움직이면서 일어납니다.
여러분, 이건 기적입니다. 한 달만 다리 쓰지 않고 앉아 있어도 나중에는 다리에 힘이 없어지는데, 40년 동안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일어나서 펄쩍펄쩍 뜁니다.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춥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구름 떼와 같이 모여듭니다. 그리고는 그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을 신처럼 바라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을 합니다.
행 3:15-16 /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얼마나 대단해요? 이 만큼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예수요, 예수 이름 빼놓고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들은 모일 때마다 예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예수 이름을 증거 했습니다.
위협을 당하고 핍박을 만난다 할지라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 하면서 싸웠습니다.
병자를 앞에 놓고 예수 이름으로 그들을 일으켰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그들은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예수님의 권세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요 1:12 /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다가 오는 순간마다 예수님이 하실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 영접하는 순간 예수 이름을 믿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런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약 4:7-10 /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➀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➁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➂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훈련
모든 상황마다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내 속에 죄악된 모습을 단호하게 단절하라 말씀하십니다.
3. 두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두 마음 즉 “생각과 감정”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불평을 감사 바꾸라는 것입니다.
미움을 용서와 사랑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비판을 격려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위대하게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느 날인가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닫고 그 일을 감당하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새로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성령은 우리를 늘 예수님에게로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죄악을 거절하며, 날마다 주님을 음성을 붙들며 나아갈 때
불안, 초조, 두려움, 분노, 스트레스, 실패, 온갖 욕망으로 인해 들려오던 잡다한 소리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로 선택하여 나아갈 때, 예수님은 나를 통하여 새로운 변화를 주도해나가는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신앙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교회에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말씀 따라 가운데 늘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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